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기
어느 중소영세사업장의 기막히지만 너무나 일반적인 사연들 (2)

이인석 (노동자의 힘 회원)

현장 작업자의 반 정도가 조금 못 미치게 해고된 다음날, 여전히 공장의 프레스는 쿵쾅거리며 잘도 돌아갔다. 다만, 출근 인사소리가 나지막해지고, 특례병들의 ‘농땡이’와 아주머니들의 환한 ‘웃음소리’, 주임과 반장의 농담 섞인 ‘다그침’이 없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현장을 순시, 아니 감시(통제)하는 전무와 부장의 눈초리가 싸늘함에서 득의양양한 ‘포만감’으로 빛날 뿐이었다. 아침에 나의 ‘작업지시서’에는 언제나 돌리던 자동 3, 4호기가 아니라, 자동 4,5,6호기(기계가 2대에서 3대로!)로 바뀌어 있었다. 전날의 과음 때문인지 ‘설사’의 조짐이 와도 오전 내내 꾹꾹 참으면서 일만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나는 어쩔 수없이 휴식 시간이 없고, 점심시간도 30분밖에 안되는 ‘24시간 작업자(1시간분의 시급이 더 나오는)’이기 때문이다. 2시간 일하고 시원하게 볼 일보면서 담배한가치의 여유도 즐길 수없는 현장 분위기에 절망하면서 이빨만 아득바득 갈 수밖에!

사실, 회사가 어렵다는 것은 **지역에 공장을 증설하고, 바로 옆에 있던 공장을 매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량이 줄어든 것은 원청회사가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하기 때문이고, ‘곧’ 엄청난 물량이 쏟아질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이번 해고는 경영상의 이유(?)라기보다는 더욱 악랄하게 착취하기위한 구조조정의 전초전일 뿐이고, 당연히 현장 작업자들은 그만큼 일을 ‘더 많이, 빡세게’ 하고 있다. 애초에 쉬운 금형과 어려운 금형을 하나씩, 2대의 프레스로 돌리던 것이, 이제는 어려운 금형은 2대로, 쉬운 금형은 3대의 프레스로 돌리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다. 더구나 아무리 기술이 많이 필요 없는 작업이더라도 그동안 정든 기계를 마음대로 바꿔버리는 것에 미치는 줄 알았다. 낡아서 기름도 줄줄 흐르고 고장도 잘나지만, 그래도 ‘금쪽같은 내 새끼’ 자동 3,4호기였는데 말이다.

더구나 잔업을 뺀다는 건 이제 사나흘 전에 허락(애걸복걸)을 받아야 하고, 툭하면 아무 예고 없이(저녁 먹을 때 쯤) ‘연장근로’(우리끼리는 잔업의 잔업, 즉 ‘따블잔업’이라 부른다)를 때려버리는 것이다. 철야, 특근을 중국 사람들에게 많이 빼앗긴다고 투덜거리던 짠돌이 특례병도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면서 잔뜩 부어있다. 욕심 많은 친구이니만큼 생활도 그만큼 짜임새가 있는데, 자기 나름의 ‘견적’(일정 관리)을 낼 수 없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모양이다. 더 웃기는 건, 이놈의 회사는 수당이 많이 나오는 철야는 죽어도 안 때리고 딱 10시나 11시까지만 ‘따블잔업(?)’을 시킨다. 작업자들 확 줄어서 놀고 있는 몇 대의 기계는 이제 급한 물량을 찍어내는 ‘따블잔업’용 스페어가 되었다. 12시간 ‘주야 맞교대’ 만으로도 사람이 죽어날 판에 일주일에 몇 번씩 14-16시간씩 일하고 특근까지 한다는 건, 그야말로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그리고 오래 근무한 선배들은 ‘이렇게 일이 힘들 때면 꼭 사고가 난다’면서 술을 줄이고 일찍 자라고들 당부한다.

더구나 ‘해고’ 때문에 피곤한 것은 몸뚱이만이 아니다. 이번 참에 ‘큰형님’(그다지 큰형님 같지는 않았지만) 주임과 살아남은 반장 두 명은 확실히 회사 쪽으로 줄을 서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다. 그래도 감정은 상하지 않게 관리(!)하던 그간의 온정적 모습과 달리, 최근에는 아주 ‘노골적’이다. 하긴,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박봉이지만 또박또박 나오는(이 회사는 그래도 한번도 임금체불이 없었다고 한다) 임금, 그리고 주임, 반장이라는 ‘완장’을 버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노동자들에게는 ‘수입’에 걸 맞는 기본적인 한달 생활의 ‘규모’가 있고, 그것을 깨트린다는 것은 가정과 생활을 ‘뽀개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프레스에 눌려 손가락 몇 마디가 없는 형님과, 떨어진 금형에 발바닥이 짓이겨져 다리를 조금씩 저는 형님을 보면 미치겠다. ‘짤린 손가락’ 때문에 짤리지 않으려고, 1시간씩 일찍 출근해서 청소하고 이것저것 준비하는 형님들이 왜 그렇게 미우면서도 안타까운지!

나는 사뭇 비장한(?) 각오로 잔업을 마치자마자 해고된 반장 형을 만나러 자취방으로 찾아갔다. 일반노조에 가입을 하든 뭐든 해서 해고된 사람들을 모아서 싸움을 하면, 내가 공장 안에서 무언가라도 할 생각이었다. 나도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 기대는 안 했지만, 이놈의 인생은 또 얼마나 ‘가관’이냐하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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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8 10:26 2005/02/1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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