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해고, 자살, 협박… 대한민국 일류 기업의 그늘을 밝혀라!

[삼성이라는 '환상'의 세계] 르포 작가 김순천을 만나다

김용언 기자,김윤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6-14 오후 6:37:18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환상>(박종태 구술, 김순천 정리, 오월의봄 펴냄)의 서문 첫 문단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23년 동안 한 회사에서 충성을 다했던, 그리고 그 회사 삼성전자로부터 매몰차게 해고당했던 40대 남자 박종태가 "목 디스크 때문에 앉는 자세도 바르게 하지 못"한 채 너무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는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 있었다. 2009년 삼성전자 측은 한가족 협의위원(일종의 자체적 노사기구. 삼성에서 노조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노사'라는 단어 대신 '한가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으로 활동하며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던 박종태를 협의위원 직에서 강제 면직시켰고, 그해 여름 갑작스런 해외 출장 지시에 건강상 이유로 불응하자 징계를 내렸다. 2010년 박종태는 징계무효와 협의위원면직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재직 중인 사원이 삼성전자 사장을 상대로 노무관리 부당성에 대해 고소한 것은 삼성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2010년 그는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고 컴퓨터도 서류도 다 치워버린 완전히 텅 빈 책상 앞에 하루 종일 앉아있어야 하는 조치를 당했다. 그는 매일같이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책상 앞에 앉아 벽만을 바라보며 한 달 여를 보냈다. 아래 사진은 당시 '앉아 있는' 박종태를 동료가 촬영해준 것이다.
 

▲ 삼성전자에서 업무 정지 처분을 받았을 당시의 상황. ⓒ박종태


2010년 11월 26일 결국 삼성전자로부터 해고당한 박종태는 해고 부당성 철회 1인 시위를 시작하고 부당해고 무효 소송과 산재처리 소송을 진행하면서, 르포작가 김순천과 함께 <환상>을 썼다. 이 책의 첫 번째 부제는 '삼성전자 노동자 박종태 이야기'이며, 두 번째 부제는 '삼성 안에 숨겨진 내밀하고 기묘한 일들'이다. 그는 이 책에서 "삼성 안에서 내가 겪었던 비현실적인 모습"을 하나하나 털어놓는다.

"삼성과의 싸움은 거대한 악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옳지 않은 인간, 돼먹지 못한 인간으로 만드는 모든 일상적인 일과의 싸움이었어요.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그들의 논리를 세밀히 관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의 연속이었기에 내 신경은 닳아 없어질 지경이었어요."

우리는 박종태의 증언을 통해 '또 하나의 가족' 삼성 내부에서 조용하게 벌어지는 경악스러운 사건사고를 목격할 수 있다. 업무상의 아주 작은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즉각 해고당했고, 업무상 재해백혈병에 걸리거나 유산했다. 모든 업무는 영어로 처리하라는 부서장의 지시 한 마디에 영어와 아무 상관없는 제조과 사원들마저도 영어를 사용해야 했다. 둘째 아이를 낳은 여직원은 "하나를 얻었으면 하나를 잃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라는 반문과 함께 암암리에 퇴사를 권고 받았다. 그리고 작업 환경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이 같은 부당한 상황에 대해 직원 대표로서 개선을 요구했던 박종태는 무자비한 업무 보복과 함께 해고당했다.
 

▲ <환상>(박종태 구술, 김순천 정리, 오월의봄 펴냄). ⓒ오월의봄

이것은 몇 십 년 전의 동네 구멍가게나 전체주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그땐 그랬지' 풍의 괴상한 추억담이 아니다. 현재의 대한민국 초일류 기업 한복판에서 진행 중인 일들이며, 우리는 그에 대해 전혀 몰랐거나 혹은 모르는 척 외면했다.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박종태는 김순천과 함께 다시 한 번 힘껏 고발한다. "노동자의 노동권과 건강권조차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아니 보장조차 못하게 하는 기업이 과연 초일류기업"이냐고. 우리는 다시 한번 '울고 있는' 남자, 멍하니 '앉아 있던' 남자 박종태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야 한다.



지난 5월 2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김순천을 만나 <환상>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인터뷰 자리에 원래 박종태도 동석하려 했으나 결국 건강상 문제로 자리에 나오지 못했다.) 인터뷰는 김용언 기자가, 정리는 김윤나영 기자가 맡았다. <편집자>

불행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프레시안 : IMF 금융 위기 이후에 르포를 쓰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계기였을지 궁금하다.

김순천 : 전반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파탄 내는 사회적 분위기가 피부로 곧바로 다가오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현장을 깊이 있게 기록하지 않았다. 가정이 무너진다는 기사는 여기저기 나왔지만, 현장으로 가서 그들의 삶을 깊게 들여다보는 문학이 거의 없었다.

