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아픔

2011/08/17 20:24
타인의 아픔이나 고통, 억울함을 듣고 헤아리는 나의 직업이, 나는 아프다. 과거사위가 그렇고 국민권익위원회 행정심판이 그렇다. 나는 어설프게 술로 간신히 버틴다. 이것이 나의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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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고단하게 살아서 그랬을까요. 다음엔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고 싶습니다.
지금은… 새가 되고 싶습니다. 훨훨~
주익 씨도… 새가 되었을 거예요. 훨훨~

 

짧은 잠을 자며, 똑같은 꿈을 두 번 꿨습니다.
시장 구경도 하며 돌아다니는데 어딜 가나 크레인이 보였습니다. 85호….
곁에 있는 사람은 이것저것 물건도 만져보고, 웃기도 하고, 천진스러운데,
저는 크레인을 바라보며 저길 올라가야 하는데,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올라가야 하는데, 꿈에서도 애가 탔습니다.

 

한 번은 또 다른 꿈이었습니다.
아마도 뻣뻣한 철구조물 위에서 200여 일을 보내다 보니 부드러운 것들이 그리웠나 봅니다.
뙤약볕에 용광로 속처럼 달구어지는 운전실에서 시들시들해져 간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나 봅니다. 하루는 꿈에 85호 크레인에 파란 싹이 돋기 시작하더니, 점차 무성해지더니 안전계단의 손잡이들이, 붐대의 철근들이 구불구불 나무줄기로 변하더니, 아, 몇천 년은 자랐을 법한 거대한 나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시원한 나무그늘이 생기더니, 운전실이 예쁜 원두막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00일. 200일. 그건 별로 중요치 않습니다.
이 생의 결단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채 내려가면 오히려 못살 거라는 거. 그게 더 중요해요. 제게는.
김주익, 곽재규, 두 사람 한꺼번에 묻고 8년을 허깨비처럼 살았으니까요.
먹는 거, 입는 거, 쓰는 거, 따뜻한 거, 시원한 거, 다 미안했으니까요.
밤새 잠 못 들다 새벽이면 미친 듯이 산으로 뛰어가곤 했으니까요.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사람들의 숲에 함께 어울려 평등하게 살아가는 평화로운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작은 자리 하나 차지하고 소박하게 살아보고도 싶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단 한 번도 정주할 수 없는 숨 가쁜 날들이었습니다.
열다섯에 집을 나와 아이스크림 가방을 메고 돌던 무더운 해운대 백사장, 땅콩을 팔러 돌아니던 낯선 골목들, 오라이요! 오라이요! 내달리던 화진여객 122번 버스, 발바닥에 땀방울이 나도록 밟던 미싱 페달, 잠깐이라도 시간을 줄여 눈붙이려고 총총히 식당으로 향하던 21살, 22살, 23살. 25살에 해고되고 하루도 빼지 않고 나가던 새벽 출근투쟁길, 얻어맞으며 끌려가던 숱한 길. 길게 집을 떠나 있어야 했던 두 번의 징역살이, 노동자의 삶과 꿈을 얘기하러 혼자 전국을 떠돌던 일들. 그리곤 지난 1월 6일 새벽, 혼자 오르던 85호 크레인의 차가운 난간.

 

외롭기도 했던 날들, 하지만 이제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꿈조차 제 것이 아니었던, 미래 역시 제 몫이 아니었던 우리들이 모여 이제야 비로소 하나의 꿈을 꾸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어떤 이웃도 함부로 잘리지 않는 세상, 비정규직으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 기업이 사장 개인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 모두의 것이 되는 세상을 향해 달리는 버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럿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그렇게 함께 꾸는 꿈이 희망 버스에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리운 평지로 내려가 여러분들과 함께 그 희망의 버스, 연대의 버스, 응원의 버스를 타고 다시 지금도 1300일째 싸우고 있는 재능교육비정규직과 국민체육진흥공단비정규직 누이들을 찾아,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난쟁이들처럼 살아가는, 그러나 마음만은 늘 밝고 거대한 발레오 동지들을 찾아, 여리고 순박하면서도 심지가 기타줄마냥 질긴 우리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을 찾아가는 꿈을 꾸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도 밤에는 잠 좀 자자고, 야간노동 이제 그만 없애자고 했다고 백주대낮에 용역깡패들에게 두들겨 맞아 병원엘 가야 하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찾아, 희망의 자전거를 타고 달려와 준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을 찾아, 15명의 동료들을 잃은 우리 쌍용자동차 노동자 가족들을 찾아, 노동자들을 넘어 모든 가난하고 소외받는 우리 이웃들을 찾아가는 꿈을 꾸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올라와 85호 크레인을 지켜주는 박성호와 우리 동지들과 함께. 저 담장 너머에서 날마다 노숙을 하며 나를 지켜주는 저 눈물겨운 우리 한진 노동자들과 함께 말입니다.

