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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대낮의 충격적 테러,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임상훈 글로벌

리포트] 이란 핵 과학자 암살사건이 드리운 그림자

20.12.04 20:57최종 업데이트 20.12.04 20:57
 
 
이란 핵개발의 중심인물 모센 파크리자데가 수도 테헤란 인근에서 테러 공격에 의해 사망하면서 중동 평화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공식 출범을 한 달 보름 남짓 남긴 미국의 바이든 차기 행정부도 핵심 외교 전략에 커다란 차질을 빚게 됐다.

누구에 의한 소행인지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 심지어 향후 수십 년 동안 이번 테러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알려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비극의 결과로 누가 웃게 될지, 누구의 발목에 무거운 족쇄가 채워지게 될지는 어렵지 않게 드러나는 것 같다.

백주대낮의 암살

이란의 핵 과학자 파크리자데가 백주대낮에 괴한들에 의해 사살당한 것은 지난달 27일. 파크리자데는 1989년부터 2003년까지 이란의 중장기 핵개발 계획이었던 아마드 프로젝트 (AMAD Project)를 이끈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 에너지 주체들에게 핵에너지의 군사목적 사용을 제한하고 평화적 이용을 장려하려는 것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목적이다. 국제원자력기구에 따르면 이란은 아마드 프로젝트를 통해 2000년대 초 핵에너지의 군사목적 활용 가능성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가 이란의 핵무기 제조 가능성을 우려하고 이에 대한 제재를 가하기 시작한 계기가 바로 아마드 프로젝트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계획의 책임자로 지목된 것이 파크리자데였기 때문에 이미 당시부터 그는 다수의 국가에서 요주의 인물이 되어 있었다.

때문에 파크리자데는 늘 근접 거리에서 서너 명이 경호를 펼치고, 먼 거리를 이동할 때도 주로 방탄차량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7일 역시 그는 방탄차를 이용해 테헤란 인근 휴양지 압사드로 이동 중이었다. 
 

▲ 현지시각 11월 28일 이란 사법부 수장이 테러로 피살된 핵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를 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AP


테러범들은 작전 장소를 파크리자데 일행의 자동차가 서행을 해야 하는 회전교차로 인근으로 정했고, 주변의 통신 시설과 폐쇄회로화면(CCTV)을 미리 끊어 빠른 구조를 어렵게 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회전교차로를 빠져나오는 지점에 미리 원격사격장치를 갖춘 트럭을 세워 둔 채, 이들 테러범들은 다른 차량과 오토바이로 일행을 기다렸다.

파크리자데 일행이 교차로를 빠져나오는 순간 트럭에서 사격이 시작됐고 그러자 파크리자데 일행은 차를 멈췄다. 때를 노려 테러범들은 파크리자데를 차 밖으로 끌어내 신원 확인을 한 후 방아쇠 수발을 당겨 그를 쓰러뜨렸다. 원격사격장치 트럭은 증거 인멸을 위한 듯 폭파됐고 테러범들은 빠르게 도주했다. 이후 파크리자데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인구 8천만 이상의 이란, 그것도 수도 테헤란 인근에서, 경호원들까지 대동한 정부 주요 인사가 첨단장비와 정보능력, 그리고 십수 명의 정예 요원들을 가동한 테러 작전에 의해 사망한 것이다. 이런 대담한 규모의 테러 작전을 기획하고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들은 누구일까?

모사드 배후설?

이란 정부는 그 배후로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를 지목했다. 이란과 모사드의 악연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파크리자데에 앞서 네 명의 이란 핵 과학자들이 2010년과 2012년 사이 의문의 테러 공격으로 사망했다. 이란 정부는 그때마다 배후로 모사드를 지목했고 이스라엘의 해명을 요구했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물론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모사드 배후설'은 이란의 무리한 추정일까?

이란의 의심이 단순히 적성 국가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의 해외담당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국제사회에서 벌인 행적은 단순한 정보수집 차원을 넘어 납치, 암살 등 반도덕적이고 불법적인 행위의 영역에까지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인륜적 감수성은 접어두고 액션과 수컷미로 보는 첩보영화에서나 벌어지는 일들이 실제로 이들의 일상에서는 늘 벌어지고 있다. 전지적 작가 시점도 아닌 현실에서는 이들의 액션이 흥밋거리로 볼 대상은 못된다. 현실과 영화를 혼동하는 시대에 어쩌면 이들 정보기관은 영화산업의 최대 수혜자들이다.

모사드의 암살 작전 가운데 성공사례도 있지만 실패사례들도 있는데다가 해당 요원이 활동지역 치안당국에 체포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기도 한다. 그들의 작전 실패가 그나마 모사드의 존재와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 이란 핵무기 개발을 이끌던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 암살을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 CNN