2003년 격월간 진보생활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에서 르포문학 교실을 만들어 담임
강사로 활동했다. 그곳에서 시나 소설을 썼던 작가와 수강생들이 결합하여 처음으로 현장으로 가는 글쓰기,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러다 이렇게 됐다.(웃음) 그때부터 10년 넘게 르포 작가로 일하고 있다.

프레시안 : 2003년부터 꾸준히 노동 현장을 지켜보아온 바에 따르면 어떤 변화가 느껴지는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게 체감되는지 궁금하다.

김순천 : 지금이 예전보다 더 심각하다. 1998년이나 2000년대 초반 갑자기 삶이 파괴된 이들의 문제가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누적됐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다. 사람들이 특정한 상황에 오랫동안 갇히면 정신이 야수처럼 변하고 인간성 자체가 변형된다. 그래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많고, 정신적인 병에 시달리기도 한다. 자신을 파괴하지 못한 사람들은 타인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화가 잔뜩 쌓여 있다. 잔인한 범죄가 늘어나는 이유다.

예전에 중독에 대한 글을 쓰려고 총리실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중독예방치유센터장을 지낸 조현섭 씨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에
인터넷, 도박, 알코올, 약물, 게임에 중독된 사람이 800만 명이나 된다더라. 전체 국민의 16퍼센트나 되었다. 스마트폰 중독, 공부 중독, 음식 중독 등 일상적인 중독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게 현실이다. 중독은 어렵고 힘든 삶을 개인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현실의 삶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므로 뭔가에 병적으로 깊게 빠진다.

우울증은 말할 것도 없이 기본이다.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김순천 지음, 오월의봄 펴냄)에서 회사원 중 우울증을 느끼는 비율이 62.9퍼센트라고 썼는데, 어떤 분들은 내가 너무 과하게 얘기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삶에 대해 무기력증에 빠졌고,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 정도가 심각하다.

글을 통해 다른 분들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데, 나는 그런 말을 못해주니 괴롭다. 하지만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실을 냉철히 봐야 한다. 틱낫한 스님도 "내면의 고통을 솔직하게 들으려 할 때 치유가 시작된다"고 했다. 사회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확하게 바라보고 허위로 보지 않아야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보인다. 나처럼 이야기하는 누군가도 필요하다. 내 글은 적나라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이야기들이 많아 스스로도 아프고 불편하다. 하지만 견딘다. 그것이 내 몫이기도 한 것 같다.


프레시안 : <환상>을 어떻게 쓰게 됐는지 궁금하다.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에 수록된 직장인들의 체험담 중 삼성전자에서 노조를 만들자고 주장했다가 해고된 박종태 씨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던데, 작업 도중에 다음 책을 박종태 씨 이야기로 쓰겠다고 기획한 건지.

김순천 : 아니다.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 때문에 박종태 씨 인터뷰를 하고 난 다음, 그분이 먼저 자기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자료를 들고 왔다. 삼성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매번 졌고 복직 투쟁도 졌다. 그러니 자기가 삼성에서 겪은 이야기를 섬세하고 자세히 적어서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얼마나 절실했으면 글도 써 보지 않은 분이 3년에 걸친 그 수많은 자료를 스스로 정리해서 원고를 써왔겠나. 하지만 그 글을 책으로 내려면 누군가는 몇 개월간 붙어서 다시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글을 써 줄 수 있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작업을 진행하던 게 있어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내가 맡기로 했다.

 

▲ <환상>의 김순천 작가. ⓒ프레시안(최형락)


"명예훼손죄로 고소할게요."

프레시안 : <환상>을 읽는다는 건 오싹한 체험이었다. 그 책에 묘사된 삼성은 문자 그대로 괴물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삼성만 이런 걸까 싶기도 했다. 삼성은 '나쁜 기업'의 대명사가 됐는데, 사실 다른 기업 얘기는 발설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대기업 자체에 대해 미처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순천 : 그렇다.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 문화 자체가 폭력적이다.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이고, 특히 대기업은 더 심하다. 다른 대기업도 비슷하지만 삼성에 유독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만큼 삼성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삼성이라는 브랜드는 유명하지만, 삼성의 실질적인 모습이나 실체는 지금까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나도 박종태 씨를 인터뷰하기 전에는 삼성이 이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우선 삼성전자에서 해고가 일상적으로 이뤄진다고 하더라. 나는 삼성과 싸우는 사람만 해고되는 줄 알았지, 일반 사원들까지도 일상적으로 해고되는 상황은 몰랐다. 그런 일이 기사화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박종태 씨는 하루 자고 나면 동료가 사라진다고 했다. 믿기지 않았다. 쌍용자동차의 정리 해고는 잘 알려져 있어도, 삼성은 그렇지 않았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을 다룬 책 <세계를 움직이는 삼성의 스타 CEO>(홍하상 지음, 비전비엔피 펴냄)에서 "IMF 이후, 삼성전자 100개 사업부가 있는데 30개가 잘렸고, 2만3000명이 해고됐다"고 말하더라. 엄청난 숫자였다. 2만 3000명이 잘렸다면 삼성전자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겠나. 아수라장이었을 것이다. 이를 박종태 씨가 증언한 거다. 두 개의 이야기가 일치되면서 납득이 갔다.

