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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518 그리고 “오래된 정원”

 

다가오는 518 그리고 “오래된 정원”


이제 곧 518이다. 올해가 몇 주년(?)인지 가물거린다. 고대 제국의 연호처럼 ‘광주민중항쟁 OO년’을 문서, 플랜카드에 써 넣던 시절이 있었다. 518은 역사와 상징 이전에 ‘우리’를 구성하는 일부였다.


그런데 이제 몇 주년인지조차 가물거린다. 사실 80년에 일어난 사건이니 계산하기 쉬워 잊지는 않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정신이 무엇인지가 가물거리는 것일 터인데 518의 정신을 지키기가 그만큼 어렵다. 내 비록 아직 삶의 무게를 훌훌 털어버릴 연륜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운동의 년차가 오래될수록 이런 원론적인 문제는 이상하리만치 멀어지고 어려워진다. ‘정신’의 내용보다는 정신을 삶 속에서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어려움의 본질이다.


비록 원작을 읽지 못했고, 보는 사람마다 관점과 느낌이 다르겠지만 영화 ‘오래된 정원’은 지독하게 우울하다. 광주 민중항쟁 이후 오늘을 살아가는 혁명가는 더 이상 투사도, 전사도 아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전망은 더더군다나 없다.

원작자 황석영, 혹은 감독이 의도했던 메시지가 무엇이건 간에-그것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내가 느낀 점은, ‘우리는 왜 오늘을 살고 있는가?’ ‘어제의 정의는 유효한가?’와 같은 질문이다. 사실 영화는 그 답을 주지 못한다. 투사의 감금된 시간, 그리고 변한 세상과 애틋한 사랑을 관찰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많은 암시와 풍자(?)는 있다.


그러나 영화의 의도이든 아니든 나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영화 속의 주인공이 갇혀 있던 감옥에서 억눌려 있던 것은 육체일 뿐, 정신도․사회모순의 근본적인 원인도 아니다. 좀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망월동에 묻혀 진 것은 투쟁하는 민중들의 육신일 뿐, 역사도 진실도 아니다.


하지만 오늘 현실은 어떤가! 역사를 기념한다는 망월동 묘역은 그 위상에 걸맞게 단장되고, 꾸며지고 있지만 기념관으로 바뀌면서 역사마저 묻어버리고 있다. 이제 다시 맞이하는 518에, 떠나간 자들을 욕하기보다 ‘내’가 끌고 나갈 역사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역사는 518의 이름 없는 전사들과 이름이 남겨진 전사들이 함께 살고자 했던 삶이다. 그런 삶을 현실에서 우리가 살아가지 못하기에 우리는 더 혼란스러울 뿐이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그것이 총을 드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흘러버린 시간 속에서 변한 것이 있다면 총을 들고 지키고․바꾸고․만들려고 했던 세상을 우리 일상과 삶 속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는 다시 역사적 시간이 도래했을 때 광주의 민초들처럼 무엇인가를 잡고 일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518을 맞이하는 우리가 혼란함과 우울함을 해결하는 길이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젊은 시절의 체 게바라는 나병환자 촌에서 사람들 사이를 갈라 놓은 강을 발견한다. 그 강은 나병을 치료하는 사람․ 병증이 약한 사람과 병증이 심한 사람들 사이의 분리의 강이자 계급이며, 연대를 가로 막는 강이었다. 그 강을 건넌 게바라는  진정한 ‘체 게바라’로 다시 태어났다.


한국에서도 참 많은 사람들이 그 강물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강을 건너지 못하고 돌아갔다. 아직도 그 강을 건너고자 발버둥 치는 우리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강의 깊이와 너비에 절망하며 목적지에서 멀어지고 있다. 멀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면 칠수록 강물에 밀려나고 있다. 강물을 거스르지 못하고 말이다. 체게바라가 그 강물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강 건너 사람들의 삶과 자신의 삶, 그리고 역사를 일치시켰기 때문은 아닐까?

오래된 정원에서 내가 느낀 우울함은 변하지 않은 오늘의 현실이 오래된 정원이 아닌 오래된 무덤으로 바뀌고 있는 역사다. 그리고 역사를 밀어가지 못하고 역사에 밀려가는 나와 우리들의 모습이다. 우리는 현실의 강물을 헤치며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나와 우리는’ 강건너 새로운 세상을 실천하는 일부이어야 한다.


도래해야 하는 삶을 미리 살아가는 것이 아마 현실에서의 공산주의 운동일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밀어 갔던 518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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