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예산 2조 원을 넘게 들여 미국에서 구매한 조기경보기 운용에 추가로 4조 원에 가까운 돈이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이 국민 혈세인 예산을 ‘묻지마 미국산’ 무기업체에 ‘퍼주기’ 한다는 비난에서 이번에는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방위사업청(방사청)은 지난 6월 제128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 회의를 통해 조기경보기(항공통제기) 2대 추가 구매 사업비로 1조 5천993억 원을 책정했다. 기존 4대만으로는 유사시 대비 24시간 감시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방사청의 주장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설훈 국회의원실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방사청이 당시 실시한 사업타당성 조사에서 기존 조기경보기 판매 업체인 보잉사는 2대 공급 가격을 2조 3천52억 원으로 제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방사청이 책정한 가격보다 무려 44%(7.059억 원)나 올린 금액이다.
보잉사는 지난 2011~2012년 수의계약을 통해 조기경보기인 E-737 피스아이 4대를 2조563억 원에 우리나라에 판매했다. 10년이 뒤 추가로 2대를 더 구매하겠다고 하니 기존 판매한 4대 값보다 더 많은 액수를 요구하는 것이다.
또 보잉사가 제시한 가격은 지난 2019년 영국의 동일기종 구매계약가와 비교해도 약 2배가 넘은 금액으로 알려졌다. 방사청이 내놓은 사업타당성 조사 자료를 보면 영국은 2019년 보잉사와 신규 3대 도입과 기존 2대 개량비를 포함해 모두 2조3천958억 원에 계약했다. 한국에 2배 이상을 요구하는 셈이다.
방사청은 이번에 추가 구매는 수의계약이 아니라 경쟁입찰 방식을 동원한 상업구매 방식으로 결정했다. 보잉사 외에 이스라엘의 엘타사(1조6천405억 원) 스웨덴의 사브사(1조5천491억 원)가 각각 보잉사보다 월등히 낮은 가격과 호혜적인 기술 이전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보잉사는 기존 조기경보기 판매사이고 현재 4대를 운용 중인 한국의 약점(?)을 이용해 기술 이전도 없이 천문학적인 가격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공군이 요구하는 ROC(작전요구성능)는 보잉사만 만족시킬 수 있다. 방사청은 ROC 변경으로 경쟁입찰을 유도하려 했지만, 공군 측의 거부로 이것도 성사되지 않았다. 결국, 경쟁 방식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번 조기경보기 추가 구매 사업도 ‘묻지마 미국산’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과거에도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가는 감시·전략 자산은 거의 전부가 미국산이 독식했다. 유럽 방산업계에 한국 방사청에 입찰을 해봤자 들러리 역할만 한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이다. 경쟁입찰을 해도 결국은 군이 요구하는 ROC 기준 부적합으로 미국산 이외에는 전부 탈락한다. 간혹 ROC를 충족하는 유럽산 장비가 있더라도 이번에는 한미 연합 자산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을 내세워 탈락시킨다.
쉽게 말해 이미 도입된 장비들이 다 미국산이고 또 한미가 연합 군사작전 등 상호운용성이 중요한데, 유럽산 장비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일 한국이 유럽산을 도입한다면, 작전 정보 공유를 장담하지 못한다는 미국의 엄포가 통하는 셈이다.
“4대 수리비에 3대 값 내라!” 슈퍼 갑질
민주당 설훈 의원, “국민 용납 못할 것”
이러한 악순환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사례는 조기경보기에 또 있다. 방사청은 추가 구매뿐만 아니라 기존에 도입한 보잉사 조기경보기 4대에 대한 성능개량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역시 사업타당성 조사에서 보잉사는 무려 1조6천398억 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도입가(2조563억 원)의 80%에 해당하는 금액을 요구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기존에 구매한 4대를 수리하는 비용으로 3대 값 이상을 요구하는 갑질인 셈이다. 이는 기존에 보잉사 제품을 구매한 관계로 보잉사에서 성능도 개량하고 부품도 조달해야 하는 즉 수의계약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묻지마 미국산’이라 수리비도 ‘부르는 게 값’이 돼버린 꼴이다. 결국, 조기경보기 추가구매와 성능개선에만 4조 원 가까운 국민 혈세를 써야 할 판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보잉사가 과다하게 요구한 금액에 대해 “해외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업체와 적극적 협상을 통해 최대한 비용을 절감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방사청이 칼자루를 가질 수 없지 않으냐는 지적에는 “보잉사가 조기경보기만 파는 것이 아니니, 최대한 절감 방안을 강구해보겠다”고 말했다.
조기경보기 성능개량 사업에 대해서도 방사청 관계자는 “방사청도 금액이 과도하다고 판단해서 현재 사업을 보류하고 사업분석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거듭 “이번에는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말로 곤혹감을 나타냈다.
민주당 설훈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외국 무기업체에 ‘국방예산 퍼주기’가 만연화되고 있다”면서 “국민 혈세인 몇천억, 몇조가 물 쓰듯이 순식간에 해외로 나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설 의원은 “구매하는 우리가 ‘을’이 되고 외국업체가 ‘슈퍼 갑질’을 해 바가지를 쓰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설 의원은 또 “조기경보기 사업만 해도 몇조 원이 넘는 돈을 장병들이나 사람에게 먼저 투자한다면 장비 국산화 등 훨씬 더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다”면서 “기술 이전도 해주지 않겠다고 하는 보잉사에 이러한 엄청난 예산을 사용한다는 것은 국민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이 미국의 최대 무기 수출국 중 하나임에도 ‘글로벌 호구’라는 오명을 쓴지는 오래됐다. 조기경보기를 비롯해 올해부터 2023년까지 미국 보잉사 한 개 방산업체만 한국에서 받아갈 돈이 12조 원을 넘을 전망이다. 내년 전체 국방예산이 55조 원임을 감안하면 실로 막대한 금액이다.
방사청은 개청한 이후 15년동안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경쟁입찰을 내세우며 미국 독식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해왔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미국 편중이 더 고착됐다. 팔면서, 수리하면서, 다시 신제품 팔 때도 미국이 갑이 되고 한국이 을이 되는 악순환을 이번 조기경보기 사업에서 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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