예를 들어 (구조조정 대상 직원을) '하얀 방'(직원들은 취조실이라 부른다)으로 불러서 "너 언제까지 나가라"는 식이라고 했다. 안 나가면 전환 배치하거나 자른다든지 했다. 그 중 반항적인 직원은 면담 과정에서 칼을 들고 자살 소동을 벌인 적도 있었다. 삼성은 해고를 안 시킨다는 대외적 이미지를 만들어 왔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비공식적으로 벌어진다. 회사에 비판적인 직원에게는 '여행'을 가라고 종용한다. 당연히 그 직원은 여행을 안 가려고 애쓴다. 가는 순간 책상이 사라지니까. 그런 식으로 온갖 수법이 동원된다.

더 끔찍했던 건 그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잘려 나간 것을 몰랐다는 점이다. 나도 나름대로 노동자의 삶에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해고를 당하고 있는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다른 기업에서도 다양한 수법으로 사람들을 구조 조정했겠지만, 구조 조정이 이렇게 철저하게 알려지지 않는 회사도 드물다. 그게 삼성이다. 삼성의 다른 면을 봤다.

언젠가 인사과장이 내게 '우리는 착하고 순종적인 사원들부터 먼저 자른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가만히 있는 사원들은 쉽게 잘렸던 반면, 강하게 반항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부서장들도 밑의 직원들에 대한 퇴직 문제를 기를 쓰고 처리하려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퇴직 대상자가 되기 때문이었다. 부서장이 부하들을 퇴직시키고 나면 그다음은 회사에서 부서장을 해고시켜 버렸다. (<환상> 57쪽)


프레시안 : 책에는 작가 본인도 삼성에 대해 물리적인 공포를 느낀 적이 있다고 적혀 있다. 알 수 없는 번호로 메시지를 보내 '명예 훼손 소송'을 걸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했다. 그 번호를 추적했더니 중국의 포르노 사이트였다고 했다.
 

▲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김순천 지음, 오월의봄 펴냄). ⓒ오월의봄

김순천

: IT 전문가 얘기로는 그렇다. 나에게 협박한 연락처의 출처가 중국 포르노 사이트라고 IT 전문가가 얘기했다. <환상>이 출간되고 며칠 후에 협박을 한 당사자가 나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아마 자기가 국내에 있음을 알리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휴대전화로 그 사람에게 전화했는데 안 받더라. 시골에 내려가서 공중전화로 걸었더니 그제야 받았다. 내가 태연하게 그에게 인사하고 "나한테
문자메시지 보내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발뺌하더라. 삼성 다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나는 삼성 안 다닌다"고 답했다. "나한테 협박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그렇게 하셔도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 분이 "그럼 고소하세요"라고 하더라. 일반 사람이라면 "고소하세요"라는 말을 못 할 것이다. 일반 사람이라면 "난 아니다. 무슨 일이냐?" 묻고 끊든지 할 것이다. 내가 책에 고소한다고 적었더니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본인이 맞는데 모른 척 하는구나 싶었다. 불쌍하더라.

'명예훼손죄로 고소할게요.'
2012년 9월 9일 오후 12시 2분, 내게 문자메시지 하나가 날아왔다. 전화번호는 '010-2253-1477'번이었다. 영문을 몰라 전화를 걸어봤더니 수신이 제한된 번호였다. 약간 이상한 마음이 들어 문자를 보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할 말이 있으면 전화로 말씀해주세요.'
그러자 곧 답이 왔다.
'싫은데요? 몰래 녹음기 들고 다니는 거, 상대방 동의를 얻고 하는 거예요?'
몰래 녹음기? 나는 이제까지 인터뷰 상대의 허락 없이는 대화를 녹음한 적이 없었다. 아, 그때서야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람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환상> 25~26쪽)


프레시안 : 그 협박 문자메시지를 받은 이후로 도청도 의식하게 됐다고 썼다. 그 때문에 오는 정신적 압박감이 클 것 같다.

김순천 : 박종태 씨가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 중앙문에서 1인 시위할 때도 찾아가서 인터뷰하니까, 감시자가 와서 사진을 찍더라. 내가 여자니까 협박하면 떨어지리라고 생각한 것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삼성에서 협박 메시지를 보냈다고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메시지에 비밀
녹취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 비밀녹취 건은 내가 박종태 씨와 차 안에서 나눴던 이야기 중에 나왔던 얘기였다. 어떻게 박종태 씨와 나 둘만이 있던 장소에서 나눴던 이야기를 그 사람도 알고 있었을까, 도청 아니면 의문이 해결되지 않는다. 책도 나오기 전에 작가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낸 회사가 있다는 게 끔찍했다.

