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여름-가을 200곳의 정점 조사에는 녹색연합 활동가 8명이 투여되었다. 제주도 해안마을 97개를 4개 팀이 행정 구역별로 나누어 조사했다. 푸르른 제주 바다의 해안가를 돌아보며 진행하는 조사였기에, 몇몇 활동가들은 들뜬 마음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며칠간 갯녹음을 조사하며 제주 바다의 죽음을 목도한 활동가들은 점점 절망했다.
"가는 곳마다 갯녹음이 발견돼요. 갯녹음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 곳이 없어요. 원래 제주 바다는 어떻게 생겼죠? 해조류가 이렇게 없는 것이 정상적인 제주 바다의 모습인가요?"
활동가들의 절망감은 조사 결과가 확인해준다. 2021년 여름-가을 조사하였던 200곳 중 모래 해변 2곳을 제외한 198곳, 97개 해안마을 전체에서 갯녹음이 진행 중이었다. 조간대 해조류가 발견된 곳은 고작 18개 마을뿐이었다. 이것도 해조류 피도가 30%를 넘지 못했다
. 즉 97개 마을 모두 갯녹음-심각* 단계로 진행 중이었다.
조사 정점 200곳의 사진과 기록을 모두 정리하여 해조류 전문가를 찾아갔다. '우리가 확인한 것이 갯녹음이 맞는가', '제주의 모든 연안에 갯녹음이 진행된 것이 맞는가'를 다시 묻지 않고서는 이 절망적인 결과를 우리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말하던 그는 말을 덧붙였다.
"갯녹음 현상은 5m 이내 수심에서 미역, 모자반 등 해조류가 사라지고, 이후 수심 5~10m 이하의 감태, 다시마 등 대형 갈조류가, 마지막에 조간대의 톳 등이 사라지는 순서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이번 조사를 통해 조간대 갯녹음을 확인했다는 것은 이미 조하대 얕은 수심의 바다도 갯녹음이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수중 조사에서 확인하였던 수중 5m 이내의 서귀포항 동방파제 지역은 이미 극심한 갯녹음 현상으로 아무것도 살지 않는 죽음의 바다로 변해 있었다. 서귀포 외돌개 수심 15m 지점에서도 감태 등 대형 갈조류는 거의 사라져 갯녹음 현상이 깊게 확산되고 있었고, 대정면 광어양식장 배출수 인근에서 촬영한 수중 영상에서도 갯녹음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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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위기 최전선, 제주바다 인터뷰 - 제주바다 갯녹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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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녹음 정상 - 진행 - 심각 정도의 수준은 수산자원관리공단 기준에 따라 유∙무절 석회조류 피도 30% 이하 엽상형 해조류 피도 60% 이상은 정상, 유∙무절 석회조류 피도 30~70% 이하 엽상형 해조류 피도 30~60%는 진행, 유∙무절 석회조류 피도 70% 이상 엽상형 해조류 피도 30% 이하는 심각으로 판단한다.)
아름다운 곳마다 갯녹음
지난해 갯녹음 조사가 한창이던 가을, 제주도 갯바위 위에서 돗자리를 펴고 맥주를 마시는 장면의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우리는 그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진 속 갯바위가 하얀 석회조류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애써 아름다운 바다를 찾아 바캉스를 즐기는 장면을 연출했을 텐데, 그 바캉스는 바다 생명들이 죽어가는 갯녹음이 한창인 바위에서의 파티였다.
제주도가 우리나라 제1의 관광지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서귀포시 성산 일출봉, 고성리 섭지코지, 신풍 목장·표선 해안, 남원리 큰엉 해안경승지, 하효동 게우지코지, 보목동 소천지, 동홍동 정방폭포, 법환동 범섬 조망지, 서홍동 황우지 선녀탕, 대포동 주상절리대, 중문 색달해수욕장, 사계리 용머리 해안, 사계 해수욕장, 상모리 송악산 둘레길 해안, 하모해수욕장, 그리고 제주시 권역의 고산리 수월봉 지질공원, 신창리 풍차 해안, 월령리 천연기념물 선인장자생지, 협재해수욕장, 애월 해안도로, 용담이동 용두암 해안, 건입동 탑동 광장, 함덕해수욕장, 함덕·북촌리 서우봉 일대, 제주 북동 해안
위에 언급한 곳들은 유명 관광지를 말한 것이 아니다. 갯녹음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곳을 말한 것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관광객들이 찾아가고 있을 이 아름다운 관광지에 물이 빠지면 갯녹음으로 황폐해진 바다가 드러난다. 이곳을 배경으로 찍었을 관광객 사진 속의 바다 모습은 석회조류가 허옇게 덕지덕지 붙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절망스러운 풍경일 것이다.
