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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보고 쌍용차 국유화하자"

[인터뷰]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다른 한편으로 코로나19로 세계경기가 침체된 가운데 쌍용차의 새 주인이 되겠다는 투자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2009년 정리해고로 한국사회에 큰 상흔을 남긴 쌍용차가 다시 한 번 한국사회에 큰 아픔을 안길 수도 있는 상황이다.

 

왜 또 쌍용차일까. 위기의 원인은 어디에 있고, 위기를 돌파할 방안은 무엇일까. 지난 7일 서울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11년 만에 쌍용차에 복직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쌍용차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봐온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을 만났다.

 

이들은 "단기 이익과 기술 이전을 목적으로 한 경영이 쌍용차의 역량을 악화시켜 왔다"며 "이번에도 외국투자자본에 넘기는 방식으로 경영 위기에 대응한다면 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오 위원은 "수 차례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쌍용차에는 내수시장의 탄탄한 충성 고객과 자체 브랜드 파워가 있다"며 "쌍용차에는 여전히 생존 역량이 있다"고 진단했다. 한 위원장도 "경영의 방향을 쌍용차의 자체 역량 강화에 둔다면 성장 잠재력은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산업은행의 적극적 역할은 물론 국유화, 지방정부의 지분 투자 등을 쌍용차 위기 대응책으로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위원은 "자동차 산업 분야에서 공기업이나 국유기업을 갖고 있으면 한국 정부가 산업정책이나 고용정책 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며 "프랑스 정부나 독일 니더작센주 정부도 각각 르노삼성과 폭스바겐의 지분을 갖고 산업정책에 활용한다"고 전했다.

 

오 위원은 "쌍용차를 국유 기업으로 갖고 있으면, 한국지엠이나 르노삼성이 '돈을 주지 않으면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할 때 '그럼 우리는 국유화된 쌍용차로 공장을 운영할 테니 나가라'고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외국투자자본에 대한 한국 정부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며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와 협력해 자동차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고 일자리를 지킬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한 전 위원장은 "여러 주체가 모여 쌍용차의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외국투자자본으로의 매각만이 아닌 다양한 방식을 논의하고 이를 공론화하는 작업을 빨리 시작해야 한다"며 "논의와 대응이 늦으면 늦을수록 쌍용차의 위기 극복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다음은 한 전 위원장, 오 위원과의 인터뷰 전문.

 

▲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오른쪽)과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왼쪽)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11년 만에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복직이 마무리됐다. 지난 7월부터는 현장 배치도 됐다고 들었다. 한 전 위원장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마음은 어땠나?

 

한상균 : 복직자들은 대부분 사고대책반이다. 장기사고자가 나오면 그 공정에 투입되는 역할이다. 저는 지금 티볼리와 코란도C를 만드는 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복직하니 부정당했던 삶이 다시 이어졌다는 기분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럴 거다. 복직은 그 자체로 되게 기쁜 일이다. 또, 일을 한다는 게 남다르더라. 저도 이제 적지 않은 나이에 '빡세게' 컨베이어벨트에서 일하다 보니 땀도 어마어마하게 나오는데 별로 싫지 않았다.

 

프레시안 :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를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 오 위원도 마음이 남달랐을 것 같다.

 

오민규 : 끝까지 현장에 함께 있지는 못했지만, 2009년 파업 막바지 때 생각이 많이 났다. 자동차공장에서는 도장공장 가동이 중단되면 안 된다. 한 번 멈추면 다시 살리는데 몇 달 걸린다. 당시 정부와 회사가 전기를 끊자, 파업 중인 노동자들이 비상발전기로 도장공장을 돌리면서 버텼다. 또 파업 깨려고 들어올 때 (경찰과 구사대가) 컨베이어벨트나 기계를 깨부수니까 노동자들이 '기계 왜 부수냐'고 항의했다. 어쨌건 다시 일해야 할 공장이니까.

 

과연 공장을 지키려고 했던 사람이 누군가. 그때도 이야기해보면 공장에서 '힘세고 튼튼한 차 만든다.' 이게 노동자들 희망사항이었다. 그걸 드디어 이루게 됐구나 하는 감회가 있었다.