작은 체험인데, 그런 협박을 받은 이후로 글을 쓰면서 명예훼손에 걸릴지 안 걸릴지 스스로 검열하게 되더라. 그래서 책에서 사원들의
이름은 거의 뺐다. 전무 이상은 이름을 밝혔지만, 나머지는 동료에게 피해가 될까봐 뺐다.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에서도 박종태 씨가 인터뷰 중 얘기한 사례를 더 넣으려고 했는데, 결국 못 넣었다. 문제가 될까봐.

그런 협박 자체가 자유롭게 글을 쓰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다. 사실 작가들은 표현에 가장 민감하다. 글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작가는 느낀 그대로 문제를 바라봐야 글을 쓸 수 있다. 그래야 힘을 갖는다. 자신을 속이면서 거짓으로 글을 쓰는 것은 엄청난 죄악이다.

협박 메시지를 받은 날은 시아버님과 남편, 아들들이랑 밖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메시지를 보고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그 작은 메시지가 가정에 파급력을 미치더라. 그러면 삼성 안에서 그 많은 걸 겪은 박종태 씨는 어땠겠나. 그 순간 박종태 씨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현실로, 몸으로 생생히 느껴지는 체험을 했다. 삼성에서 수많은 협박을 받으면서 혼자 싸웠으니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들었겠나. 그가
정신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도 이해가 되었다.

프레시안 : '일등 기업'이 너무 치졸한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김순천 : 나는 손배 가압류로 자살한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씨의 평전 <인간의 꿈>(후마니타스 펴냄)도 썼고, 두산이 중앙대학교에서 벌인 잔인한 일들도 글로 썼다. 배달호 씨 평전을 쓸 때 두산에서 그 사실을 알았지만 어떤 협박도 받은 적이 없었다. 다른 기업에서는 글 쓴 작가를 이렇게까지 협박하지 않았다. 삼성이니까 했던 것이다. 두산에서 겪지 않은 일을 삼성에서 겪었다. 어떤 면에서는 두산보다 더 비겁한 기업이다. 그래서 삼성을 다시 봤다.

프레시안 : <환상>은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의 연장선상에 놓인 책이다. 개인적으로 <삼성을 생각한다>를 통해 자료화의 힘을 실감했다. 김용철 변호사는 자료를 그의 팩트로 삼았는데, 박종태 씨의 경우는 어땠을지 궁금하다. 회사의 압박이 일상으로 침투하는데, 그 경험을 증거화하기가 쉽지 않고 말로 전달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김순천 : 박종태 씨는 그런대로 백데이터가 많은 편이었다. 삼성과 싸우려면 정확한 자료를 모아두어야 한다는 선배의 충고에 충실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지만, 난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 중 중요한 방식이 '일상적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구술 자체가 역사를 기록하는 좋은 방법이다. 다른 식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분들은 구술의 부정확성을 비판하지만, 나로서는 사람이 가장 충격적으로 경험했던 어떤 지점을 생생히 기억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 경험에 대한 발화는 어쩌면 객관적인 사료보다 중요할 수 있다. 구술에서 종종 나타나는 일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착각은 내가 찾아서 교정·수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단점이 역사적 자료로서 구술의 중요성을 희석시키지는 않는다.

구술을 기록하려면 디테일하게 물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분이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떨 때는 인터뷰가 5시간씩 걸리기도 한다.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내용을 토대로 다시 상세 질문을 한다. 유명한 분이라면 자료가 많은데, 평범한 분들은 자료가 없으므로 이야기를 많이 듣고 그 이야기 속에서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상세 질문은 머릿속에서 만들어진다. 상황 설명 자체가
양파껍질 벗기는 것 같다. 오늘 한 이야기가 끝인 줄 알았는데, 다음에 다른 이야기가 또 있다. 박종태 씨의 경우 5월부터 10월까지 계속 인터뷰했다. 글 쓰는 과정에서 인터뷰를 또 했고, 초고 나왔을 때도 한 번 더 보충 인터뷰를 했다. 그렇게 작년 한 해를 다 보냈다. 원고 수정만 세 번 했다.
 

▲ <환상>의 김순천 작가. ⓒ프레시안(최형락)


탐욕과 모욕의 왕국

프레시안 :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에도 맨 앞의 삼성전자 노동자 인터뷰가 취재원이 노출될 위험 때문에 결국 누락된 채 빈 종이로 나갔다. 지금도 그 인터뷰를 공표할 수 없나.

