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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폐지하고 책값 낮추자' 과연 맞을까요?

[표지 너머 책 세상 ⑭] 책값 상대적으로 싸... 가격 이원화 체제 뿌리내려야
2018.01.26 16:06:34
 
 

 

 

 

도서정가제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인터넷 포털 댓글은 ‘책값이 올랐다’는 성토로 뒤덮입니다. 도서정가제를 폐지하고, 예전처럼 큰 폭의 할인된 가격으로 책을 살 수 있게 하자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도서정가제 때문에 책값이 올라 책을 사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새해 첫 '표지 너머 책 세상'은 조금 민감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룹니다. 책값이 정말 비쌀까요? 
 
우선 통계만 보면 아닌 듯합니다. 교보문고가 도서정가제 도입 이후 책값 변동 상황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도서정가제 도입 직전인 2014년 평균 도서 정가는 1만9101원이었습니다. 도서정가제가 도입된 2015년 이 가격은 1만7916원으로 큰 폭으로 떨어졌고, 지난해는 1만8874원이었습니다.  
 
즉 2014년과 지난해 책값만 비교하면, 책값은 오히려 도서정가제 도입 이전보다 더 떨어졌습니다. 큰 폭의 할인이 없어 독자가 책값이 비싸다고 느낄 수는 있겠으나, 실제 책값의 절대 가격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물론 도서정가제 도입 이후 내내 책값이 하락한 건 아닙니다. 2016년과 지난해 책값만 비교하자면, 지난해 책값이 약 12.2% 올랐습니다. 
 
분야별로 보면 전체 책값이 떨어진 건 아닙니다. 2014년과 지난해 책값을 분야별로 비교한 결과, 인문·사회분야와 문학, 유·아동 분야 책값은 각각 2.6%, 6.6%, 9.3%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기술·과학 분야, 만화 분야, 학습참고서 분야 책값은 각각 20.1%, 19.1%, 3.5% 올랐습니다.  
 

▲ 도서정가제 도입 후 책값 변동치. ⓒ교보문고 제공

 
본론으로 돌아가 보죠. 책의 절대 가격이 더 떨어졌다면, 이제 질문은 '지금 책값이 적정하냐'는 것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기꺼이 지갑을 열 마음이 들만큼 책값이 괜찮냐는 거죠. 지금 책값이 괜찮은 수준이냐는 질문에서부터 적정한 책값은 어느 정도여야 하느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대담은 지난 1월 1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출판문화연구소에서 진행됐습니다.  
 

▲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좌)와 이홍 한빛비즈 편집이사(우). ⓒ프레시안(최형락)

책값은 덜 올랐다 
 
-책값이 비싸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도서정가제 도입 여파로 책값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많은 듯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교보문고 자료를 보면 책값은 오히려 더 떨어졌습니다.  
 
이홍 : 지난해 베스트셀러 200위권의 책 평균 가격을 계산해 보니 1만4560원가량이었습니다. 학습참고서를 제외하면 가격은 더 내려갑니다. 평균 책값을 대략 1만5000원 정도로 보면, 책값이 과거보다 크게 올랐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장은수 : 1년 사이에 책값이 10%가량 올랐으니, 단순히 보면 책값이 빠른 속도로 오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자면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제 기억에, 제가 대학생이던 1986년에 라면 한 그릇 값이 200원가량이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한 봉지 사면 50원 정도 했죠. 요즘 라면 한 봉지가 1000원이 넘습니다. 가게에서 사먹으려면 4000원은 들죠. 지난 30여 년간 라면 값이 20배 정도 올랐습니다. 
 
책값은 어떨까요? 보통 책값의 지표로 잡는 소설을 예로 들어 보죠. 교보문고 자료를 보면, 지난해 문학 분야 평균 책값이 1만1851원입니다. 1만2000원 정도 하죠. 1986년에 소설 한 권 가격이 약 4000원 정도였습니다. 30년 동안 겨우 3배 올랐습니다. 
 