봄, 해조류가 자라나는 계절... 그러나
바다의 계절은 육지의 계절보다 한 계절 느리다. 육지의 가을은 수온이 가장 높은 바다의 여름, 육지의 봄은 수온이 가장 낮은 바다의 겨울이라고 할 수 있다. 해조류는 주로 바다의 겨울, 즉 육지의 봄에 자라 5월에 가장 풍부해진다. 2021년 여름~가을 조사는 해조류가 포자를 방출하고 탈락하거나 쇠퇴하는 시기에 조사였기에, 해조류가 자라나는 2022년 겨울~봄에 관광지, 해양경관우수지역, 해조류 발견지역 등 주요 지역 43곳을 선정하여 계절 조사를 진행했다.
해조류는 수온 변화에 민감하다. 올봄, 이례적인 저수온 현상으로 최근 3년 중 가장 낮은 수온을 기록하여 해조류가 많이 자라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조간대 갯녹음은 예상보다 상당히 심각하게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제주시 권역은 조사한 19곳 중 12곳에서 해조류가 봄을 맞아 성장하여 갯녹음 '심각' 단계에서 '진행' 단계로 완화되었지만, 서귀포시 권역은 조사지역 24곳 모두 여전히 갯녹음 '심각' 단계를 유지했다. 해조류가 풍성하게 자라야 할 봄임에도, 조간대 해조류는 자취를 감추고 석회조류만 바위를 빼곡히 덮고 있었다.
해조류가 다시 자라난 제주시 권역의 12곳마저도 정상적인 제주 조간대 분포를 보이는 곳은 찾기 어려웠다. 해조류 전문가는 "건조에 내성이 있는 패 등이 최상부에, 그 다음 파도에 강하면서 다소 건조 내성을 갖는 지충이, 톳, 꽈배기모자반(또는 조간대 모자반류) 등이 서식하고, 조하대가 시작되는 부근에는 파도에 내성이 강한 우뭇가사리, 서실류와 같은 떼 조류가 순차적으로 분포하는 것이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묘사했지만, 해조류가 발견된 곳 대부분은 지충이나 톳과 같은 우세한 한 종이 인근 해역을 뒤덮고 있는 불완전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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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겨울-봄 제주 연안 조간대 갯녹음 조사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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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흉년인 제주 바다
모자반, 톳, 미역, 감태, 우뭇가사리 등 제주 토속 해조류는 직접 식용으로 쓰일 뿐만 아니라 약용으로도 이용되어 예로부터 제주 어업인에게 주요한 소득원이다. 그러나 해조류의 생산량이 가장 많고, 상품 출하를 위해 수확해야 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43곳 어느 곳에서도 상품성 있는 미역, 모자반은 발견할 수 없었다. 해양수산부 품종/어업별 생산량 통계를 확인한 결과 제주도 해조류의 생산량은 해마다 오르내림은 있었지만, 통계가 집계된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생산량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2017년 이후로 우뭇가사리 톳 등 제주도 주요 해조류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었다. 제주 해양생태 전문가의 진단은 이랬다.
"미역, 모자반 같은 경우, 해갈이를 하므로 1년 주기로 자라고 그 다음 한 해는 안 보이기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나 5년 전인 2017년 이후부터 해갈이도 없고 해조류 자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원인은 태풍과 풍랑의 영향으로 2010년 이후 지금까지 겨울철 풍랑주의보 발효 횟수가 많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예측된다. 해조류가 자라나는 늦가을부터 겨울철 초기 성장 때 풍랑에 못 견디고 잘려서 죽어 나간다. 조간대부터 조하대 5미터 지점까지 영향을 많이 받으며, 큰 풍랑의 횟수가 잦아 수심 20m 권까지도 영향을 받는다. 또한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의 영향으로 제주도는 최근 10년 사이 겨울철 수온이 최대 3도까지 올라 해조류 급감의 주요 원인은 풍랑 스트레스와 수온 상승으로 생각된다."