 

한상균 : 오 위원의 감회가 상당히 깊었다(웃음). 파업 끝나고 감옥에서 회사 소식지를 보는데 거기에도 도장공장 이야기가 나왔다. 회사도 "노동자들이 도장공장을 지킨 게 쌍용차 희망의 불씨였다"고 했다.

 

프레시안 : 복직했다고 마냥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언론에는 쌍용차가 위기라는 보도가 연일 나온다. 지역 사회나 현장의 분위기는 어떤가?

 

한상균 : 쌍용차가 11년 동안 분규 없이 조용한 사업장이었다. 티볼리라는 차를 잘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회사가 또 위기라고 하니까 지역사회에서는 '외국투자자본에 넘어간 여파인 거냐, 또 외국투자자본이 들어온다고 살릴 수 있는 거냐' 등등 해서 많은 우려가 있다. 쌍용차가 주 거래 상대인 협력사들은 불안에 떨고 있고, 협력사 노동자들도 이 문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회사도 소식지를 낸다. 그런데 '회사만 믿으라'며 침묵을 강요한다. 그러려면 회사가 협력사를 포함해 쌍용차의 모든 구성원에게 분명한 비전과 계획을 밝혀야 하는데 그런 과정은 없다. 사실 쌍용차 회생을 위해서는 사회적 동의를 얻고 정부 지원을 받는 게 불가피하다. 그런 일은 비공식적으로 수면 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 지금처럼 회사가 깜깜이로 일을 진행하면 좋은 논의가 생길 수 없다.

 

"외국투자자본 매각으로는 쌍용차 제대로 살릴 수 없다"

 

프레시안 : 본격적으로 쌍용차 회생 방안을 이야기하기 위해 위기의 원인을 먼저 짚어보면 좋겠다. 쌍용차 경영이 악화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오민규 : 8, 9년 전에 <프레시안>에 '주인 없을 때만 성장한 이상한 기업의 비결'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때 경총에서 책자가 나왔다. 자동차회사의 단기 순이익을 연도별로 본건데 쌍용차 이슈가 포함되어 있었다. 쌍용차가 신진자동차에서 출발했다. 그 뒤 쌍용그룹에 있을 때 한 번 부도나고, 대우그룹에 있을 때 한 번 부도났다. 그 사이에 법정관리, 은행관리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쌍용차는 워크아웃하고 법정관리나 은행관리에 들어가면 이익이 나고 손실이 준다. 그러다 주인만 생기면 경영이 악화된다. 조흥은행이 관리할 때 이익 내다가 상하이차에 인수되고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2009년 법정관리 때 회복되다가 마힌드라가 잡고 나니 실적이 또 떨어졌다. (관련 기사 : 주인 없을 때만 성장한 '이상한' 기업의 비결)

 

한상균 : 왜 그랬을까를 잘 파악해야 한다. 상하이차와 마힌드라가 쌍용차를 인수했을 때 전략적 목표가 쌍용차의 발전이 아니었다. 자기들의 이익이었다. 쌍용차는 거기에 이용당했다.

 

오민규 : 쌍용차를 유지하고 살려온 건 상하이차나 마힌드라 같은 주인이나 경영진이 아니고 거의 노동자들이다. 2014년에 고등법원에서 쌍용차 정리해고 재판 딱 한 번 이겼다. 그때 법원 판결문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이 회사는 주인이 몇 번 바뀌는데도 그 과정에서 판매량이 견고하게 유지된다. 회사 자체 역량이 있는 거고 노동자들 역량이 있는 거다. 경영난을 이유로 노동자들이 잘못했다고 책임을 묻는 건 과도하다.' 그러면서 정리해고는 부당하다고 판결 내렸다.

 

쌍용차 판매량 중 내수 비율이 80~90%다. 내수시장에 쌍용차에 대한 충성도 높은 고객이 있다. 사람들이 쌍용차 살 때 마힌드라 기술이 들어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쌍용차 브랜드를 본다. 수출시장에서도 그렇다. 마힌드라로 뚫는 게 아니라 쌍용차 브랜드로 뚫는다.

 

마힌드라가 들어와서 쌍용차에 해준 게 거의 없다. 오히려 수출시장을 잃기도 했다. 내수시장에서도 판매망 개선, 정비망 개선, 서비스망 개선 이런 걸 전부 쌍용차가 자체적으로 해왔다.

