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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경찰, 손쉬운 표적 ‘아기·엄마’ 군사작전하듯 죽이고 성폭행

[단독]군인·경찰, 손쉬운 표적 ‘아기·엄마’ 군사작전하듯 죽이고 성폭행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입력 : 2019.02.14 06:00:02 수정 : 2019.02.14 11:45:54
 
 

[로힝야 학살 보고서②]ㆍ여성에게 더 잔혹했다

뚤라똘리 마을 출신 맘타리(가명)가 성폭행 피해 등 자신이 겪은 미얀마 군대의 학살을 증언하며 울부짖고있다. 미얀마 군인이 민가에 방화하는 과정에서 맘타리는 얼굴 오른편에 화상을 입었다.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 제공

뚤라똘리 마을 출신 맘타리(가명)가 성폭행 피해 등 자신이 겪은 미얀마 군대의 학살을 증언하며 울부짖고있다. 미얀마 군인이 민가에 방화하는 과정에서 맘타리는 얼굴 오른편에 화상을 입었다.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 제공

 

뚤라똘리 마을 사망자 절반이 여성 
그중 절반, 성폭행 직후 살해당해 

2017년 8월30일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 북쪽의 로힝야족 거주지 뚤라똘리 마을. 여성들이 강변의 민가로 끌려갔다. 4~5명씩 무리 지은 미얀마 군인과 경찰들은 한데 모아둔 여성들을 다시 5~7명씩 뽑아 민가로 데려갔다. 로힝야 남성들을 죽인 뒤였다. 살아남은 여성들을 민가에서 성폭행했다.

이 마을 출신 바시다(25·가명)도 이날 얻어맞고 장신구와 돈을 빼앗긴 뒤 강간당했다. 이때 그의 품엔 생후 28일 된 젖먹이가 안겨 있었다. 미얀마 군인들은 아이를 빼앗아 여러 번 집어던져 죽였다.

같은 마을의 맘타리(30·가명)는 남성 3명에게 오전 10시쯤 성폭행당했다. 다른 피해 여성들과 마찬가지 방식이었다. 미얀마 군경은 먼저 남자들을 죽였고, 여자들을 민가로 데려가 돈과 장신구를 빼앗고 성폭행했다. 성폭행을 한 후엔 민가 문을 걸어잠근 뒤 불을 질렀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여성들만 빠져나와 도망쳤다. 맘타리의 얼굴 오른편엔 선명한 화상 자국이 남았다.

2017년 8월 말 로힝야 마을 곳곳에서 벌어진 학살은 여성에게 더 잔인했다. 살아남은 여성들은 지금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가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서 인터뷰한 로힝야 난민들은 무차별적인 학살과 함께 여성들에 대한 집단적인 성폭력을 증언했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아디의 로힝야 5개 마을(뚤라똘리, 인딘, 돈팩, 쿠텐콱, 춧핀) 학살 보고서에 따르면, 성폭력은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단독]군인·경찰, 손쉬운 표적 ‘아기·엄마’ 군사작전하듯 죽이고 성폭행

■ 사망자 절반 이상은 여성 

가장 많은 집단학살 희생자(최소 451명)가 나온 뚤라똘리 마을에선 여성 사망자가 248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10~20대는 113명에 이른다. 사망한 여성 중 절반 가까운 123명이 성폭행 직후 살해당했다. 군인들은 여성들의 장신구를 빼앗은 뒤 성폭행하거나 살해했는데, 귀걸이 등을 가져가려고 귀를 자르기도 했다. 인터뷰에 응한 춧핀 마을 출신 40명 중 10명이 성폭행 피해자였다. ‘테러리스트 토벌’이 군사작전의 명분이었지만, ‘테러’와는 거리가 먼 여성들이 가장 큰 피해를 당했다.

