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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참세상의 전사(前史)를 기록하며 -뉴스메이커 22호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뉴스메이커 22호 - ‘투투’라고 해요. 블로거인 뉴스메이커가 각 디렉토리마다 분열을 시도하면서 22호 ‘투투‘가 탄생했어요. 뉴스메이커 22호 ‘투투’의 역할은 미디어참세상의 지난 역사를 기억나는 데로 정리하는 일이랍니다.  민중언론의 전사 디레크토리의 주인이라고 하겠지요.


 



 22호는 미디어참세상이라는 민중언론이 진보넷에서 독립함과 더불어 새로운 민중언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미디어참세상의 지난 일을 돌아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찌나 22호는 생각도 잘 하는지 ^^


문제는 22호가 미디어참세상의 전신인 참세상뉴스와 참세상방송국을 처음 만들 당시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2호는 그래서 주위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다들 처음 어케 만들었는지 긴가민가하더군요.(사실 귀찮아서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어딘가 정리된 자료가 있을 텐데 그런 연혁 궁금하시면 노동미디어 행사자료나 진보넷 총회자료등을 찾아보면 되겠죠) 아무튼 들었던거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풀어볼까합니다.


미디어참세상의 전신은 참세상방송국과 참세상뉴스입니다. 사실 아직도 참세상뉴스, 참세상방송국으로 부르는 분들이 많지요? 처음에는 지금처럼 본격적인 뉴스를 생산하지는 않았답니다. 98년 9월경 처음 시도 되었던 참세상뉴스는 그야 말로 진보진영의 카인즈(kinds, 뉴스데이터 베이스)라는 개념으로 진보적인 매체들을 네트워크에 모아보자는 취지였다고 합니다. 물론 보도자료 요약 정도의 수준에서 간단한 뉴스가 제공되기는 했지만 뉴스생산을 위한 역량투여는 거의 없는 상태 였지요. 또한 오마이뉴스보다도 먼저 ‘모든 민중이 기자다’라는 모토로 민중기자석을 운영했습니다. 당시 민중기자석에 쓰인 기사를 보면 지금의 참세상 속보와 뉴스의 중간형태의 기사를 현장 노동자들이 직접 작성해 보내준 것이 있습니다.


아참 여기서 잠깐 주먹구구식 기억에 의존하다보니 이보다 더 전사가 있군요. 참세상뉴스와 참세상방송국의 시작보다도 먼저 미디어적 시도가 되었는데요. 바로 96-97 총파업기간에 시도되었다더군요. 일명 총파업 통신중계단이라고 다들 들어 보셨죠? 22호는 그때 열심히 노동법개악저지를 위해 거리를 뛰어다니던 때라 다른 뉴스 메이커에게 통신지원단 얘기는 넘겼습니다. 그래서 이글은 에피소드2입니다.  하지만 통신지원단 이야기(에피소드1)를 해줄 뉴스메이커가 지금 분열중에 있습니다. 조만간 나타날 겁니다.


오늘은 민중언론의 탄생설화를 시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22호가 직접 지었 답니다. 22호는 언론이 만들어지고 나면 시인으로 다시 태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시상이 막 떠오르는군요.

 

'나는'


나는 98년에 태어났다.

나는 태어날때부터 빨갛게 태어났다.

나는 빨갛다고 탄압도 많이 받았다.

나는 언론이 뭐 그러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나는 수많은 자본의 네트워크 안에서 버그로 인식되며 자랐다.

나는 외로웠다. 나 한참을 울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그래도 나는 꿋꿋했다.

그러다 나는 민중들이 탄압받고 생존을 위해 싸울 때 더 이상 버그가 아니었다.

나는 민중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나는 투쟁의 현장에서 맞아가며 컸다.

나는 수많은 카메라를 깨먹었다.

나는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그래도 나는 민중언론의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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