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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경지에 이르면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바보의 경지에 이르면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박기호 신부 2013. 03. 26
조회수 197추천수 0
 

 
바보들의 천국
 
 
예수님의 아버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기리며(루가 2.41~51).
 
 
김수환추기경바보야포스터.jpg
 
 
우리 사회에 ‘바보 프레임’이 한창이던 때가 있었지요. 노무현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을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내가 알고 겪은 김수환 추기경님은 후덕한 얼굴에다 웃는 모습이 어린이처럼 천진스러워서 추기경을 대하는 이들에게 평온함을 주기 때문에 어찌 보면 못생겼고 바보처럼 느껴집니다. 글씨나 그림 소질도 전혀 없는 분인데 바자회에 자화상 한 점을 내어 놓을 때 제목을 ‘바보야!’라고 붙였던 것이 ‘바보 추기경’이 되었습니다.
 
김 추기경은 리더십이 훌륭한 지도자로서 전공이었던 사회학적 시각으로 시대를 볼 줄 알았고 교회 내외의 문제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알았고 동시에 교회의 한계도 볼 줄 아는 분이었습니다. 주어진 권한을 행사할 줄 알고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분명히 아는 분이었지요. 만년에는 총기가 흐려지는 인간적인 면도 분명 있었지요.
 
그렇더라도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교회를 현명하게 이끈 훌륭한 사목자였으며, 완성도 높은 인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김수환추기경빵.jpg
*김수환 추기경
 
 
또 하나의 바보 노무현은 안정성이 보장된 서울을 버리고 부산에서 지역주의를 극복하겠다면서 조족지혈의 민주당 간판으로 국회의원과 시장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고수했던 행동에서 ‘바보 노무현’이란 애칭을 얻었고 그의 진정성이 인정되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진정한 대인(大人)은 바보같은 신념의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노무현대통령선명한사진.jpg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출처 : 사람사는세상 홈페이지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확실한 바보는 요셉에게 붙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존중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자존감이 있기 때문에 어떤 관계에서건 바보가 되기를 싫어합니다. 싫어하기 보다 절대 용납을 못하지요. 그래서 힘이 없지 않은 이상 무시당하지도 이용당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아버지 성 요셉을 바보라고 부르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바보를 도구로 삼아 구원 섭리를 관철하셨습니다. 인간 세계는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것을 바보로 여긴 총명한 지식과 욕망으로 인해 타락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세상을 당신의 소명에 바보처럼 순명하는 인간들을 통해 건설하신 것입니다. 마리아도, 요셉도, 즈카리아와 요한, 이 바보들을 통해서...
 
하느님께 대한 순명이란 진실에 대한 믿음이고 전폭적인 따름입니다. 사실과 진실은 어떻게 다른가요? 사실이란 사물(사건+물질)의 형상이어서 보는 각도에 따라 다 다릅니다. 서로가 옳다고 우기는데 어떤 것이 진실인가 말이예요. 증인? 거짓 증언도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사실 판단을 하는 법과 재판에는 억울한 일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그러나 진실이란 오직 하나뿐 입니다. 하나뿐이기 때문에 너무 커서 안 보이는 경우가 많지요. 꽃이 피었다는 사실은 봄이 왔다는 진실 안에 있어요. 진실은 하나이고 변하지 않습니다. 진리 또한 그러하기에 불변하기에 진실을 통하여 진리에 이르게 됩니다.
 
신앙인이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진리입니다. 인생관도 세계관도 공동체도 교회도 국가도 심지어 종교도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도구의 삶일 뿐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진리를 추구하기에 돈을 들여 공부하고 수행을 하고 종단을 이룹니까?
 
 
그러나 은총지위에 있는 자, 그렇게 공부하고 수행하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바보의 경지로서 이미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깨어있는 바보의 삶이 곧 은총의 지위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배운 것이 없는 바보는 그냥 ‘예!' 한마디 순명으로 되는 것을 지식인들은 사실을 분석하고 판단하고 회의하고 결정하고 아주 복잡한 과정을 거치려고 애쓰지 않아요? 그러고도 나쁜 결정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기로부터, 또는 이기심으로부터 나온 판단이니까 그렇지요.
 
요셉의 마음으로 하느님을 대하는 것이 순명이고 인간과 자연을 대하는 것이 자비심이고 가족을 대하는 것이 배려입니다. 사랑의 예수, 순명의 마리아, 자비심의 요셉! 우리 마을의 세 가지 성덕입니다. 성덕의 생활이 우리에게 있다면 이미 공동체는 지상의 천국입니다. 바보들의 천국이 공동체입니다.
 
 
오늘 오전 간종소리가 3분이나 늦게 들려온다. 어떤 이들은 타이머 장치를 하면 정확할 것이라고 말한다. 간종을 치는 이유는 깨어있음을 위해서고 종소리도 깨어있음에서 나오는 건데... (2013. 3.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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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신부
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animal@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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