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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저격수 배치해 시민들 조준사격” 계엄군 투입 장·사병 증언 잇따라

5.18진상규명조사위, 조사 개시 후 1년 성과 보고

최지현 기자 
발행2021-05-12 20:35:56 수정2021-05-12 21:12:02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위원장 송선태)가 12일 오후 서울 중구 진상조사위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허연식 조사2과장이 당시 광주교도소 주변에서의 3공수여단 작전상황 및 민간인 피해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1.05.12.ⓒ뉴시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주요 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미리 배치해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조준사격했다는 당사자의 진술이 나왔다. 이에 따라 과격한 무장 시위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포했다는 전두환 신군부의 '자위권'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12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 1년간 조사한 내용을 발표했다.

조사위는 5.18 당시 제3공수여단이 5월 20일 오후 10시 이후 광주역에서 M60 기관총을 설치해 시민을 살상했다는 가해자 진술을 확보했다. 심지어 M1 소총에 조준경까지 부착해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 광주역 광장은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었는데, 기관총을 설치한 이후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발포가 이뤄졌고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제11공수여단은 5월 21일 오후 1시경 전남도청 앞에 가득 모인 시위대를 향해 집단발포를 한 직후, 금남로 주요 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해 조준사격을 했다는 진술도 확보됐다. 집단발포에 놀라 달아나던 시위대를 일일이 조준해 사살한 셈이다.

 

다음날인 5월 22일 이후에는 광주 외곽을 봉쇄하는 작전을 하던 제3공수여단이 광주교도소 감시탑과 건물 옥상에서 M60 기관총을 설치하고, M1 소총에 조준경을 부착해 시민들을 살상했다는 증언이 확보됐다.

광주교도소 양쪽의 광주-순천 간 고속도로와 광주-담양 간 국도를 오가는 차량과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 사격으로 최소 13차례 이상의 차량피격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이 증언과 문헌을 통해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복수의 장·사병이 고속도로를 지나가던 신혼부부를 태운 차량을 저격·사살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기존에 알려진 주남마을, 지원동 일원 마이크로버스·앰뷸런스 피격 사건 외에 또 다른 승합차 및 앰뷸런스 최소 5대를 피격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그동안 피해자와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계엄군의 조준사격 의혹은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가해자인 당시 계엄군이 직접 사실을 인정하는 진술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주목된다.

조사위 관계자는 "5.18 당시 현장에 투입됐던 장·사병 중 522명을 지난 1년 동안 만났다"며 "그중에서 M60으로 직접 사격했거나 M1 조준경을 사용해 사격했다는 진술 등 58명의 의미 있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12일 오후 서울 중구 진상조사위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송선태 위원장이 그동안의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1.05.12.ⓒ뉴시스

이들 증언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발포 명령자' 또는 '발포 책임자'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그동안 전두환과 신군부 지휘부는 "과격한 시위대로 인한 급박한 상황에서 방어를 위해 살포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발포 명령을 한 적이 없다고 책임을 회피해왔다.

송선태 위원장은 "저격수를 운영한 사실 자체는 (발포가) 자위권 차원이라는 (전두환 신군부의) 주장과는 상치되는 것 아니냐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다만 조사위 관계자는 "그 어느 문건에도 발포와 명령에 대한 게 전혀 명시돼있지 않다"며 "군 지휘부의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에 가까운 양심고백이 있기 전에는 모든 증거를 모아 논리적으로 추론해서 (책임자 규명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조사위가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으로 조사를 해나가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송 위원장은 "위원회 출범 이전에 이뤄진 여러 차례의 5.18 진상조사가 신군부 및 계엄군 지휘책임자들을 대상으로 한 '선택과 집중식 조사'였다면, 위원회는 신군부 책임자는 물론, 광주 시위 현장에 투입되어 진압 작전에 참여했던 장·사병, 피해 시민들까지 '포괄적 조사'를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 위원장은 "내란과 내란목적 살인죄를 저지른 핵심 책임자들은 진솔한 고백도,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됐던 장·사병들의 용기 있는 고백과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군으로 투입됐던 장·사병들의 증언을 분석한 후 신군부 핵심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부연했다.

나아가 그는 "저희가 쓸 수 있는 방법을 다 쓸 것이다. 일단 소환장을 보내고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서면조사를 하고 이것도 불응하면 수사기관에 조사를 의뢰할 생각"이라며 "여기에 전두환 씨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의지를 보였다.

한편 가해 당사자들의 증언은 그동안 해당 구역에서 발생한 총상 사망자들의 사망 원인이 일부 '칼빈총 총상'으로 분류된 의혹을 푸는 데에도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두환 신군부는 그동안 시위대와 시민들이 총에 맞아 숨진 책임을 시위대로 돌리려고 했다. 그 근거 중 하나가 사망자의 칼빈총 총상이었다. 칼빈총은 시위대가 무장한 것이었는데 당시 시위대가 오인 사격해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문서를 계엄군이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거짓'이라는 근거가 이번에 추가로 나온 것이다.

과거 5.18 시위대와 시민들의 사망 원인을 규명할 때 가장 원시적인 방식인 '육안 감식'을 통해서 했는데, 송 위원장은 "M60과 M1과 칼빈총의 규격은 같았다"고 밝혔다. 그는 "탄도학 등의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전문기관에 관련 진술 내용을 의뢰해 추가 정밀 분석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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