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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20년,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김동현 기자 abc@vop.co.kr
발행 2020-05-15 07:03:56
수정 2020-05-15 08: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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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가 창간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인터넷신문의 창간은 사이트 오픈을 의미합니다. 베타버전을 포함하면 사이트 오픈 시기가 정확하게 언제라고 규정하기 힘듭니다. 민중의소리는 5월 15일을 공식적인 사이트 오픈 시기로 규정하고 이후 이 날을 창간기념일로 삼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중의소리 창간 20주년 축하 영상을 보내왔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자세하게 민중의소리의 역사를 꼼꼼히 전해주었습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사건들을 비롯해 20년 세월동안 걸어왔던 민중의소리의 역사를 전해볼까 합니다.

“민중의소리가 관심을 기울여 준 덕분에 정의롭게 살아온 분들의 삶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한결같이 손 잡아 준 덕분에 우리 사회의 소외되었던 분들이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민중의소리의 창간정신이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민중의소리는 ‘민중이 울면 눈물을 흘리고, 민중이 웃으면 함께 기뻐할 줄 아는 언론’을 지향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미군 장갑차에 숨진 심미선 신효순 두 중학생의 영정
미군 장갑차에 숨진 심미선 신효순 두 중학생의 영정ⓒ민중의소리

2000년 창간한 민중의소리는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중학생 미선이 효순이 사건을 끈질기게 보도하며 그 해 제14회 민주언론상 대상과 다음해 제1회 언론인권상 본상을 수상했습니다.

미선이효순이 사건은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군(현재는 양주시)에서 운행중이던 주한미군 육군 장갑차가 길을 걸어가던 조양중학교 신효순 심미선 두 학생을 깔고 지나가 두 학생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사건이 발생했던 당시는 2002년 월드컵 열기가 한창이었고 기존 언론에서도 몇 개 매체를 빼면 이 사건을 크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민중의소리는 이 사건이 발생한 시점부터 미8군의 태도, 미군 군사재판과정을 끈질기게 보도했습니다. 11월 미군 군사법정에서 열린 군사재판에서 장갑차를 운전했던 두 병사에게 무죄판결을 내립니다. 두 병사는 이후 미국으로 출국해 버립니다.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요구가 높아지고 미군이 재판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한국 법정에서 재판을 할 수 없었던 한미SOFA를 개정하라는 요구가 높아집니다. 이 두 가지를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촛불집회라는 새로운 시위형식이 등장합니다.

2002년 촛불집회
2002년 촛불집회ⓒ민중의소리

일련의 과정에서 민중의소리는 ‘신’ 형식의 현장속보, 인터넷 동영상, 인터넷 생중계 등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민중의소리는 ‘현장의 살아있는 뉴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003년 파병반대 운동, 2004년 노무현 탄핵 반대 촛불 등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현장성이 강한 언론으로 성장합니다.

2005년 전용철 홍덕표 농민 사망사건 보도를 통해 민중의소리는 경찰진압의 폭력성을 고발합니다. 이 사건은 2005년 11월 여의도에서 열린 농민대회에서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당시 경찰은 특수기동대를 동원해 방패로 농민들을 추적하며 폭행하는 방식으로 시위를 진압합니다. 이 과정에서 농민 수백명이 다치고 수십명이 병원으로 옮겨집니다. 그리고 전용철 홍덕표 두 농민이 집으로 돌아갔다가 사망합니다. 경찰은 두 농민의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 경찰 진압에 있지 않다는 입장을 내놓습니다.

민중의소리는 당시 현장을 촬영한 약 4천장의 사진을 일일이 뒤져 전용철 농민이 쓰러져 다른 농민들에 의해 옮겨지는 장면을 찾아냅니다. 결국 경찰은 사실상 농민 사망의 책임을 인정하며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단장을 직위해제 하고, 경찰청장은 사표를 냅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경찰청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대국민 사과문을 직접 발표합니다. 이 보도의 공로가 인정돼 2005년 제7회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받게 됩니다.

당시 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문은 공권력 사용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는 연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찰 진압의 문제점을 시인하고 대국민 사과에 이르렀던 이 시기 청와대 민정수석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입니다.

김철수 민중의소리 기자가 촬영한 농민대회 당시 전용철 농민의 모습. 이 사진으로 전용철 농민의 사안을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 된다.
김철수 민중의소리 기자가 촬영한 농민대회 당시 전용철 농민의 모습. 이 사진으로 전용철 농민의 사안을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 된다.ⓒ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이후에도 민중의소리의 현장성 강한 보도는 이어집니다. 2006년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였던 경기도 평택 대추리 일대에서 벌어진 주민들과 시민들의 투쟁, 홍콩에서 벌어진 세계적인 WTO 반대시위 현장, 2007년 한미FTA 반대 시위 등에서 민중의소리의 발빠른 보도가 빛을 발합니다.

2009년 쌍용차 파업취재는 민중의소리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민중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민중의소리 정신이 제대로 드러나는 취재였습니다.

쌍용차 파업은 이명박 정부들어 극심해졌던 노동탄압의 대표적 사건입니다. 대규모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공장을 점거하고 일명 ‘옥쇄파업’에 들어간 노동자들에게 정부는 경찰력을 대거 투입, 공장을 에워싸고 고립시키는 초강경 대응을 합니다. 경찰헬기를 동원해 최루액을 뿌리고 야간에도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큰 소리로 방송을 하며 압박합니다. 밖에서는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자는 물론 의료진마저 진입이 허용되지 않았던 상황이 반복됩니다.

