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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라는 불교와 범불자 결집대회

 
  • 박병기|한국교원대학교 교수
  • 승인 2017.10.03 08:55
 
 

지난 학기 ‘불교윤리’라는 제목의 강의를 시작하면서, 수강생들에게 ‘나에게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진 후에 한 주 동안 생각해보고 발표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주로 윤리 교사가 될 준비를 하는 20대 초반 대학생들 개개인에게 불교가 과연 무엇으로 인식되고 있을까가 궁금했기 때문이고, 또 그것을 알아야 이후 강의 진행이 제대로 될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각각의 배경과 성향에 따라 여러 답들이 나왔지만, 불교에 비교적 긍정적인 답변은 크게 나누면 다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과목에서 배운 원효와 지눌, 연기와 공 같은 개념지식을 불교와 동일시하면서 수능시험 준비 과정에서 애를 먹은 것이 불교라는 답이다. 다른 하나는 마음이 어지럽고 고통스러울 때 떠올릴 수 있는 휴식처로서의 절을 불교와 동일시하면서 무언가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대상이라는 답이다. 후자에는 일부이기는 하지만 템플스테이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그 과정을 인상적으로 묘사하면서 다른 학우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하는 사례가 포함되어 있다.

조계종 교육원과 한국불교문화사업이 개최한 제3회 청년출가학교. 불교포커스 자료사진.

이 둘에 속하지 않는 대부분의 답변은 불교에 대한 거부감과 무관심, 스님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다. 특히 스님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외제차를 타고 거드름을 피우며 고급 식당에서 나오는 스님과 도박에 빠진 스님, 나이 든 보살인 자신의 할머니를 함부로 대하거나 거짓말을 일삼는 스님 등과 같은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수행자로서의 본 모습을 잃어버린 승려에 대한 직ㆍ간접적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떤 학생은 그런 스님들과 자신이 알고 있는 불교이론이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2015년을 기준으로 우리 한국사회를 평가해본다면, 급속한 개인화와 물질화, 분단구조의 고착화로 인한 전쟁 위험의 상시화 등을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꼽을 수 있지만, 탈종교화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에 속한다. 사람들의 삶이 근원적으로 불안해지면서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는 ‘종교적인 것’에 대한 열망은 높아지고 있지만 기존의 제도종교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는 종교사회학자 울리히 벡(U. Beck)의 분석과 진단은 우리사회에서도 이제 충분한 유효성을 갖는다. 10년 사이에 거의 10%가 줄어든 종교인구가 그것을 증언하고 있고, 특히 불교의 경우 300만 불자가 준 사실에서 그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탈종교화 현상에 대응하는 방안은 대체로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각 제도종교, 즉 불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으로 대표되는 전통종교들이 시대의 흐름을 이끌면서 그 변화를 주도해가는 방안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인구수와는 달리 점차 늘어가고 있는 ‘종교적인 것’에 대한 열망을 껴안을 수 있는 다양한 대안들을 제도종교 안에서 마련하는 방안이다. 후자에는 이미 일정한 한계에 봉착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의 심화와 다양화, 종교를 초월해서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명상공간의 확충, 도심사찰 중심의 불교인문학 강좌의 확산 등이 꼽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에 앞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각 제도종교가 본래의 모습을 간직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정신과 삶을 중심에 두어야 하고, 불교는 붓다와 보살의 삶과 정신을 그 중심축으로 오롯이 간직해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는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우리 개신교와 불교는 그 점에서 내부와 외부 사람들 모두에게서 불신 받고 있다. 목사와 스님에 대해 욕설에 가까운 비속어를 남발하는가 하면, 신도들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는 일반인들이 헤아림의 범위를 넘어선다.

우리 승가공동체와 재가공동체에는 물론 그런 비난을 훌쩍 뛰어넘는 수행과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구성원이 없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분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고, 특히 법정스님이나 성철스님으로 상징되는 탁월한 정신적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 점이 문제다. 우리 시대가 정신적 영웅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는 객관적 여건과 상황도 충분히 고려해야겠지만, 그럼에도 청정비구와 비구니로 상징되는 승가공동체가 엄존하고 있는 한국불교계에 그런 기대를 쉽게 접을 수는 없다. 더 나아가 보살불교인 한국불교에서는 유마힐과 같이 석가의 제자들도 경외할 만한 청정한 재가보살에 대한 기대 또한 접을 수 없다. 재가보살과 출가보살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기반삼아 깨달음을 구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우리 시대 중생인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건강한 사부대중공동체가 바로 우리가 바라는 불교의 미래다.

9월14일 열린 '조계종 적폐청산과 종단개혁을 위한 범불교도대회' 모습. 불교포커스 자료사진.

유례가 없이 긴 한가위 연휴가 지나고 나면 ‘범불자 결집대회’가 조계사와 인사동 로터리 사이의 공간에서 열릴 예정이다. 10월 11일 수요일 저녁 6시 30분부터 시작되는 이 대회는 ‘청정승가 구현과 조계종단 적폐청산’을 끈질기게 외쳐온 우리들의 함성이 방점을 찍는 자리가 될 것이다. 한 보살의 조계사 앞 1인 시위로 시작해서, 그런 재가자들 보기가 부끄럽다며 단식에 돌입한 명진스님과 그 뒤를 이은 효림, 용상, 대안, 허정스님, 비구니 선광, 석안스님의 간절하고 절박한 외침, 매주 목요일 저녁 보신각 앞 광장을 채운 촛불법회, 그리고 지난 9월 14일 범불교도대회를 잇는 대장정의 한 정점을 이룰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함께해온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은 더위와 한기, 모기, 소음 등을 나누며 동지애를 지닐 수 있게 되었고, 이제 이날 대회를 기점으로 새로운 한국불교의 미래를 꿈꾸고자 한다. 그 미래는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불교이고, 출가 수행자들이 수행과 포교에만 몰두할 수 있는 불교이며 재가불자들이 자신의 일상 속에서 깨달음과 자비의 지향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불교이다. 그런 미래는 우리 앞에 다가와 있고,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미 상당한 성공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11일 저녁 범불자 결집대회에서 그런 열망과 함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설렘과 경외감이 함께 요동치기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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