 
드러난 모사드의 주요 활동 가운데 하나가 바로 주변국들의 핵무기 개발에 관여된 사람들에 대한 암살이다. 이란뿐 아니라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 등의 핵 관련 인물들 가운데에도 암살 등 의문의 죽음을 당한 이들이 상당수 된다. 역시 그들 대부분의 사망 원인이 모사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추정일 뿐이며, 그것도 그들의 실패 사례를 통해 미뤄 짐작할 뿐이다.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주변국들과 초긴장 관계인 데다가, 이스라엘판 '역사 바로세우기'가 나치 청산과 관련됨을 감안할 때 정보기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이스라엘 정부다. 주변국들에 대한 정보가 국가 안위에 직결되고 지하로 숨어들어간 나치 연루자를 찾아내야 하는 고도의 정보수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스라엘 정보기관, 특히 모사드의 작전능력은 영국의 해외전담 정보부 MI6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들 정보기관들의 정보 능력이 아닌 실제 활동 영역이다. 다수의 정보기관들은 국가의 안위라는 국가주의 시대 최종적이자 최고 목적을 위해 수단을 문제 삼지 않는다. 국민주권 시대에 국내 정보기관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들도 이들 해외 전담 기관들에게는 허용된다. 국가주의 시대에 국가를 넘어서는 인본적이면서 구속력을 갖춘 기구는 없기 때문에 해외 전담 정보기관들의 초법적 행위들은 끝이 없다.

국가의 횡포를 막기 위해 인류는 유엔(UN) 등 전반적 국제기구와 원자력기구(IAEA) 등 산하 또는 별개의 특수 목적 기구를 만들어 초국가적 문제들을 외교적 프로세스로 풀기 위해 노력해 왔다. 다자 외교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과 같은 시점이다.

무너진 다자외교의 성과

근대 이후 발생한 전통적 의미의 외교(diplomacy)는 '양자 간의 합의 내용을 문서의 양쪽에 담아 반으로 접은 문서'라는 뜻의 디플로마(diploma)에서 유래했다. 양자 간의 합의가 전통적 외교의 본질이었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의 외교는 당사국, 특히 정부 간의 밀약이 그 본질이었다.

하지만 국가의 횡포와 과다경쟁으로 큰 전쟁의 시련을 겪은 인류는 20세기 초 국제적 토의를 통한 합의와 결정을 유도하는 틀을 구상하기에 이르렀고 그렇게 시작된 것이 다자외교다. 민주주의의 원리가 국가 경계선을 넘어 작동할 수 있다는 희망이 한편으로는 다자외교를, 다른 한편으로는 공공외교를 탄생시켰다.

물론 지금까지도 국제기구와 다자외교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양자외교와 힘에 의한 균형설정이 국제질서의 현실이라는 주장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모사드와 같은 정보기관들이 국가의 안위를 명목으로 국제무대를 휘저으며 살상행위까지 벌여도 007 영화 보듯 구경거리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은 바로 그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바이든 차기 미국 행정부는 다자외교의 복원을 내세우며 그 첫 과제로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즉 이란 핵합의의 재건을 천명했다. 큰 틀에서 오바마 대통령 당시의 미국 외교정책으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이란핵합의의 본질은 상업용 에너지를 제외한 이란의 핵개발을 동결시킴으로써 핵무기를 억제해 주변국들을 안심시키고, 이란은 핵개발을 제한하는 대가로 서구의 경제제재 해제를 얻어내 경제 회복을 꾀하려는 것이었다. 미국 민주당의 기본적인 이란 정책이자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과 함께 수년간 수십 차례의 협의를 통해 이뤄낸 다자외교의 성공사례였다.

이란에서도 중도파 대통령 로하니의 집권 하에서 가능한 일이었고, 이 합의에 대해 이란의 강경파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란은 국제무대에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중동의 평화 시계는 밝아졌다.

하지만 이란 핵합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국가들도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역 라이벌인 이란의 국제무대 복귀를 경계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고, 이란의 완전한 무장해제를 바라는 이스라엘은 당시 오바마 정부를 불신했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미국은 다자외교의 틀을 해체하고 이스라엘 중심의 중동정책을 밀어붙였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했고, 유럽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란 핵합의를 탈퇴했다. 이란 역시 유럽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합의 탈퇴 이후 핵개발을 재개했으며 합의 이전의 단계로 모든 것이 되돌아갔다.

얻는 자와 잃는 자
 

▲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2020년 11월 23일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열린 온라인 시장 회의에서 참석자의 말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은 이러한 배경 하에서 다시 모든 것을 이란 핵합의 당시의 시점으로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을 알리고 있었다. 당연히 이란 핵합의에 반대했던 세력들은 바이든 시대의 도래를 반기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번 파크리자데 암살사건은 이란 중도주의 협상파의 입지를 크게 줄여 놓았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향한 무력공격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이란에서는 이번 사건을 주권 차원의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바이든 차기 미 행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도 크게 줄어들었다. 내년 대선을 앞둔 이란에서 강경파가 다시 득세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중동평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감도 함께 꺾였다. 베일 속에 가려진 파크리자데 암살사건은 이렇게 다시 중동평화의 시계를 제로로 만들었다. 

한편 퇴임을 한 달 보름밖에 남겨놓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질 수 있음을 반겼을 것이다. 바이든호의 출범으로 그토록 증오하던 오바마주의(obamaism)의 귀환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트럼프 아니었나. 물론 이것은 그가 이번 테러와 관련해 사전 기획, 혹은 적어도 가능성에 대해 미리 인지하지 않았다는 전제에서의 경우다. 

어쨌든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최근 동선이 중동의 여러 동맹국들이었고 퇴진을 앞둔 외교수장이라고 하기에 빡빡한 일정이었다는 사실이 미국으로서는 좋은 상황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민감한 시기에 미국 고위 관계자의 일거수 일투족은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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