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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영화제]혁명가를 만나다.

몇 일 전 밤샘 알바를 하고 오전에는 캠페인준비를 하고 낮에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인권영화제를 보러 갔는데, 보고 싶었던 것들을 다 자버리는 바람에 영화제에서 오랜만에 영준이 형과 ‘레드로자’님을 만난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겨우 버티고 봤던 영화들은 별로 였고..

그래서 오늘 영화제를 보러갈까, 캠페인을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종로로 향했는데,

좀 보다가 배고프면 밥먹으러 가야지 했던게 10시 넘어서까지 극장에 틀어박혀 있었다.

 

첫 번째 영화였던 <지하의 민중>은 계속 다른 생각이 나서 영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두 번째, 홍콩WTO투쟁을 다룬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같은 경우에는 평소 같았으면 피했을(?) 나레이션으로 점철된 영화였지만 전 타임 때 고민했던 것이 집회방식에 관한 거여서 도움이 될까 해서 봤는데, 한국 사람들 너무 잘하더라...투쟁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는데 정말 울컥했다.

 

세 번째, <책임회피>는 버마에서 다국적기업과 군부독재세력이 손잡고  버마 민중들을 착취하는 상황에서 버마 활동가가 군대를 피해 오지를 돌아다니며 그 증거를 수집하고 소송을 건다. 그 활동가가 갑작스럽게 자비를 들여 한국에 왔고, 예정에 없던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이번에 한국에 온 것도 '대우'가 똑같은 짓을 할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항상 장전된 작은 총을 가지고 다닌다고 했는데, 버마군대에 잡히면 고문 받고 자신이 만난 사람들을 말해버릴까 두려워서 자결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활동가 모두가 혁명가라고 생각하지만, 특히 그는 남달랐다.
그는 부드러우면서 강했고, 자유로우면서 열정적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그에게 쭈뼛쭈뼛 다가가 잘 안 되는 영어 쥐어짜서, 악수한번 할 수 있냐고, 감명을 깊게 받았다고, 그리고 악수를 하면서 지금 이 순간과 당신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고, 내가 23살이라고 대답하자, 자기는 17살 때 ‘출발’했다고, 격려해주었다. 우리는 다시 악수를 했다.

 

 




진실을 외쳐라 (Speak Truth to Power), Kerry Kennedy Cuomo 지음

 

카사와 (Ka Hsaw Wa)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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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학생 한 명, 주민 한 명과 함께 닷새 동안 정글 속을 걸어 카렌 지역으로 갔다. 마을이 가까워졌을 때, 나는 결코 잊지 못할 장면을 목격했다. 한 여성이 성기에 커다란 나뭇가지가 박힌 채 죽어 있었다. 마을에 가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주민들은 군인들이 말라리아에 걸린 동료를 치료해야 한다고 간호사를 데려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군인 1962년 이후로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얀마 군부정권의 들은 그녀를 강간한 다음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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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용기란 것이 힘에서 오는 건지 고통에서 오는 건지 잘 모른다. 언젠가는 어떤 사람의 증언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온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끔찍한 이야기였다. 어떤 활동가의 아내가 남편을 만나려고 하다가 체포되었다. 군인들은 남편이 나타나지 않자 아기를 죽여 불에 구운 다음, 아기엄마에게 강제로 먹였다. 나는 싸워야 한다. 내가 겪은 고통은 그들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 사람들은 백배천배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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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함께 학교를 다니던 동료들 중에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공부를 마치고 손에 돈을 쥐고 돌아오는 것을 보면,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고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상황이 점점 악화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내 무능력이 안타깝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다. 내가 등을 돌려 가버리면, 아무도 이 문제를 들먹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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