김순천 : 공표하기 어렵다. 내가 그 취재원에 대해 말하면 그분에게 바로 피해가 간다.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삼성 내 화장실에 누군가 회사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을 끄적거렸는데, 필체를 추적해서 기어이 해고시켰다고 한다.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에서도 인터뷰한 그분에게 피해가 미칠까봐 가공해서 인터뷰를 정리했는데, 동료가 읽어 보고 "너인 줄 바로 알겠다"고 말했다더라. 그래서 내가 그 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개인 정보가 새어나갈 것 같다.

사실 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 회사 안에서 자유롭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정상적인 기업이다. 어떻게 비판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해고하거나 징계하나. 이런 분위기를 왜 만드나.

프레시안 : 자기 검열을 내재화하도록 하는 그 압박이 가장 무섭다.

김순천 : 삼성전자의 여직원 유산 문제가 충격적이다. 나한테 10명의 유산자 명단까지 다 있다. 하지만 책에는 집단 유산에 대해 거론했지 어느 한 개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중 한 분이 얼마 전 박종태 씨한테 전화해서 명예훼손죄로 고소한다고 했다더라. 그 여성이 박종태 씨와 인터뷰할 때 회사에서 그 내용을 알아낸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책에는 명예훼손죄로 걸릴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개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에서 어떻게 나올지 주시하고 있다. 직접 이 책을 명예훼손죄로 거는 건 하수일 것이다. 노회찬 전 의원도 '삼성 X 파일'에 들어 있는 검사 이름을 공개했지만, 검사 중 한 명이 고소했지 삼성이 직접 고발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삼성에서 직접 명예훼손으로 고소는 못하겠지만, 박종태 씨의 동료들을 압박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쪼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 분이 공포에 질려서 스스로 그랬을 수도 있고. 그러니 얼마나 내부 공포가 심한지 짐작이 간다. 자기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장에서 다들 겪은 일을 쓴 건데도 그랬다.

제조그룹을 비롯해 삼성전자 전체 현장에서 자살한 직원들도 여러 명 있었다. 삼성(삼성건강연구소)은 이런 죽음을 '빈번한 자살'이라고 불렀다. 기숙사에서 여직원이 자살을 하면 아침 출근 시간에 기숙사 옆을 지나가지 못하도록 직원들의 통행을 제한했다. 회사는 직원들의 자살 원인을 대부분 남자친구, 술, 가정 등 개인적인 문제로 처리했고, 직원이 자살했던 그 방은 다음 날이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52쪽)

프레시안 : 그런 식의 충성심을 과시하고 보상받으려 하는 노력이 몇 십 년 전에나, 혹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일어날 법한데, 현재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진행형이라는 게 충격적이다.

김순천 : 삼성이 세련되고 최첨단을 걷는 회사처럼 보이지만 가장 낡고 뒤떨어지는 문제들이 그 내부에 공존한다.

나는 삼성이라는 회사 자체를 싫어하지 않는다. 삼성이 잘되기를 바란다. 외국에 좋은 기업들이 많은데, 삼성이 그처럼 인간적인 기업으로 바뀌고 내부가 민주적으로 변했으면 좋겠다. 말도 자유롭게 하고 비판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으면 한다.
 

▲ <먼지 없는 방>(김성희 지음, 보리 펴냄). ⓒ보리

다만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이건희 일가만 삼성을 만들지 않았다. 다른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서 만들었고, 국민이 기여한 부분도 분명 있다. 자본금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정보통신 등 많은 핵심기술도 국민 세금으로 국가가 개발하여 삼성에 제공해왔고, 지금도 국가에서 만든 최첨단 과학기술을 삼성전자에 제공하고 있다. 삼성은 국가가 제공한 그 기술로 제품을 만들지만 그 이익은 대부분 사적으로 취한다. 심지어 제품을 팔 때조차 휴대폰 같은 경우는 국민들에게 해외가격보다 20~30퍼센트 더 비싸게 받는다. 재미있는 상황이다. 통신이나 교통 같은 간접 자본도 국가에서 다 제공해준다. 도로나 항공이 없으면 삼성이 어떻게 자기 물건을 해외와 지방으로 배달하나? 휴대전화 기지국 건설을 해주는 등 국가에서 기반을 만들어주니까 물건을 팔 수 있다.

삼성은 이미 국민의 기업이고, 사회적인 기업으로 봐야한다. 이런 것들을 생각한다면 경영자들은 사회적 책임을 크게 느껴야 한다. 삼성이 내 것이 아니고 국민과 사회의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마인드가 전혀 없다.

지금은 이건희 개인이 기업을 소유하고, 모든 부가 그에게 집중된다. 그 부를 통해서 법을 매수하고 국민을 매수하고 언론을 매수해서 체제를 공고하려고 하니 문제다. 아주 비이성적인 상황이다. 이 점이 삼성의 문제는 왜 국민들의 권리와 민주주의 문제일 수밖에 없는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지금 나에게 삼성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두 가지 있는데 쥐어짜기와 몰락이다. 삼성이 개인들을 쥐어짜서 이 정도의 성과를 내는데, 서로 나누고 협력한다면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 주면 좋겠다.

