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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감시' 공익소송 결과 날아든 429만짜리 청구서

다섯 번째 소송비용 독촉장 받은 참여연대... 법 개정 통해 공익소송 패소비용 문제 개선해야

22.05.21 20:41l최종 업데이트 22.05.21 20:41l
인사혁신처에서 보낸 독촉장이 다섯번째 도착했다.
▲ 공익소송 패소비용 납입 독촉장 인사혁신처에서 보낸 독촉장이 다섯번째 도착했다.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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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지금 독촉장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5차 독촉장이 왔습니다. 쫄보인 담당자는 '독촉장 재중'이라 적힌 우편물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합니다. 계속 납부를 유예할 경우 지급명령과 강제집행이 이루어져 통장이 압류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한 달 살기도 빠듯한 월급이라 저축한 것도 없는데 '월급이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란 생각이 절로 듭니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참여연대가 법적 절차를 거부하고 소송비용을 내기 싫어 버티는 걸로 보일 수도 있으니 '내로남불'이란 말이 나올까 조마조마합니다.  

독촉장이 오는 주기가 빨라집니다. 5번째 독촉장은 4번째 독촉장이 온 지 2주 만에 왔습니다. 독촉장을 받을 때마다 논의했습니다. 현실적 불안과 앞으로 벌어질 가장 안 좋은 미래까지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 몇 번의 독촉장을 더 받을지, 우리가 내야 할 부담금에 지연이자가 얼마나 붙을지, 우리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여러 차례 논의 끝에 참여연대는 공익소송 패소비용 제도개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납부를 유예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우리의 불안, 금전적 부담을 감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제 담당자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독촉장이 또 오기 전에 이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짧게는 4년, 길게는 20~30년 전부터 시작된 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돈 때문에 공익소송을 못 한다고? 

이 일은 1990년 '민사소송법' 개정부터 시작됩니다. 한국도 처음에는 다수의 국가들처럼 소송비용 각자 부담이 원칙이었으나 1990년 '민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패소자부담주의'를 도입했습니다. 소송에서 패하면 상대방의 변호사비용을 포함한 소송비용 전부를 패자가 부담하는 형태입니다.  

그러나 의료소송같이 정보 접근부터 평등하지 못한 소송이나, 큰 기업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 새로운 법 해석을 요하는 공익소송들은 필연적으로 패소율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패소하면 상대방의 변호사 수임료까지 전부 부담해야 하기에 금전적 여유가 없다면 소송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공익소송의 경우 승소 시 우리 사회에 미치는 공익성이 크고 소송 남발 우려가 적음에도 패소비용이 부담되어 필요한 소송마저 제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는 공익소송의 사회적 기여, 의미를 인정하여 비용에 대한 예외를 두고 있습니다. 패소자부담주의를 택하고 있는 영국과 캐나다는 법원이 패소비용 부담을 판단해 공익소송인 경우에는 면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각자부담주의를 택하는 미국이나 일본도 공익소송이나 부당한 소 제기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소송비용 부담 주체를 법원에서 결정하는 형태로 금전적 부담에서 공익소송을 보호합니다.

공익소송이 개개인의 이해관계보다 다수 즉 공공의 이익을 위한 소송이기 때문입니다. 2020년 법무·검찰 개혁위원회는 법무부에 공익소송 패소당사자의 소송비용을 필요적으로 감면하는 규정 마련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직 아무 변화도 없습니다.

국가는 꼭 패소비용을 받아야 할까?

현행 '민사소송법'은 승소한 상대방이 대한민국 국가이더라도 법원에 소송비용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비용확정청구를 하고, 법원은 해당 비용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공익적 목적의 소송에까지 소송비용을 청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참여연대에 패소비용을 독촉하고 있는 승소한 상대방은 대한민국 인사혁신처입니다. 

참여연대는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퇴직 공직자의 민간기업 등의 취업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2006년부터 매년 이슈리포트를 발간해 왔습니다.

2018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퇴직 간부의 불법 취업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계기로 기업 관련 조사권과 고발권을 가진 공공기관 퇴직공직자의 취업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출신 퇴직자에 대한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 관련 자료를 정보공개청구했습니다. 

하지만 인사혁신처는 심사대상자의 인적사항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공개하기 어렵고(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6호), 회의록과 결정사유서는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에 따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회의는 비공개 대상이며(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1호,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제19조 제5항), 공개할 경우 외부의 부당한 영향 등으로 공정한 업무수행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며 정보를 비공개처분 했습니다. 