왜 소설가가 가난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출판업계는 책값을 덜 올리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책값이 비싸게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만, 지난 30년간 물가인상률을 고려하면 책값이 상대적으로 덜 올랐습니다.  
 
외국 책값과 대비해도 우리나라 책값이 쌉니다. 미국의 하드커버 소설 신간 가격은 대략 25달러(2만5000원) 정도입니다. 일본도 하드커버 초판은 2200엔(2만2000원) 정도 합니다. 2만5000원 정도가 문화 선진국 소설의 평균 가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각국 물가 수준을 고려해야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나라 소설 신간 가격이 미국의 절반 수준이라면 매우 싸다고 볼 수 있죠.  
 
이 나라들 국민소득이 높다고 책값도 비싸겠거니 생각하고 말면 안 됩니다. 독서 시장이 크고, 책 발행부수가 많습니다. 그만큼 단위 생산단가가 떨어지니 책값은 더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값이 높죠.  
 
비단 책뿐만이 아닙니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문화상품 가격이 다른 분야에 비해 덜 오르는 듯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충분한 투자를 가로막아 문화 발전에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 책값은 우리 생각과 달리, 상대적으로 덜 올랐습니다. ⓒflickr.com

정말 책값 비싸서 안 사시나요? 
 
-책값이 상대적으로 덜 올랐다는 말씀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도서정가제가 도입되면서 책값을 대폭 할인하기가 어려워져, 상대적으로 독자의 체감 책값이 더 오른 건 틀림없을 겁니다. 실제 많은 누리꾼이 도서정가제 폐지를 바라는 이유도 과거처럼 90% 할인 책을 구입하고 싶다는 데 있는 것 같고요.  
 
장은수 : 2016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원광대 정현욱 교수에게 의뢰해 실시한 소비자 도서구매 결정요인 분석에 따르면, 책값에 부담을 많이 느끼는 상위 30%의 독자 중 도서 구매 시 고려하는 주요 외부 요인에 '저렴한 책값'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아동서는 출판사 명성이, 교육서는 디자인(표지, 글자체, 일러스트 등)이, 문학서와 인문 교양서는 내용의 유용성이, 실용서는 타인의 평가가, 학술서는 내용의 필요성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느 장르의 경우에도 책값이 가장 중요하다는 소비자 응답은 없었습니다. 거시적으로도 책 읽는 환경, 서평, 독서 캠페인 등이 우선이었습니다. 자신이 사고 싶은 책을 결정하지 않은 경우에는 책값도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습니다만, 일단 읽을 책을 결정한 후 구매 결정 요인에서 생각보다 책값은 고려 순위에서 높지 않습니다.  
 
책값이 비싸다고 하는 이는, 엄밀히 말해 책을 자주 구매하지 않거나 읽고 싶은 책을 정하지 않은 이일 가능성이 큽니다. (출혈 할인 경쟁이 이어지던) 도서정가제 도입 이전에 책을 샀다가, 도입 이후 오랜만에 책을 산 독자는 당연히 책값이 확 올랐다고 느끼겠죠. 하지만, 꾸준히 신간을 정가로 사보던 사람이라면 책값이 그리 많이 오르지 않았음을 아실 겁니다. 
 
책을 자주 사는 사람은 책값보다 서비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출판사가 가격 말고 다른 요인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대담이 여태 여러 차례에 걸쳐 도서정가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도서정가제가 출판 환경을 더 좋게 가꿨다고 했죠. 도서정가제가 신간 판매를 자극했다는 점도 짚어야 합니다.  
 
도서정가제 도입 전 큰 문제의 하나가 신간이 안 팔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독자가 할인 폭이 큰 옛 서적을 더 찾았죠. 결국, 이는 독자가 가격만 보고 책을 사게끔 하고, 출판사는 과거 베스트셀러를 다시 찍는 데 집중하게끔 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신간이 꾸준히 나오지 않는다면 결국 책 문화 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으니, 결코 좋은 현상이라 보기 어려웠죠.  
 
