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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3/29
    Monthly Review-下(5)
    새민중언론
  2. 2005/03/29
    Monthly Review-上(7)
    새민중언론
  3. 2005/03/24
    아카하타(赤旗), 붉은 깃발(6)
    새민중언론
  4. 2005/03/24
    세계의 진보매체란?(1)
    새민중언론

Monthly Review-下

이런 문제에 대한 자유롭고 허심탄회한 토론이 강력한 금기사항 아래 억압되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기 때문에, 이 잡지(먼쓸리 리뷰)의 창간은 공공에 대한 중요한 서비스라고 나는 생각한다” 라는 문장을 다시 읽으니 가슴이 뭉클하면서 newsmaker13호의 어깨가 갑자기 무거워 옵니다. 우리가 만드는 새 민중언론도 ‘공공에 대한 중요한 서비스’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것을 넘어 정말 ‘공공에 대한 중요한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입니다.

이렇게 창간된 먼쓸리 리뷰는 아카하타가 그랬던 것 처럼 파시즘적 정권에 탄압 받았습니다. 공동 발행인 리오 휴버만은 1952년 매카시와 FBI의 에드가 후버가 함께 이끈 미국의회의 ‘비미국적 활동에 관한 하원 청문회’에 소환되 사상검증의 치욕을 당했습니다. 폴 스위지는 1953년 뉴햄프셔 검찰에 소환되 투옥당할 뻔 하기도 했구요.

그러나 이 들은 자신들의 활동과 발언, 잡지 출간에 대한 추궁에 답변을 전면적으로 거부했습니다. 당시 먼쓸리 리뷰가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고 하니, 겉표지가 보이지 않도록 포장해 발송하고 기고자들도 실명을 사용하지 못했을 정도랍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고통을 겪고 있지 않는 것은 세상이 좋아져서라기 보다는 우리가 ‘저들’에게 위협이 되지 못해서 일까요?

이후 리오 휴버만 외에 폴 바란, 해리 매그도프등이 스위지와 함께 먼쓸리 리뷰를 발행하고 편집했습니다. 이 중에 해리 매그도프는 91세의 나이에도 현재 존 벨라미 포스터와 함께 이 잡지의 발행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빼놓을 수 없는 인물 하나가 또 있으니 그는 바로 해리 브레이브만이죠. ‘노동과 독점자본’의 저자 말입니다. 철강 노동자로 일하며 노조조직책을 맡기도 했었던 해리 브레이브만은 먼쓸리 리뷰 프레스를 책임지며 로자 룩셈부르크, 부하린, 콜쉬등의 사회주의 고전 뿐 아니라 혁명 쿠바에 관한 책들, 사미르 아민의 책들을 발굴해 출간했습니다.



자신들의 50년 역사를 자축하는 글을 이렇게 끝맺었더군요. “자본주의와 제국의 불평등과 불안정이 여전히 깊이 있는 사회 재건설의 절박한 필요성을 야기하기 때문에, 먼쓸리 리뷰가 지난 50년 동안 그랬던 것과 똑같이 다가오는 새 천년에도 전세계 해방투쟁과 연대하는 미국 맑스주의의 깃대로 계속 봉사할 것이라고 기대할 충분하고도 넘치는 이유가 있다”
이 글에서 펠프스는 유료 정기구독 부수가 “작년에는(1998년) 1991년 이후 최고 수준인 5795부에 달했다”고 자랑하면서--;; “이런 변화를 상징하기라도 하듯, 잡지는 1998년 표지와 판형, 글꼴을 모두 키움으로써 역사상 첫 편집개편을 시도했다”라과 말하기도 했습니다.(허걱...49년 만에 첫 편집 개편이라니 ㅠㅠ) 여튼 먼쓸리 리뷰는 요즘도 여전합니다. 94살 먹은 해리 매그도프는 존 벨라미 포스터와 함께 “먼쓸리 리뷰는 1980년대 레이건 시대 이래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우익들의 계속되는 공격에 직면해 사회안정망위기의 본질을 지적하며 지속적으로 대응해왔다”로 자신있게 시작되는 권두언을 이 달에도 내놓았더군요.

 

먼쓸리 리뷰는 2000년에는 네그리와 하트가 지은 ‘제국’을 두고 특집판을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발리바르, 아리기, 지젝, 캘리니코스의 현란한 논쟁들이 이 특집판을 장식했더랬죠.

