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5일 한덕수 총리는 "산업계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일종의 규제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면서 "우리나라 CEO와 외국 CEO가 책임이나 이런 면에서 너무 다른 것 아닌가 하는 것을 봐야 한다. 가능한 우리로서는 국제적인 기준을 맞춰가는 게 전체적인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타당하지 않겠느냐"며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법 개정 의사를 보였다고 한다.
한 총리의 말대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일종의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라면 중대재해처벌법 이전은 규제가 아닌 상태, 즉 사업장 안전은 사용자에 의한 자율적 통제 하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용자에 의한 자율적 통제 상태의 사회적 결과는 어떠한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1년 작업장 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총 2080명(사고 828명, 질병 1252명), 부상자 수는 12만 2713명(사고 10만 2278명, 질병 2만 435명)이었다. 산재보험요율 인상을 우려한 사용자가 재해 당사자 또는 유족과 사적 합의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실제 산업재해는 정부가 집계한 통계보다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산업재해에 대한 사용자의 이해타산
사용자의 관점에서 사업장 안전 관련 비용과 수익을 생각해보자. 먼저 사업장의 산업재해는 낮은 확률로 발생한다. 산업재해가 없는 상태가 일상적이며 그것의 발생은 예외적이다. 둘째, 초기에는 적은 투자로도 산업재해의 발생 확률을 낮출 수 있지만 그 확률을 0으로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셋째, 투자는 당장 현금으로 지출되지만 투자로 인한 수익은 직접적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안전설비로 인해 노동자 사망이 부상으로 경감되었다면, 수익은 이렇게 경감된 산업재해로 인해 지출하지 않게 된 비용이다. 그러나 사용자는 비용청구서 앞에서 안전설비가 사고 예방에 효과가 없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안전설비의 효과는 언제나 가설로만 존재할 뿐이다. 더군다나 안전을 위한 투자, 예를 들어 안전 설비, 안전 교육과 훈련 등은 기존의 작업속도를 늦추면 늦췄지 더 빠르게 만들지 않기 때문에 단기적인 생산성을 감소시킨다.
사용자는 안전을 위한 투자를 온전히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사용자가 투자를 하지 않을 경우 산업재해 발생 시 크건 작건 사회적으로 비용을 분담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산업재해 발생 시 그 경중에 따라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 먼저, 중하지 않은 부상사고는 산재보험이 아닌 개인적 합의를 통해 처리할 수 있다. 합의금을 더 제공하는 대신 개인의 직장의료보험을 사용하게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산재보험요율 인상을 피할 수 있다. 다음으로, 중한 부상 또는 사망사고는 산재보험을 통해 처리할 수 있다. 산재보험요율이 오르는 부담이 있지만, 중대한 산업재해에 대한 재정적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처리할 수 있다.
투자로 인한 수익은 가설적이고 계산하기 어렵다. 반면 투자하지 않은 경우의 비용은 계산하기 어렵지 않다. 부상 또는 사망한 노동자에 대한 미안함, 위험사업장 낙인, 신규 채용의 어려움 등 다소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 있으나 당장 현금이 지출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가 고려하는 비용과 수익 항목들은 그 크기에 있어서 사업장 안전을 위한 투자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쏠려 있다. 사업장 안전에 대한 자율적 규제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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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안전 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 등을 규정했다.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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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의 이해타산 공식을 바꿔야
사업장의 산업재해를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용자의 이해타산 공식, 즉 산업재해 예방으로 인한 수익과 산업재해 발생으로 인한 비용의 크기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이유로 수익을 크게 만들기는 어렵지만, 비용을 크게 만들기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중대재해처벌법의 사용자 처벌 조항은 벌금과 인신구속을 통해 그 비용을 크게 만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용자들의 거센 집단적 반발은 적어도 사용자의 이해타산 공식을 바꾸는데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올해 초 대부분의 공기업 사장들이 사업장 안전을 경영의 최우선 목표로 선정한 것이나, 50인 이상 사업장의 사용자들이 현장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윤석열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49번째로 '산업재해 취약부문에 대한 산업재해 예방을 강화하고, 산업현장에 맞게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해 기업 자율의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선정하였다. 세부적 방안들은 크게 '① 산재예방 지원 확대 및 대·중소 상생체계 확산 ② 산재예방 인프라 혁신 ③ 건강보호체계 구축 ④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 및 재활·복귀 지원 ⑤ 산업안전보건 관계법령 정비'로 정리할 수 있다.
특히 ⑤와 관련해서 '법령 개정 등을 통해 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지침·매뉴얼을 통해 경영자의 안전 및 보건확보 의무 명확화'를 명시하였다. 여기에 대통령 선거 이전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의지를 표명해왔고, 한덕수 총리도 언급한 것처럼, 중대재해처벌법에 명시된 경영자의 책임을 완화시키는 것도 주요 국정과제 중의 하나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다면 49번째 국정과제에서 제시된 방안들은 사용자의 이해타산 공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먼저 산재예방에 대한 지원과 인프라 혁신 방안들은 특히 여유가 없어 안전을 위한 투자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사용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지원으로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안전을 위한 투자 총액이 증가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사용자는 정부가 지원하는 만큼 투자 금액을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지원은 사용자의 투자 금액을 높이는 방식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경영자의 안전 및 보건확보 의무 명확화'와 중대재해처벌법의 사용자 처벌 조항의 완화가 반드시 동시에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 전자는 향후 국가와 사용자, 사용자와 노동자 간 법적 분쟁 가능성과 판결의 불확실성을 낮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반면 후자는 사용자의 산업재해 발생으로 인한 비용을 낮춤으로써 오히려 산업재해에 대한 무관심을 키울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법원은 억울한 사용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여전히 다른 사항들을 고려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사용자 처벌 조항을 약화시켜 나쁜 사용자들을 배려할 필요는 없다.
사용자의 인식 전환 필요
사용자나 노동자나, 그 누구도 자기 직원이, 또는 자기 자신이 죽거나 부상당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때문에 사업장의 안전에 대해 누구보다도 민감하다. 그러나 사용자는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작업 현장에 항상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안전사고를 통제하는데 한계가 있다. 반면 현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는 산업재해의 발생가능성, 급박한 위험을 가장 빠르게 인식하며, 또한 1차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에 잠재적 위험까지를 포함하여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편에서는 작업중지권의 악용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러한 우려는 품질관리, 의사결정 참여 등 노동자에게 권한을 이양할 때 언제나 있어 왔으나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마다의 경제적 가치를 숫자로 부여할 수는 있더라도, 사람의 신체와 생명에 대한 위협을 두고 이해타산을 앞세우지는 말자. 나의 사업장에 내 아들과 딸이 일하게 할 수 있는가? 이해타산 이전에 사용자는 사업장 안전에 대한 의식을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기업 자율의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최소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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