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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협력사 사장들에 “진단서 떼놔라”…치밀했던 기획폐업

[삼성 노조 와해 사건의 전말](2)삼성, 협력사 사장들에 “진단서 떼놔라”…치밀했던 기획폐업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입력 : 2020.01.02 06:00

1심 판결문으로 본 ‘부당노동행위’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2014년 3월2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일부 협력센터의 잇따른 폐업이 노조 탄압용 ‘위장폐업’이라며 항의했다.  김기남 기자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2014년 3월2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일부 협력센터의 잇따른 폐업이 노조 탄압용 ‘위장폐업’이라며 항의했다. 김기남 기자

 

“ ‘그룹 노사 전략’은 상정하던 실제 상황(삼성노조 결성 시도)이 발생하자 그 세부 실행 계획이 담긴 ‘에버랜드 대책’으로 구현돼 그 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실행됐다.”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 1심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손동환)는 ‘그룹 노사 전략’과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의 관계를 판결문에 이렇게 정의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노조 설립에 대비해 세운 전략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이하 삼성전자서비스 사건)과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이하 에버랜드 사건)에서 실행됐다. 삼성의 노조 파괴 범행은 기획폐업, 어용노조 설립, 사찰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1일 경향신문은 두 사건 1심 재판부가 인용한 문건을 중심으로 부당노동행위를 분석했다. 

■ “가능한 경우 입원하라” 

삼성은 강성노조가 있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로 분류된 해운대·아산·동래외근 협력사를 폐업시켜 노조 조직·운영에 지배·개입한 혐의(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를 받는다. 삼성 측은 “협력업체 폐업은 사장들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이뤄졌다”는 주장을 폈다. 다음은 지난달 17일 선고된 삼성전자서비스 사건 1심 판결문에 인용된 ‘폐업 실행 시나리오’ 문건 일부다.
 

2·2(월) 폐업사유 입증자료 준비 : 전년 대비 매출 감소, 영업이익 감소, 고객항의 급증 등
 
건강악화 증빙자료 준비(1차) : 스트레스성 질환 진단서 확보(가능한 경우 입원)
 
2·17(월) 건강악화 증빙자료 추가 검토 : 스트레스 관련 추가검진 실시 및 진료기록 확보
 
2·26(수) 협력사 사장은 2월 말 경영상 사유로 폐업함을 공표함: 지치고 미련이 없다. 다 버리고 폐업하겠다. 

2·28(금) 폐업절차 진행


 

삼성은 폐업 목표일까지 정해놓고 날짜·시간대별로 ‘폐업 시나리오’를 촘촘히 짰다. 협력사 사장들은 재판에서 ‘건강 악화’라는 폐업 사유를 내세웠지만, 삼성은 협력사 사장들에게 “스트레스성 질환 진단서를 확보(가능한 경우 입원)”하라고 지시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은 폐업 당일 시간대별로 실행계획을 세웠다. 해운대 협력사 사례를 보면, 2014년 2월27일 오전 9시 폐업에 대한 직원 설명회를 실시하고, 오전 10시 삼성이 준비해놓은 폐업 공고문, 고객 안내문, 직원 대상 사장 소회문을 게시하고, 오전 11시 구청·세무서에 폐업 신고하라고 지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는 “문건에 기재된 내용 그대로 실행됐다”며 “삼성전자서비스 측에서 유도하고 기획한 폐업으로 봐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 페이퍼 노조 

삼성은 에버랜드 노동자가 노조를 설립하려고 하자 어용노조(에버랜드 노조)를 만들어 노조 활동을 방해한 혐의(노동조합법 위반)를 받는다. 삼성 측은 어용노조 설립에 지배·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어용노조 설립에 도움을 준 행위는 부당노동행위가 될 수 없다고도 했다. 지난달 13일 선고된 에버랜드 사건 1심 판결문에 인용된 문건을 보면, 삼성 스스로도 에버랜드 노조를 ‘PU(Paper Union·페이퍼 유니온)’라고 기재했다. 미전실에서 작성한 문건을 보면, “어용노조 시비를 피하기 위해 에버랜드 노조를 한국노총에 가입시키겠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삼성 노조 와해 사건의 전말](2)삼성, 협력사 사장들에 “진단서 떼놔라”…치밀했던 기획폐업

■ “전향적 판결” 