 

아이고 한 시간 동안 꼼짝 않고 포스팅을 하려니 newsmaker13호의 좀이 막 쑤시는군요. 슬슬 마무리 짓겠습니다. 오늘 역시 가쉽 아닌 가쉽을 하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아까 해리 브레이브만 이야기를 하면서 먼쓸리 리뷰 프레스를 잠깐 언급했는데요. 먼쓸리 리뷰 출판부, 즉 먼쓸리 리뷰 프레스는 어쩌면 먼쓸리 리뷰 자체보다 더 유명할지도 모릅니다. (돈을 더 버는 것은 확실합니다^^)

 

아까 몇몇 저작들을 언급했지만 좀 더 자세히 소개해드릴께요. 고전들 외에도 체 게바라의 저서 ‘쿠바 혁명전쟁 회고록’, 만델의 ‘맑스주의 경제학 이론’ 알뛰세의 ‘레닌과 철학’ 사미르 아민의 ‘세계 수준의 자본축적’ E P 톰슨의 ‘이론의 빈곤’ 등(아이고 많기도 하다)등이 모두 먼쓸리 리뷰 프레스를 통해 출간됐습니다. 해리 브레이브만의 ‘노동과 독점자본’ 역시 마찬가지구요.

 

그런데 먼쓸리 리뷰 프레스가 우리에게 더 긴밀하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아리랑’을 출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정래의 아리랑은 아니구요--;; 김산의 아리랑, 님 웨일즈가 쓴 바로 그 책, 우리나라에선 1984년인가 동녘 출판사에서 나온 바로 그 ‘아리랑’ 말입니다. 사실 ‘아리랑’을 초간 한 곳은 먼쓸리 리뷰 프레스가 아니지만 50년이 넘게 꾸준하게 발간하고 있는 곳은 바로 먼쓸리 리뷰 프레스입니다. 일본의 나름대로 진보적인 출판사 이와나미 서점 에서는 먼쓸리 리뷰 프레스 판 아리랑을 번역해 참회의 필독서로 ‘세계의 명작 100선’에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아 참, 역시 진보넷 블로거이신 홍실이 님께서 얼마전 보스턴에서 스위지 1주기 추모 모임에 다녀오신 소식을 전해주시기도 했습니다.  홍실이 님이 전해주신 스위지 1주기 추모 모임의 한 장면을 들여다 볼까요? “고인이 93세에 돌아가셨다 하니 그 친구, 동지들이라는 양반들이 다 머리가 하얗게 샌 할머니 할배들.... 한 할배 나와서 말씀하시길 ‘내가 그를 를 처음 만난 건 1943년...어쩌구....’  이크... 거의 내가 제일 젊은이가 아니었나 싶다..... 미국 젊은이들은 다 어디 갔는고....  지난번 하워드 진 강연 때도 젊은이들은 안 뵈고 나이 지긋한 양반들만 줄줄이 앉아 있었는데....”

 

에휴 미국 꼴이 요새 요 모양 요 꼬라지인 갑네요. 스위지도 저 세상으로 가고 이제 미국에는 할배 둘만(하워드 진, 놈  촘스키 -이들도 먼쓸리 리뷰의 단골 필진들이죠) 남아 있나 싶어 가슴이 짠합니다.

 

아 참, 홍실이님은 곧 새 민중언론의 해외통신원으로 맹활약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계시니 많이들 기대하세요^^ 절찬 개봉박두입니다요.

 

휴~ 이것으로 ‘세계의 민중언론’ 2회- 먼쓸리 리뷰 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꼬부랑 글씨로 된 사람 이름들 많이 나와서 헷갈리지는 않으셨나요? 혹 “야 neswmaker13호 너는 니 글에 언급한 사람들 책들은 다 읽고 야부리 푸는 거냐?”고 질문하신다면 전 당당하게 대답하겠습니다. 그것도 영어로 말이죠. “No Comment!" ㅋㅋㅋ

 

자꾸 말씀드려서 지겨우시겠지만 저는 여러분의 리플, 트랙백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고 있습니다. 제발 일용을 넘어 이용, 삼용 할 수 있도록 뜨거운 관심 기다릴께요.

