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장자연 10주기: 검찰은 ‘조선일보 방 사장’ 잡아 성 접대 근절할 수 있을까

강석영 기자 getout@vop.co.kr
발행 2019-03-07 05:49:02
수정 2019-03-07 05:49:36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없음
ⓒ뉴시스
 
 

2009년 3월 7일. 10년 전 오늘 29살 장자연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로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숨지기 일주일 전, 장 씨가 남긴 문건(이하 장자연 문건)이 그 이유다.

“2008년 9월경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는 사람과 룸싸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사장님이 방 사장님이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후 몇 개월 후 김성훈(기획사 대표 김종승의 가명) 사장이 조선일보 방 사장님 아들인 스포츠조선 사장님과 술자리를 만들어 저에게 룸싸롱에서 술접대를 시켰습니다. …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2009. 2. 28 장자연” 

장 씨는 성 접대 피해자였다. 장 씨의 기획사 사장은 사업적 관계를 맺기 위해 돈 많고 권력 있는 남성들에게 젊고, 아름다운 장 씨의 몸을 재화로 제공했다. 그는 두 남성 주체의 끈끈한 형제 연대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성 접대를 하나의 문화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장 씨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홀로 사회적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장 씨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0년, 진실 규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조선일보 방 사장’ 빠진 껍데기 수사  

2009년 8월 19일 장 씨의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장 씨의 기획사 대표 김종승 씨와 장 씨의 매니저 유장호 씨만을 기소한다고 밝혔다. 그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폭행·모욕 등으로 성 접대 강요와는 관련 없는 죄목이었다.  

장자연 씨 소속사 대표 김종승 씨
장자연 씨 소속사 대표 김종승 씨ⓒ뉴시스

‘조선일보 방 사장’ 등 유력 인사 4~50여 명이 성 접대를 받았다고 ‘장자연 문건’은 폭로했지만, 결국 성 접대와 관련해 처벌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사건 종결로부터 9년이 흐른 지난해 2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장 씨 사건의 재수사를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검 산하 진상조사단은 지난해 4월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권고를 받아 같은 해 6월 재수사를 시작했다.  

2009년 장 씨 사건을 수사한 경찰이 검찰에 관련 자료를 넘기는 과정에서 ‘장자연 문건’ 내용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증거들을 빠뜨린 사실이 진상조사단 조사 결과 드러났다.  

빠진 증거는 장 씨의 휴대전화 3대의 통화 기록, 휴대전화 3대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결과, 장 씨의 컴퓨터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결과 등이었다. 진상조사단은 당시 수사 검사로부터 장 씨의 통화 기록을 제출받았으나, 원본 파일은 아니라고 밝혔다.  

핵심 증거 누락은 미흡한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계속됐다고 진상조사단은 지적했다. 장 씨의 주거지 및 차량을 압수 수색하는 과정에서 장 씨의 수첩 등 자필 기록과 명함 등 장 씨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주요증거들이 빠졌다는 것이다. 

진상조사단은 과거 압수수색 당시 장 씨의 침실 위주로 압수수색이 이뤄졌고, 침실과는 별도로 있었던 장 씨의 옷방은 수색하지 않았으며, 장 씨가 들고 다니던 가방도 열어보지 않았다고 밝혔다.

없음
ⓒ뉴시스

또 과거 수사기록에 ‘장 씨의 싸이월드 압수수색 영장 신청 예정’이 기록돼 있으나 실제 영장을 신청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장 씨가 싸이월드에 개인 기록을 남겼을 가능성이 큰데도 압수수색조차 하지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이런 총체적 수사 부실이 있었음에도 당시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보완 수사를 지시하거나 이행하지 않았다. 진상조사단은 “경찰이 넘긴 자료가 부실하다는 것을 검찰이 몰랐겠느냐”라며 장 씨 사건이 경찰에서 검찰로 이어지면서 축소·은폐됐음을 인정했다.

‘방 사장’ 잡다 임우재·권재진까지  

진상조사단은 재조사를 통해 ‘조선일보 방 사장’ 찾기에 주력하고 있다.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고 의심받는 방용훈 코리아나 호텔 사장을 진상조사단은 지난해 12월 소환 조사했다.

