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장수하늘소 미스터리 풀렸다…“중남미 종과 같은 핏줄”

장수하늘소 미스터리 풀렸다…“중남미 종과 같은 핏줄”

조홍섭 2018. 06. 04
조회수 1093 추천수 0
 
세계 23종 중 22종 중남미 열대림에
직계 아시아존만 온대우림 ‘수수께끼’
베링 해 육지였을 때 연결 증거 확인
 
자연사 증명하는 ‘살아있는 유적’
자연림 감소에 로드킬·채집 위협
광릉숲서 증식 성공…곧 방사한다

 

l2.jpg» 먹이로 제공한 젤리를 먹는 장수하늘소 수컷. 국립수목원에서 인공증식한, 짝짓기를 마친 성체이다. 조홍섭 기자
 
장수하늘소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곤충이다. 갑옷과 투구를 갖춘 장수 같은 육중한 몸집에 길이도 10㎝ 넘게 자란다. 그러나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성충은 짝짓기와 산란을 1~2개월 동안 서둘러 마치고 죽는 덧없는 존재일 뿐이다. 장수하늘소의 본령은 나무 깊숙이 파고들어 썩은 나무를 갉아먹으며 5~7년, 추운 곳에서는 20년까지 사는 애벌레라고 할 수 있다. 애벌레도 어른 손바닥만큼 크다.
 
장수하늘소는 그 희귀성 때문에 일찍이 1968년 곤충으로선 처음으로 천연기념물 제218호로 지정됐다. 붉은점모시나비 등 다른 5종과 함께 곤충 가운데 보존 등급이 가장 높은 멸종위기종이기도 하다. 남한에선 경기도 포천의 광릉숲이 유일한 서식지이다. 오대산 소금강을 비롯해 강원도 춘천·화천·양구, 북한산 등에 분포한 기록이 있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 이 대형 딱정벌레가 확인된 곳은 광릉숲밖에 없다.
 
 2014년부터 4년 연속 장수하늘소가 출현한 국립수목원은 올해도 나타날 것으로 보고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이승규 국립수목원 곤충 분류연구실 박사는 “성충은 7~8월이 돼야 나오기 때문에 서어나무 등에서 애벌레가 나무를 뚫고 탈출한 흔적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l3.jpg» 장수하늘소 애벌레. 썩어가는 고목 심부로 파고들어 5∼7년, 길게는 20년까지 자란다. 사람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자연림에서만 애벌레가 자랄 수 있다. 국립수목원 제공.
 
6천만년 전 ‘베링육교’ 통해 연결
 
장수하늘소는 한반도와 러시아 연해주, 중국 동북부에 분포한다. 이 곤충의 표본을 전수조사해 분포지역을 과학저널 <주탁사>(Zootaxa) 최근호에 보고한 이대암 영월곤충박물관장(곤충 생태학 박사)은 “1899년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처음 발견된 뒤 100여년 동안 러시아에서 확보한 장수하늘소 표본이 100개 남짓할 정도로 드문 곤충”이라며 “현재 가장 많이 분포하는 곳은 북한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무르 강과 하바롭스크 등 연해주 북부까지 서식하고 남한의 광릉숲이 분포의 남방한계라면 장수하늘소는 추운 곳에 주로 서식하는 곤충일까. 이 관장은 “그동안 장수하늘소는 북방계 곤충으로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사라진다고 보는 게 통념이었지만 최근 계통지리학 연구로 그것이 깨지고 있다”고 말했다.
 
l4.jpg» 김상일 연구원 등이 표본을 분석한 장수하늘소 속 딱정벌레의 분포지역. 베링 해가 육지였을 때 환태평양 분포를 이뤘다. 김상일 외 (2018) ‘분자 계통 유전학 및 진화’ 제공
 
김상일 미국 하버드대 진화생물학과 박사과정 연구원 등 한국과 미국 연구자들은 유전자 분석 등을 통해 동아시아의 장수하늘소가 중남미 장수하늘소와 같은 공통조상에서 갈라진 ‘자매’ 관계임을 증명했다. 장수하늘소 속(屬)에는 23종이 있는데 동아시아의 장수하늘소를 뺀 나머지는 모두 멕시코와 중남미, 카리브래 등에 분포한다. 어떻게 한반도와 지구 반대편인 아르헨티나에 직계 조상에서 유래한 같은 혈통의 장수하늘소가 분포할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장수하늘소가 속한 톱하늘소 아과에 속한 종들에 대한 유전자와 관련 화석을 분석해 동아시아와 아메리카 장수하늘소의 공통조상이 6천만년 전 동아시아에서 베링 해를 거쳐 남아메리카까지 띠 형태로 이어진 환태평양 분포를 이뤘을 것이란 결론을 얻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베링 해가 육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베링기아’로 불리는 육교로 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이 이어져 연속적인 생물 분포를 이뤘다. 연구 결과는 과학저널 <분자 계통 유전학 및 진화> 최근호에 실렸다.
 
