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2013년 11월에 성광성냥이 조업을 중지했고, 4년 후인 2017년 8월에는 경남산업공사가 문을 닫았다. 1948년에 문을 연 경남산업공사가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면서 마침내 국내에는 성냥공장이 한 군데도 남지 않게 된 것이었다.
재활의 길을 찾는 성광성냥
손 대표를 따라 공장을 한 바퀴 도는 데 반 시간쯤 걸렸다. 성냥을 만드는 데 공정이 그 정도로 복잡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름드리 포플러 원목이 2mm 남짓한 성냥개비로 바뀌는 데 드는 공정의 수도 만만찮았다.
원목이 입고되면 이를 40cm로 절단해 껍질을 벗긴 뒤 축목(縮木)부에서 2.2mm 합판으로 만들고 채를 썰 듯 42·48mm 등 두 종류 성냥개비를 만든다. 이는 다시 건조기를 지나면 수분을 없앤 뒤에 성냥개비에 화약을 묻힌다. 이 낱낱의 성냥개비를 수작업으로 성냥갑에 넣고 옆면에 적린(赤燐 : 낮은 온도에서도 불이 잘 붙는 성질을 가진 붉은 인)을 붙이는 일까지 마치면 한 통의 성냥이 완성되는 것이다.
꽤 긴 공정에 드는 기계설비도 만만찮았다. 거대한 규모의 철제 설비를 갖춘 작업장이 윤전부, 축목부, 건조부, 소갑부, 대갑부, 배합실 등 13개 동이나 되는 이유다. 손 대표는 모든 공정이 자동화되다 보니 공정이 길고 설비가 복잡하다고 말했다.
▲ 성냥갑에 담기기 직전의 공정을 거쳐 나온 성냥개비들. 이 역시 공장이 남긴 흔적이다. | |
ⓒ 장호철 |
▲ 빈 성냥갑만 남기고 공장은 문을 닫았다. 멈춘 기계 설비 위에 성냥갑만 빼곡하게 남았다. | |
ⓒ 장호철 |
그러나 그게 역설적으로 경쟁력을 잃은 결정적 이유는 아닐까 싶었다. 상대적으로 긴 공정이 인건비와 제조비용의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은 값싼 인건비를 무기 삼아 밀려드는 중국산의 공격 앞에 손을 들고 만 것이 아닌가 말이다.
조업을 중지하게 된 2013년에 성광성냥은 하루 생산량을 1만5천 갑에서 1500갑까지 줄였다. 그러나 그것도 역부족이었다. 그 전해에 경상북도와 의성군이 성광성냥을 예비 사회적기업과 일자리 창출 사업장으로 지정했으나 2013년 8월에 요건 미달로 재지정되지 못했다. 2013년 5월, 경상북도 지정 '경상북도 산업유산', '향토 뿌리 기업'으로 지정된 것도 힘이 되지 못했다.
2014년에는 의성군이 중기지방재정계획에 총사업비 40억 원 규모의 성냥박물관 건립을 포함하여 추진했으나 2015년 경상북도의 관광 자원화 투자사업 심사에서 탈락했다. 기업으로서든 기념사업으로서든 성광성냥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잇따라 수포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 문화재로서도 관광자원으로서도 성냥공장의 가치는 섣불리 무시할 처지가 아니다. 의성군에서 이의 활용방안을 찾는 용역을 두 차례나 거친 이유다. 그러나 두 차례 용역의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온 건 이게 만만하게 접근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증빙한다.
흔치 않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성광성냥을 버려두거나 사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는 모두의 의견이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박물관이든 체험전시관이든 간에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발목을 잡는 것이다. 사업 시행의 결과 관리 비용만 쏟아부어야 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가장 경계하는 것이다.
의성군에서는 성광성냥이 원목을 가공하여 마지막 완성품인 성냥갑까지 만들어지는 일괄공정 설비를 갖추고 있는 국내의 유일한 공장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현재 중국이나 베트남의 성냥공장은 공정별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는 일괄공정을 갖추는 게 비용이나 운영 면에서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냥공장과 관련한 의성군의 계획은 "문화적 가치가 있는 성광성냥 공장을 전통시장과 연계한 테마형 마을을 조성하여 관광객 유치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추진한다"로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 그 구체적 청사진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다.
무엇으로든 되살려야 한다
의성군에서는 성냥공장을 등록문화재로 신청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 내용 면에서도 다양하고 흥미로운 콘텐츠를 갖추고 있는 성냥공장은 도 지정문화재인 의성향교 바로 앞에 있어서 개발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의성군에서는 현재 관련 용역이 진행 중인데, '도심 재생 프로젝트'와 '마을 미술 프로젝트' 등을 결합하여 공장에서 성냥을 생산하고 전시 체험시설을 세워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성광성냥에서 퇴직한 60대 숙련공들이 주변에 사니까, 이분들에게 다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진행 중인 용역의 결과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국비를 받아서 본격적으로 테마형 마을인 '희망마을'이 꾸려지는 것은 언제쯤일까. 현재까지 그 구체적 일정이 나오지 않고 있음에 손진국 대표는 초조함과 아쉬움을 내비쳤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은 성냥공장인 만큼 이를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바라는 것은 없다. 공장이 지역의 관광자원이든 문화유산이든 하루바삐 활용되어 지역에 보탬이 되고,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시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
▲ 전 생애를 성냥공장에 바친 손진국 대표(83). 그는 열일곱 살에 공장에 들어와 일흔여덟 살까지 공장을 운영했다. | |
ⓒ 장호철 |
▲ 성광성넝에서 생산하였던 향로성냥. 오리표로 바닷가 마을에서 인기가 높았다. | |
ⓒ 장호철 |
열일곱에 시작한 일을 일흔여덟까지 놓지 않았던 손 대표에게 성냥공장은 전 생애를 바친 일터였고 사업이었고, 그의 보람이었다. 이미 문을 닫은 자신의 일터가 한때는 향토기업으로 사람들의 자랑스러운 일터였다는 사실을 그는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인근 금성면으로 귀촌하여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 벗도 의견을 보탰다. 귀촌 8년차, 그도 의성사람이 다 된 걸까.
"'나만의 성냥' 만들기 체험 같은 걸 생각해 볼 수 있지. 텔레비전이 나오고도 신문과 책은 살아남았고,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는 아련한 추억이야. 주 소비계층 3, 40대 이상과 베이비붐 세대를 고려해 보면 이런 사업의 전망은 있지 않을까?
굳이 거액을 들여 박물관과 체험관을 짓지 않아도 최소한의 인력으로 공장을 돌리며 주 2회 정도라도 공정을 공개하고 체험 공간으로 개방하여 문화 공간으로 만드는 거, 반드시 힘들기만 할까?"
일본의 성냥공장도 중국산에 대응해서 고급화와 관광 상품화 전략으로 재활의 길을 찾았다고 한다. '성냥'을 단순히 불붙이는 도구가 아니라 '시대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도구로서 의미를 부여하는 전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우리는 손 대표에게 머지않은 장래에 소망하시는 대로 성광성냥이 거듭나리라고 위로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글쎄, 시답잖은 방문객이라도 그에겐 우리의 관심과 공감이 위안이 되었을까. 이곳을 다시 찾는 날에는 향굣길 근처가 외지의 방문객으로 북적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귀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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