 

마힌드라가 있을 때 딱 한 번, 2016년에 영업이익이 났다. 그때 티볼리 플랫폼을 500억 원 정도 라이선스 비용을 받고 마힌드라에 팔았다. 이익이 났다고 하면 좋은 일 같지만, 사실 플랫폼을 헐값에 넘긴 거다. 티볼리 플랫폼은 해마다 300~400억 원 정도의 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

 

한국지엠(GM)이 지난해에 차량 40만 대를 팔면서 지엠 본사에 3000억 원 넘는 로열티를 냈다. 마힌드라가 쌍용차 티볼리 플랫폼으로 만든 '마힌드라 XUV300'이란 차가 작년에 인도에서만 4만 대 이상 팔렸다. 그러니 티볼리 플랫폼은 단순 계산으로도 연간 로열티 300억 원은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앞으로 몇 년이든 티볼리 플랫폼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권리를 500억 원 받고 한 번에 팔아버렸다. 주인이 생기면 이런 식으로 계속 뭔가를 빼간다.

 

한상균 :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 모델을 다른 자동차 회사에 이전하면서 수출 문제를 다룬 계약이 부재한 경우는 없다. 쌍용차가 마힌드라에 티볼리 플랫폼을 팔면, '쌍용차가 티볼리를 파는 국가에는 마힌드라가 생산한 티볼리 플랫폼 차량은 수출하지 않는다'는 계약을 맺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마힌드라와 쌍용차 사이에는 이런 계약이 없는 걸로 안다. 마힌드라가 자사의 티볼리 플랫폼 차량인 XUV300을 들고 쌍용차가 티볼리를 수출하고 있는 시장에 진출하는 기막힌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거다.

 

프레시안 : 상하이차, 마힌드라 등 그간 쌍용차 대주주들이 회사의 이익이나 기술을 빼가는 데 중점을 뒀고, 그 같은 경영방식이 쌍용차에 위기를 불러왔다는 주장인 것 같다.

 

한상균 : 쌍용차 기술을 빼 가면 쌍용차의 능력이 약해지는거냐? 그렇지는 않다. 쌍용차는 독자 개발 능력이 있는 회사다.

 

제가 감옥을 나와서 제일 먼저 엔지니어들을 만났다. '쌍용차를 어떻게 진단하냐. 위기를 겪는 이유가 뭐냐.' 많이 묻고 다녔다. 엔지니어들이 지금 경영방식이 쌍용차의 강점을 강화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좋은 모델 디자인을 올리면 이상하게 최고결정자들이 틀어버린다는 거다. 그래서 창의력을 발휘할 동기가 떨어진다는 거다.

 

'그럼 여전히 쌍용차가 독자 브랜드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냐'고 물었다. 여전히 가능하다고 한다. '지금보다 훨씬 잘 만들 수 있다. 우리에게는 다른 자동차회사에 견줄만한 잠재력이 있다'고 한다. 지금 자동차 부품은 부품업체가 만든다. 자동차 회사의 역할은 좋은 부품을 조화하는 거다. 이런 걸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여전히 쌍용차에는 있다고 하더라.

 

엔지니어들과 이야기하면서 해외 자본이 이익을 가져가는 방식이 아니라, 쌍용차의 자체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경영을 바꾸면 쌍용차는 살아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오민규 : 이런 게 쌍용차가 갖고 있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다. 이런 걸로 지금까지 쌍용차가 살아온 거다.

프레시안 : 그런데 썅용차와 관련해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이야기를 보면 쌍용차를 또 다른 외국투자자본에 넘기는 방식으로 갈 가능성이 큰 것 같다.

 

한상균 : 산업은행이나 산업자원부나 마찬가지 입장이다. 곧 죽게 생겼는데 이것저것 따질 게 있느냐. 외국투자자본에 넘기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쌍용차가 지금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산업정책 차원에서 제대로 검토해 재도약의 기회로 삼을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게 정부 차원의 자동차 산업 발전 전략에도 도움이 될 거다.

 

프레시안 : 외국투자자본 입장에서 여전히 쌍용차에 매력이 있나?

