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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1/11
    ...(2)
    흑점
  2. 2007/01/11
    씨발
    흑점
  3. 2007/01/11
    연대의 형식
    흑점

...

엎친데 덮친 격으로.
휴대폰에 저장되어있던 400여개의 전화번호들을 홀랑 날려버렸다. 물론 그중에서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는 번호는 몇 개 없지만, 그리고 그중에도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가끔 휴대폰에 저장되어있던 번호 목록을 쭉 훑어보면서 이 사람은 요즈음 어떻게 잘 살고 있으려나...하면서 생각하다가,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피식 웃고는 했었는데 이제 그러기는 힘들겠지...날아간 번호와 함께 기억도 영영 사라져가겠지...

 

돌아보면,
2003년에 홀홀단신(?)으로 서울에 올라와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스쳐 지났다. 그때는 정말이지 많이 돌아다니고 부딪히고 넘어지기도 하고 그래서 다시 일어서기도 하고 그랬었다. 생각해보면 그땐 그랬었지 하며 웃음이나는 일투성이다. 그러다가 문득 그땐 왜 그랬을까 하며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올해가 밝아오는 시간에 나는 멍하니 시덥지 않은 컴퓨터게임이나 하고 있었고, 문득  휴대폰으로 시간을 봤을때 어느새 2007이라는 어색한 숫자를 보았다. 나는 해가 바뀌었다는 느낌보다는 지금쯤 종각에서는 사람들이 개떼같이 몰려서 소리치고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1월 1일이라는 단순하면서도 기이한 숫자의 조합이 어색해서 한참을 물끄러미 휴대폰 화면만 바라보았었다. 그러다가 문득 작년 이 맘 때쯤의 기억이 떠올랐는데 그때는 피시방 야간 알바를 하고 있을 때여서 그전 타임알바와 교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나니 어느덧 2006년이 시작돼있더라.

 

그리고,
 또 작년 이맘때 즈음, 그러니까 일월도 중반가량 지났을 무렵에 나는 ARCO의 HAPPY NEW YEAR라는 곡을 반복재생해서 듣고 있었고, 이제야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내가 워낙 느려터진 편이라, 올해도 마찬가지로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새해를 맞이하고자 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또 다시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작년을 돌아보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 처음으로 상근비 받아가며 활동을 시작했던 해였지만, 그래서 더욱 씁쓸하게만 느껴진다. 과연 무엇이 남아있을까...얼마 전의 글에서 나의 방황자체를 사랑하자고 다짐했건만, 이건 방황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니다.

 

아무튼!
 2006년은 지나갔고, 2007년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이지 새로운 해에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지나간 해에 남은 것이 없다는 사실보다도 앞으로 기대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백배천배는 더 슬프다. 또 슬픈 건 그 2007년마저 얼마나 여기에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거다. 아마 어느 순간 모든 걸 버려버리고 도피하듯 군대로 끌려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전에 내가 혹은 나를 스쳐 지났던 사람들 한번 씩 만나서 안부인사나 전할까 했었는데 전화번호가 홀랑 다 날아가는 탓에 그럴 수도 없다.

 

그래도...
어찌 됐건 새해는 밝았다. 아마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나이를 쳐먹을수록 나도 나빠지면 더 나빠졌지 좋아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가고, 사람들은 또 그렇게 똑같이 살아가겠지.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으면서, 또 그걸 알면서도 새로 시작하려고 하겠지. 그게 빌어먹을 사는 거니까.

 

 

그러니까...