방 사장은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동생이다. 과거 수사에서 그가 2007년 10월 서울 청담동에서 장 씨와 장 씨의 소속사 대표 김 씨 등을 만난 사실이 확인됐지만, 경찰은 물론 검찰도 그를 조사하지 않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진상조사단은 2008년 가을 방 사장이 한 차례 더 장 씨를 만났다는 진술을 확보하기도 했다. 

방용훈 코리아나 호텔 사장과 방정오 TV조선 전 대표이사
방용훈 코리아나 호텔 사장과 방정오 TV조선 전 대표이사

진상조사단은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차남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이사를 불러 ‘조선일보 방 사장’과 관련된 사실을 추궁했다. 과거 수사에서 방 전 대표이사가 2008년 10월 장 씨와 술자리를 가진 사실이 확인됐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최근 두 사람과 장 씨의 관계를 밝힐 수 있는 의미 있는 진술이 재수사 과정에서 확보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새로운 인물들도 등장했다.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이 2008년 장 씨와 35차례 통화한 기록을 진상조사단은 장 씨의 생전 통화기록을 살펴보다 확인했다. 해당 번호의 명의는 당시 임 전 고문의 부인이던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으로 파악된 것으로 전해졌다.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와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와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민중의소리

또 진상조사단은 2008년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이 장 씨와 방용훈 사장 등이 함께한 자리에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의 초대를 받아 합류했다는 증언을 확보하기도 했다. 당시 권 전 장관은 검찰 내 2인자로 꼽히는 대검 차장이었던 만큼 장 씨의 사건 수사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외에도 진상조사단은 과거 수사에서 장 씨를 강제 추행했다는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은 전 조선일보 기자 조모 씨를 재조사해 재판에 넘겼다. 조모 씨는 2008년 8월 장 씨의 소속사 대표 김 씨의 생일파티에 참석해 장 씨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다.  

‘방 사장’ 잡아도 공소시효 지나 처벌 못 해  

재수사를 통해 ‘조선일보 방 사장’의 정체가 밝혀진다고 해도 그를 처벌할 방법은 없다.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다.  

장 씨 사건은 2007년 10월부터 2009년 2월 사이에 벌어졌다. 2009년 당시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에 따르면 성 접대 관련자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강요·성매매 알선·성매수·강제추행 등 7가지다.

미투 운동과 함께 하는 시민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선일보사 앞에서 ‘장자연 리스트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배우 고 장자연씨는 2009년 연예 기획사, 대기업, 금융업, 언론계 종사자 등 총 33명에게 100차례에 가까운 성 접대를 강요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접대 의혹으로 수사 선상에 올랐지만 검찰은 이들 모두 혐의가 없다고 판단, 아무도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
미투 운동과 함께 하는 시민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선일보사 앞에서 ‘장자연 리스트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배우 고 장자연씨는 2009년 연예 기획사, 대기업, 금융업, 언론계 종사자 등 총 33명에게 100차례에 가까운 성 접대를 강요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접대 의혹으로 수사 선상에 올랐지만 검찰은 이들 모두 혐의가 없다고 판단, 아무도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임화영 기자

성 접대는 현행법에서 성매매로 간주 돼 처벌받는다. 성 접대를 하게 만든 사람은 성매매 알선죄, 성 접대를 받은 사람은 성 매수죄 혐의가 적용된다. 그러나 성매매 혐의는 공소시효가 5년이다.

장 씨에게 전속계약서에 없는 의무 없는 일을 시켰기 때문에 성 접대 관련자들은 강요죄 혐의를 받을 수도 있지만, 이마저도 공소시효는 7년이다. 강제추행과 지위를 이용한 성매매 알선 혐의는 10년으로 공소시효가 가장 길지만, 지난달 만료됐다. 

진상조사단은 이번 달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조선일보 방 사장’ 등 성 접대 관련자들을 끝까지 밝혀냄으로써 검찰이 성 접대 문화를 근절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