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기

보아라, 저 칠흑 어둠 속
얼음절벽에 못박힌 사람을 보라
저 까마득 높은 곳 칼바람에 펄럭이는 사람을 보라!

 

무엇이 저들을 저곳에 오르게 하였는가
왜 자신의 육신을 저 허공 벼랑에 걸어두었는가
어찌하여 저 몸 나부껴 깃발이 되려 하는가
아, 저들이 정말 저기에 있기나 한 것일까
보이지 않는다,
아, 저들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언제는 너무 낮아 보이지 않더니
이제 저 높은 곳에 있어도 저들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개 숙여 땅만 보고 걷노라고
눈앞의 것만 보고 달려가느라고
자기 것 밖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서
존재하지 않는다,
권리를 빼앗긴 자들은 이 땅에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에 얼마만큼 존재하는 것일까
권리를 지켜줄 법도 모자라고
밥을 지켜줄 힘도 모자라고
주권을 지켜줄 정치도 없는 우리가
이 나라에 얼마만큼 존재하는 것일까
손바닥만큼 존재하는 것일까
헌신짝만큼 존재하는 것일까
벌레만큼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가 얼마만큼 존재하기에
살인마에게도 밥은 먹이고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도 굶기진 않는데
너희들 밥이 아니라 우리 밥을 먹이겠다는데
굶는 자에게 밥 먹일 권리조차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냐
우리는 이 땅에 존재하긴 하는 것이냐
 
함께 눈물 흘리던 사람들은 왜 돌아앉은 것이냐
차별 없는 세상 만들자고 깨물어 혈서를 쓰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분노의 화염병을 들던 자들은
다른 인간의 눈물 앞에는 왜 아무런 분노도 없는 것이냐
어찌 이제는 차별 없는 세상이 어디 있냐고 비웃는 것이냐
승리했다는 것이냐
내 배불러 승리했다는 것이냐
승리는 나눌 수 없는 사유물이냐

 

그렇다면 우리는 패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그렇다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우리는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다
나쁜 승리에 대해서 우리는 알고 있다
자본권력이 노동자의 폐부까지 전일을 지배한 영토에서
노동의 어떠한 승리도 승리라고 할 수 없다
노동의 작은 승리에 도취된 자들을 보아라
그들은 모두 오염되고 모두
타락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본의 친구가 된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전진할 것이다!
나쁜 승리는 인간을 후퇴시키고
용기 있는 패배는 인간을 전진시킬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는 언제나 벼랑에 선 존재다
그래서 노동자는 언제나 저 가파른 경계에 선 존재다!

 

그렇다 다시 보아라, 저 칠흑 어둠 속
얼음절벽에 매달려 나부끼는 사람을 보라
자신의 육신을 풀어헤쳐 펄럭이는 깃발을 보라
저 깃발에서 패배를 읽지 말라
저 깃발에서 승리를 읽지 말라
저 깃발에서 이념을 읽지 말라
저리 나부끼는 건 인간이다, 인간을 보라!
인간을 저 어둡고 가파른 절벽에 내다 건
극한의 인간사랑,
지극한 인간 연대를 넘어
생명의 나눔을 보아라!
지금 이 순간 저기 저,
지상에서 가장 완전한 인간을 보아라!

 

아, 저들이 지금 저기에 있기나 한 것일까?
아직도 저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눈부신 저들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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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9 16:24 2009/01/1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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