삼성 직원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삼성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내가' 취직 못할 것 같으니까. 하지만 나는 삼성의 현 시스템은 변화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쥐어짜서 경쟁시켜 이윤만 얻으려는 시스템은 얼마 못 가지 않겠나. 나는 이 책을 쓰면서 겉은 화려한데 내부는 무너지는 삼성의 모습을 보았다.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삼성이 변해야 한다. 직원들은 자신들이 잘릴까봐 이 체계를 유지하려고 하는데, 오히려 오래 살아남으려면 체계가 국민과 직원을 위한 시스템으로 변화돼야 한다. 그래야 삼성에서 잘리지 않고 오래 일할 수 있다. 가장 화려한 곳에서 몰락을 예감하는 건 비극이다.

이건희 회장도 변했으면 좋겠다. 이건희 회장이 최근 스웨덴 실버타운 필트라드를 방문했다는 기사를 봤다. 그런데 스웨덴에서 사회적으로 어떻게 노인들의 질 높은 삶이 이루어지는가를 보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실버타운을 국내에 들여와서 이익을 얻을지만을 궁리하는 것 같더라. 빌 게이츠 등 많은 기업가들이 개인 재산의 50퍼센트 이상을 사회에 기부한다는 서약(Giving Pledge)을 맺었다는데, 이건희 회장은 혼자 그 많은 재산을 가져서 뭐할 것인가. 개인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기업가들은 자신의 부가 자신만이 만든 게 아니라는 것을 깊게 성찰하고 있다.

"부의 특권을 지닌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를 해야 한다."

인도 위프로 테크놀로지 회장인 아짐 프렌짐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하면서 했던 말이다.

프레시안 :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잊을 수 없는 대목은 무엇인가.

김순천 : 인터뷰하다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다. 2008년 박종태 씨가 근무한 영상 디스플레이(VD)사업부의 실적 가운데 3000억 원이 사라졌다. 3000억 원이면 기업 몇 개를 세울 만한 큰돈이었다. 당시 한가족 협의위원이었던 박종태 씨가 3000억 원의 행방에 문제 제기했다. 단순한 회계상 실수인지 아니면 누가 회사 돈을 빼내갔는지 규명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발표하지 않은 그 해 12월 실적까지 합하면 5000억 원이나 되는 돈이었다. 그런데 회사는 규명 대신 다른 이유를 들어 박종태 씨를 협의위원에서 강제 면직시켰다. 회사 편인 상무조차도 "이거는 감사감이다"라고 했던 사안이었다. 회사를 감시할 노조가 없기 때문에 실적이 사라져도 그 실체를 정확히 밝힐 수가 없다. 삼성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직원들을 통제하고 감시하고 노조를 인정하지 않은 건 이런 불법적인 시스템을 유지하려고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정상적인 기업경영 시스템은 아닐 것이다.

회사를 감시할 노조가 없기 때문에 실적이 사라져도 그 실체를 정확히 밝힐 수가 없다. 박종태 씨가 아는 변호사는 '3000억 원은 그 자체로 비자금일 수 있다'고 했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삼성이 각 계열사에 '관리 담당'을 두어 비자금을 만든다고 썼다. 회사 돈을 밑으로부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쉽게 빼 낼 수도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건희 일가가 가져가는 그 불법적인 비자금은 열심히 일하는 사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었고 세금으로 국민들에게 돌려져야 할 몫이었다.

삼성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직원들을 통제하고 감시하고 노조를 인정하지 않은 건 이런 불법적인 시스템을 유지하려고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정상적인 기업경영 시스템은 아닐 것이다. 지금 CJ가 불법적인 비자금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데 삼성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삼성 직원들도 이 사실을 다 아는데 문제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침묵했다. 오직 박종태 씨만 문제 제기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분이 귀한 분이다. 박종태 씨 덕분에 이 정도나마 알려졌지,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는 삼성의 그 적나라한 모습을 몰랐을 것이다.
 

▲ <사람 냄새>(김수박 지음, 보리 펴냄). ⓒ보리

프레시안

: 물론 삼성 에버랜드를 중심으로 삼성노조(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가 생기긴 했지만, 삼성 내부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박종태 씨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수 있으면 좋겠다.

김순천 : 나는 삼성을 좋아한다. 변화된 삼성을 원한다. 박종태 씨도 삼성을 사랑한다. 사랑하니까 변화하길 원해서 이 책을 쓴 거다. 사람들은 우리더러 왜 삼성을 싫어하느냐고, 왜 망하게 하려 안달이냐고 묻는데 우리는 삼성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책을 썼다. 심지어 내가 삼성 관련 책을 쓴다니까, 어떤 모임에서 알게 된 삼성 임원의 아내가 사색이 되면서 나를 배척하더라. 국민들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삼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삼성을 너무 우상화시키면 안 될 것 같다.

