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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김용판 공판] 지난해 대선일 이광석 발언... 권은희가 증언하는 '잃어버린 5일'

13.08.30 23:58l최종 업데이트 13.08.30 23:58l
이병한(han) 박소희(s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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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은 30일 열린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직권남용 등에 대한 공판(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에 첫 번째 증인으로 출석헀다. 사진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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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5일이었습니다."

30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직권남용 등에 대한 공판(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에 첫 번째 증인으로 출석한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지난해 12월 14일부터 19일까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14일은 서울청 사이버 분석관들이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김하영씨의 노트북에서 <오늘의 유머> 아이디와 비밀번호 등 결정적인 단서가 담겨 있는 텍스트 파일을 찾아낸 날이고, 19일은 대선 당일로 뒤늦게야 그 증거물이 수서경찰서로 넘겨진 날이다.

검사가 권 과장에게 물었다.

- 만약 김하영 노트북에서 발견된 메모장 파일이 14일에 전달됐다면, 대선 이전에도 국정원의 인터넷 활동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는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 서울청이 무려 5일이나 지난 19일, 대선 당일에 넘겨줘서 수사가 그만큼 지체됐던 것인가.
"그렇다."

- 수사팀이 2013년 1월경 김하영의 휴대폰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당시 (서울)중앙지검 담당검사는 법원 기준이 휴대폰 압수수색은 더 엄격하니 좀 더 보완해서 청구하자고 했다.
"그렇다. 사실 저희 수사팀은 잃어버린 5일이었다. 증거분석 의뢰 후 바로 반환받아 수사해야 했는데 못한 것을 12월 말에야 했다."

김용판, 권 과장뿐 아니라 이광석 수서서장에도 전화해 영장 청구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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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직원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비방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 수서경찰서 이광석 서장이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서 강남구 대포동 수서경찰서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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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과장은 김용판 전 청장의 '압력 전화'에 대해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권 과장의 증언에 의하면, 오피스텔 대치 중이던 지난해 12월 12일 현장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막는 김 전 청장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권 과장뿐 아니라 이광석 수서경찰서장도 받았다.

그날 오후 2시 9분 김하영씨의 컴퓨터와 휴대폰 등을 압수수색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권 과장에게 김 전 청장이 전화해 "영장을 신청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증언에 의하면, 마침 함께 있던 이광석 수서서장은 전화를 끊은 권 과장에게 "(김 전 청장과) 같은 내용의 통화를 오전에도 하고, 방금 전에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전에는 (영장 신청을 하겠다고) 설득했더니 '수사방침대로 하라'고 했는데 오후에는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설득이 안된다, 막 화를 낸다"고 말했다.

권 과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2005년 경찰에 입문한 후 7년 동안 수사과장 업무를 수행하며 지방청장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 신청 내지는 구체적 사건 관련해 지시받은 것은 처음이었다"고 증언했다.

"과장님 깡통입니다"... "서울청에서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디지털 증거물 반환 거부·지연에 대해서도 상세히 밝혔다. 문제의 이례적인 한밤 중간수사결과 발표가 있던 지난해 12월 16일이 지난 후에도 수서서 수사팀은 디지털 증거물을 전달받지 못했고, 수차례 항의를 거쳐 18일 오후 7시 35분경에야 하드디스트 등 일부를 돌려받았다. 하지만 증언에 의하면, '깡통'이었다.

권 과장은 "당시 수서서 사이버수사팀장이 증거물이 담긴 저장장치를 보고 내용이 없다고 판단, 제게 '과장님 깡통입니다'라고 보고했다"며 "19일 0시 가까운 시각에 사이버팀장 등이 서울청에 직접 쫓아가서 거세게 항의하고 ID와 별명 40개를 받아왔다"고 말했다.

곧바로 수사팀은 ID를 근거로 인터넷에 남아있을 흔적을 찾아 나섰다.

"수사팀은 갑자기 매우 심각해졌다. (자료를 바탕으로) 인터넷에서 구글링 해봤더니 '토탈리콜'이라는 닉네임으로 특정 후보자, 특정 정책과 관련해 발언한 내용과 관련 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사팀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수서)서장과 나, 팀장과 직원들도 누구 하나 퇴근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서장실에 나와 팀장, 지능팀장이 같이 들어가서 두 가지 사항(증거분석 결과에는 볼만한 내용이 없는데, 인터넷 검색하니 증거가 줄줄이 나오는 상황)에 대해 보고했다. 보고를 받자마자 서장이 이렇게 말했다. 정확히 '서울청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라고 말했다."

권 과장은 수서서장의 이 말을 듣고 "(은폐 상황을) 서장도 몰랐구나, 그것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변호인 측, 진술 엇갈리는 부분 집중 공략... 유도심문에 판사 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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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축소·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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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김용판 전 청장의 변호인들은 권 과장 진술의 모순점을 지적하며 신빙성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은 권 과장에게 "키워드 분석 과정을 구체적으로 아느냐", "수서서에 인케이스(디지털 자료 분석 프로그램) 전문가가 있냐", "증인이 경험하거나 알고 있는 사건 중에서 이렇게 많은 키워드를 검색한 적이 있냐" 등을 질문한 뒤 "아니다"란 답변을 얻어냈다. 키워드 숫자를 줄이는 일은 전문가인 분석팀이 분석 작업의 효율성 등을 위해 판단한 것이며, '검색 키워드 100개 선정'은 보기 드문 수사방식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권 과장은 "하지만 이 사건은 범죄 사실이 구체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피의자 관련 사실을 위한 방법으로 키워드(100개)를 제시했다"며 "증거분석팀은 이대로 진행하는 게 맞지만, 그게 부당하다면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당시 증거분석팀의 근거는 타당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보통 수사팀에는 증거물 분석결과를 담은 보고서만 전할 뿐, 증거물 등은 돌려주지 않는다'는 지적에도 "그건 증거 분석 과정에서 나온 수사단서들이 이미 수사팀에 충분히 건네졌기 때문"이라며 "증거분석팀이 이 과정에서 수사팀을 이렇게 철저히 배제하고 어떠한 단서도 알려주지 않은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변호인이 이 답변을 "다른 사건은 보고서만 보내는데 이 사건이 중요하고 특이해서 증거물 반환이 필요했다고 받아들이면 되냐"고 해석하자, 판사가 나서서 "아니다, 보통과 달리 분석과정에서 충분히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한 것인데 앞뒤 (맥락을) 다 떼면 안 된다"고 제지하기도 했다.

변호인 측 신문 후반부에 서울청 사이버 분석팀이 국정원 직원의 컴퓨터에서 발견된 ID와 별명을 수서서 수사팀에 전달한 시점 등을 두고 수사팀 직원 2명의 진술과 권 과장의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이 제기돼 주목을 받았다.

꼬박 12시간 증인 진술

이날 재판은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10시가 가까워져서야 끝났다. 휴식 및 식사 시간이 있었지만, 꼬박 12시간을 권 과장은 검찰과 변호인 측의 수많은 질문을 받아냈다. 검찰이 준비한 질문의 숫자만 500개 이상이었다. 권 과장은 법원에 들어서기 전 응원 나온 시민들로부터 장미꽃을 여러 송이 받은 채 법정에 들어섰다.

김 전 청장에 대한 3차 공판은 다음주 금요일(9월 6일) 계속된다. 당시 수서서 수사팀 지능팀장과 수사팀장이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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