 

더 이상 패배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절망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울지 않기 위해.
이 모든 행복한 꿈이, 암흑 속에 앉아 새벽처럼 밝아오는 여러분들을 기다리는 이유입니다.
즐겁게! 의연하게! 담대하게!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흔들리지 않는 85호 크레인 나무가 되어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눈물겹도록 감사합니다.

 

 

출처 : 2011. 7. 28.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727205923&section=03 

[김진숙 기고] 타워크레인에서 3차 희망버스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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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질투, 여자, 본다는 것...

2011/07/27 00:07

나는 여름감기로 한참을 고생하고 나서 며칠동안 사무실에서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다.
과장이 여름휴가를 간 덕분에 나의 나태함이 되살아 났다.
그러나 밀려있는 사건 때문에 마음의 조급함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나의 업무가 지루하고 형편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행정심판은 참으로 무미건조한 일이다.
연민이나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 '인정사실'과 '판단'을 쓰지 못하고 사건은 뒤죽박죽 된다.
무미건조함과 냉정함이 같은 뜻일까.
아직 나는 나의 일에 보람이나 긍지 따위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어제 밤에 나는 동료들과 잔득 술을 먹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 친구에게 전화해서 한참을 울었다.
나의 삶이 부끄럽다고 말한 것 같다. 나의 모습에 내가 서러웠나 보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지각을 면하기 위해 급하게 걸아가다가 안경이 뿌옇게 흐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어제 흘린 눈물의 흔적이었다.

 

요즘 하루키의 소설을 대충 마무리하고 후배의 추천으로 김연수의 소설을 읽고 있다.


닭고기와 여자

- 너는 닭고기하고 여자 중에 뭐가 더 좋냐?
- 당연히 여자가 좋지, 임마.
-그럼 어떻게 한 여자보다 닭고기에 대한 사랑이 더 오래가냐? 난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김연수, 2003, [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51쪽)

 

남자의 질투(...이거 생각보다 무섭다.)

광수의 얼굴이 금방 확 달아올랐다. 원래 술이 약하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 토마토보다도 더 시뻘개진 그 얼굴을 설명하기에는 곤란한 점이 많았다. 그건 아름다운 여자를 자신만이 소유했다고 믿는 모든 남자들이 두툼한 지갑과 함께 늘 지니고 다녀야만 하는 감정인, 질투심 때문이었다.
(김연수, 2003, [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74쪽)

 

질투란 숙주가 필요한 바이러스와 비슷하다. 질투란 독립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랑에 딸린 감정이다. 주전선수가 아니라 후보선수라 사랑이 갈 때까지 숨을 헐떡거리면 질투가 교체선수로 투입된다. 질투가 없다면 경기는 거기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13세기 사람 앙드레 르 샤플랭은 "질투하지 않는 자는 사랑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했다. 자신들의 사랑을 충분히 확인한 사람들 중에는 급기야 질투로 사랑을 확인하려는 욕망을 느끼는 부류도 있다. 그런 까닭에 처음 만난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자기보다 잘생긴 사람을 만나서 질투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를 위해서는 시기심이라는 단어가 준비돼 있다. 그런 점에서 어휘력이 부족하면 세상사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곤란이 따른다.
(김연수, 2003, [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103-104쪽)

 

쓰여지지 않는 책

얼마 전에 녹음한 책에 보니까 아프리카에서는 노인이 한 명 죽을 때마다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썼습디다.
 (김연수, 2009, ' 달로 간 코미디언', [세계의 끝 여자친구], 문학동네, 268쪽)

 

