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택배사 대국민약속 해놓고 분류인력 꼼수, 심야배송 지속
‘택배 분류작업 명확화’ 논의하는 사회적 합의기구 좌초 위기
택배노조, ‘살고 싶다 총파업’ 선포… 20~21일 쟁의행위 찬반투표

“택배노동자는 살고 싶습니다.”
“잠시 택배 배송은 멈추지만, 택배노동자를 살릴 수 있습니다.”

택배노동자들이 살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라며 “국민과 함께 하는 ‘살고 싶다 사회적 총파업’”을 선포했다.

지난해 과로로 16명의 택배노동자가 목숨을 잃으면서 재벌택배사들은 택배노동자 과로사의 주요 원인인 분류작업에 인력을 투입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발표했지만, 약속은 온데 간데 없다. 그러는 사이 지난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도 한 명의 택배노동자는 과로사로 사망했고, 4명의 택배노동자는 과로로 쓰려졌다.

▲ 전국택배노동조합이 5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살고 싶다 사회적 총파업’ 을 선포했다.
▲ 전국택배노동조합이 5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살고 싶다 사회적 총파업’ 을 선포했다.

계속되는 과로사… 과로사 방지 약속은 무위였다

택배노동자들이 ‘마지막 선택’이라며 총파업을 결심한 이유는 이렇다.

12월7일, 부산 기장 롯데택배노동자 과로로 쓰러짐
12월14일, 서울 강동 한진택배노동자 과로로 뇌출혈
12월22일, 서울 동작 한진택배노동자 과로로 뇌출혈
12월23일, 경기 수원 롯데택배노동자 과로사
1월12일, 서울 강남 한진택배노동자 과로로 뇌출혈

배송 도중 쓰러졌고, 자신의 차량에서 쓰려졌다. 출근 준비하면서 쓰러졌고, 분류작업을 하는 도중 쓰러졌다. 동작과 강남의 택배노동자는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16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사했다. 그해 10월22일 CJ대한통운 박근희 대표이사는 택배노동자 과로사에 대해 사과하며 500억을 들여 4000여 명의 분류작업 인력 투입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10월 26일 한진택배와 롯데택배도 분류작업 인력 1000명 투입, 야간 배송 중단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택배노동자 과로사에 대한 심각성,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못이겨 ‘한때 소낙비만 피하고 보자’는 꼼수였고 약속은 무위였다.

▲ 지난해 10월22일,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이사가 서울 중구 태평로빌딩에서 택배 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지난해 10월22일,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이사가 서울 중구 태평로빌딩에서 택배 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인력투입은 없었고, 심야배송은 계속됐다

CJ대한통운은 대리점에게 분류작업 인력에 대한 고용책임과 비용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은 15일 총파업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에서 원청 책임을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CJ대한통운 대표이사가 500억원을 들여 4000명의 분류인력을 투입하겠다고 대국민 약속을 했다. 이 약속에 분류인력 책임이 누구에게 있고, 누가 비용부담을 해야 하는지 담겨있다. 원청이 책임지고 투입하겠다는 것이 국민과의 약속이다.” 그러나 분류인력 투입 비용은 택배노동자들에게 돌아왔다.

CJ대한통운과 대리점 간의 인수비용 협약서엔에는 대리점주가 분류작업 인력의 고용주로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대리점이 분류작업 인력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는 구조다. 대리점은 이 비용을 택배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택배노조가 터미널 표본 조사를 통해 CJ대한통운 분류작업 인력에 대한 택배노동자 비용 전가 현황을 살펴본 결과 “CJ대한통운은 분류비용 70%를 대리점 연합회에 전가하는 상황”으로 “70%를 부담해야 하는 대리점은 대리점 관리비를 명목으로 대리점 수수료를 인상하는 편법을 동원해 택배노동자에게 그 비용을 떠넘기고 있다”고 제기했다. 그 비용이 한 달 12만 원에서 30만 원이나 된다.

