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길어올려 봐야 할 사실이 떠오른다. 먼저 대통령실 영빈관 신축을 둘러싼 기재부의 태세전환이요, 두 번째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예산 관련 방향성이다.
영빈관 신축 예산 편성과 기재부의 나라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
지난해 1월 당시 정세균 국무총리는 기획재정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코로나19 방역으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이른바 손실보상법 추진 과정에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기재부를 향해 일국의 국무총리가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기재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개혁 저항 세력으로 지칭되며 문재인 정부와 갈등을 빚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기재부는 '곳간지기'를 자처하며 코로나 추경 등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들거나 딴죽을 거는 행태를 보여왔다. 그랬던 기재부가 달라졌다. 15일 기재부는 영빈관 신축 예산을 편성에 대해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외빈 접견과 행사 지원 등을 위한 주요 부속시설을 신축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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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방기선 기획재정부 제1차관과 대화하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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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부에서 기재부는 국무총리조차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고 질타를 했음에도 꿈쩍 않던 '곳간지기' 역할을 자임해왔다. 반면 현 정부 들어 논란이 예고된 영빈관 신축 예산 편성을 너무나도 쉽게 '오케이'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윤석열 정부 고위직엔 '검찰 다음이 기재부'라고 할 만큼 기재부 출신들이 대거 포진했다. 취임 이후 공석이던 보건복지부 장관에까지 기재부 출신 조규홍 현 1차관이 지명됐다. 이밖에 대통령 비서실장 및 총리, 국무조정실장, 문체부 차관 등 전문 분야와 상관 없는 고위직까지 기재부 출신들이 꿰찼다.
문재인 정부 당시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는 지적이 나왔다면, '윤석열 정부는 검찰과 기재부의 나라'라는 볼멘소리가 아깝지 않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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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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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이 같은 날 발표한 '복지 민간 주도'
영빈관 신축을 둘러싼 논란에 이어 복지 예산 관련 '민간주도' 체제로의 개편도 논란이다. 영빈관 신축 예산 편성이 논란이 됐던 15일 오후,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은 향후 정부 복지 정책 방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핵심은 두 가지다. 현금 복지는 일을 할 수 없거나 해도 소득이 불충분한 취약계층 위주로 내실화하는 것과 전국민의 욕구가 분명한 돌봄, 요양, 교육, 보양, 건강 등 서비스 복지를 민간 주도로 고도화하는 것(이다)(...).
팍팍한 재정 형편을 감안할 때 약자부터 든든하게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10년 간 전개된 우리나라 복지 확대를 보면 득표에 유리한 포퓰리즘적 복지사업이 눈에 띄는데 이런 관행은 바로잡아야 한다."
기초 복지 서비스를 '민간 주도'로 전환하겠다는 발상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약자들을 위한 지원을 어떻게든 줄이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또 공공 복지는 돈 없는 사람들을 위한 시혜라는 기존 보수정권의 철학을 넘어, 아예 복지 체계 전체를 건드려서 복지 예산 자체를 줄이겠다는 위험한 발상은 아닌지 우려를 낳을 만하다.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또 있었다. '민간주도'라고 표현만 바꿨을 뿐인 사실상의 복지 서비스 민영화 체제 전환이라는 변화를 윤석열 정부가 숨기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이날 안 비서관은 이에 대한 물음에 "모든 것을 국가, 공공이 하는 것이 좋은 복지인 것처럼 오도된 상태이지만 실제로 가장 발달한 복지국가라 이야기하는 북유럽의 경우 많은 종류의 서비스들이 완전 무상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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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정부가 공공복지는 돈 없는 사람들을 위한 시혜라는 기존 보수 정권의 철학을 넘어 아예 복지 체계 전체를 건드려서 복지 예산 자체를 줄이겠다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낳고 있다. 사진은 2021년 10월 25일 오후 서울 명동 거리에서 점심식사를 하려는 시민들 |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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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약자 복지 및 무상 복지가 포퓰리즘과 좌파 정책이란 과거 이명박 정권 정도의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실제 무상 복지의 장단점 및 체제 변화 이후 소외 계층은 생기지 않는지, 그러한 체계 변화가 '지속가능한'이란 허울 속에 졸속으로 진행될 가능성은 없는지 토론과 검증을 거쳐야 할 것이다.
과연 이러한 물음에 대통령실은 또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또 안 수석은 이날 "중복과 누락이 만연하고 수백, 수천 개로 쪼개져 있어 누가 무슨 복지를 받을 수 있는지조차 알기 힘든 상태"라고 작금의 복지 체계를 정의했다. '복지는 시혜'라는 낡은 관점의 반영은 아닌지, 기존 체계 통합이란 이름 하에 단순히 예산 줄이기에 나서는 것 아닌지, 부지불식간에 국민들이 '복지 민영화'란 설국열차에 올라타게 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어 보인다.
공교롭게도, 대통령실은 영빈관 신축 예산 편성이 알려진 날 '복지 민간주도'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소셜 미디어를 비롯해 일반 국민들이 의견을 개진하는 공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폭발하고 있다. 정부 역할의 근간 중 하나인 복지는 민영화하고, 영빈관은 호화롭게 신축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영빈관 신축 취소, 그러나
그리고 16일 저녁 8시 반, 대통령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전격적인 긴급 공지를 통해 "윤 대통령이 국가의 미래자산으로 국격에 걸맞는 행사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지만 취지를 충분히 설명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즉시 예산안을 거둬들여 국민께 심려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했다"라면서 영빈관 신축 계획 전면 취소 소식을 알렸다.
"혈세 낭비"에 대한 국민적 비판 및 "집권하면 영빈관을 옮길 것"이라던 김건희 여사의 과거 발언이 도마 위에 오르자 부담을 느끼고 '전면 철회'라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고 해서 논란을 종식할 수 있을까.
이 결정 자체로 '아마추어 정권'이란 비아냥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제1야당인 민주당은 "대통령실 이전부터 영빈관 신축까지 각종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며 특검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이전 및 그와 관련한 부대 비용으로 올해와 내년 이후 들어갈 예산만 윤 대통령이 애초 밝힌 비용의 10배가 넘는 5420억 원이 든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이중 청와대 공원화에만 467억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복지는 '민간 주도'로 바꾸겠다는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 이전 및 청와대 공원화에 나랏돈을 펑펑 쓰는 꼴을 반길 국민은 없을 것이다. 야당의 특검 요구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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