 

오민규 : 쌍용차 매각 이야기가 나오면 중국 기업이 많이 거론된다. 이제 더는 기술이 목적이 아니다. 쌍용차 기술은 빼먹을 대로 다 빼먹었다. 다른 목적이 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성장하고 있는 자동차시장이 딱 두 개가 있다. 첫째가 한국시장이다. 6월에 전년 대비 40% 성장했다. 다른 나라는 보통 70~80% 마이너스 성장을 했는데 한국만 초고속 성장을 했다. 두 번째는 전기차시장이다. 팬데믹을 심하게 겪은 중국을 빼면 전기차는 전년 대비 더 많이 팔렸다. 이 두 가지가 겹친 곳이 한국 전기차시장이다. 세계에서 제일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작년에 4만 대 팔았으면 올해는 6만 대, 내년에는 10만 대 팔리는 식이다. 매년 50%씩 성장한다.

 

사실 중국 기업은 한국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고 싶은 거다. 그런데 중국 기업에 큰 약점이 있다. 상하이차 먹튀 문제 등등 해서 한국 국민 정서가 안 좋다. 중국 기업 입장에서는 이 기회에 쌍용차를 매수하면 한국 전기차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또, 한국에서 전기차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 엄청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지금 세계에서 전기차 보조금 제일 많이 주는 곳이 한국이다.

 

쌍용차를 또 그렇게 이용만 당하게 할 거냐는 거다. 이번에 중국 기업에 쌍용차를 팔면 정말 남은 역량 다 소진시키고 저승사자에게 맡기는 꼴이 된다. 다른 계획을 세워야 한다.

 

▲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쌍용차 국유화하면 국가 산업정책의 폭 넓어진다"

 

프레시안 : 어떤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오민규 : 정부가 산업정책을 펴는데 있어서 특정 분야에 국유기업이나 공기업 하나 갖고 있는 게 나쁘지 않다. 한국에서 자동차 산업정책을 하려면 나머지는 모두 외국투자기업이니 현대기아차와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현대기아차가 원하는 게 자꾸 정부 산업정책으로 포장돼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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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게 수소차다. 장기적으로 보면 수소차를 생산해야 한다. 그런데 단기적인 산업정책이 수소차에 올인하는 식으로 나온다. 현대기아차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거다. 이런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자동차 산업에서 자기 정책을 펼 수 있는 기업 하나 가지고 있는 게 나쁘지 않다.

 

한상균 : 중국에서 공산당이 자동차회사 대주주인데 자동차회사만 수십 개다. 독점기업의 폐해를 아는 거다. 한국도 특정 자동차회사가 독점하는 시장이 되면 국민이 큰 부담을 떠안게 된다. 자동차산업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될 거다. 이런 건 정부가 자동차 산업 전반을 고민할 때 쌍용차, 르노삼성, 한국지엠을 엮어서 한번 들여다볼 문제다.

 

프레시안 : 실제로 쌍용차뿐 아니라 한국지엠, 르노삼성까지 자동차 마이너3사의 경영상황이 다 안 좋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오민규 : 한국지엠도 계속 문제가 생기고 있고, 르노삼성도 연말 연초 정도에 본사에서 차량 배정을 안 해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 외국투자자본에 쌍용차를 떠맡긴 후 나간다고 하면 다시 돈 줘서 잡을 건지, 아니면 진짜 10년, 20년을 내다보고 전혀 다른 산업정책을 설계할 건지 산업은행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상주의자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지만, 제일 좋은 그림은 한국지엠, 르노삼성, 쌍용차를 묶는 거라고 생각한다. 세 회사가 주력차종이 다 다르다. 쌍용차는 중대형, 한국지엠은 소형, 르노삼성은 세단이다. 묶으면 시너지가 있다. 지금은 SUV가 대세지만 7, 8년 전에는 소형차가 대세였다. 글로벌 트렌드에 따라서 어느 공장이 더 잘 돌 때 어느 공장은 덜 돌겠지만, 묶으면 큰 위기는 겪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접근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쌍용차를 국유화하면 르노나 지엠이 또 '돈 줘. 아니면 폐쇄할게' 할 때 '그럼 나가라. 쌍용차에 자체 브랜드가 있으니, 국유화된 쌍용차로 몰아넣겠다.' 이럴 수 있다. 그러면 외국투자자본에 대해 강한 협상력이 생긴다. 돈 주고 특혜 주지 않아도 된다. 과거의 잘못된 악습을 끊고 새로운 산업정책을 시도할 수 있다.