참여연대는 개인정보는 비식별화하면 되고 취업경위나 취업승인신청 사유는 민감정보라 볼 수 없으며, 회의 비공개와 회의록 비공개는 다르고, 정보공개를 통한 투명성 강화로 심사위원들의 책임감을 높일 수 있다며 이의를 신청했지만 기각되었습니다. 

이 자료를 꼭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취업제한심사를 받은 퇴직공직자 93%가 취업가능(허용) 결정을 받았고(참여연대 2018년 이슈리포트), 업무관련성이 있어 보이지만 취업가능 결정이 내려진 사례가 다수 확인 되는(참여연대 2017년 이슈리포트) 등 부실심사 의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취업심사결과에 대한 공정성 확보와 국민의 신뢰 제고를 위해서라도 시민들이 심사과정을 감시⋅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해당 정보는 공개되어야 하기에 서울행정법원에 정보공개처분 취소 청구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에서는 대부분의 정보를 비공개하고 딱 두 개의 정보만 공개하라는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고 항소심에서는 기각되었습니다. 

큰 힘을 가졌던 공직자가 퇴직 후 이해관계가 있는 기업에서 일정 기간 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는지 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시민단체의 본분인 권력 감시와 국민의 알 권리 실현을 위해 국가를 상대로 한 4년간의 공익소송의 결과로 돌아온 것은 429만 5577원짜리 청구서였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의 소송비용확정 결정문 중 소송비용계산서
▲ 인사혁신처에 제기한 정보공개 공익소송의 패소비용  서울행정법원의 소송비용확정 결정문 중 소송비용계산서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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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소송 패소비용, 납부 거부 아닌 유예

공익소송을 통해 우리 사회는 더 나은 사회로 바뀌어 왔습니다. 기존의 주류적 판례에서 인정하고 있지 않은 새로운 법 해석을 이끌어냄으로써 사회 모순, 인권 개선 등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이 과정에서 여론을 형성하고 국민 참여를 촉발했습니다.

김포공항 주변 주민들의 국가 상대 소음피해에 대한 집단소송이나 서울광장 차벽 위헌결정, 이동통신사에 대한 통신자료 제공내역 정보공개청구 및 손해배상청구,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이 가능하게 된 것들 모두 공익소송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참여연대가 패소한 정보공개소송 역시 공익소송입니다.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묻는 정보공개청구제도의 근거법인 '정보공개법'은 국민의 알권리 보호 차원에서 국민 누구나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비공개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일률적으로 과도한 소가를 적용하여 패소 시 소송비용을 부담시켜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크게 제약하고, 이를 통한 행정 감시 등 공익소송을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2021년 2월에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진보네트워크센터, 전국언론노동조합, 천주교인권위원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이같은 의견을 담아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각하되었습니다. 법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이었습니다.

이제 '민사소송법'이나 '정보공개법' 개정을 통해 공익소송 패소비용문제를 개선해야 합니다. 참여연대는 이 문제를 알리고 법 개정에 힘을 모으기 위해 정보공개청구 공익소송의 패소비용 납부를 법이 개정될 때까지 유예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참여연대가 소송비용 납부를 유예하고 있는 공익소송은 두 개입니다. 앞서 소개한 2018년 인사혁신처에 한 취업심사 관련 정보공개청구 소송과 2019년 국방부에 한 사드 관련 정보공개소송입니다.

참여연대는 2019년 10월, 국방부의 패소비용 680여만 원 납부 통지에 대해 공익소송비용 관련 제도개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소송비용 납부를 유예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법무부에 제도개선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이후 21대 국회의원들과 수 차례 토론회를 진행하며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도 적극적으로 이 문제의 개선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지난 1월에는 인사혁신처에도 공익소송비용 관련 제도 개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소송비용 납부를 유예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하고 법무부에 제도개선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인사혁신처는 납부 유예는 법무부 소관이라며 벌써 5번째 독촉장을 보내왔습니다. 

국방부는 독촉하지 않는데 인사혁신처만 독촉장을 계속 보내는 것을 문제삼는 건 아닙니다. 모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도 시민단체 본분에 충실하게 공익소송 패소비용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해법을 찾아가겠습니다.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주세요.

덧붙이는 글 | 해당 내용은 참여연대 홈페이지(www.peoplepower21.org)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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