보이지 않는다는 것

내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내가 마치 거기에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마주 앉아 있어도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한법은 몹시 추운 겨울날 목도리를 두르고 밖에 나간 적이 있어요. 내가 지팡이을 두들기고 지나가니까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죠.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불어대던지. 그때 어떤 아줌마가 나한테 '어차피 앞도 안 보이는데 그냥 목도리로 얼굴을 다 감아버리지, 왜 목만 가리느냐'고 묻습디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나는 앞을 볼 수 없으니까. 그 말은 어차피 남들이 나를 볼 수 없으니까, 라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내 존재 자체가 사려져요. 시각장애의 핵심은 내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보여져야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연수, 2009, ' 달로 간 코미디언', [세계의 끝 여자친구], 문학동네,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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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나서...

2011/07/16 00:26
나는 나의 자유가 좋다. 무한한 자유는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고 즐기는 자에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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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선생님, 그리고 "지식"의 한계 
 

출처 : [박노자의 글방] 만감: 일기장 2011/07/07 10:28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36038 
 
 

이제 곧 200일을 맞을지도 모를 김진숙 지도위원의 크레인 고공농성을 지켜보면서 늘 드는 생각 하나 있습니다. 생각이나 정서를 십분 공유해도 “행동”을 김진숙 선생님처럼 하지 못하고 있는 저 같은 사람은 과연 의미 있는 생을 사는가 라는 부분에 대한 회의입니다.
 