 

프레시안 : 국가가 소유한 자동차기업이 있으면 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오민규 : 대부분의 자동차회사가 코로나로 공장 안 돌릴 때 마스크 만들고 인공호흡기 만들었다. 그런 일도 할 수 있을 거다.

 

또 공공적 관점에서 필요한 차량들이 있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음압시설 갖춘 구급차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포함해 외부 공기를 여과해서 안으로 들여보내는 '헬스 비히클(Health Vehicle)'이라는 차량도 개발 중이다. 국영 자동차기업이 있으면 질병관리본부와 협업해서 이런 종류의, 세상에 쓸모 있는 차를 만들 수 있다.

 

한상균 : 쌍용차는 쓸모 있는 차, 안전한 차를 모토로 해야 한다. 단순히 차량충돌에서 안전한 게 아니라 삶의 안전성을 담보한다는 의미에서 안전한 차를 비전으로 봐야 한다. 해외에 매각되면서 작지만 강한 회사, 정통 SUV의 강자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시간들이 뼈아프다.

 

프레시안 : 자동차회사 국유화와 관련해 해외에 비슷한 사례가 있나.

 

오민규 : 르노자동차 지분 15%를 프랑스 정부가 갖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최대 주주다. 폭스바겐 20% 지분을 독일 니더작센주 정부가 갖고 있다. 두 기업이 글로벌 기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프랑스기업, 독일기업이다. 그래서 정리해고나 공장폐쇄한다고 할 때 정부나 주 정부가 제동을 건다.

 

코로나19 이후에 프랑스 정부가 르노에 6조 원가량을 빌려주면서 '공장폐쇄 안 된다. 해고 안 된다'고 조건을 걸었다. '보조금 줄 테니 전기차 만들어라'고도 했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산업정책과 일자리정책을 편다.

 

한상균 : 독일의 니더작센주 정부처럼 지방 정부가 쌍용차 문제에서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오민규 : 경기도 평택 인근에 전기차 부품업체 인프라를 만드는 건 평택시도, 경기도도 욕심내는 사업이다.

 

지금 정부가 누구든 가져가서 써도 된다고 만들어놓은 준중형 전기차 공용플랫폼이 있다. 정부가 한국 전기차 부품업체와 손잡고 개발했다. 이 플랫폼으로 자동차를 만들면 한국 전기차 부품업체가 참여하게 된다. 이러면 한국의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키울 수 있다. 그런데 이 플랫폼이 아무데서도 쓰이지 않고 있다.

 

경기도가 쌍용차 지분을 갖고 이 플랫폼을 활용한 자동차를 만들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 산업에서 정부가 군함이나 잠수함 발주하는 것처럼 관용차 발주를 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경기도가 산업정책이나 일자리정책을 펼 수 있다.

 

한상균 : 지금 자동차 산업 생태계가 전기차로 바뀌면서 대단히 많은 일자리가 해외로 나가고 있다. 경기도가 쌍용차에 투자해 전기차 공용플랫폼을 활용한 차를 만들면 이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일자리도 지켜낼 수 있지 않겠나.

 

"쌍용차 문제, 재무와 금융 아닌 산업정책 측면에서 봐야"

 

프레시안 : 정부나 지방 정부의 역할도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산업은행의 역할이 중요할 듯하다.

 

한상균 : 산업은행이 단순히 기업의 손익분기점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은행은 아니어야 한다고 본다. 기간산업과 국가의 일자리 문제 전반에 대해 앞선 고민을 해야 하는 은행이다.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늘고 있다.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큰 전기차 보조금이 테슬라 이익으로 들어간다.

 

쌍용차 일자리 문제가 있을 때 이 문제를 단순히 '당장 이익이 날 거냐 안 날 거냐'로 판단하면 근거를 찾기 난감하다. 그런데 산업정책 관점에서 보면, 외국계 기업의 전기차 생산은 지원하는데 왜 국내 회사에는 지원 못하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오민규 : 테슬라에 올해 상반기 지급된 정부보조금이 900억 원이다. 싹쓸이해갔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국 전기차 시장을 현대차가 꽉 잡고 있었는데 작년 연말부터 테슬라가 석권했다.