대학생들은 삼성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존경하는 인물 1위가 이건희 회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삼성이 어떤 곳인지는 봐야 한다. 박종태 씨도 입사할 때 환희를 느꼈지만, 나올 때는 환멸을 느꼈다. 환희와 환멸의 이중성을 주는 곳이 삼성이다. 환희가 유지되도록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프레시안 : 이런 일을 일상적으로 당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안타깝고 속상한 한편, 그 위에 팀장, 부서장, 간부급 등 부서 내에서 약간 힘을 가진 관리자들도 이해가 안 된다. 부하 직원들을 24시간 감시하고 괴롭히며 산다는 건 대체 어떤 삶일까.

김순천 : 아까 삼성전자에서 알게 모르게 해고되는 사람이 많다고 했는데, 지금도 해고는 현재 진행형이다. 두어 달 전 명문대학을 나와서 10년 동안 연구직에서 일했던 사람이 해고될 위기에 처했다는 말을 들었다. 회사가 자신을 '희망퇴직 기피 대상자'로 분류해 놓았다고 했다. 직원들을 쫓아내려면 고과나 연봉평가에서 최하등급을 줘서, 스스로 능력 없는 사람으로 자괴감을 조성시킨 다음 알아서 나가게 하는 구조다. 그 사람도 최하등급인 '마'를 받았다. 나가라는 의미였다.

이 분이 박종태 씨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몇 년 전에도 반도체 연구파트에서 일하던 동료가 이런 문제로 자살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박종태 씨가 "너무 억울하면 법원에 호소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더니, 이 분이 "나는 노동 그런 것과 관계 맺고 싶지 않다"면서 "나는 돈을 많이 받기 때문에, 그렇게는 못 한다"고 말했다더라. 갖가지 어려움이 있는데 사람들이 버티는 건 삼성이 성과급을 많이 주기 때문이다. 임원일수록 성과급을 더 받는데, 그걸로 버티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생계만 되면 모욕을 받든 몸이 병들든 참고 버티면서 일한다.

성과급도 내밀하게 들여다보면 잔인한 면이 있다. 삼성전자는 대졸자여도 초봉은 그렇게 높지 않다. 삼성전자가 매출은 1위인데, 초봉은 201위였다. 조금 놀랐다. 그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건 성과급 때문이다.

사업부 간에 극심한 경쟁을 시켜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배분한다. 성과급을 50퍼센트 받는 사업부가 있는 반면 4퍼센트밖에 못 받거나 전혀 못 받는 사업부도 있다. 사업부 간 임금격차가 심하게 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성과급을 많이 받는 사업부는 어려움이 있어도 만족한다. 반면 성과급이 적거나 아예 없는 사업부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느낀다. 최지성 전 삼성전자 사장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할 정도다.

대신 상무, 전무 이상의 관리자들에게는 특혜를 준다. 차가 나오고 성과급도 일반 시원들과 엄청나게 차이가 많이 난다.
이사 같은 경우는 100억까지 받는다더라. 물질적 보상으로 차이를 두고 서열화 시켜서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거다.

더 많은 르포문학을 기다리며

프레시안 : 최근 1, 2년 동안 잇따라 삼성 관련 책들이 나왔다. 삼성 반도체 공장의 직업병을 다룬 만화책 <먼지 없는 방>(김성희 지음, 보리 펴냄)과 <사람 냄새>(김수박 지음, 보리 펴냄)과 함께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희정 지음, 아카이브 펴냄), <삼성반도체와 백혈병>(박일환·반올림 지음, 삶창 펴냄), <노동자의 변호사들>(오준호·민주노총 법률원·최규석 지음, 미지북스 펴냄)이 나왔다. 쌍용자동차나 한진중공업의 투쟁 기록을 남긴 책들도 속속들이 출간됐다. 예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기사로 보는 게 익숙했는데, 요즘은 단행본으로 나온다. 직접 글쓰기 작업하는 입장에서 언론 매체 보도 이외에 물질적인 형태로 남는 기록문학의 의의를 말해줄 수 있나.
 

▲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희정 지음, 아카이브 펴냄). ⓒ아카이브

김순천 : 기록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없다. 우리 삶의 이야기는 기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내 마음, 내 삶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면 공명 작용을 일으켜 다른 이야기도 만들어진다. 그게 인간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하나의 기록이 영화, 다큐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기록 작업을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

예전에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구술사 연구소에 간 적이 있다. 1년에 2500여 명 이상의 학자들이 구술자료 수집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 작업으로 1000권 이상의 책과 수백 편의 논문들이 생산된다. 주제는 폭넓다. '아이돌의 삶'에 대해 기록 작업을 하는 것도 봤다.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방식과 비슷하게 아이돌도 자본 산업의 희생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9.11 테러로 고통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기록됐다.