저의 조상 대다수를 길러낸 유대교의 문화도 그렇고 한반도 문화도 그렇지만 대개 “배움”에 대한 거의 절대적이다 싶은 가치를 둡니다. 1970년대의 동일방직 여공들의 외침을 기억합니까? “우리는 배우지 못했지만, 똥을 먹고 살 수 없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배우지 못했지만”이라는 전제입니다. 개인 의지의 문제도 아니고 엄격히 사회적 환경의 문제일 뿐이지만, “배우지 못한 사람”이 애당초부터 한 수를 접고 “배운 사람들”이 지배하는 이 사회를 대하게 돼 있습니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고급 관료, 기업 소유주와 임원들의 대다수는 국내외 “명문대”의 화려한 학위를 지니고 있으며, 그들을 지성적으로 뒷받침해주고 보필해주는 전임직 교수 집단 중에서는 역시 약 40%가 화려한 “외국산 학위”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지배자들이 가장 기대는 SKY의 상경, 사회 계열의 교수 집단 같으면 “명문 중 명문”의 미국 대학에서 “간판”을 따고 유창한 내지어로 무장한 사람들의 비율은 아예 80-90%입니다 (예컨대 서울대 경영대는 89% 정도 됩니다). 개화기나 박정희 시대의 구호대로 “지식은 국력”이라면, 한국은 벌써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될 만도 합니다. 식민지 모국의 “인증서”가 붙은 지식의 보유와 지배/통치 관계가 정확하게 겹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상전들이 “검증된” 지식을 확고한 지배 명분이자 매우 유용한 지배 도구로 삼지만, 백성들도 이 체제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보려고 빚을 내서라도 아이들에게 절망적으로 내지어를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일제말기에는 조선인 중에서는 그 당시의 내지어이었던 일본어의 능통자는 약 15%이었지만, 지금 같아도 직접적 식민 통치없이도, “간접 통치”의 상황에서도 거의 그 정도로 새로운 내지어인 영어의 능통자가 늘어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지배체제가 요구하는) 지식으로 살고 죽고 생사를 가리는 이 대한민국은 과연 덜 폭력적인 사회가 돼갑니까? 최근 경찰이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을 대하는 방법만 봐도 그게 전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유성기업의 경우도 그렇고 한진중공업의 경우도 그렇지만 자본에 “감히” 행동적으로 권리주장하는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1990년대처럼 원천봉쇄, 묻지마 연행, 초강경 진압, 살인적 손배 소송, 그리고 용역의 무지막지한 폭력입니다. 1980년대와 비교해도, 고문이 없어진 것 빼고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지식으로 가득 찬, 지식이 인제 거의 “잉여”가 될 정도로 지식에 의존하는 사회인데도, 그 폭력성의 수준은 그리 쉽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지식 그 자체만이 사회를 개선시킬 수는 없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회의 차원도 그렇지만, 개인 차원에서도 지식 그 자체만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 같지 않습니다. 체제에 잘 편입되기만 하면, 그 체제가 아무리 악질적이라 해도 “고급 지식”의 보유자들은 대개 군대 졸병 이상으로 잘 순치됩니다. 세계체제 주변부 파시즘의 전형에 가까운 유신 체제 하에서는 송기숙 교수 등 일부 “제도권 지식인”들은 민중의 편에 섰지만 대체로 저항을 주도한 것은 함석헌처럼 “지식” 그 자체보다 독특한 종교적 사고를 지닌, 그리고 “지식 인증서”가 잘 없는 야생마적인 존재들이었습니다. 저항에 가담한 교수들보다 “교수평가단”에서 출세가도를 달렸던 교수들은 몇 배 많았습니다. 박정희가 어렸을 때부터 흠모했던 히틀러의 치하에서는 과연 달랐을까요? 지식인의 꽃이라고 할 의료권력자, 즉 의사의 약 절반이 나치 당의 당원이었다는 곳은 파쇼 독일의 실정이었습니다 (http://fcit.usf.edu/holocaust/Resource/REVIEWS/Aly.HTM ). 반전 운동을 시발점으로 해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삶을 시작한 촘스키교수는, 월남전쟁 한참이었던 1960년대 말만 해도, 미국 대학 교수의 약 7할이 전쟁을 지지했거나 무관심했다고 회고합니다. 미국 대학과 군수복합체의 밀접한 관계까지 생각한다면 결코 놀랄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지식 그 자체가 인간을 구제할 수 없다는 걸 잘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 뇌 속에서 축적된 지식은 그저 컴퓨터의 파일처럼 “삭제”되고 맙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지식인이라는 것은 너무나 “유한”한 것이죠. 사회화된 지식, 즉 책 등의 형태로 공동체 전체의 재산이 된 지식은 그것보다 오래 살아도, 절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나고 나면 오늘날 우리의 지식은 그저 역사학자들에게만 관심사가 될 뿐이죠. 지식도 “유효기간”이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어도 “삭제”되지 않고 수 백년, 수만 년이 지나도 빛 바래지 않는 것은 김진숙 선생님이 지금 보여주시고 계시는 “동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동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하면 괜스레 종교적 냄새가 느껴지지만, 사실 노동운동판에서 김진숙 선생님이 보여주시는 실천은 제게 어느 종교가의 실천보다도 더 고귀하게 보입니다. 종교의 “이웃사랑”에 늘 권위주의적 상하관계가 내재돼 있습니다. 예수는 단순히 한 명의 씨알이 아닌 “주님의 아들”로 기억되고, 부처는 설법을 들으러 온 사람이 그 발에 입을 맞추어야 하는 “세존님”, 절대적 권위의 보유자로 기억됩니다. 종교계에서는 “이웃사랑”은 권위 관계의 밑천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김진숙 선생님이 보여주시는 “동류 사랑”에는 사랑만 있고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고 군림하려는 뜻은 없습니다. 김진숙 선생님도 제도가 아닌 자신의 힘으로 “지식인”이 되고, 자도 애독하는 <소금꽃나무>의 저자이기도 하지만, 이 지식은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는 것은 아니고 “동류 사랑”의 실천 수단이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지식의 유일한 올바른 쓰임 방법일 것입니다. 지식이란 일종의 칼입니다. 누구의 손에 잡히는가에 따라서 해방의 도구도 학살의 도구도 다 됩니다. 그런데 칼을 절대시하는 문화는 “해방”보다 “학살”에 더 가까운 것처럼, “지식”을 절대시하는 문화도 전혀 해방적이지 않습니다.
 
행동하지 못하고 체제에 편입된 지식은 그저 악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김진숙 선생님을 보면서 저 같은 사람들은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식을 전문적으로 다루면서 김진숙 선생님처럼 행동하지 못하면 결국 지배자 무리에 포섭돼 이 지옥을 관리하는 악마들의 유순한 도구가 될 확률은 너무 높습니다. 저도 그렇고 저의 동료인 “직업적 체제내 지식인”들도 그렇지만, 다 살얼음판을 걸어 다니는 것입니다. 김진숙 선생님을 보면서 “인간 해방을 향한 지식 축적”은 무엇인지 매일매일 배워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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