춧핀 마을 출신 아누라(24·가명)는 학살이 일어나던 2017년 8월27일 라카인주에 사는 또 다른 소수민족인 라카인족 남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라카인족은 당시 미얀마 군경과 함께 로힝야 학살에 가담했다. 당시 아누라는 아이를 안고 있었다. 남성이 아이를 빼앗으려 하자 아누라의 아이들이 울었다. 아누라가 저항하자 남성들은 망고나무에 묶어놓은 뒤 그의 큰아들을 염소우리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아누라를 성폭행했다. 

돈·장신구 빼앗은 뒤 성폭행 
문 걸어 잠그고 불 지르는 등
‘테러리스트 토벌’ 명분으로 악행 
우는 아이들은 총 쏘거나 불태워

아누라는 의식을 잃었다. 아누라는 “남성 2명이 현장에 있었지만 몇명이나 성폭행을 저질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3시간가량 지나서야 한 이웃이 아누라를 구해주었다.

아누라처럼 많은 여성들은 어머니였다. 미얀마 군인과 경찰, 학살에 가담한 민간인들은 젖먹이 아이를 서슴없이 죽였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을 강간하려고 아이를 어머니 품에서 빼앗아 죽인 것이다. 춧핀 마을에선 인터뷰에 응한 40명 중 23명이 아동 살해를 목격했다고 했다. 총을 쏘거나 불에 태워 아이들을 죽였다. 흉기를 휘둘러 죽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성폭행을 막으려던 이들도 죽임을 당했다. 인딘 마을 출신 나후마(50·가명)는 2017년 8월25일 군경이 마을을 습격하던 날 사망한 이웃주민 후세인의 모습을 기억했다.

후세인은 나후마의 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 나후마가 군경을 피해 숲속으로 도망가는데 미얀마 군인이 나후마의 딸을 붙잡았다. 붙잡힌 딸을 구하기 위해 후세인이 군인들 앞으로 달려갔다. 군인들은 흉기를 휘둘러 그를 죽였다. 

뚤라똘리 마을 출신 바시다(가명)는 생후 28일된 갓난아이를 안고 있던 상태에서 미얀마 군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목에 난 상처는 미얀마 군인들이 흉기를 휘둘러 난 것이다.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 제공

뚤라똘리 마을 출신 바시다(가명)는 생후 28일된 갓난아이를 안고 있던 상태에서 미얀마 군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목에 난 상처는 미얀마 군인들이 흉기를 휘둘러 난 것이다.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 제공

■ 난민캠프에서 이뤄지는 ‘자조모임’ 

아누라는 국제사회에 ‘정의’를 요구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성폭행을 겪어야 했던 그에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회복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하지만 당장 가해자 처벌은 요원하고, 난민캠프의 생활도 열악하다. 여성들은 간신히 살아남은 자녀들을 돌보며 자신의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끔찍한 기억을 안고 있는 로힝야 여성들은 난민캠프에 머물며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린다. 하지만 주변에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여성들의 피해 증언을 확인하기 위해 아디의 여성 조사관들이 나섰지만, 옆 텐트의 음성이 생생히 들리는 난민캠프의 특성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겪은 피해를 말하길 주저했다. ‘성폭행 피해자’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했다. 성폭행 피해 여성들은 또 다른 편견의 벽에 부딪혔다. 

‘성폭행 피해자’ 낙인찍힐라 쉬쉬 
살아남은 여성들은 ‘정신적 고통’
난민캠프서 심리지원 자조모임
 

아디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힝야 여성 심리지원단’을 양성해 훈련하고 있다. 이 심리지원 활동은 집단학살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이 서로 도울 수 있는 ‘자조(自助)모임’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성폭력 등 각종 피해를 입은 난민 여성이나,

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난민캠프 안에서 훈련된 로힝야 여성 등 난민 여성들의 모임을 조직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아디 관계자는 “종교성이 강하고 전통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자란 탓에 로힝야 여성들이 겪은 참혹한 피해는 오히려 사회적 낙인이 될 우려가 있다”며 “여성들끼리 서로 보듬고 도와 자존감을 키워갈 수 있는 자생적인 모임을 만들어가는 것이 지금 단계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희생자 대부분 테러리스트와 거리 먼 아이·여성·노인…“인종청소 노린 집단학살”
 

