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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감옥으로부터의 사색>중에서2

그러나 과거를 다시 참회하고 그 뜻을 파헤치다가도 이를 도리어 그르치는 예를 허다히 봅니다. 우리는 참회록이라는 지극히 겸손한 명칭에도 불구하고 정신의 오만으로 가득 찬 저서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오만은 자신의 실패나 치부를 파헤치긴 하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중의 성취를 돋보이게 하기위한 조명적 장치로서의 성격을 떨쳐버리지 못함에서 오는 것으로, 이것은 결국불행이나 실패에 대한 이해의 일회적이고 천박함에서 오는 오만-인생자체에 대한 오만이라 해야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 쪽에 마음을 너무 많이 할애함으로써 현재의 갈등과 쟁투가 그 전진적 몸부림을 멈추고 거꾸로 과거에로 도피해버리는 예를 많이 봅니다. 과거에로의 도피는 한마디로 패배이며, 패배가 주는 약간의 안식에 귀의하여 과거에의 예종, 숙명론적 굴레를 스스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나는 이 숱한 문제들과 정면대결하는 겨울밤을 좋아합니다. 꽁꽁 얼어붙은 하늘을 치달리는 잡념을 다듬고 간추려서 어린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점검하는 하나하나의 일들과 만나고 헤어진 모든 사람들의 의미를 세세히 점검하는 겨울밤을 좋아합니다. 까맣게 잊어버렸던 일들을 건져내기도 하고, 사소한 일에 담겨있는 의외로 큰 의미에 놀라기도 하고, 극히 개인적인 사건으로 알았던 일에서 넘치는 사회적의미를 발견하기도하고, 심지어는 만나고 헤어진다는 일이 정반대의 의미로 남아있는 경우도 없지않아 새삼 놀람을 금치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에서 만나는 것은 매양 나 자신의 이러저러한 모습입니다.

 

바로 이점에서 이러한 겨울밤의 사색은 손 시린 겨울빨래처럼 마음 내키지 않는 때도 있지만 이는 자기와의 대면의 시간이며, 자기해방의 시간이기 때문에 소중히 다스리지 않을 수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과거를 파헤치지 않고 어찌 그 완고한 정지를 일으켜 세울 수 있으며, 과거를 일으켜 세워 걸리지 않고 어찌 그 중압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않고서 어찌 새로운 것으로 나아갈 수 있으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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