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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최고 영성가 다석의 마지막 강연 “가진 게 없다는 건 거짓”

등록 :2022-08-02 08:00수정 :2022-08-02 13:48

함석헌 등 지식인들 스승 류영모
광주 수도원 동광원서 25년간 연
하계수련회 최후강연 내용 담겨
“구원은 자신에게 달려 있어”
생전 강연하는 다석 류영모. <한겨레> 자료사진
생전 강연하는 다석 류영모. <한겨레> 자료사진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이 줄었지만, 예전엔 교회 하계수련회야말로 신앙을 다지기 위한 교인들의 필수 코스였다. 교회와 신앙기관에 따라 부흥회처럼 수련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성경 공부, 교인 간 교제 위주로 진행하는 곳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 전남 광주 동광원(개신교 수도원)의 하계수련회는 동서고금에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마음공부 수련회로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대표 진보 지식인인 함석헌(1901~1989)이 평생 스승으로 모실 만큼, 근현대 한국기독교 최고의 영성가로 꼽히는 다석 류영모(1890~1981)가 ‘맨발의 성자’인 이현필(1913~1964)을 비롯한 광주 동광원의 수녀와 수사들을 대상으로 하계수련회를 해마다 여름 1주일씩 진행했기 때문이다. 다석이 56살이었던 1946년부터 81살 때인 1971년까지 25년간 이어졌던 동광원 하계수련회 강연 가운데 마지막 해인 1971년의 강연록이 ‘다석 류영모의 마지막 강의’ <므름 브름 프름>(씨알재단 펴냄)으로 나왔다. 키가 160㎝도 안 되는 단구에 하루 한끼만 먹고, 52살의 종교 체험 이후로는 성관계를 끊고, 널판 위에서 자며, 무릎을 꿇은 채 온종일 강의를 이어갔던 다석의 쩌렁쩌렁한 기운이 삼복더위를 날려주는 듯하다.

 

“세상에서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놈이라 해서 무산자라 하는 이따위 소리를 합니다. 무산자는 세상에 없어요. 왜냐? 몸을 가졌는데,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그런 거짓이 어디 있어요? 이 세상에서 코로 숨을 쉬는 사람 중에서 소유가 전혀 없다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다석 류영모. &lt;한겨레&gt; 자료사진
다석 류영모. <한겨레> 자료사진

광주 동광원은 주로 폐병에 걸려 갈 곳이 없는 이들이 의탁한 곳이다. 당시 이현필을 비롯한 수사와 수녀들도 신발도 없이 맨발로 걸어 다닐 정도로, 흙수저도 아닌 무수저였다. 다석은 이들을 향해 “몸과 맘과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무소유자가 아니라, 말할 수 없이 큰 보화를 지니고 있는 왕”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동광원 내에 다석과 이현필의 사상을 연구하기 위해 설립된 귀일사상연구소의 심중식 소장이 편집했다. 심 소장은 “10여년 전 류영모의 제자인 박영호 선생께서 당시 녹취를 편집해 책을 출간한 적이 있는데, 부분 부분이 잘려 가감이 많고, 강연에서 한번도 등장하지 않은 단어인 ‘얼나’가 많이 나오기에, 해설 없이 원문을 그대로 전달하는 게 필요하다”고 여겨 “원문 녹취록을 그대로 담았다”고 밝혔다. 다석 사상은 다른 데서 들어본 적이 없을 만큼 독특한데다 깊이가 있어서 어렵기로 유명하다. 다석이 35년간 매주 서울와이엠시에이(YMCA)에서 진행한 강연도 함석헌, 한글학자 이정호(1913~2004), 류승국(1923~2011) 정신문화연구원장, 김흥호(1919~2012) 이화여대 교수 등 이 나라 최고의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했기에 일반인들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심 소장은 “당시 동광원 사람들은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어려운 말 빼고 가장 쉬운 말로 신앙의 핵심만 강연했는데, 그 마지막 강좌를 있는 그대로 공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가진 것을 잘 쓰는 것이 자유다. 자기 몸으로 말미암아서 모든 걸 한다. 그러니 ‘아이고, 세상에 사람이 뭘 할 수가 있나? (하나님이) 해주시지 않는다면…’이라며 믿음으로만 구원 얻고 행할 수 없다는 심한 지경까지 갔는데, 그게 실상 말이 됩니까? 믿는 건 누가 믿어요? 내가 믿지요. 믿어야 구원을 얻지. 누가 믿어? 믿음에 들어가는 시작도 내가 하는 거예요. 회개를 해도 내가 해야죠.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전남 광주 동광원에서 1971년 하계수련회를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은 다석 류영모(맨 앞줄 왼쪽 둘째)와 동광원 수도자들. 씨알재단 제공
전남 광주 동광원에서 1971년 하계수련회를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은 다석 류영모(맨 앞줄 왼쪽 둘째)와 동광원 수도자들. 씨알재단 제공

다석은 “몸과 마음, 정신 속에는 무궁한 보물이 들어 있다”며 “이 보화를 발견하고 캐내서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자유인”이라고 강조했다. 마음을 다하면 천성을 알게 되고, 천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다석은 “사람이 미쳤다고 할 때 ‘실성했다’고 하는데, 그건 ‘천성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며, 천성을 잃어버리면 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수의 이름만으로 구원받는다고 해요. 불교에서도 ‘하늘 위로 가나, 아래로 가나 부처만 한 분이 없다’며 ‘천상천하무여불’을 하루에도 열번 스무번 연거푸 불러요. 세상은 예수의 이름만 팔아먹어요.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못 얻는다고 합니다. 억만번 예수를 불러보시오. 그렇게 되는가요? 사도신조(신앙고백문)의 뜻은 하나님의 뜻대로 생명의 온전한 속알이 되는 그 뜻으로 살아야, 예수가 도달한 것같이 하느님 품 안에 들어가고 산다는 겁니다. 이름만 팔지 말고 뜻이 반듯해야 합니다.

 

이 책은 부록으로 다석을 30여년 모신 김흥호 전 이화여대 교수와 심중식 소장이 이 녹취록이 담은 다석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덧붙였다. 이 책의 제목은 한글이 소리글자만이 아닌 뜻을 담고 있는, 하늘의 계시라고 여긴 다석이 쓴 순 한글로 꾸몄다. 심 소장은 책 제목 <므름 브름 프름>에 대해 “물과 불, 상극이 풀어져서 상생이 된다는 인생의 3단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씨알재단 (063)282-5157.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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