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미국, 때론 우리를 배신했다
조선일보 조중식 국제부장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루스벨트, 周恩來와 비밀 회담했던 키신저
한국 농락했지만 노벨상 받아… 트럼프도 ‘배신의 노벨상’ 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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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식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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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했던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미국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 공원에 새겨져 있는 글귀다. 6·25전쟁 당시 미국 군사 고문관 하우스맨의 회고록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하버드대학의 고풍 어린 예배당 벽에는 한국전에 목숨을 바친 하버드 출신 병사들 이름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미국은 한 도시에서 한 사람이 나올까 말까 한 ‘미국의 희망들’을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내보냈다.”
미국은 6·25전쟁에서 5만4000명의 목숨과 10만명의 팔다리를 한국을 위해 바쳤다. 절체절명의 순간 미국은 우리 은인이었다. 그렇다고 우리 역사에서 미국이 항상 은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1905년 9월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파견한 아시아 사절단이 대한제국을 찾았다. 고종과 대신들은 일본의 국권 침탈 위기 앞에서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따라 미국이 도와줄 것에 희망을 걸고 그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사절단장 윌리엄 태프트 전쟁부 장관이 일본에서 가쓰라 다로 총리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한다’는 밀약을 이미 맺고 왔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사절단 방문 두 달 뒤 을사늑약이 체결돼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일제에 빼앗겼다.
1950년 1월엔 미 국무장관 애치슨이 한국의 뒤통수를 쳤다. 미국의 극동 방위선을 알류샨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정한다는 ‘애치슨 라인’을 발표하며 한국을 방위선 밖으로 빼버렸다. 이것은 김일성이 남침 도발을 더 편하게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1971~1972년 미 국가안보보좌관 키신저는 중국 저우언라이(周恩來)와 가진 비밀 회담에서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배타적으로 이익을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키신저는 미군이 철수할 경우 일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상황도 거론했다. 키신저가 배석한 닉슨 대통령-저우 회담 때, 닉슨은 “남이든 북이든 코리안은 충동적인 사람들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충동적이고 호전적인 사람들이 사건을 일으켜 우리 두 나라를 곤궁에 빠트리지 않도록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고 했다. 한국이 빠진 자리에서 한국의 운명을 가지고 놀았다.
며칠 뒤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또 한국의 운명이 걸린 문제로 김정은과 회담한다. ‘일괄 타결’ ‘단시일 내 완전한 핵 폐기’를 공언해왔던 트럼프는 북한 김영철을 만나고 나선 말이 달라졌다. “6월 12일 정상회담은 하나의 과정이자 시작” “천천히 갈 수 있다”고 했다. ‘일괄’과 ‘단시일’은 없어지고 북한이 주장해온 ‘단계적 폐기’ ‘천천히’에 가까워졌다. 그러면서 북핵 폐기와 북한 지원에 들어가는 돈은 “한국이 낼 것”이라고 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미국의 목표는 우리가 앉아 있는 바로 이곳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발사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는 야릇한 말을 한 적 있다.
트럼프-김정은 회담에서 한국을 위협하는 북핵은 그대로 남겨두고 미국을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장착 핵무기만 제거하는, 우리로선 최악의 거래가 이뤄질지 모른다는 의심은 괜한 것이 아니다. 그런 합의로 트럼프는 노벨 평화상을 받을지도 모른다.
대한제국을 배신했던 루스벨트는 러일전쟁 종결을 중재한 공로로 1906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키신저도 월맹의 레 득 토 총리와 베트남전 종식을 위한 파리협정을 맺은 공로로 1973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 협정으로 미군은 베트남에서 철수했으나, 월맹은 2년 뒤 베트남을 침공해 함락했다. 협정은 사기였다.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03/2018060302237.html?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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