 


어쨌든,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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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나는 지금 몹시도 기분이 좋지 않다. 어제 새벽에  술상을 한번 뒤엎었고, 바로 구역질이 나버렸지만 아직도 진정이 잘되지 않는다. 오늘은 입을 열면 욕지거리가 터져나올까봐서 하루 종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비겁하게 말하면, 이제 여기서 발 빼고 싶다. 새벽에 시발놈 어쩌구 하다가 오전에 자고 일어나서 몸은 괜찮냐고 태연한척 물어보는 이 상황이 정말 너무 싫다. 누구는 이것을 서로 바닥까지 가본 경험이라고 소통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흠씬 두들겨 맞고 강간까지 당하는 듯한 느낌이다.
성장은 상처로 출발 한다지만 이런게 성장이라면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이것이 유아기적 투정이거나, 아니면 완전히 늙어버린거든 뭐든 받아들이겠다. 그냥 나는 이게 정말 싫고, 힘들고, 벗어나고 싶다. 이것이 퇴보든 포기든 뭐든 상관없다.

 

물론 한 인간을 단편적으로 하나의 상황만을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아무리 백번 양보해서 인정하려고 하고 이해하려고 해도 나란 놈은 아직 성숙이 덜 된 탓인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오히려 역으로 그 통합성은 부분을 무마하는 것으로 작용하고, 소통을 불가하게 만드는 시대성은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치열함은 그 모든 것을 ‘과정’이라는 노력으로 치환하고 덮어버린다. 그런데 이게 어디 한 두 번이어야 말이지... 

 

아, 씨발. 정말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보다 더 싫은 건 한 인간을 이렇게나 까대 놓고서 내일 또 다시 어색한 웃음으로 그를 대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만 하고 싶다...

 

나는 이제 또 어디로 가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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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형식

인간은 생각지도 못할 만큼 유물론적이고, 생각만큼이나 훨씬 더 관념론적이어서 결국엔 인간은 누군가에게 이해 받기는 커녕 결코 자기 자신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조차도 타인일 수밖에 없다.  

 

지하철 칸과 칸 사이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기어들어온다. 그의 한쪽 다리는 의족이었으며 그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 그 한쪽 다리가 잘 보이도록 사람들에게 쭉 뻗은 채 처절하게 기어오고 있다.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왜 인간들은 이렇게 자신들의 치부를 타인에게 드러내며 사람들의 동정을 갈구하면서 이해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인간은 왜 이리도 나약한 존재일까 하는...나 자신 또한 그렇듯이.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갈구하고 사랑하려고 하고 어딘가에 소속되려고 하고, 보이지 않는 신에게 몸을 바치고, 때로는 취하기도 하지만 그 행위는 결코 충족 될 수 없는 공백만 더더욱 드러낼 뿐이다. 인간이 외로운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이유. 결국 구원은 자기스스로를 구워하는 자만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불교경전에 나오는 말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갈수는 없을까? 라고...

 

*

 

J는 M과 서로의 바닥까지 보기 위해서 결혼을 한거라고 말했다. 그건 정말 힘들고 어렵겠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연대’라는 건 공동체라는 건 그런게 아닐까라고 말했을 때, 나는 두려웠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럴 자신도 없다. 그런거 싫다! 한 자의식 하는 인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소통에의 갈망과 두려움이 동시에 존재하고, 나는 이제 타협하고 싶다. 이게 타협인지 아닌지는 어차피 알 수 없는 것 아닐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혼자이고 싶다. 최소한의 내 것은, 그리고 지금 나의 평화와 여유는 지키고 싶다.

 

*

 

출근을했는데 뭔가가 휩쓸고 지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책장은 넘어졌었는지 부서져 있었고, 바닥에는 흥건했던 핏자국을 닦아내고 남은 얼룩이 져있었고, 군데군데에는 채 닦아내지 못한 핏방울이 튀어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어느 정도 예상되는 바가 있었기에 오후에 온 K에게 물어보니, ‘치열하게’ 술을 마셨다보다, 라고만 대답했다.
저녁 무렵에 J와M에게서 전화가 왔었는데,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이긴 했지만 너무도 태연하게 오늘 수고 많았다고 말을 전해왔다.

 

아이들과 함께 김장을 하기위해 배추를 저리다가, 한 아이가 벽을 가리키며 이거 핏자국 아니에요? 라고 물었을 때 나는 그저 못 들은 척 넘겼다. 순간, 도대체 이게 뭐하고 있는 짓인가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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