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삼중수소 누출 문제 ‘멸치·바나나로 덮어버린 교수·언론’에 분노한 전문가들

 

아래로 흐를 수밖에 없는 방사성물질이 지상서 높은 농도로 측정된다는 위험성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21-01-28 07:35:34
수정 2021-01-28 07:35:34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원 소장이 2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월성 원전 방사성 물질 누출과 안전 문제 대응 전문가-시민사회 긴급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1.01.27.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원 소장이 2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월성 원전 방사성 물질 누출과 안전 문제 대응 전문가-시민사회 긴급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1.01.27.ⓒ뉴시스 원자력 안전 전문가들이 삼중수소에 대한 원자력계 인사 발언과 이를 그대로 받아쓴 언론 때문에 경주 월성원전 방사성물질 누출 문제의 심각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특히,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가 삼중수소를 멸치·바나나와 비교하며 문제 될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주장한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또 한 핵물리학자는 “미친 사람”이라며 크게 분노했다.

27일 에너지전환포럼·탈핵교수모임 등이 주최한 긴급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이 같은 비판을 쏟아냈다.

“물은 아래로 흐를 수밖에”
도대체 얼마나 누출됐으면…

먼저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 소장은 이미 해외에서는 1980~1990년부터 삼중수소 등 방사성물질 누출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이에 대한 안전 대책이 나왔지만, 우리나라는 이를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다가 심각한 사고가 발생한 뒤에서야 대책을 세우는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소장 등에 따르면, 미국·캐나다에서는 1980~1990년대부터 삼중수소 등 방사성물질 누출이 크게 논란이 됐다. 미국에서는 2005년 비계획적 방출에 의한 지하수 오염 조사 등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원전이 오염시킨 부지·지하수 등을 복원하는 데 얼마나 비용이 들지 추정할 수 없는 관계로 이를 감시하는 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아무런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 누출 문제가 계속 논란이 되자, 2017년에서야 월성원전 2·3·4호기에 CFVS(격납건물여과배기설비)를 설치하겠다고 했고, 이 같은 계획을 승인받는 과정에서 ‘지난 2012년 월성원전 1호기에 CFVS를 설치하던 중 오염수 외부 확산을 막는 최후의 방벽인 차수막이 손상된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런 뒤에야 한수원은 2019년 지하수 감시프로그램을 수립하고, 월성원전 주변에 관측 우물을 두어 삼중수소 농도를 측정하기 시작했으며, 2020년 12월경 이를 측정한 한수원 내부 자료를 누군가 경주 환경단체에 전달하면서, 이번 삼중수소 누출 논란이 시작됐다.

 

이렇게 드러난 한수원 문건에는 월성원전 1·2·3·4호기 주변 빗물 중 삼중수소 농도가 리터(L)당 133 베크렐(Bq)에서 923 베크렐에 이른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1.05 베크렐 수준으로 알려진 전국 평균보다 약 100배에서 1000배에 이르는 농도다. 또한 월성 3호기 터빈건물 배수로에서는 리터당 71만3천 베크렐의 고농도 삼중수소 고인물이 발견된 바 있다는 보고 내용, 월성원전 주변 27개 관측 우물 전체에서 통제 불능 상태의 한수원 내부 기준에는 이르지 않지만 상당한 농도의 삼중수소 농도가 측정됐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문제는 이렇게 측정된 삼중수소 농도로는 실제 사태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키 어렵다는 점이다. 한 소장은 보통 물은 중력 때문에 벽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리며 시멘트에 스며드는 식으로 통과할 수 있다는 점, 감마핵종은 입자가 커서 균열이 생긴 틈으로 누출이 되더라도 흙에 의해 걸러지지만 물로 이루어진 삼중수소는 더 멀리 퍼진다는 점 등을 짚으며, 땅속 깊은 곳에서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가 어느 정도로 누출되고 있는지 조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력 때문에 아래로 흐를 수밖에 없는 삼중수소가 지상에서도 높은 농도로 측정되는 상황의 심각성을 짚은 것이다.

또 당초 월성원전 설계에서도 ‘방사성물질이 누출되더라도 아래로 흐른다는 것을 한수원도 알고 원전 하부에 차수막을 설치한 지점’을 지적하며 “이런데도, 유출이 없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수원이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법제도상 유출에 대한 기준이나 근거가 없기에 법률상 무죄라는 걸 얘기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원 소장이 2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월성 원전 방사성 물질 누출과 안전 문제 대응 전문가-시민사회 긴급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1.01.27.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원 소장이 2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월성 원전 방사성 물질 누출과 안전 문제 대응 전문가-시민사회 긴급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1.01.27.ⓒ뉴시스

위험성, 바나나·멸치에 비교한 교수
한 핵물리학자의 분노 “미친 사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도, 원자력계 일부 인사의 과장·왜곡된 주장과 이 주장을 수많은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흐린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제기했다.

