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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준의 경제비평] 지금은 전시상태, 새해 재정정책은 국민 고통을 더 나누는 방향으로

재난에 맞선 시민의 연대가 가능하기 위한 조건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발행 2021-01-24 17:27:57
수정 2021-01-24 17: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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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간된 국제통화기금(IMF)의 재정 점검 보고서는 코로나19 경제위기에 대한 세계 각국의 재정 대응을 분석하고 있다. 보고서와 함께 발표된 자료를 살펴보면 각국에서 이미 제도화된 ‘자동안정장치’(누진세와 같이 경기 변동의 충격을 자동적으로 줄이려는 거시경제 조절 수단)를 제외하고 순전히 각국 정부가 2020년 9월까지 재량적으로 실시한 재정 대응이 어느 정도 규모였는지 비교해볼 수 있다. 비교 결과에 따르면 세계경제 주요 20개국, 즉 G20 가운데 한국이 포함된 선진경제 10개국은 평균적으로 각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8.2%에 해당하는 예산을 코로나19 대응에 재량 지출로 썼다. 그 가운데 0.8%는 보건 분야 지출이었고 나머지 7.4%는 비보건 일반 지출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보건 분야 지출 0.3%를 포함해 예산 대응 규모가 국내총생산의 3.5%에 그쳤다. 이는 대상 국가 중 최하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재정을 가장 덜 썼음에도 불구하고 방역과 경기 방어에 이만큼이나 성공한 다른 선진국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온·오프 혼합 방식으로 열린 2021 신년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1.01.18.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온·오프 혼합 방식으로 열린 2021 신년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1.01.18.ⓒ뉴시스  
 
경제위기의 한복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재정 건전성,

그러나 과연 자랑만 할 일일까?

국제기구들에 의해 G20 전체 나라 가운데 한국이 2020년과 2021년 두 해 모두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 적자’(세금과 같은 정부의 수입을 정부의 지출이 초과하는 현상, 혹은 그 초과 금액)의 비율이 가장 낮은 그룹에 속할 것으로 전망되는 배경에도 이와 같은 방역과 경제 성과에서의 그간의 선방이 고려되었을 법하다. G20 국가들의 재정 적자 비율 평균값은 2020년 한국의 약 3배, 2021년 약 2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과 그나마 비교할 수 있는 G20 나라는 러시아, 멕시코, 독일 정도이다. 2020년과 2021년 국가 채무의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에서도 한국은 G20 가운데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터키에 이어 다섯 번째로 낮을 것으로 전망되었다. 보수 야당의 정치인들과 기성 매체에서는 한국경제가 방만한 재정 때문에 곧 망할 듯 연일 저주를 퍼붓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게 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무디스 등의 국제신용평가회사에서 재정 적자나 국가 채무 비율 같은 몇 개 지표만 절대 기준으로 삼아 국가신용등급을 정할 리는 없다. 그보다는 평가 항목별로 비교 대상인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경제의 상대적인 지위가 어떠한지가 오히려 더 중요할 듯하다.

오늘도 시민들은 재정의 빈틈을 땀과 눈물로 메우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코로나19 경제위기의 한복판에서 재정을 이렇게 절약했다는 사실이 과연 자랑만 할 일인지 의심스럽다. 정부도 말로는 누누이 ‘전시 상황’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전쟁 같은 일을 치르는 사람들이 누군지 시민들은 안다. 턱없이 부족한 공공의료 시설을 지키는 현장의 간호사들, 생계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자영업자들, 요양이나 택배 등 이른바 고위험 집단과 필수업종의 노동자들, 그리고 소득 증빙도 취업도 할 수 없어 정부의 각종 선별지원에서마저 배제되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 ‘전시 상황’을 제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만약 정부가 재량적인 예산 대응을 3.5%에서 멈추지 않고 비교 대상이 되는 다른 나라들 정도로 지원의 수준을 늘렸더라면 어땠을까? 비록 재정 수치는 지금보다 나빠졌을지 몰라도 시민들의 수고를 국가가 조금은 더 나눠 짊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재정을 아꼈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마땅히 졌어야할 부담을 시민들에게 미뤄두었던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보건의료노조가 12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전담병원 노동자의 소진과 이탈(퇴직,이직) 등 신속한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2021.01.12
보건의료노조가 12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전담병원 노동자의 소진과 이탈(퇴직,이직) 등 신속한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2021.01.12ⓒ김철수 기자