첨언: 혹시 회원가입 절차를 몰라서 새 민중언론 후원회원으로 가입 못하고 계신분^^은 즉각 덧글 주세요. 자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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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Review-上


안녕하세요. 뉴스메이커 13호입니다. 세계의 진보매체 그 두 번째 순서로 여러분들을 다시 찾아 뵙게 됐습니다.(BGM은 두구두구두구둥-작은 북 트레몰로) 지난 24일 첫 번째 순서로 소개해드린  ‘아카하타’는 재밌게들 보셨나요? 그럭저럭 제 주위에서는 반응들이 좋았던 것 같은데 여러분들께서 겨우 리플 6개, 트랙백 하나라는 양식 밖에 안주셔서, 여러분의 사랑 아니 리플과 트랙벅을 먹고 자라는 저 뉴스메이커 13호는 굶어 죽을뻔하다가 겨우 살아났습니다 ㅠㅠ

 

에휴 잡설이 길었네--;; 하여튼 두 번째 순서로 어떤 매체를 소개해드릴까 고민하다가 어젯밤을 꼬박 세웠습니다. 베네주엘라 볼리바르 혁명의 주력군 역할을 했던 매체를 소개해달라는 주문들도 있었고 세계의 진보매체를 소개하면서 어떻게 ‘로동신문’을 빼놓을 수 있냐는 딴지 아닌 딴지도 있었습니다. 결국 도처에서 암약하고 있는 뉴스메이커들의 의견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두루두루 들어 제 마음대로 결정했습니다 ㅋㅋ

 

첫 번째 순서로는 좀 대중적 일간지인 아카하타를 소개해드렸으니 이번에는 전혀 다른 성격의 매체를 소개해드리는게 어떨까 싶네요. 오늘 소개드릴 매체는 해리 매그도프와 존 벨라미 포스터가 공동 발행인을 맡고 있는 미국의 월간지 Monthly Review(이하 먼쓸리 리뷰)되겠습니다.

 

모름지기 좌파를 자임하는 사람들은 영웅적 개인을 기리기 보다는 계급의 힘을 믿는 편이고, 또 그러려고 의식적으로 노력들도 하는 듯 합니다만 1818년 맑스가 태어난 이후 계급 운동이라는 은하수 속에는 수많은 붉은 별들이 빛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앗 그렇다고 제가 ‘한 별 을 우러러 봅니다’라는 노래를 즐겨 부른다던가 하는건 절대 아닙니다--;; 의심하지 마세요)



먼쓸리 리뷰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폴 스위지라는 붉은 별 하나를 빼먹고 넘어갈 수 없을 것 같군요. 지난 해 10월 자끄 데리다가 사망했을때 미디어참세상을 보니 Peyo라는 기자가 오비츄어리를 썼더군요. 전 그 기사의 마지막 문장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잠깐 인용해 볼께요. “에드워드 사이드, 피에르 부르디외, 폴 스위지 그리고 자끄 데리다의 죽음과 함께 이제 20세기는 역사의 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전 Peyo가 쓰는 기사가 못마땅할 때가 많은 편이지만 윗 문장 하나 만큼은 잘 뽑았다 싶더라구요^^ 여튼, Peyo가 말했듯이 1910년에 태어나 2004년에 영면한 폴 스위지는 20세기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한 사람이고 오늘 소개드리는 먼쓸리 리뷰를 창간한 사람입니다.

 

먼쓸리 리뷰는 1949년 폴 스위지에 의해 창간됐습니다. 사실 창간 당시나 지금이나 먼쓸리 리뷰의 발행부수는 만부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간지와 월간지의 차이라고 한다손 치더라도 첫 번째 순서에 소개드린 아카하타가 지금도 이백만부 가까이 발행하고 있는 것하고는 천양지차지요. 그러나 이 잡지의 권위, 영향력은 일만이라는 발행부수와는 무관합니다.

 

서른 두 살의 나이에 자본주의 발달이론-맑스주의 정치경제학 원리 라는 이 시대의 클래식을 혼자 써서 발간한 스위지는(흑 스위지는 서른두살에 이런 책을 썼는데 nesmaker13호는 지금 뭐하고있는지 ㅠㅠ 만 서른 두 살 되려면 아직 좀 남았다는 걸 상기하며 자위하겠습니다)

 

물론 스위지 혼자 먼쓸리 리뷰를 만든 것은 아니고 많은 사람들의 땀과 헌신이 함께 했지만 먼쓸리 리뷰의 창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리오 휴버만입니다.