유엔 조사위서 책임 묻자 미얀마 군통수권자 “끝나지 않은 비즈니스”
이양희 유엔 인권특별보고관 “한국, 인권유린 국가와 교류 중단해야”

 

 
시민단체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의 ‘로힝야 학살 보고서’ 인터뷰에 참여한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의 뚤라똘리 마을 주민들은 군인들의 군복에 새겨진 휘장을 선명히 기억했다. 왼팔에 버마어(미얀마어)로 흰색 숫자 99가 적혔다. ‘제99경보병사단’이었다. 춧핀 마을에선 제33경보병사단의 마크가 목격됐다. 

마을 주민들은 인딘 마을에선 미얀마군 535대대, 쿠텐콱 마을에선 537대대가 학살에 가담했다고 증언했다. 돈팩 마을에서도 군인과 국경경찰대 등이 학살에 나섰다.
 
‘테러리스트 토벌’을 명분으로 내건 군경들은 주로 총칼을 휘둘렀다. 평소에도 로힝야족을 핍박해온 불교도 소수민족들도 학살에 가담했다. 이들은 소총이나 기관총, 칼 등을 소지한 채 마을로 진입했고, 무차별적으로 주민들을 죽였다. 하지만 보고서는 “학살이 벌어진 마을에서 테러리스트의 활동 징후가 포착된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군경의 총칼에 숨진 이들은 대부분 테러리스트로 활동하기엔 너무 어린 아이들이거나 여성 또는 노인들이었다. 성인 남성들은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마을 한곳에 소집된 뒤 살해당했다.
 
로힝야에게 벌어진 일을 국제사회는 일반적으로 집단학살로 규정한다. 제노사이드(Genocide)라고도 불리는 집단학살은 민족이나 종족, 인종을 뜻하는 그리스어 ‘Geno’와 살인을 뜻하는 라틴어 ‘Cide’가 합쳐진 말이다. 한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 전체나 일부를 고의적으로 제거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개념을 1944년 처음 정립한 국제변호사 라파엘 렘킨은 나치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을 규정하기 위해 이 정의를 사용했다. 

유엔이 1948년 채택한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 따르면, “국민적, 인종적, 민족적 또는 종교적 집단을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할 의도로 집단 구성원을 살해하고, 중대한 육체적 또는 정신적인 위해를 가하며, 집단 내에 있어서의 출생을 방지하기 위해 의도된 조치를 부과하는 것 등”을 집단학살로 분류한다. 

아디가 만든 로힝야 학살 보고서는 마을 주민 증언을 통해 조직적인 인종말살을 입증하고, 체계적인 집단학살의 의도를 국제사회에 고발하기 위해 제작됐다. 

지난해 8월 유엔 진상조사위원회가 미얀마 군부 지도자들을 로힝야 학살 책임자로 규정한 보고서를 내놓자, 미얀마 군부의 통수권자인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어떤 국가나 조직, 단체도 한 나라의 주권에 개입하고 결정할 권한이 없다”고 반응했다. 흘라잉 사령관은 앞서 2017년 9월 로힝야를 상대로 벌어진 군사작전에 대해 ‘끝나지 않은 비즈니스’라고 했다.
 
방글라데시의 로힝야 난민캠프 등을 방문 중인 이양희 유엔 미얀마 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 7일 경향신문과의 서면인터뷰에서 한국 정부 역시 미얀마에서 벌어진 로힝야 집단학살에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얀마에서 벌어진 로힝야에 대한 학살은 제노사이드에 해당한다”며 “미얀마 군사령관은 로힝야에 대한 탄압을 ‘끝나지 않은 임무’라고 언급해왔고, 법과 제도 및 정책 등을 통해 수십년간 서서히 로힝야를 없애려 해왔다는 점을 보면 집단학살의 의도 역시 입증됐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과 국제사회는 인권을 유린하는 국가에 대한 지원과 교류를 중단하는 등의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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