이홍 : 독자 입장에서는 자연히 '도서정가제 도입 이전에 책값을 큰 폭으로 할인하는 게 가능했으니, 지금은 책값 자체를 더 낮추면 좋지 않겠느냐'고 지적할 수 있죠. 
 
이것은 구조적인 함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값을 낮추는 조건은 절대적인 박리다매 시장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즉, 책값을 낮추는 조건으로 공급량이 크게 늘어나야 합니다. 상당한 공급량 증가는 권당 제작 단가의 극적인 하락을 가져올 수 있거든요. 즉, 기존에는 5000부 찍던 수준을 1만 부 수준으로 올리면 그만큼 권당 제작단가가 떨어집니다. 책값을 낮춰 이익의 손실이 발생하는 부분을 단가의 하락이 방어해 주죠.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수단이지만, 이미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공급이 이미 과잉인 출판시장에서 이러한 행위가 남발되는 것은 결국 출판 전체의 공멸로 이어지죠.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지금 책값은 '비정상적'으로 싸다 
 
-책값을 내리기 어려운 출판사 사정은 이해됩니다. 하지만 독서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을 고려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값을 더 낮추는 방안을 출판업계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 현재 우리나라 성인 독서율은 65.3%입니다. 성인 3명 중 1명은 1년간 책을 단 한 권도 안 읽는다는 뜻입니다. 
 
서적구입비도 계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서적구입비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매해 역대 최저치를 새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상반기 기준)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도서구입비는 꾸준히 감소했습니다. 2007년에는 한 달에 책을 사는데 가구당 2만1054원을 썼지만, 2016년에는 1만7157원밖에 쓰지 않았습니다. 가구당 오락문화비 지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2016년 서적구입비 지출 수준은 2006년 대비 29.2% 감소했습니다. 
 

▲ 가구당 오락문화비 지출 상황과 서적구입비 지출 상황. 오락비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반해, 책 구입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제공

 
장은수 : 그래서 책값을 내리기가 더 어렵습니다. 오히려 올려야죠. 
 
지난 10년간 독서율은 계속 하락했습니다. 책 평균 구매권수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2007년 우리 국민은 한 해 평균 12.1권을 읽었는데, 2015년에는 9.1권으로 25%가량 감소했습니다.  
 
판매되는 책이 줄어드니, 출판사는 자연히 부수를 줄여서 초판에 드는 사업비를 줄이려 합니다. 그러니 개별 책의 최저부수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궁극적으로는, 초판을 다 팔아도 출판사가 손해를 보는 책이 자꾸만 늘어납니다.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죠. 출판사가 이를 견디다 못하면 책값을 올리는 식으로 그간 사업이 이어졌습니다. 
 
출판 산업을 알지 못하는 이에게는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 일입니다. 왜 이런 일종의 비정상 상황이 진작 이슈화되지 않았을까요? 왜 진작 책값을 업계 상황에 맞춰 올리지 않았을까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인구가 해방 이후 계속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문맹률은 계속 떨어졌습니다. 잠재 독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는 뜻이죠. 
 
그러니 예전에는 책 판매권수가 꾸준히 늘어났습니다. 출판사가 내는 책 상당량이 손해 보더라도 소위 말하는 '대박'이 하나 터지면 다른 부분의 적자를 메우고도 남았습니다. 크게 성공한 책이 손해를 보완하면서, 출판 전체의 가격을 형성해왔죠. 출판사들은 책값 인상을 자제하며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하려 했습니다. 이런 구조가 출판 산업이 안정화되며 고착화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식의 사업이 서서히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이홍 : 좋게 판단해서 단행본은 2000~2500부 정도가 평균 판매량입니다. 정상적인 사업의 개념으로 본다면 권당 2000부 내외를 팔아 이익은 고사하고 투입비용 정도는 회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출판사와 개별 책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2000부를 팔면 손익분기점에 훨씬 못 미칩니다.  
 
