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유플러스 설치 수리 비정규직 노동자 최영렬씨는 "일을 하다 옥상에서 떨어지면 관리자에게 보고한다"라며 "관리자의 첫 마디는 '남은 일은 어떻게 할 거냐, 내일 출근 할 수 있냐'다"라고 했다. 최씨는 "원청이 실적으로 지표로 압박하고 착취하는 구조 속에서 하청업체 관리자들은 하청 노동자에게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청년노동자 단체 '청년전태일' 김재근 대표도 "20대 때 일하던 회사와 돈 주는 회사가 달라서 진짜 사장이 누군지도 모르고 일했다"라며 "퇴직금을 받지 못 했을 때 비로소 하청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라고 했다.
청년정치공동체 너머 신민주 대표는 "20살부터 5년 동안 알바를 전전하며 살았다"라며 "정규직 전환은커녕 심각한 화상을 당한 채 응급실에 실려갈 때 '가게에 민폐나 끼치는 주제에 버릇없게 산재를 요구하냐'는 말을 들었다"라고 했다. 신 대표는 "우리의 일상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너무나 밀접하게 닿아 있다"라며 "소득주도성장을 바탕으로 좋은 일자리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우리 삶과 너무 멀고, 위험하고 불안정한 일자리는 너무나 가깝다"라고 했다.
▲ 서울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고 김용균씨 추모제 서울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고 김용균씨 추모제 | |
ⓒ 신지수 |
"구의역 기억하겠다고 했지만...죽음 반복"
참석자들은 김씨의 죽음이 '구의역 김군'과 닮아 있지만 바뀌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했다. 지난 2016년 5월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홀로 수리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김아무개(19)군은 기차와 안전문 사이에 끼여 숨졌다. 스크린도어 점검은 2인 1조로 하는 게 원칙이지만, 인력부족으로 김군은 혼자 구의역 플랫폼에 올라야 했다. 고 김용균씨도 마찬가지였다. 노조에 따르면 현장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2인1조 근무를 주장해 왔지만, 경쟁입찰 때문에 비용을 줄여야 했던 협력업체는 이를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결국 김씨는 10일 밤 홀로 작업장에 내몰렸고 참변을 당했다.
신민주 대표는 "구의역 참사를 기억한다, 스크린도어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을 기억한다"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구의역 참사를 기억하겠다고 했지만, 위험의 외주화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홀로 추모제에 참석한 최아무개(32)씨도 "죽음이 반복될 때마다 정치인들과 우리 사회는 재발방지를 이야기 하지만 달라지는 게 없었다"라며 "시민으로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죄책감과 미안함이 든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닦았다.
더는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도 나왔다. 김씨의 소식을 접한 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친구들과 함께 추모제에 참석했다는 대학생 임혜영(20)씨는 "고인이 제 선배가, 제 친구가 될 수 있었다"라며 "내가 김용균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임씨는 "문재인 대통령께 면담을 요구하는 게 고인의 마지막 사진이다"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만나주기만 했어도, (노조가 요구해 온) 2인 1조가 지켜지기만 했어도 고인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했다. 임씨는 "같은 사회를 사는 청년이자 대학생으로서 더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라며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
기가 막혀서 나왔다는 임경자(58)씨도 "일하다 죽는 일이 너무 많아서 이제는 충격적이지도 않다"라며 "촛불과 추모에서 끝낼 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바뀌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라고 했다. 추모제 참석자들은 "위험의 외주화를 끝내야 한다"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나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 서울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고 김용균씨 추모제 서울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고 김용균씨 추모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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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광장에 차려진 분향소...눈물의 분향
1시간 30분 정도 이어진 추모제가 끝난 뒤, 시민들은 바로 자리를 뜨지 않았다. 세월호 광장 한 켠에 마련된 분향소 앞으로 긴 줄이 이어졌다. 안전모와 마스크를 쓴 채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든 고 김용균씨의 영정사진 앞에서 시민들은 고개를 들지 못 했다.
분향을 끝내고도 한참 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 한 엄미경(68년생)씨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청년의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라며 "기성세대로서 미안하고 부끄럽다"라고 말했다. 엄씨는 "자꾸 반복되는 청년들의 죽음에 누군가는 대답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은데..."라고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그는 "우리가 몇 년 전 겨울에 나와서 촛불을 들었던 것은 정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었다"라며 "하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현실이 너무 가슴아프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청년들이 더 이상 죽음을 당하지 않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해야겠다 생각했다"라며 "그 첫 시작이 이곳에 나온 일이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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