온갖 내용을 기록해두면 학자들이나 일반 사람들이 찾아와서 2차, 3차의 결과물로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출발하지 않는 것이다. 기록 작업은 우리 삶과 생각을 풍요롭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나는 삼성에 대해 아주 섬세하게 기록했다. 박종태 씨가 한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환상>이 삼성전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기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삼성의 실상이 그렇지 않다는 '반대 기록 작업'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요즘은 기록 작업물을 출간하는 현상이 보편화된 건가.

김순천 : 2005년 <부서진 미래>(삶창 펴냄)를 책으로 내려니까 어떤 시인이 막았다. 전화로 두 시간 가까이 언쟁하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부서진 미래>가 비정규직 이야기를 다룬 첫 번째 책이었는데, 나는 내용이 풍부한가 여부를 떠나서 반드시 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밀어붙였다.

당시에는 기록문학에 대한 생각이 일천했다. 지금은 르포가 필요하다는 인식들이 저변에 확대됐다. 최근 홍세화 선생님도 격월간지 <말과 활>을 만들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듣는 르포 작업을 중심에 두겠다고 공언했다. 김영사 등 여러
출판사에서도 르포 책을 내자고 찾아왔다. 르포를 중심에 두고 사고하는 곳이 많이 생겼다.

프레시안 : 그게 지난 5년 이명박 정권의 성과일까? (웃음)

김순천 : 흔히들 사회 문제를 기록하는 르포문학이 많이 생산되는 시대는 불행하다고 한다. 내가 쓴 책 중에서는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동녘 펴냄)이 제법 나갔는데, 그게 가슴이 아프더라. 그만큼 10대의 삶이 힘들다는 것이니까. 책이 많이 팔려도 고통스럽고, 안 팔려도 난감하다.

하지만 일본에 갔을 때 르포 문학을 확장해서 바라보게 됐다. 일본에는 일상적 기록으로 르포 문학이 존재하더라. 이제 한국에서도 르포 문학에 대한 저변이 확장됐으므로, 르포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한 한국 사회를 증거하는 내용만 나올 것 같진 않다.


프레시안 : 최근 구상 중인 작품이 있나?

김순천 : 책을 낼 계획은 잠시 보류하고 있다. 10년 동안 르포작업을 하면서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들여다봤다면, 앞으로는 나를 통해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까 생각 중이다. 생계 차원에서 어떻게 하면 재생산 기반을 만들 수 있을지도 고민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2010년 8월 '삼성전자 박 대리는 왜 정신병원에 가야 했나'를 시작으로 1년 여 동안 꾸준히 삼성전자 해고노동자 박종태와 삼성노조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 시리즈로 2011년 1월 25일 제9회 언론인권상 본상을 수상한 바 있다.

(1)☞바로가기 "삼성전자 박 대리는 왜 정신병원에 가야 했나"
(2)☞바로가기 "정신병원 입원했던 삼성 박 대리, 복귀해도 여전히 '왕따'"
(3)☞바로가기 "왜 삼성에선 출장 사망도, 여사원 과로 유산도 본인 탓인가?"
(4)☞바로가기 "삼성전자에 노조를!"…朴대리 두 번째 글도 삭제, 징계 통보"
(5)☞바로가기 "누가 삼성전자 朴대리에게 유서를 쓰게 만들었나?"
(6)☞바로가기 "삼성에 노조 만들자는 글이 영업 기밀인가?"
(7)☞바로가기 "삼성전자, '노조 설립' 호소한 朴대리 전격 '해고'"
(8)☞바로가기 "'삼성전자에 노조를!'…해고된 朴대리, 재심 청구"
(9)☞바로가기 "'삼성전자에 노조를!'…박종태 대리, 해고 확정"
(10)☞바로가기 "'삼성에 노조를!'…해고된 朴대리 딸 "아빠 피아노 끊을게요""
(11)☞바로가기 "사람이 죽어나가면 모를까 삼성에서 여사원 유산쯤이야…"
(12)☞바로가기 "삼성전자 해고자 박종태 씨와 함께할 사람, 모여라!"
(13)☞바로가기 "박종태 대리 해고, 정말 '삼성 노조' 추진과 무관한가?"
(14)☞바로가기 ""저 사람이 朴 대리다"…두유 건네며 격려하는 삼성 직원"
(15)☞바로가기 "유서 썼던 삼성 朴대리 "나는 왜 살아서 싸우기로 했나""
(16)☞바로가기 "무조건 해고…이러고도 삼성이 초일류기업입니까?"
(17)☞바로가기 "삼성 '왕따 직원' 박종태가 수세미 들고 나타난 까닭?"
(18)☞바로가기 "삼성 해고자 박종태, 산재 불승인…"삼성노조와 함께 싸울 것""

 

/김용언 기자,김윤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