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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권 행사한다는 ‘노란봉투법’, 오히려 극단적 투쟁 줄여준다

“만약 윤 대통령이 국제사회 권고, 헌재·법원 판단, 국회 무시하고 거부권 행사한다면, 전면적인 저항에 직면할 것”

윤석열 대통령 자료사진 ⓒ대통령실 제공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통과된 노란봉투법을 두고 “망국적 악법”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원내대책회의에 이어 지난 13일 당 공식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에서 진행된 필리버스터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반복해서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관리법에 이어 간호법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어, 이번에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노조를 만들어도 실질적 사용자와 교섭할 수 없었던 간접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이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해 온 “약자 보호”를 위한 법이기도 하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지속해서 개정을 권고한 바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강조한 “글로벌스탠다드”이기도 하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이 법안까지 거부권을 행사하여 입법을 막는다면 자신이 했던 말들을 부정하는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에서는 노란봉투법이 제도화되면 “교섭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지기에 극단적인 비정규직 투쟁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헌법상 노동기본권 보장할 수 없었던 구조
중노위·법원 판결서도 확인된 도입 필요성
“제도화되면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 많아져”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통 ‘노동3권’이라고 부른다. 노동3권은 대한민국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가장 기본권인 기본권 중 하나이며, OECD 거의 모든 국가가 비준하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간접고용노동자들에게는 이 기본적인 권리가 좀처럼 보장되지 않았다.

간접고용노동자가 열악한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회사에 교섭을 요구하면 “원청기업과의 계약조건이 열악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고, 원청기업에 요구하면 “우리 회사와 근로계약 관계도 아닌데 교섭할 의무가 없다”며 거부당했다. 원청기업에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파업 등 쟁의행위라도 하면 원청은 하청과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간접고용노동자들을 모두 손쉽게 해고하거나, 다른 하청노동자를 대체투입하는 식으로 하청노동자의 파업을 손쉽게 무력화했다. 또 이같이 쟁의행위가 쉽게 무력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점거농성이라도 벌이면, 노동자 개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손해배상책임을 물어 괴롭혔다.
 
경찰의 폭력 진압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 ⓒ한국노총 이지현 대변인
여권에서 “극단적인 투쟁”이라고 단순 비하하는 점거농성의 상당수는 이 같은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지난 5월 29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 도로 7m 철탑에서 고공농성 중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구속된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농성을 시작하며 내건 현수막도 “하청 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라”였다. 그는 농성장에서 시간이 생길 때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앞의 글 생략) 사내 하청노동자에게는 노동3권 중 쟁의권은 보장되지 않는다. 노조를 만들고 교섭할 수는 있지만, 원청의 하청사 바꿔치기로 대체근로가 합법이기 때문에 쟁의권을 행사할 의미가 없다. 그래서 포스코 보고 이 분쟁을 해결하자고 하면, 하청사 노사 문제에 공식적으로 개입하기 어렵다 한다. (이하 글 생략)”

유최안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지난해 여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요선) 옥포조선소 선박 건조 작업장에서 31일간 옥쇄농성을 한 배경도 다르지 않다. 대우조선해양이 어려울 때 하청노동자들이 희생해 수년 동안 임금을 30% 정도 줄여 받다가 사정이 개선되어도 임금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자, 하청노동자들은 하청업체들과 교섭을 진행했다. 하지만 아무런 권한이 없는 하청업체와의 교섭은 무의미했다. 하청노동자들은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원청에도 교섭을 요구했으나 원청은 무시로 일관했다. 유 부지회장이 옥쇄농성을 시작한 이유였다. 이런 상황에서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은 옥쇄파업으로 손해가 발생했다며 노조 간부를 상대로 47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협상이 51일 파일만에 타결된 2022년 7월 22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에서 농성을 마친 유최안 대우조선해양 하정지회 부지회장이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2022.07.22. ⓒ뉴시스
이 외에도 2020~2021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농성 등 수많은 사업장에서 같은 배경에서 간접고용노동자들이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을 해야만 했다.

이같이 반복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게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이 법안의 핵심은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헌법상 노동3권을 보장하려는 취지다.

이 같은 법 개정의 필요성은 야당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준사법행정기관 판단이나 법원의 판결에서도 나타난다. 가깝게는 대우조선해양 사례에서도 중앙노동위원회는 원청이 하청업체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행위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택배노조도 직접계약 관계인 대리점과의 교섭이 무의미해 원청인 CJ대한통운에 교섭을 요구했는데, 이 사건에서 중앙노동위원회는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정했고, 1심 법원에서도 같은 취지로 판결했다. 또 현대·기차아 대법원판결 등에서도 원청의 사용자성은 인정된 바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노란봉투법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환경노동위원회를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사건도 있었으나, 헌법재판관 전원은 노란봉투법 국회 본회의 직회부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오히려 국민의힘 의원들이 법사위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고 봤다.

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14일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대우조선해양 중노위 판정 결과를 밝히며 “사용자 측에서는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하청노동의 파업이 더 많아진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청노동자와 원청의 교섭이 제도화되면 교섭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지기에 극단적인 형태의 비정규직 투쟁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택배노조도 지난 9일 성명에서 “파업을 원하는 노동자는 없으며, 파업이 일어나는 주요 원인은 ‘계약관계가 없다’며 진짜 사장들이 교섭을 회피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해당 법안을 최초 발의한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14일 의원총회에서 “만약 윤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권고와 헌재·대법원의 사법적 판단, 국회의 입법 절차와 결정을 무시하고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야당을 비롯한 노동 시민의 전면적인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승훈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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