책값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는 절대 투입비용, 시장에서의 상대 비용, 그리고 기대 이익 등입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절대 투입비용은 인건비와 종이 단가 등의 상승으로 쉽게 제어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상대 가격이나 기대 이익 등을 가격에 반영해야 하는데, 시장과 독자의 가격 저항과 수요 대비 공급의 과다로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이러다보니 책을 팔아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에요. 책 한 권을 팔아도 이익을 출판사가 다 가져오는 게 아닙니다. 대략 책값의 10%가량은 저자가 가져갑니다. 종잇값과 인쇄비, 편집비 등 제작비가 30%~40% 정도고 판관비가 10%, 유통비가 40%가량입니다. 나머지 0~10% 사이가 출판사의 이윤율입니다. 과거 서점 출고율은 70%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60% 미만까지 떨어졌습니다. 서점이 마진 40% 이상을 가져가게 되면서 출판사의 이윤율이 한계 수준으로 떨어진 겁니다.  
 
기본적으로 출고율이 떨어지는 데다 판매량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출판사가 우선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유통비와 저자 인세를 제외한 나머지를 줄이는 것인데 물가가 오르기만 하지, 쉽게 내려가진 않습니다. 남은 것은 하나뿐입니다. 책값을 올려야죠. 그런데 이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책을 찍어도 손해를 보는 구조를 출판사가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는, 기대가격을 반영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뜻합니다. 도서정가제가 도입되었다고는 하지만 출판사가 얻는 이익은 거의 없습니다. 통계에서도 보듯이 도서정가제 실시의 수혜자는 일부 대형서점이지 출판사가 아닙니다. 이제는 정가제로 인해 독자의 책 가격 불만과 저항이 형성되어 현실적인 가격 책정마저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책값을 내리자고 말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군요. 
 
장은수 : 그렇습니다. 책값을 올리지 않고 도서 판매량을 유지하려면, 출판사로서는 출고율을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출고율을 일방적으로 올리면, 즉 출판사가 가져갈 이익 수준을 올리면 서점의 독자 서비스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각종 저자 관련 행사가 사라지거나, 책을 사면 덤으로 주는 굿즈(goods) 등의 서비스가 줄어들 수 있죠. 서점 역시 이익 수준이 박한 사업입니다. 오프라인 서점은 임대료 문제도 있죠.  
 
지금처럼 책값이 상대적으로 낮고, 독서율은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출판 산업이 유지되려면 책값을 올리는 것 외에 답이 없습니다. 출판계에서 정부에 교육구조 개편, 강력한 독서 캠페인 등 독서 활성화를 꾸준히 요청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도 독서, 출판 관련 사업은 핵심 국정 과제에서 누락되어 있습니다.
 
이홍 : 독자 여러분이 출판의 어려운 상황을 조금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특정한 책의 독자든, <프레시안>의 독자든 대부분 우리 사회 어디선가 생산 행위에 종사하고 계실 겁니다. 자영업자이거나, 노동자죠. 제품의 가격에 수많은 요인이 관여하는 걸 아실 겁니다. 
 
하지만, 독자가 책값을 고려할 때 인지하는 건 종잇값뿐인 듯합니다. 종이와 잉크값만 들이면 나오는 책이 왜 비싼지, 왜 페이지수가 얼마 안 되는 책도 1만 원이 넘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죠. 책 무형의 가치를 단순한 수치로 환산하는 건 어렵지만, 그렇다고 무형의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책값이 종이와 잉크로만 구성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인정은 해주셔야 합니다.   
 

▲ 공공도서관의 도서구입비가 늘어나면 출판사로서도 문고본을 낼 여력이 생긴다. 지난해 8월 20일 오후 서울도서관을 찾은 시민들이 책을 읽는 모습. ⓒ연합뉴스

공공도서관 도서구입비 늘리면, 한국에도 싼책 나온다 
 
-여태 책값을 낮추기에는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고, 도서정가제 도입으로 책값이 특별히 더 오른 것도 아니라는 점을 알아봤습니다. 하지만, 독자는 책을 사는데 돈을 들이기를 여전히 조금 꺼리는 듯도 합니다.  
 
