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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태일 열사 40주기를 기리며

금속민투위신문 칼럼 원고.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40년 전 1970년 11월13일 22살의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 열사는 자기 몸을 불태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열사의 외침은 17년 뒤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의 ‘노동자 인간선언’으로, 그로부터 10년 뒤 “우리는 임금노예가 아니다. 노동자가 이 사회의 진짜 주인”이라는 1996~97년 노동법개정투쟁의 ‘노동자 정치선언’으로 되살아났다.

 

지난 40년, 특히 1987년 이후 지난 23년 동안 우리 노동운동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투쟁해왔고, 투쟁을 치르면서 힘을 키워왔다. 우리 사회 민주화와 사회변혁운동의 주력은 학생과 시민운동에서 노동운동으로 바뀌었다. 금속 대공장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해 파업하면서 “공장의 주인은 바로 노동자”라는 사실을 확인시켰고, ‘공권력’에 맞선 목숨건 일전에서 쉽사리 물러서지 않는 강인한 전투력을 보여왔다. 점거해서 한꺼번에 모여 있을 공장이 없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흩어져서 파업하는 ‘산개파업’으로 정권에 맞섰다. 2000년 발전 노동자들의 민영화 반대 38일 파업은 쉽게 깨지지 않는 공공부문 산개파업의 저력을 일깨웠다. 운수노동자들은 공장을 멈추는 것 못지 않게 물류를 멈추는 투쟁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는지, 화물트럭이 멈추고, 기차가 멈추고, 뱃길과 하늘길이 막힐 때 노동자의 투쟁이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 보여줬다.

 

조직력도 커졌다. 민주노총은 70만 대군으로 성장했고, 현장활동가조직들도 전국회의, 현장연대, 현노회, 노동전선 등 전국조직으로 분화․발전했다. 노동자정치운동 또한 민노당, 진보신당, 사회당, 사노위 등으로 포진을 갖춰왔다. 민중의소리, 레디앙, 참세상 등 진보언론들의 목소리도 커져왔다.

 

하지만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합쳐도 노동조합 조직률은 전체 노동자의 10%대에 머물고 있고, 진보정당들의 득표력도 모두 합쳐 1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투쟁의 주력으로 등장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소규모 장기전을 반복하면서 쉽사리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기륭전자, 재능교육, 동희오토, 삼성반도체 백혈병 노동자, 병원 청소노동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구미 KEC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전태일 열사의 40년 전 외침을 지금도 똑같이 외치고 있다. 울산에서도 축협, 춘해대 노동자들과 제일고 해고 급식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흐트러진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추스르고 무너진 연대를 복원하기 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했던 지난해 1월의 미포투쟁은 전태일 정신과 맞닿아 있다. 두려움과 패배의식을 떨쳐내고 불법파견 정규직화투쟁에 나선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현대차 1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넘어 현대중공업과 미포조선 2만4000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정규직화와 제조업 간접고용 철폐투쟁의 불씨를 심고 있다.

 

전태일 열사는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속에서 부활하고 있다. 되살아오는 전태일 열사를 껴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것은 전태일 열사 40주기를 맞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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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5 16:12 2010/10/2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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