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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국제사회와 부딪히는 ‘전술핵 재배치’ 가능?...“택도 없어”

미 안보전문가도 “한국국민 위험”이라는데...여권, 핵무기 배치 주장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10.13 ⓒ뉴스1 
 
여권에서 또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권은 문재인 정부 때도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할 때마다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한 바 있는데, 최근 한반도 상황을 ‘강 대 강 국면’으로 이끌면서 남북 대립이 격화되어가자 ‘핵 대 핵 구도’로 가자는 이 주장을 다시 꺼내 든 것이다.

전술핵무기는 폭파 위력이 도시를 초토화 시킬 수 있는 전략핵무기에 비해 크진 않으나 효율성이 높아 국지전에서 활용되는 핵무기다. 이는 1958년 주한미군이 들여오기 시작해 1967년 최대 950기까지 배치됐다가, 미국과 소련이 전략무기제한협정(1972년)과 전략무기감축협정(1980년)을 맺은 뒤 냉전체제가 차츰 완화되면서 한국에서도 전술핵이 철수되기 시작했고, 1991년 12월 노태우 대통령이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서 단 하나의 핵무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됐다. 그리고 이듬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이루어졌다.

‘전술핵 재배치’란 이같이 남한에서 완전히 철수된 전술핵을 다시 배치하자는 주장이다.

이는 국제사회와 합의한 핵확산금지조약(NPT) 위반,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명분 포기, 동북아시아 핵 경쟁 촉발, 한미일·북중러 대결 구도 심화에 따른 한반도 신냉전 최전선화, 인접국 반발에 따른 경제적 피해 등의 우려로 극심한 혼란과 반대가 예상되는 구상이다. 특히, 국제사회와 미국의 핵확산 방지 기조에도 반하는 내용이어서 현실적이지도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내 전문가뿐만 아니라, 미국 외교·안보 전문가들도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미국 백악관조차 최근 한국 일각에서 제기되는 ‘전술핵 재배치’ 주장에 대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가 우리의 목표”라고 답했다.
 
존 커비 백악관 NSC 전략소통조정관 자료사진 ⓒ뉴시스


전술핵 한국 재배치 입장 묻자
백악관 “한반도 비핵화가 목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존 커비 전략소통조정관은 11일 온라인 브리핑에서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미국 정부 입장이 무엇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했다.

커비 조정관은 “우리의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our goal is the complete, verifiabl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라고 분명히 하며, “이를 향한 외교적 길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we believe that there's still a diplomatic path forward to this)”라고 밝혔다. 또 그는 “우리는 그런 종류(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의 결과를 협상하기 위해 김정은과 전제조건 없이 마주 앉을 의향이 있다고 말해왔다”며 미국 바이든 정부의 대북 원칙을 상기시켰다. ‘전술핵 재배치에 관해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동맹에 관한 자신들의 입장과 바람은 한국 측이 말하도록 하자”라고 말했다.

사실상 여권 일각에서 제기하는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바이든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의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로 에둘러 답한 셈이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자료사진 ⓒ김철수 기자


“모순점 너무 많아...택도 없는 소리”
“논의조차 필요 없는 문제”


국내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전술핵 재배치의 수많은 부정적인 측면을 우려하면서도, 당초 이는 현실적이지 않아서 논의조차 불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13일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제가 아는 한에 있어서 (전술핵 재배치는) 불가능한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미국은 전술핵 자체를 줄이고 있고,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하면) 미국의 핵확산 방지라는 중요한 것을 어기게 되는 것이고, 한국이 전작권을 갖고 있지 않은 채 (한국이 사용할 수 없는) 전술핵을 갖고 오는 것도 웃기고, 모순점이 너무 많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이어 “지금 (여권에서) 대북강경책에 계속 불을 지르는데, 미국의 기조는 다르다”라며 “물론, 무력시위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2017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항상 대화는 열려 있다고 하고, 회담할 준비도 돼 있다고 하지 않나”라고 짚었다. 또 “미국 소수 강경파를 제외하고 (미국은) 한반도까지 위기가 찾아오면 미국이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한국이 지나치게 강경책으로 갈 경우, 미국이 (한국을) 제어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전술핵은 택도 없는 소리”라고 평가 절하했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 또한 지난 12일 MBC 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논의가 필요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현실 불가능하기 때문에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전 의원은 “미국의 모든 핵 정책은 국무부 (비확산과) 소관이지, 국방부 소관이 아니다”라며 “핵은 군사무기의 수준을 초월했기 때문에 국방부도 관여 못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아무리 우리가 확장억제협의회를 열고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한다 한들, 전술핵이나 핵과 관련된 사안은 일단 의제 상정이 불가능하다”라고 덧붙였다. 또 만에 하나 전술핵이 한국에 배치된다고 하면 “미국 동백국인 인도,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며, 동맹국들이 모두 전술핵 도입 요구가 강해지면서 핵 확산의 기폭제 역할을 하기에 미국이 이를 사전에 차단할 것이라고 봤다.
 
(자료사진) 지난 2016년 11월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누리당 초선 의원들의 연구모임인 부민포럼이 주최한 ‘트럼프 시대의 한미관계' 세미나에 참석한 트로이 스탠가론(왼쪽부터) KEI 선임연구원,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조나단 폴락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세미나를 하고 있다. ⓒ뉴시스


미 외교·안보 전문가들, 대부분 한목소리
“한국 전술핵 재배치, 한·미 동맹 부담만 가중”

12일 미국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국제방송 ‘미국의소리’(VOA) 보도에 따르면, 대부분의 미국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로버트 랩슨 전 주한 미국대사대리는, VOA와의 인터뷰에서 “(전술핵 재배치가) 한반도 긴장을 크게 고조시킬 수 있는 조치로 보인다”라며 “북한의 오판과 대응의 위험을 높일 뿐 거의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미국의 핵무기가 한국에 재배치 되지 않아야 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도 해당 인터뷰에서 매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특히, 클링너 연구원은 미군에 1990년대 한국에서 철수한 지상발사형 무기들을 더 이상 보유하고 있지도 않다며 “일각에서는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경우 언제든 (고정된) 미사일을 이동식 발사 플랫폼으로 돌릴 수 있다고 제안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수 있고, ‘한국 국민에 대한 위험을 높일 수 있다’(increasing risk to the South Korean population)”라고 경고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인터뷰에서 전술핵 재배치가 한·미 동맹 관계에 정치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워싱턴 조야에는 전술핵 한국 재배치가 매우 논란이 많은 국내 정치 문제로 대두되고, 이것이 한·미 동맹도 논란에 빠뜨릴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라며 조약 동맹일지라도 미국 핵무기를 확산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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