불평등의 시정과 적극적인 적자 재정이 곧 경제 회복의 길

1940년대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 통계연구소와 캐나다 몬트리올의 국제노동기구(ILO)에서 활동했던 폴란드 출신의 저명한 경제학자 미하우 칼레츠키는 대공황과 전시경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경제 회복을 위한 방도를 요약해 제시한 바 있다. 그 방도는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정부가 항구적으로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 복지지출 등을 통해 가계 소비를 지원하고 공공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득 불평등을 시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정부의 적자 지출이 지속가능하다는 칼레츠키의 첫 번째 주장은 동시대의 경제학자 에브시 도마가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함으로써 뒷받침되었다. 이 주장이 갖는 타당성은 한편으로는 기초적인 ‘국민소득 항등식’을 통해서도 가늠해볼 수 있다. 국민소득 항등식을 학생들은 보통 대학 경제학 전공 1학년 과정이나 고등학교 경제 교과에서 처음 배운다. 그 내용은 국민경제 구성원들의 소득을 모두 더한 국민소득이 소비, 실물투자, 정부지출, ‘순 수출’(수출에서 해외로부터의 수입을 뺀 것)의 합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식을 이용하면 우리는 실물투자와 순 수출이 일정하다고 가정할 때 재정 적자가 증가하면 딱 그만큼 ‘민간 저축’(가계와 기업이 벌어들인 소득 가운데 소비되지 않고 자산을 매입하는 목적 등으로 활용되는 부분)이 증가하는 관계를 도출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이론적으로는 재정 적자로 정부의 빚인 국채가 늘어나면 그 국채를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이 가계나 기업의 누구에겐가 생긴다는 뜻이다. 물론 민간이 국채를 사지 않으려고 하면 그로 인해 금융시장에서 이자율이 오르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낮은 수준으로 관리하는 한에서는, 그리고 중앙은행이 표준적인 통화정책의 일환으로 국채를 매입하는 것이 일상인 현실에서는, 그와 같은 가능성이 실제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오늘 한국경제에서도 기획재정부가 발행하는 국고채의 장기 이자율과 단기 이자율 간 차이가 비교적 안정적인 것을 비롯해 국채 발행의 여건은 나쁘지 않다.

혹자는 지속적인 적자 재정은 미래 세대의 부담을 키운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분배를 악화시킨다고도 한다. 하지만 국채는 한 사회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소득 이전의 한 가지 수단일 따름이다. 미래의 납세자들이 부담하는 국채 이자는 같은 미래 세대의 국채 보유자들에게 소득이 된다. 국채 보유자와 납세자는 어쩌면 동일인일지도 모른다. 죽은 과거 세대가 관에서 일어나 국채 이자를 받아가지는 못한다. 적어도 세금의 대부분을 가난한 노동자가 내고 국채 이자의 대부분을 부유한 사장님이 걷어가는 것은 아니다.

예산 측면에서는 포용 국가의 지향에 걸맞은
포용적인 지출이 이루어졌는지 따져야
더 늦기 전에 사회안전망 본격적으로 강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적자 재정을 감수하자

새해에 들어서도 3차 확산의 기세는 여전히 거세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다리는 시민들의 염원은 간절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시민들의 건강과 일상의 조속한 회복을 위해 방역과 경제의 두 측면 모두에서 2021년에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가야 한다. 새해 재정정책의 당면 과제들을 다시 한 번 점검해 경제 회복의 길을 열어가야 하는 이유이다.