3400만년 전 지구 기온이 한랭화하면서 베링육교의 ‘북극 열대’가 사라지면서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장수하늘소는 각각 독립된 진화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주 저자인 김상일 연구원은 “베링기아는 중생대 백악기 중기에 형성되어 신생대 플라이오세까지 계속 존재했고 장수하늘소는 유라시아의 구 북구 동부와 베링기아,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 분포했던 것을 보인다”며 3500만년 전에는 지구 전체가 아열대와 열대 기후로 북극지방 주변까지 열대성 동·식물이 분포했다”고 이메일 인터뷰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최근 캐나다 고지대에서 야자잎만 먹는 딱정벌레 화석이 발견된 것도 그런 증거로 제시했다. 김 연구원은 이처럼 베링기아를 통해 환태평양 분포를 보이는 것으로 밝혀진 동물로 부전네발나비과, 장님도매뱀과, 사랑부전나비속 등이 있다고 밝혔다.
 
현재 대부분의 장수하늘소가 중남미의 열대우림에 사는 데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연구자들은 “동아시아의 장수하늘소 조상도 중남미처럼 따뜻한 서식지에서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동아시아의 장수하늘소가 왜 이렇게 희귀한지를 설명하는 단서도 된다. 이대암 관장은 “인위적인 요인 이전에 애초 기후대가 번성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차츰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l1.jpg» 경기도 포천 광릉숲에서 관찰된 장수하늘소. 2014년 이후 해마다 서식이 확인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장수하늘소가 열대우림에 적응한 곤충이라면 왜 동남아에는 살지 않을까. 김 연구원은 “중국 남부와 동남아 열대우림에도 장수하늘소가 충분히 서식할 수 있으나 장수하늘소와 비슷한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는 대형 하늘소 종이 이미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장수하늘소가 저위도 지방으로 퍼져나가는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시아의 장수하늘소는 중·남미 종과 조사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에서 불과 7∼9%의 차이만 보였다. 김 연구원은 “동북아에 서식하는 종의 최 근연종이 중·남미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큰 진화학적 의미 있다”며 “만일 동북아의 장수하늘소가 이미 멸종했더라면 장수하늘소가 아시아에 한때 서식했다는 사실 자체가 확인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로 한국의 장수하늘소가 계통진화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종임이 드러났으므로 보전의 중요성이 훨씬 커졌다”라고 덧붙였다.
 
토종 증식해 광릉숲 방사 예정
 
사육과정별+사진.jpg» 장수하늘소의 한살이. 국립수목원과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증식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국립수목원 제공.
 
그렇다면 기후변화는 장수하늘소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연구자들은 종 분포 모델링을 통해 “지구온난화에 따라 서식지가 확장되겠지만, 동아시아의 급속한 개발로 자연림이 급격히 줄어드는 등 인위적 요인을 고려하면 장수하늘소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관장은 “장수하늘소는 유충이 장기간 갉아먹으며 살아갈 죽어가는 신갈나무나 서어나무 거목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300년 이상 된 자연림은 거의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한 변봉규 한남대 교수는 “장수하늘소 성충은 불빛에 유인돼 숲 밖으로 나오는 경향이 있어 차량에 치이거나 고가의 표본을 노린 불법포획의 대상이 될 수도 있어 이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립수목원과 국립생물자원관은 장수하늘소를 단기간에 인공증식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해 둔 상태이다. 그런데 도입한 알이 중국산이어서 복원이 아니라 생태연구에 주로 쓰이고 있다. 문화재청과 함께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국립수목원은 2년 전 국내에서 확보한 장수하늘소 알을 이용한 증식에 성공해 광릉숲에 방사할 예정이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Il Kim, S., De Medeiros, B.A.S., Byun, B-K., Lee, S., Kang, J-H., Lee, B., Farrell, B.D., West meets east: How do rainforest beetles become circum-Pacific? Evolutionary origin of Callipogon relictusand allied species (Cerambycidae: Prioninae) in the New and Old Worlds, Molecular Phylogenetics and Evolution (2018), doi: https://doi.org/10.1016/j.ympev.2018.02.01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