롯데택배와 한진택배에선 사실상 분류작업 인력은 투입되지 않았다. “롯데는 분류비용 투입을 명목으로 본사에서 박스당 10원을 대리점에게 지급하겠다고 하지만 롯데택배 규모와 택배기사 수를 감안했을 때 13명 당 1명을 투입하겠다는 꼴이다.”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게 택배노조의 주장이다. “한진택배는 분류인력 200명 투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단 1명도 투입되지 않은 것이 확인됐다”고 노조는 덧붙였다.

심야배송 중단을 과로사 대책으로 발표했던 한진택배에선 심야배송도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쓰러진 서울 동작 한진택배노동자도 새벽 2시부터 최대 6시까지 배송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 한진택배 노동자의 심야배송 상황 문자메세지 [사진 : 전국택배노조]
▲ 한진택배 노동자의 심야배송 상황 문자메세지 [사진 : 전국택배노조]

“노동조합 있는 곳에 분류인력이 투입되고 있고, 그나마 분류인력이 투입된 곳에선 과로사가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비용전가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12월과 1월, 숨지거나 의식 불명인 노동자는 분류인력이 제대로 투입되지 않은 롯데와 한진택배에서 발생했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의 악순환을 끊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 분류인력 투입이라는 것이 이미 확인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약속은 파기되고 있다. 로젠택배는 지난해 11월 과로사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아직도 발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사회적 합의기구에서도 약속은 파기됐다

지난 8일, 생활물류선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노동시간의 개선, 휴식권의 보장, 위탁계약 갱신청구권 6년 보장, 표준계약서 작성 및 사용 권장 등 택배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관한 내용이 담겼지만 ‘분류작업’에 대한 사용자의 책임은 명시되지 않았다. 분류작업 문제를 비롯한 쟁점 과제는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7일 정부 여당과 택배업계, 택배노동자,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가 출범했다. 국토교통부는 생활물류법의 분류작업의 모호성을 인정하고, 분류작업의 명확화를 ‘사회적 합의기구’에 포함하고 이를 시행령이나 표준계약서를 통해 보완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택배노동자들이 생활물류법의 제한성에도 이를 반대를 하지 않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기구에선 ▲택배 분류작업에 대한 책임과 비용 명확화 ▲주5일제 도입 등 작업조건 개선 ▲택배가격·거래구조 개선 ▲택배산업 갑질 근절방안 마련 ▲택배노동자 적정 수수료 보장 등 상생방안에 대한 의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네 차례의 회의가 열렸다.

▲ 지난해 12월7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 출범식에서 김태완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 공동대표(전국택배노조 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지난해 12월7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 출범식에서 김태완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 공동대표(전국택배노조 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 : 뉴시스]

12월 15일 사회적 합의기구 1차 실무회의에서는 ‘택배 분류작업 명확화’를 주제로 논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분류작업에 대한 합의사항들은 12월29일, 2차 실무회의에서 택배사들의 일방파기로 합의되지 못했다. 24일 생활물류법이 국토교통위 법안소위를 통과하자 태도가 바뀐 것. 택배사용자들은 “합의가 아니라 잠정 합의였다”는 말로 합의를 나몰라라 하거나, ‘분류작업’이라는 용어 자체를 부정하며 ‘인수작업’이라는 용어를 사용, “분류작업이 택배노동자의 업무이며 그 책임이 사용자에 있지 않다”고 억지를 부렸다.

택배사들이 1차 합의를 파기하고 국토교통부가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등 과로사 방지를 위한 분류작업 문제는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택배노동자들은 총파업 나설 수밖에 없었다. 총파업의 결의는 단호하다. “오는 19일 5차 회의가 있다. 딱 그 회의까지만 참석할 것이다.”