앞서 삼중수소 누출이 논란이 되자,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월성 주변 지역 주민의 삼중수소로 인한 1년간 피폭량은 바나나 3~6개, 멸치 1g 내외”라며 주민-환경단체 등이 제기하는 월성원전 방사능 물질 누출 문제가 청와대를 겨냥한 검찰의 월성원전 수사를 물타기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 많은 언론이 이 주장을 그대로 기사로 옮기면서 삼중수소 누출 문제가 별일 아니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의학자들은 이 주장이 드러나지 않은 삼중수소의 위험성을 지나치게 가리고 있다고 봤다. 김익중 의학박사 또한 지난 15일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대담에서 이를 지적한 바 있다. 김 박사는 삼중수소는 스스로 핵붕괴를 일으키는 불안정한 방사성물질이며 12년 사이에 50%가 핵붕괴한다는 점, 물로 존재하는 삼중수소의 경우 소변으로 배출되기에 인체에 큰 위협이 되진 않지만 수소 대신 우리 몸의 구성성분이 되었을 경우 1년 단위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점, DNA 등으로 구성된 삼중수소가 핵붕괴할 경우 단순히 방사능 에너지를 배출하는 것 말고도 핵종전환을 일으키면서 DNA를 파괴한다는 점 등을 들어 삼중수소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날 긴급 토론회에서도, 발제자로 출연한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삼중수소는 우리 몸에 들어와서 (몸의 구성성분으로) 결합하여 1년 내지는 훨씬 오래 남는다”라며 “반면, 바나나에 들어있는 (자연 방사성물질인) 칼륨은 결합하는 성질이 아니어서 (우리 몸에) 들어오자마자 배출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양의 원전 삼중수소가 자연으로 배출돼 순환하는 과정에서 식물 광합성 등을 통해 유기물이 되고 인간 또는 동물이 이를 섭취하여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 소장은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1965년 권고한 방사선 방호 기본 사고방식을 나타내는 개념 ALARA(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최저)을 소개하며 “방사능에 관한 기준이 있더라도, 어떤 잠재적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 무조건 최대한 낮춰야 하는 게 원자력공학의 기본 전제”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기준이 100이니 1은 문제없다? 이건 장사꾼들이나 하는 얘기”라며 1이면 어떻게 0.1로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하는 게 공학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바나나·멸치 등의 비교 논란은 “도덕성에 대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건국대 물리학과 교수로 있다가 정년퇴임한 이준택 핵물리학자는 “(바나나에 들어있는) 칼륨이 우리 몸 안에서 반응하는 것과 삼중수소가 우리 몸에서 반응하는 과정, 거동, 영향력은 비교할 수 없다”라며 “(학자임에도 쉽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라고 분노했다.

또 원자력안전기술원 감사로 일했던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정용훈 교수가 월성원전 주민 피폭량을 멸치 1그램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한 것과 관련해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이런 주장을 했는지 궁금해서 1주일 동안 찾아봤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 교수가 주장의 근거로 사용한 자료는) 1974년과 1975년 제주도·남해에서 각각 한 번씩 딱 두 번 멸치 시료를 채취해서 측정한 방사능 수치에다가 피폭량을 계산한 것이었다”라며 “유효선량을 평가하려면 엄밀한 과학적 절차와 방법론을 써야 하는데,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주장을 펼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석 위원은 스페인과 일본에서 과학적 방식으로 측정한 선량을 소개했다. 그는 “스페인의 경우 6년간 한 지역에서 여러 번 조사를 한 결과이고, 일본은 3년 동안 조사한 결과이며, (조사 대상 또한) 최종소비단계에 있는 것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결과 튀김요리와 멸치통조림에서 측정된 선량이 100배 차이를 보이는 등 유통과정 및 조리방법 등에 따라 큰 차이가 발생한다는 걸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토론회 사회를 맡은 임성진 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는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말에 반박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싶다”고 한탄했다.

토론회 유튜브 생중계 화면
토론회 유튜브 생중계 화면ⓒ에너지전환포럼 유튜브 채널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에 이번 문제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우리나라 원자력 안전규제는 기술이 중심이 아니라 관료가 중심이 되고 있어서 문제”라면서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시민 감시 조직을 활성화해서 독점 폐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에는 독립전문기관이 있고 검사도 독립검사시관에서 진행하고 있고, 프랑스에서는 환경단체·노조·의료인·학자·전문가·주민 등이 참여하는 지역정보위원회가 있는데 위원회에서 정보를 요구하면 법적으로 7일 이내에 제출하게 돼 있다”라며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정보공개를 요청하면 ‘영업비밀’이라고 주지 않는다. 국민 목숨과 영업비밀 중 뭐가 우선인지 모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석 전문위원은 “원안위에 사고 원인 조사를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며 “CFVS를 무리하게 설치하다가 사고가 났는데, CFVS를 애초 누가 설치했느냐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2011년 원안위가 독립되고 얼마 없어서 ‘미래와도전’이라는 아주 작은 원자력설계업체에 일감을 몰아줬다”라며 “몰아준 것 중 하나가 CFVS인데, 결과적으로 무리하게 CFVS를 설치하게 된 배경에는 현 원안위 사무처가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관련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