 

요즘은 이 책 잘 안 읽는 모양이지만 리오 휴버만의 미국사 우리, 인민들(we, the people)은 정말 유명한 책이죠. 이차대전 중에는 (미국)전국해운노조의 대외협력, 교육국장직을 맡기도 했던 연구자이자 활동가였던 리오 휴버만은 1968년 사망할때까지 스위지와 함께 공동 발행인으로 먼쓸리 리뷰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1949년 매커시즘이 슬슬 몰아쳐오기 시작할 즈음에 세상에 나온 먼쓸리 리뷰 창간호에는 기념비적인 아티클이 실려있습니다.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쓴 ‘왜 사회주의인가 (Why Socialism?)이라는 글이 바로 그것이죠. 여담이지만 올해가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 이론을 발표한지 딱 백년이 되는 해라 여기저기서 아인슈타인 열풍이 불고 있는데 사회주의자 아인슈타인에 대해서 다시 주목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새 민중언론에서 한 번 다뤄볼까요?

 

일단 이 기념비적 아티클의 몇 부분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몇가지 번역본이 있지만 진보넷 블로거 marishin님의 신뢰할 만한 번역본에서 인용하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경제나 사회 문제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사회주의에 대한 견해를 표해도 되는 걸까?”라고 묻고 바로 답합니다. “나는 몇가지 이유로 그렇다고 믿는다” 이 부분은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겠죠?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이 밤, 철야하며 라인을 타고 있는 노동자들도, 응급실에서 당직을 서고 있는 의사들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했던 장애인차별철폐투쟁단들도,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세상의 절반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여성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여성활동가들도 우리, 인민 모두는 사회주의에 대한 견해를 당당히 표할 수 있을겝니다. 아인슈타인이 그랬던 것 처럼.

 

아인슈타인은 과학적 지식의 관점과 윤리적 관점에서 사회주의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표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합니다. 이어 아인슈타인은 “오늘날 자본주의사회의 경제적 무정부 상태가 악의 진정한 근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그나마 우직했던 1949년의 자본주의사회를 ‘경제적 무정부상태’라니...만일 아인슈타인이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약탈적금융경제를 본다면 허허 과연 뭐라 말할지 궁금하군요.

 

자 좀 더 들여다 보죠. “이런 악을 제거하는 길은 오직 하나 뿐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것은 사회적 목표를 추구하는 교육체계를 동반한 이른바 사회주의 경제를 확립하는 것이다. -중략-사회주의의 목표와 문제를 분명히 하는 것은 지금 이행의 시기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아인슈타인의 아티클은 아주 멋진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첫 번째 순서에서 소개해드렸던 아카하타의 창간하의 한구절 “아카하타는 여러분들 자신의 기관지이다”에 맞먹을 만합니다.

 

“왜 사회주의인가”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자유롭고 허심탄회한 토론이 강력한 금기사항 아래 억압되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기 때문에, 이 잡지(먼쓸리 리뷰)의 창간은 공공에 대한 중요한 서비스라고 나는 생각한다”

 

글이 길어 상, 하로 나누어 포스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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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하타(赤旗), 붉은 깃발

 

첫 번째 순서로는 최근 독도 문제로 우리와 사이가 삐그덕 거리고 있는 이웃 일본의 대표적 좌파 일간지 ‘아카하타(赤旗)‘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조중동이라는 별칭이 있듯, 일본에도 이른바 3대 일간지가 있는데 아사히, 요미우리, 산케이가 바로 그것입니다. 산케이는 뭐 조선일보의 자매 신문(--;;)으로 불리는 신문이고 미디어재벌이자 프로야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모회사인 요미우리 또한 머 오십보 백보입니다. 그나마 아사히가 자유주의적인 신문으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아이구 아카하타 이야기 한다 해놓고 딴 신문들 이야기를 잠깐 했네요. 하여튼 이른바 일본의 삼대일간지에도 못미치고 니혼게이자이 같은 거대 신문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아카하타는 만만찮은 규모와 영향력을 자랑하는 신문입니다. 그리고 사실 아카하타는 일본 공산당의 기관지로 창간됐습니다만 편집권은 완전히 독립되어 움직이는 매체입니다. 한 때는 아카하타 구독료로 일본 공산당이 먹고 산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인기있는 신문이었구요. 최고 전성기라고 할 수있는 1980년에는 유료 정기구독자 수가 355만에 달했을 정도라고 하는 군요. 최근에는 많이 쪼그라 들어 200만도 안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만...