5대 주요요구안이 타결, 합의되지 않으면, 오는 20~21일 CJ대한통운, 우체국택배, 한진택배, 롯데택배, 로젠택배 5개 택배사 소속 5500여 명의 조합원이 참여하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하고, 27일부로 무기한 사회적 총파업에 전면적으로 돌입하겠다는 입장이다. “더 이상 죽을 수 없기에, 살기 위해, 전 국민과 함께 하는 총파업을 벌일 것이다.”

택배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한 분류작업 인력투입 ▲원청택배사가 분류작업 인력에 대한 관리 및 비용책임 ▲야간배송 중단 지연배송 허용 ▲비정상적인 택배요금 정상화(소비자가 지불하는 택배비 2500원 중 택배사에 지급되고 있는 택배비는 1500원, 백마진으로 착복) 등을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과 연말 연초를 맞아 택배물량은 이미 늘어날 대로 늘어난 조건에서 설 명절 특수기(1월 26일부터)까지 다가온다. 아무런 대책이 없다면 과로사 발생은 불을 보듯 자명한 상황이다. 그래서 택배노동자들을 살리기 위한 ‘살고싶다 사회적 총파업’을 결단할 수밖에 없없다. 그래서 설 명절 특수기에 들어가기 전인 19일까지 대책합의와 합의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일손을 멈추지 않으면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없다”… 우체국택배도 총파업 결의

우체국물류지원단(지원단)과의 교섭에서 교섭결렬을 선언한 우체국택배 조합원들(택배노조 우체국본부)이 파업의 결의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기준 물량 190개 준수 ▲공짜 분류작업 중단 ▲일괄지정 배달처 폐지 ▲노사협의회 설치 ▲일방적 구역조정 중단을 요구했지만 지원단은 “법률 검토해보겠다”, “우정사업본부와 협의해 보겠다”, “지원단 권한 밖의 문제”라며 불성실한 태도로 교섭에 응하거나 일방적 교섭 지연 등 교섭을 해태했다.

지원단은 2020년 5월 노사 간 합의한 ‘일 평균 190개의 물량 준수’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분류작업에 인력을 투입했다고 주장하지만 현장에선 확인할 길이 없다. 뿐만아니라 “단 한번도 하지 않은 노사협의를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고 거짓말하고, 편한 구역은 집배원에게, 힘든 구역은 위탁배달원에게 배송을 떠넘기고 구역 조정까지 압박”하는 등 우체국택배 노동자들은 국가 공공기관의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에 시달리는 중이다.

노조와 지원단과의 교섭은 결렬됐고 쟁의행위 조정절차에 들어간 상태다. 우체국택배 조합원들이 겪고 있는 현장 갑질, 분류작업 개선 등의 문제는 사회적 합의기구 의제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만약 19일 사회적 합의기구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우체국 단체협상 파행이 계속되면 총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는 게 택배노조의 입장이다.

총파업을 선언하는 날,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해결을 위한 국민들의 지지와 응원은 그 어떤 사안보다 뜨겁다. 국민들의 필수영역인 택배를 멈추겠다는 결심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전히 죽음이 멈추지 않기 때문”이라며 “정부부터, 우정사업본부부터 모범 사용자의 모습을 보이고, 민간 택배사들이 정부의 모습을 따라올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택배현장을 찾아 택배노동자들과 함께 과로사 대책 이행 점검에 나서고 있는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는 “국민들은 택배가 늦어져도 ‘늦어도 괜찮아’라고 이해하고, 택배비용 인상에도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택배 이용자들의 불이익만큼 택배노동자들에겐 어떤 개선이 있었는가”라고 되묻고 “그 이익은 고스란히 택배사들에게 돌아가고 있고 노동자들의 사망 소식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손을 멈추지 않으면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없다는 결단으로 ‘사회적 총파업’이라는 어려운 결심을 한 택배노동자들에게 국민들이 마음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 설 명절을 한 달여 앞둔 15일 오전, 서울의 한 택배사 물류센터에서 택배노동자들이 분류 및 상차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설 명절을 한 달여 앞둔 15일 오전, 서울의 한 택배사 물류센터에서 택배노동자들이 분류 및 상차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