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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이 허광평에게]보내는 글을 읽으며

[노신이 허광평에게 ]

인생이라는 장도에는 큰 난관이 두 개있다. 갈림길과 막다른 궁지가 그것이다.

갈림길에서는 묵자선생도 통곡하고 돌아갔다고 하지만, 나는 울지도 돌아가지도 않고 우선 갈림길 앞에 앉아 쉬거나 한숨자고 괜찮을 만한 길을 택해 계속 걸어갈 것이다.

가다 정직한 사람을 만나면 음식물을 달라해서 허기를 달래되, 길을 묻지는 않으련다. 내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그 길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호랑이라도 만난다면 나무 위로 기어올라가 놈이 배고픔을 참다 못해 제 갈 길을 가면 그 때 내려올 것이고, 끝내 가지 않는다면 나무 위에서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혁대로 몸을 꽁꽁묶어두고 시체마저도 놈에게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가 없다면 놈에게 잡아먹히긴 먹히되, 놈을 한 입 물어 뜯어도 무방할 것이다.

다음으로 완적선생도 대성통곡하고 돌아갔다는 막다른 궁지에서는 다른 길에서처럼 성큼 걸어갈 것이고, 가시밭길이 가로막는다해도 여전히 걸어갈 것이다.
다만 온통 가시밭뿐이어서 결코 갈 수 없는 길은 분명 한 번도 맞닥뜨려 본 적이 없다. 그러고보면 세상에 본래 막다른 궁지란 것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다행히도 아직 그런 지경에 데이지 않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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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이 제자이자 부인이었던 허광평에게 썼다는 글이다.

선택과 궁지는 어느 시대 어느 누구에게나 닥치는 문제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개인이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 진실이 혼란 스럽고 과학이 승리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착취와 계급투쟁이라는 역사과학이 인정 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노신의 글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고민해보면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갈림길과 막다른 궁지를 "치명적 실수, 비과학적 오류"라는 문제는 제외하고 글이 전하는 감동을 느끼고자 한다면 새로운 시대를 '우리' 스스로 건설해 가는 주체의 정치, 구성의 정치를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이 중요 한 것이 아니고 그 길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그 길에 놓는 발걸음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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