아카하타는 일본공산당이 창당한지 6년이 지난 1928년에 창간됐습니다. 아카하타가 왜 아카하타가 되었는지 잠깐 유래에 대해 말씀드릴께요. 일본에서는 1898년 사회주의 연구회라는 조직이 결성되었습니다. 이 연구회는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해산됐지만 후일 사회민주당으로 전화했습니다. 1906년 창당된 일본사회당은 같은 해 동경시 정부가 전기요금을 인상한 것에 대항해 대대적 민중운동을 전개하다가 경찰기동대와 대규모 충돌을 벌였고 이듬해인 1907년 대규모의 총파업을 진행해, 결국 일본군이 출동해 이들을 진압하기에 이르렀죠.


그래서 일본 제국주의 정부는 다시 사회당을 해산시키고 당원들을 대규모로 구속시켰습니다. 이 때 구속된 사회당원들이 출소하면서 붉은 깃발(적기, 일본어로 아카하타죠)를 들고 행진하는 것을 다시 경찰이 공격해 또 당원들이 구속된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이 이른바 그 유명한 아카하타(赤旗)사건이고 그 이름은 일본 공산당의 기관지 명인 붉은 깃발, 즉 아카하타(赤旗)로 남은 것입니다. 헥헥..아휴 설명하느라 힘들다..물 한 잔만 마시구 계속 할께요.


이런 역사 속에서 “아카하타는 여러분들 자신의 기관지다”라는 감동적인 창간사와 함께 1928년 7월 15일 제 1호가 발간됐습니다.


일본이 우리를 식민지배 했던 탓이 크겠지만 아카하타와 우리나라는 관계가 깊습니다. 특히 식민지배 당시에 아카하타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몸소 실현한 매체였죠.


아실랑가 모르겠지만 일본의 쉰들러로 불리는 후세 다쓰지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엠비씨 PD 수첩에서도 다뤄진 이 인물에 대해 우리 정부는 지난 200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기로 결정했죠. 여담입니다만 일본 사회주의자에 대해서는 작년에 건국훈장이 추서됐는데 우리 사회주의자에 대해서는 이 보다 더 늦은 올해 훈장이 추서된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죠.


하여튼 후세는1902년 메이지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그 이듬해부터 일찌감치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한일합방 직후인 1911년에는  ‘조선의 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함’이라는 글을 발표해 경찰의 조사를 받기도 했구요.  2·8독립선언 사건으로 검거된 최팔용·백관수 등 조선 유학생의 변론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조선 독립운동 지원에 나섭니다.


그는 아카하타 창간호에서 “한일합방은 어떠한 미사여구로 치장하더라도 실제는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침략”이라면서 ‘조선민중의 해방운동에 특단의 주의와 노력을 바칠’ 뜻을 공개적으로 표명했습니다. 이후에도 비슷한 활동을 쭉 펼쳐 어려움을 겪었구요.


1931년 3월 7일 아카하타는 “조선, 대만 등 식민지의 독립”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합니다. 한달 후인 4월 일본 공산당 정치국 테제 초안에는 그 문구가 그대로 슬로건으로 채택되고 일본공산당은 ‘민족부’를 설치하기에 이릅니다. 민족부는 조선과 대만 내의 공산주의세력과의 연락유지, 일본내에 거주하는 조선, 대만인의 조직화가 주된 목적이다는군요.


자 그럼 1931년 8월 30일자 아카하타 의 한 부분을 들여다 볼까요?


 “일본 내에 있는 조선인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은 일본 프롤레타리아의 중대한 임무다.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의 투쟁은 일본프롤레타리아가 해야 할 책임이다. 우리는 공장에서 직장에서 조선인 일본인 노동자의 공동투쟁을 조직했고 또 조직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충분치 못하다. 조선인노동자에 가해지는 비인간적 학대에 대해, 노예적 대우에 대해 그리고 조선인노동자 및 혁명적 인텔리겐챠에 가해지는 야만적 취급과 고문 등에 대해 강력한 반대투쟁을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일본 프롤레타리아의 치욕이다. 조선인노동자 대중을 공산주의측에 획득할 것, 反일본 제국주의의 강한 힘으로 조직할 것-이것이 일본 프롤레타리아 및 조선공산주의자의 임무이다."