민중의소리는 2명의 기자를 공장으로 진입시켜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특히 진압양상과 관련된 경찰의 주장이 ‘허위’임을 동영상과 사진 등을 통해 밝혀냅니다. 두 기자는 경찰이 공장으로 진입해 진압하기까지 약 2주간 기자들은 노동자들과 숙식을 함께 하며 취재하고 보도합니다. 두 기자는 그 해 제11회 민주시민언론상 본상을 수상합니다.

서세진 감독은 두 기자가 촬영한 수천시간의 영상을 기반으로 쌍용차 파업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저 달이 차기 전에’를 내놓았고 이 영화로 2009년 전주국제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합니다.

 

노동자와 농민, 시민의 곁을 지킨다는 민중의소리 보도정신은 최근까지도 이어집니다. 2013년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연대의 발언이 이어졌던 철도민영화 반대 파업을 비롯해 문재인 대통령도 언급했던 2016년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보도가 대표적입니다.

백남기 농민 사건은 2016년 농민들이 주축이 됐던 2차 민중총궐기 현장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백남기 농민이 맞아 사망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민중의소리는 당시 현장에서 처음으로 이 상황을 속보로 전했고, 이후 사망원인이 논란이 벌어지자 현장의 상황을 담은 영상을 공개해 물대포에 의해 사망했음을 밝힙니다. 또한 수사와 재판과정을 끈질기게 보도해 경찰의 ‘상황 속보’를 입수 공개하며 경찰의 지휘라인의 책임을 밝혀냅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터졌던 당시 민중의소리는 취재역량의 절반가량을 진도와 안산 현장에 투입합니다. 이 사건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무게를 생각하면 당시의 결정은 민중의소리 입장에선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후에도 민중의소리는 세월호 참사 해결을 위한 보도에 집중합니다. 2014년에만 관련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4편 내놓았습니다.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광화문에서 단식하던 8월, 모든 기자들이 현장을 방문해 간담회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세월호참사 인터랙티브 콘텐츠
세월호참사 인터랙티브 콘텐츠ⓒ민중의소리

2014.5.8 추모콘텐츠:세월호, 그리고 너희들을 잊지 않을게
2014.5.25 추모시 모음:잊지 않을게
2014.7.3 발굴보도:그들이 만든 참사, 녹취파일이 밝혀준 세월호 참사의 진실
2014.7.24 사진모음:잊혀지지 않을 항구 팽목항 (100일간의 기록)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민중의소리는 소셜미디어 적응과 새로운 콘텐츠 스타일에서 두각을 나타냅니다. 일찌감치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한 콘텐츠 유통에 뛰어든 민중의소리는 40만에 달하는 페이스북팬, 20만에 이르는 트위터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한국의 언론매체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합니다.

2012년 12월 뉴욕타임스가 내놓은 ‘스노우폴’이라는 인터랙티브 콘텐츠가 전세계 언론인들을 흥분 시킨 뒤로 한국 언론들도 ‘새로운 콘텐츠 스타일’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콘텐츠 혁신 붐이 일어납니다. 민중의소리 역시 콘텐츠 혁신에 뛰어들었고, 2013년 ‘내란’이라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시작으로 카드뉴스, 타임라인뉴스, 대화형뉴스 등을 선보였습니다.

2015년 이후 유튜브의 급부상과 함께 민중의소리는 유튜브 집중 전략을 선택합니다. ‘모든 기자가 촬영한다’는 슬로건으로 현장에서 벌어지는 여러 장면을 영상전문 기자가 아닌, 취재기자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편집 전문 기자가 편집해 내보내는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생생하고 빠른 영상 스타일이 구축되면서 민중의소리 유튜브 구독자는 순식간에 늘어났고 현재는 40만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2016년 촛불에서 제대로 그 힘을 발휘합니다. 광화문촛불이 대규모로 시작되던 시점, 현장취재기자들은 물론 편집기자, 아나운서들까지 스마트폰을 들고 현장으로 갑니다. 하루에 40여개의 영상을 내놓았고 그 영상들의 조회수 합은 2천만을 넘었습니다.

이후 민중의소리는 ‘서브 채널 전략’을 선택합니다. 연예전문 채널 Vstar를 시작으로 정치시사 해설 채널 ‘곰곰이’, 방송장비 해설 채널 ‘현PD’, 라이브방송 ‘정혜림의 발칙한뉴스’ 등을 선보입니다. 특히 Vstar는 현재 22만, 곰곰이는 12만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민중의소리의 힘은 독자로부터 나옵니다. 민중의소리는 창간 이후 지금까지 전체 수익의 50% 이상을 후원자들의 후원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명박근혜 10년의 세월동안 힘겨울 때에도 독자후원이라는 든든한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이 힘이 없다면 민중의소리는 더 이상 민중의소리다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제 20년을 왔습니다. 앞으로도 민중이 눈물을 흘리는 현장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고 민중이 웃는 곳에서 함께 기뻐하는 민중의 든든한 벗으로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독자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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