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사학 비리 제보한 교사 해임·임용취소...“학교 내 민주주의 작동돼야”

김민주 기자 kmj@vop.co.kr
발행 2020-09-09 19:56:15
수정 2020-09-09 21:12:24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9일 오후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의 공동 주최로 서울시 종로구 징검다리교육공동체에서 열린 ‘사립학교 공익제보 교원의 현실과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한 입법과제’ 토론회에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유튜브 생중계했다.
9일 오후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의 공동 주최로 서울시 종로구 징검다리교육공동체에서 열린 ‘사립학교 공익제보 교원의 현실과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한 입법과제’ 토론회에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유튜브 생중계했다.ⓒ강민정TV 유튜브 채널 갈무리  
 
 
 
 
 
 
“제발 죽어야만 법이 바뀌는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립학교법도 ‘민식이법’과 같이 누군가의 이름이 붙어 개정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5월 해임 통보를 받은 한 사립 고등학교 교사가 호소했다. 지난 2018년 명진고등학교(도연학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손규대 교사는 2년 2개월 만에 해임됐다. 1학년 담임을 맡던 그는 학생들 곁을 떠나야 했다. 3개월 뒤인 지난 8월엔 손 교사에게 아예 임용취소를 통보했다. 임용취소는 임용 사실 자체를 없던 일로 하는 조치로 임용 계약 해지를 의미한다. 재단은 손 교사의 업무 미숙 등을 징계 사유로 삼았다.

그러나 손 교사와 광주교사노동조합은 손 교사의 공익제보에 대한 보복 징계라고 규정했다. 손 교사는 2017년 2차 면접대기실에서 함께 있던 1차 합격자 4명에게 자신이 채용을 대가로 금품 요구를 제안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폭로했다. 결과적으로 손 교사가 채용되자 한 익명 제보자가 광주시교육청에 이를 채용비리로 신고했다. 손 교사는 “재단 관계자로부터 금품을 요구받았으나 거절했다”는 내용을 교육청 감사와 검찰 수사에서 참고인으로 진술했다. 이후 최모 전 재단 이사장은 배임수재 미수 혐의로 지난해 4월 항소심에서 징역 6월이 확정됐다.

9일 오후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의 공동 주최로 서울시 종로구 징검다리교육공동체에서 열린 ‘사립학교 공익제보 교원의 현실과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한 입법과제’ 토론회에서 손 교사는 이같이 설명했다.

손 교사는 자신에 대한 징계뿐만 아니라 명진고와 재단 내 여러 비리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대표적으로는 재단의 ‘족벌 경영’으로 재단의 주요 자리를 이사장의 친인척들이 맡고 있다고 말했다. 현 이사장은 최 전 이사장의 남편이며 행정실장과 행정실 직원, 이사 등도 이사장의 친인척이라고 손 교사는 말했다. 최 전 이사장의 두 딸도 교사로 채용했는데 당시 면접 점수를 다른 경쟁자보다 최대 22점이나 높게 줬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지난해 9월 해임된 권종현 우신중(우천학원) 교사도 사립학교 내 공익제보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재단은 내부 비판과 재단 비리를 거리낌없이 이야기한 권 교사를 복종의무·품위유지의무 위반 등의 이유로 해임했다. 권 교사는 지난 2009년 당시 재단이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전환을 추진할 때 언론에 자사고 정책 비판 글을 언론매체에 기고하는 등 자신의 목소리를 내왔다. 2011년엔 재단 비리를 공익제보해 서울시교육청 행정사무감사와 특별감사를 이끌어냈다. 2012년 감사 결과 50여 건이 적발돼 재단은 교장 파면과 교감 정직을 요구받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재단 비리와 사립학교 제도의 문제점·개혁 방안 등에 대한 글을 여러 편 올렸다.

권 교사는 이처럼 사립학교 내 자유로운 의견 표현 등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으로 교원 인사권이 재단 이사장에게 집중된 점을 꼽았다. 그는 “현재 사립학교 징계위원회는 징계의결 요구, 징계심의 및 의결, 징계처분 모두 재단 이사회의 권한”이라며 “검사가 수사하고 기소하고 재판하고 집행까지 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시스템에서 괘씸죄에 걸린 사람은 징계를 피할 방법이 없고, 반대로 이사장에게 충성한 사람은 징계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손 교사는 징계의결 요구 전 조사에 대한 객관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손 교사는 “내 사례만 보더라도 이사장 딸 김모씨가 직접 비위 사실을 조사하고 법인에 공문을 기안했다. 이는 객관적인 징계사유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다고 볼 수 없다”며 “조사를 위한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하고 구성원에는 교육청 및 객관적인 외부 인사가 참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들은 공익제보자에 대한 실질적 보호 필요성도 제기했다. 권 교사는 “괘씸죄에 걸려 징계가 진행되는 동안 법정 다툼 등으로 긴 시간을 싸우며 견뎌야 하지만 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행정청은 적극적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익제보에 대한 보복으로 의심할 여지가 많고 다툼 중이라면 선제적으로 대상자를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교사는 공익신고자를 보호할 수 있는 교육청 내 별도 부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날 토론을 맡은 박흥식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공익제보는 교육 가치 등을 위한 것이나 사립학교 교원과 학교 설립자, 법인 간에는 심각한 권력 비대칭이 존재한다”며 보호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학교법인과 학교장에게 공익제보자 보호책임을 부과하고 보호에 실패하는 경우 처벌과 불이익을 규정하는 조항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아울러 사립학교 내 공익신고를 아예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노인·장애인·아동 관련 시설 종사자와 전담 공무원, 교직원, 상담교사 등 24개 직군에 공익제보를 법으로 의무화한 것과 같이 사립학교법에도 공익을 침해하는 행위의 신고 의무 규정을 마련하자고 주장했다.

이날 좌장을 맡은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은 “왜 사학비리가 동일한 패턴으로 계속되느냐. 그것은 학교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고 학교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사립학교법령에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 공익 관련 보호법제의 한계가 작동하는 것도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립학교법을 개정해 학생들에게 올바른 민주성 훈련을 학교에서부터 시작해야하고 학교 선생님들이 결코 부당한 일을 겪지 않아야 한다”며 “학교가 민주주의의 체험 학습장이 돼야지 비리 체험학습장이 돼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김민주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