먼저 포용 국가를 지향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예산이 지금까지 충분히 포용적인 것이었는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무상 복지와 현금 살포로 나라가 망한다는 분들도 계시지만, 우리 예산은 늘 경제사업 위주로 편성되어 사회정책의 중요성은 후순위로 밀리기 십상이었다. 한국은 경제사업의 예산 비중이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큰 편이고 사회정책 관련 지출은 잘 알려진 것처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 가깝다. 하지만 인구 감소로 경제성장의 잠재력마저 훼손되는 상황에서 사회안전망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지금은 아껴야 한다는 주장도 늘 있지만 그 미래가 이미 현재가 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사회안전망을 본격적으로 강화해가야 한다. 기준중위소득 및 생계급여 수준의 현실화, 의료급여 관련 부양의무제도의 폐지, 주거용 재산의 소득환산 폐지 등 시민사회에서 숱하게 지적되어온 개혁 과제들이 우리 앞에 산적해 있다. 이를 위해 적어도 당분간 적자 재정을 감수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사회안전망 강화를 주장하면 누군가는 또 마치 ‘요건 몰랐지’ 하는 식으로 남북통일 이야기를 꺼낸다. 미래에 있을 통일에 대비하려면 재정을 아껴야 한다는 식상한 주장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통일을 찬성한다면 실제로 평화를 모색할 일이다. 정치 협상을 하고 군축을 해서 예산의 10%에 달하는 방위비부터 줄여야 될 일이다.

홍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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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뉴시스

세제 측면에서는 자산 과제 형평성에 초점을 맞춰야

경제 회복의 길은 또한 불평등의 시정을 요구한다. 그 점에서 세제 측면에서는 자산 과세 형평성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이 바람직하다. 정부가 2023년부터 적용하려는 금융투자소득세는 금융소득을 ‘분리과세’(다른 소득으로부터 분리해 별도 체계로 과세하는 것)하는 점에서 문제가 있으며 완전히 ‘종합과세’(다른 소득과 합산하여 종합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것)하는 방향이 맞을 것이다. 근로소득세와 달리 금융투자 소득에 대해서는 ‘면세 구간’(세금이 면제되는 일정 기준 이하의 소득 범위)을 두는 것도 이치에 부합하지 않는다. 배당 소득이나 주식 양도 차익이 상위 소득자에게 집중되는 실정을 감안하고 현재 관련 세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고 볼 수 없는 점을 고려해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과 관련해서는 올해 6월 다주택자 종합부동산세 인상을 앞두고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는 반발에 후퇴하는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주택 임대사업자들에게 종합부동산세를 여태껏 전액 면제해준 특혜는 당장 폐지해야 옳다. 국회의 동의도 필요 없고 종합부동산세 시행령 제3조의 개정만으로도 가능한 일인데 미루어서는 안 된다. 한편 상속세의 경우 미실현소득이지만 불로소득이므로 인하나 폐지를 요구하는 최근 일부 주장은, 과세 체계를 합리화하는 선에서 정리하고 허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재난에 맞선 시민의 연대를 위해서는
국가부터 마땅히 져야할 부담을 회피하지 말아야

칼레츠키는 대침체나 전쟁으로부터 경제가 회복되는 과정에서는 자산 과세로 국가 채무 비율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현대 거시경제학의 아버지인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역시 지속적인 적자 재정이 정치적으로 시민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근 정치권에서 이익공유제나 사회연대기금, 재난연대세를 이야기하는 배경이 자못 궁금해진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있다. 국가가 마땅히 져야할 재정 부담을 또 다시 최소화하거나 회피하려고 든다면, 그런 기초 위에서는 재난에 맞선 시민의 진정한 연대가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코로나19 위기는 마라톤처럼 길게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도 힘들 그 긴 시간 동안, 땀과 눈물로 그간에 재정의 빈틈을 메워온 가난한 민중의 경제적 존엄은 오직 국가만이 지켜줄 수 있다. 새해 재정정책이 포용성을 강화하고 불평등을 바로 잡는 방향이 되기를 기대한다.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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