 

산업은행에 산업을 정말 잘 아는 분이 있느나고 묻고 싶다. 재무와 금융 중심으로만 판단하는 것 같다. 자동차산업이든 조선산업이든, 어떤 방식으로 끌고 갈지 10년, 20년을 내다보면서 당장은 손해가 좀 있더라도 시간이 지났을 때 한국 산업의 주춧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돈을 투입할 수 있다. 쌍용차 문제에 대해서도 이런 관점을 가지면 좋겠다.

 

한상균 : 쌍용차 SUV는 오프로드 차량에 강점이 있다.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지에서는 여전히 오프로드 차량이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이런 장점을 살려야 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통일한국 시대, 남북협력 시대에 북한의 도로 상황을 감안할 때 가장 유력한 회사가 쌍용차일 수 있다.

 

거시적인 관점으로 개성이든, 원산이든 북한 현지에서 4륜 구동 차량을 남북 노동자가 같이 생산하는 그림까지 그리고 의미 있게 국가 재정을 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쌍용차 문제 해결 다양한 대안 두고 논의를 시작하자"

 

프레시안 : 어떤 식으로든 쌍용차 문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는 일은 필요할 것 같다.

 

한상균 : 쌍용차 회생을 위한 여러 방식을 논의하고 공론화해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깜깜이로 진행되고 있다. 밀실에서 그들만의 생각대로 쌍용차 문제가 다뤄지고 있다. 저는 노동자도 나오고 산업정책 하는 사람도 나와 쌍용차 문제와 자동차 산업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을 하면 좋겠다.

 

쌍용차는 살려야 한다. 위기 대응 논의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회복도 더뎌지고 부품협력사를 포함해서 6500명 노동자의 고통만 커진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이고 국가핵심전략인 시대다. 급한 불 끄고 보자는 식이 아니라, 쌍용차를 제대로 살리는 길을 논의해야 된다.

 

그런데 산업은행, 중앙정부, 지방정부, 마힌드라가 쌍용차 회생을 위한 대안을 공론화하고 책임 있게 결단을 내리려하기보다는 선문답 언론플레이로 자신들만의 이해를 구하려고 한다. 특히 침묵만 강요하는 지금 쌍용차 노사의 태도는 심히 우려되고 이해도 되지 않는다.

 

프레시안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오민규 : 자꾸 정부와 산업은행이 노동자 양보를 언급한다. 저는 쌍용차 경영에서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는지, 노동자와 정부가 합동으로 강도 높은 실사를 해보면 좋겠다. 어디에서 돈이 새고 있는지,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갔는지, 누가 돈을 토해내야 하는지 똑똑히 가려보자는 거다. 매번 정부와 산업은행은 비밀리에 기업 실사를 진행하고 결과도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고 노동자들에게 양보만 강요한다. 이러면 도대체 어떻게 납득하라는 건가.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노동조합과 합동으로 쌍용차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토론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한상균 : 쌍용차 하청 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는 곳들이 있다. 제가 요새 그런 데를 일부러 가본다. 근무조건이 좋지 않은데서 일하는 노동자가 많다. 그 분들이 저를 알아본다. 알아보면서 '우리 어떻게 되냐' 이런 질문을 꽤 한다.

 

예전에 마힌드라가 철수 입장 내기 전에 자기들이 2300억 원을 투자할 테니 정부에 2700억 원을 투자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저는 그때도 정부가 비정규직 1500명 일자리 보장을 조건으로 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정부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지금 회사도 '총고용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내더라. 그런데 하청 노동자들이 '먼저 구조조정 되지 않을까'하면서 불안해한다. 학습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책임으로 보더라도 나는 그들을 구조조정으로 내몰리게 하면 안 된다고 본다. 쌍용차가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하청 노동자 정규직화,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같은 문제도 중요한 화두로 던져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6500명 쌍용차 노동자의 삶과 수많은 부품사 노동자의 일자리와 직결된 문제가 결정의 초읽기에 들어갔다. 현장에는 침묵만 감돈다. 노동자들 눈을 보면 그 속에 불안도 있고 분노도 있고 희망도 있다. 공론의 장을 열어서 희망을 만드는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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