이건 뭐 단어 몇 개만 바꾸면 현재 우리나라 어딘가에서 나온 문건이라고 해도 속을 정도군요^^


일본제국주의가 강고해지면서 아카하타는 엄청난 탄압을 겪고 폐간되기도 하죠. 2차대전 종전 이후에도 못말리는 반공주의자인 맥아더 군정정부로부터 엄청난 탄압을 겪고 정간, 편집진 구속을 밥먹듯이 당합니다. 전공투 시절의 아카하타는 말할 필요도 없겠죠.


재밌는 가쉽 거리 하나 알려드릴께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좋아하시는 분들 많을텐데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데뷔가 바로 아카하타의 청소년판인 ‘소년소녀신문’을 통해 이뤄졌답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사회주의자인 하야오 감독은 대학에서 정치경제학(정치 하고 경제가 아니라 정치경제학이요)을 전공했다는군요. 대학시절 그는 ‘소년소녀신문’에 ‘사막의 백성’이라는 만화를 연재하면서 애니메이션과의 행복한 만남을 시작했답니다. 물론 저는 ‘사막의 백성’을 본적은 없습니다만--;; 주 내용은 맑시즘과 공상과학이 결부된 것이었다는구요.(상상들 해보세요. 어떤 내용일지)


자 이것으로 뉴스메이커 13호가 드리는 ‘세계의 진보매체’ 1회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어때요? 재밌으셨나요? 아니면 너무 길어서 혹은 딱딱해서 재미가 없으셨나요? 소개글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여러분의 리플, 트랙백을 먹고 산답니다. 제가 굶어죽지 않도록 일용할 양식 많이 보내주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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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진보매체란?

안녕하세요. 저는 뉴스메이커 13호 입니다.

 

제 소개를 드리자면 새민중언론창간준비자들 가운데 아주 우수한...사실은 우스운 사람으로 꼽히고 있는 멤버입니다. 이 블로거에 올라와 있는 글들을 저도 쭉 읽었는데요. 사실 내용은 정말 좋은데 뭐랄까, 좀 재미가 없달까 아니면 좀 딱딱하달까 하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몇회까지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기획 연재(거창하다--;;)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이 카테고리에서는 세계의 진보매체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설명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세계의 진보매체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뭐 우리나라에서는 한겨레, 오마이도 진보라고 자임 혹은 규정 당하는 우스운 형국이긴 한데요. 세계적으로 봐도 진보적 매체들이 쇠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빛나는 역사들은 여전하고 아직도 만만찮은 저력을 자랑하고 있는 곳들이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따지면 탐관오리와 군주의 학정을 고발했던 벽서, 갑오농민혁명 당시 농민군들이 돌렸던 사발통문도 진보매체에 속하긴 하겠지만 그까지 짚어볼 능력은 불행히도 제가 가지고 있지 못하군요ㅠㅠ

 

진보매체라기는 뭐하지만 좌파, 민중 매체까지 넓혀서 생각해보면 이스크라(불꽃이란 뜻이죠)를 먼저 떠올리시는 분들도 계실테고 해방직후 재건된 조선공산당의 기관지 해방일보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겠죠. 이 밖에 일본공산당의 기관지 아카하타, 쿠바의 그란마, 남아공의 ANC Today, 이탈리아의 Il Manifesto, 영국의 가디언 등등 수없이 많은 매체들이 있네요.

 

하여튼 이러한 수많은 훌륭한 매체들 가운데 순전히 제 마음대로 순서를 정해 소개 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찌기 예수 그리스도 께선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라고 광야에서 사탄을 물리치신 바 있습니다만 저, 뉴스메이커 13호는 여러분들의 덧글과 트랙백을 먹고 살고자 하니 이 글을 보시는 아저씨, 아줌마, 형님, 누나 께서는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이 여러분의 관심을 찾아다니는 이 어린양 불쌍히 여겨 주시면 감샤하겠습니다.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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