지난해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가 발표한 '2016년 출판시장 통계'를 보면, 2016년 2인 이상 가구의 1인당 월평균 서적구입비는 4899원이었습니다. 2년 연속 최저치를 경신했습니다. 아무래도 소비자의 부담감이 커진 건 틀림없어 보입니다. 경제 상황이 워낙 어렵다보니, 독자로서는 출판업의 상황은 이해하더라도 책에 큰 돈을 들이기가 조금 꺼려질 수도 있고요. 책값을 보전하면서 독자도 늘릴 방법이 없을까요? 
 
장은수 : 독서 양극화 현상이 심각합니다. 말인즉슨, 책을 꾸준히 사던 사람은 도서정가제가 도입되든 책값이 일정 수준 오르든 상관 않고 계속 사지만, 책을 가끔 사는 이는 책값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식 정보 사회에서 지식 접근성에 민감하냐 아니냐는 곧 지식 정보 격차가 되고, 이 격차는 결국 삶의 격차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사회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앞서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의 신간 초판 가격이 매우 높다는 점을 알아봤습니다. 이들 책은 대부분 질 좋은 하드커버죠. 이 대목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자주 보시거나, 미국 책을 수입해서 사본 분이라면 '아니'라고 하실 겁니다. 미국인들이 보급판을 많이 보는데, 보급판은 무척 값이 싸거든요. 맞습니다. 미국의 경우, 보급판은 권당 6~7달러(6000~7000원)가량입니다. 가격 이원화 정책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가야 합니다. 이를 위한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이 초판을 이 정도로 비싸게 내는 이유는 공공 도서관이 소화해주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 숫자는 1010개입니다. 1997년 330개에서 2.5배가량 늘어났죠. 하지만, 여전히 인구 대비 숫자로 보면 미국, 일본, 독일에 크게 못 미칩니다. 이에 더해, 도서관 1관당 자료구입비도 선진국보다 매우 낮습니다. 
 
한국처럼 도서 시장 자체가 작은 나라에서 일정 정도의 좋은 책을 독서 인구 소비력만으로 받아 안기란 어렵습니다. 기초 수요가 매우 부실합니다. 이를 공공도서관이 해결해야 합니다. 공공도서관이 독서 선진국처럼 신간을 사주고, 이를 통해 초판이 소진되면 출판사는 보급판을 따로 출판해 독서 인구를 늘리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독서 인구가 자기 소비력에 맞춰 책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서재를 갖춘 이는 하드커버 초판을 구입할 테고, 보통의 독자는 저렴한 문고판을 구입해 도서 접근권을 높일 수 있죠.  
 
하지만, 현실이 어떤가요? 공공도서관에 책정된 자료구입비 수준이 너무 적습니다. 공공도서관이 신간을 사기는커녕, 출판사에 연락해 신간을 기증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나라도 시장 이원화, 가격에 따른 독자 차별화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초판 1쇄를 사회가 소비해주지 않으면, 출판 산업의 기반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홍 : 말씀에 동의합니다만, 무조건 책 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주장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자칫 독자의 왜곡된 인식을 더 부추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출판은 왜 시장 이원화가 가능할까요. 다량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문고본을 내려면, 그만큼 책을 많이 팔아서 출판사가 제작비 부담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공이 시장을 떠받쳐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독서 시장이 커야 합니다. 
 
이에 더해 독자의 인식도 변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독자 상당수가 좋은 편집, 좋은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실제 문고본을 낸 책 중 성공한 사례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자연히 책 제작비용이 오를 수밖에 없고, 출판사는 문고본 제작을 꺼릴 수밖에 없습니다. 
 