기획폐업과 어용노조 설립은 노동조합법상 ‘부당노동행위’다. 노동조합법 81조는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운영하는 것을 사용자가 지배·개입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위반한 사용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원청업체일 뿐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협력업체 사장들만 범죄 행위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삼성전자서비스 사건 1심 재판부는 “삼성전자서비스는 소속 수리기사들에게 근로자 파견 관계에 해당할 정도로 실질적·구체적인 지배력을 행사했으므로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전향적인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를 폐업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2010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 취소 사건’ 상고를 기각하면서 “근로자의 노동조건 등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면 구제명령을 이행해야 할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판례를 헌법·노동조합법 입법 목적에 비춰보면,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를 사용자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원청을 부당노동행위 범행 주체인 사용자로 인정하고 형사처벌한 첫 하급심 판결이다. 지난해 8월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현대차 임직원이 부품사인 유성기업 임직원과 공모해 유성기업 노조 파괴에 관여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징역형을 선고했는데, 이 사건의 경우 현대차 임직원은 ‘공범’으로 인정돼 처벌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노동부도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수사 시에는 원청의 관여 여부를 확인하도록 수사매뉴얼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 이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이번 판결은 원청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적극적인 수사와 판단의 필요성을 확인한 것”이라고 했다. 

어용노조의 임모 1기 위원장, 김모 2기 위원장도 자신들은 노동자일 뿐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지만 에버랜드 사건 1심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신분관계로 인해 성립될 범죄에 가공한 행위는 신분관계가 없는 자에게도 ‘전3조(공동정범, 교사범, 종범)의 규정’을 적용한다”는 형법 33조를 근거로 들었다. 어용노조 위원장들은 범행 주체가 ‘사용자’ 신분이어야만 범죄가 성립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 조항을 들어 사용자가 아니어도 부당노동행위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어용노조 위원장들까지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한 것이다. 박 변호사는 “어용노조 간부들도 부당노동행위 공범으로 책임을 지웠다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에버랜드에서는 현재까지도 이 어용노조가 교섭대표노조라며 금속노조 삼성지회와의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법원 판결에도 기존의 노조파괴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 “꼼꼼하게, 단디 챙겨라” 

“전체적으로 꼼꼼하게, 단디 챙겨라.” 강경훈 당시 삼성그룹 미전실 노사파트 총괄 임원(부사장)이 에버랜드 상황실로부터 노조원을 사찰한 내용을 보고받으면서 했던 말이다. 삼성 미전실은 각 계열사로부터 소위 ‘문제인력’의 개인정보를 매일같이 무단 수집(개인정보보호법 위반)했다. 삼성에버랜드 상황실은 노조를 설립하려는 노동자들을 차량을 이용해 감시하는 일명 ‘패트롤’ 방식으로 이들의 사생활을 ‘일일동향문건’에 정리했다. 문건을 보면, “절대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 “2인1조로 운영한다”는 원칙에 따라 조장희 부지회장, 박원우 지회장 등 문제인력을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삼성은 ‘문제인력’의 가족까지 사찰해 부당 징계에 활용했다. 삼성은 ‘문제인력’으로 분류된 ㄱ씨 배우자의 금융정보, 건강 같은 ‘민감정보’까지 수집했다. ‘일일동향문건’에는 “2011년 11월16일 사내 기금 담당에게 대출신청서 제출” “2012년 3월8일 오전 10시40분 아주대병원에서 물혹 제거 수술을 받고 휴식”이라고 적혀 있다. 재판부는 “ㄱ씨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정을 파악한 후 ㄱ씨를 무급상태로 만드는 것이 가장 주효한 압박 수단이라고 판단해 징계수위를 ‘정직’으로 변경했다”고 했다. 

언론 인터뷰도 사찰했다. 2012년 7월16일자 ‘일일동향문건’에는 “조장희·박원우·백승진이 7월13일 11:30~12:30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실시”했다고 적혀 있다. 에버랜드 사건 1심 재판부는 “사용자 측은 처음부터 조장희 등을 문제인력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징계하기 위해 장기간에 걸쳐 그들을 감시하고 미행해 동향을 파악하는 등 불법적 수단을 동원해 징계사유를 적극적으로 탐색했다”고 지적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1020600035&code=940100#csidx645d584344cfd6497d4ed2ab49e81d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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