한편 해조류 전문가는 "제주도 인구수가 증가한 만큼 우뭇가사리, 모자반 생산량은 감소했다"며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뿐만 아니라 사람의 활동, 즉 인위적인 오염원 유입의 영향 또한 클 것이라고 강조하며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하고, 바다에 무엇을 버리는지, 그 버린 것 중에 어떤 물질이 해조류 군락을 훼손하는지 먼저 진단하고 그 원인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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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주요 해조류 생산량 통계 그래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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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 없는 바다숲 조성사업, 바다에 3400억 원 들이붓기
정부에서는 갯녹음을 해결하기 위해 '바다숲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9년부터 2021년까지 3443억 원, 1년에 300억 이상 투여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국가 예산 외에 지자체 관리예산을 더하면 매해 바다숲 조성, 관리에 지출된 예산은 천문학적인 숫자로 늘어난다. 바다숲 조성을 위해 인공어초를 만들어서 바다에 투하하고 해조류의 종자를 이식한다. 자연석을 투하하기도 하고, 포자가 든 모조주머니나 해조류 종자를 줄에 매다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바다숲을 조성한다.
그러나, 바다숲 조성사업의 문제점은 오랫동안 지적되어 왔다. 2019년 감사원은 '바다숲 조성 사업 추진 부적정' 공문을 통해 해양수산부에 관리·감독 시정을, 실행 주체인 한국수산자원공단에 주의 요구를 통보했다. 바다숲 조성 효과 점검, 갯녹음의 효율적 제거, 관리·감독 방안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해조류 전문가들 역시 해조류 서식 환경보다 깊은 곳에 인공어초를 투하하거나, 해조류의 생식 주기를 고려하지 않고 예산 집행 시기에 맞추어 해조류 포자를 심는 등 바다숲 조성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정부는 갯녹음의 심각성을 알리고 국민의 관심 속에 바다숲을 조성하기 위해 5월 10일을 바다식목일로 지정했다. 그리곤 매해 기관별, 지자체별로 바다식목일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하고 (물론, 바다숲 조성사업 예산에는, 이러한 행사 개최비도 들어간다), 바다숲 조성 면적으로 대표되는 바다숲 조성사업의 성과를 셀프 치하한다. 현재까지 2만6644헥타르(ha)를 조성했다고 하지만 그 효과는 구체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다.
다시 살아날 바다숲을 상상하며
조사 후에 만난 제주의 해양생태 전문가는 "제주 바다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제주 바다 조간대를 보면 생태적으로 회복할 힘을 상실했다. 발상의 전환 없이 현재 바다 상황을 바꾸기는 불가능할 것이다"라는 비관적인 의견을 주기도 했다.
해조류 전문가도 "해조류가 사라지는 속도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너무 빨라 무서울 정도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갯녹음을 해결하기 위해서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이 있다는 점에 희망을 건다.
제주도정과 도의회가 제주 바다 비상 상황을 선포하고 이에 맞는 조직, 인력, 예산을 배정한다면, 갯녹음 발생 원인에 대해 정밀 조사하고 섬 환경수용성을 최우선으로 오염물질 배출 시설과 산업에 대한 규제 및 관리를 강화한다면, 바다숲 조성사업처럼 원인에 손대지 않고 현상을 수습하는 임시처방식 정책이 아니라 해양생태계를 보호·복원하기 위해 실효성 있는 계획을 수립한다면, 민관협동협의체와 중앙행정부처가 제주도의 갯녹음 확산 방지와 해양생태계 보호를 위한 지원 방안을 수립한다면, 결국 바다숲이 살아나고 제주 바다가 다시 풍요로워질 것이다. 사라져가는 구쟁기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녹색연합 해양생태팀 활동가입니다. 녹색연합 홈페이지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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