장은수 : 물론 전반적으로 이홍 이사의 진단이 맞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달라질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작은 책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병철의 <피로사회>(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가 성공한 후, 얇은 인문학 책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꾸준히 제작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독자의 가격 저항이 덜한 인문 서적 위주로 이런 책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민음사가 동네 책방과 연계한 '쏜살문고' 시리즈, 1인 출판사 세 곳이 뭉쳐 내놓은 '아무튼 문고' 시리즈, 창비에서 나오는 '소설의 첫 만남' 등 일련의 실험이 지난해 나름 성과를 거둔 것도 중요한 시사점입니다. 제대로 된 문고본은 아니지만, 질 좋은 책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보급본 시장이 나타날 조짐이 있습니다. 
 
책값 50%는 더 올라야 
 
-출판에 드는 비용을 낮추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만, 이른바 스타 작가를 둘러싼 출판업계 선인세 논란을 보면 비용 구조를 개선할 여지는 있는 듯한데요?
 
장은수 : 출판 상황을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베스트셀러가 보장된 작가는 세계적으로 드뭅니다. 특히 순문학 출판사는 한 해 내는 책의 70~80%가 적자인데, 베스트셀러가 보장된 작가라면 어떻게든 출판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습니다. 그래야 거기에서 수익을 내 다른 책의 적자를 보전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돈이 안 되는 책을 내지 말고, 인세 경쟁을 낮추라는 말은 우리 문학 기반, 인문학 기반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니, 출판사 입장에서는 베스트셀러 작가를 잡는 건 생존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없으면 시장 규모가 작은 문학이나 인문학 서적을 과감하게 출판할 수 없습니다. 출판사 직원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도 힘들고요. 어쨌든 출판사에 노동이 존재하게끔 할 최소한의 시스템은 유지되어야 합니다. 불행히도 도서관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고, 국민독서율이 떨어지는 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는 스타 작가를 어떻게든 잡는 방법 외에 대안이 없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두 분이 생각하시는 적정 책값, 얼마입니까?
 
장은수 : 공공도서관이 초판을 충분히 사줄 수 있다면, 즉 사회적 구매가 존재한다면 신간의 1차 판매가격이 지금보다 50%는 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출판사가 안정적으로 다양한 책을 낼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가격을 그만큼 끌어올릴 수 없다면, 독자가 그만큼 늘어나야 합니다.  
 
지금처럼 독자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책값의 합리적 인상은 출판 문화를 유지할 유일한 방법입니다. 더는 늦추기 어렵기도 합니다. 지난해 말 종잇값이 전년 대비 7% 넘게 올랐습니다. 제작비가 계속 오르는데 책값을 낮추라는 건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이 부담을 독자가 감당하게끔 하려면, 정부가 사회적 수요 창출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이홍 : 도서정가제가 출판 산업에 워낙 큰 영향을 미치다 보니, 출판과 관련한 모든 이슈가 책값 할인 여부로 흡수되어 버리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이제 독자도 책 이야기를 할 때 할인 여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합니다. 문화선진국에 걸맞은 상황이 아닙니다. 
 
적정한 책값이 얼마냐는 질문에 굳이 답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출판인으로서, 책의 가치에 호주머니를 기꺼이 열어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단순히 책이 두꺼운지 얇은지, 디자인이 예쁜지 아닌지만 보고 돈을 투자하지 말고, 내용이 좋은 책에 기꺼이 시간과 돈을 투자해주십사 부탁합니다. 출판사가 독자가 기꺼이 고개를 끄덕일 좋은 책을 만들어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사실 책 한권 값은 술집에서 기꺼이 주문하는 한 접시의 안주보다 저렴한 상태입니다. 먹다 남기는 안주 하나에 투자하는 비용에 비해 책값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너무 인색하고 여유가 없습니다. 책의 질에 대한 비평과 지적은 얼마든지 하시되 한 권의 책값에 담겨 있는 누군가의 삶과 구조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해를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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