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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공과(功過)? - 무슨 공?

 

박정희의 공과(功過)? - 무슨 공?
<칼럼> 이활웅 (통일뉴스 상임고문, 재미 통일연구가)
 
 
2012년 10월 23일 (화) 10:55:33 이활웅 hwl91344@yahoo.com
 

이활웅 (본사 상임고문, 재미 통일연구가)

 

12월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후보 간에 치열한 공방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언론은 연일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논평을 소개하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결국 박 후보의 부친이자 “새누리당”으로 이름만 살짝 바꾼 정치세력의 원조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있는 것 같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박정희에게는 공(攻)도 있고 과(過)도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공으로는 산업화의 성과를 꼽고 있지만 과로는 5.16 군사반란,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체제, 가혹한 국민탄압과 정보공작, 그리고 혹독한 고문정치 등이 열거되고 있다. 다만 공이 과를 상쇄 내지 압도했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는 듯하다.

나는 박정희에게 공과가 다 있다는 논리에 수긍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집권 18년 동안 한국경제가 발전한 것을 오로지 그의 공으로 돌리는 것은 지나친 견강부회라고 생각한다. 35년간의 일제식민통치에 과도 있었겠지만 공도 있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에서다.

나 자신의 경험이 혹 참고가 될는지 모르겠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1945년 8월 15일 우리가 일제의 잔혹한 식민지배에서 해방되었을 때, 나는 우리말과 글이 매우 서툴렀다. 그때까지 학교에서 주로 일본인 선생으로부터 일본말과 일본글로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이었다. 다행이 우리말과 글로 자유롭게 의사표시를 할 수 있게 되는 데 여러 해가 걸리지는 않았다. 그것은 비록 일본인 선생들을 통해서 배운 것이었지만, 그래도 셈 세는 법이나 글 짓는 요령과 아울러 인류의 역사, 문화와 예술의 발전 및 동식물계와의 상호관계 등에 대해서는 물론 태양계의 원리, 지구의 형태와 기상변화의 현상 등 기본적인 지식을 이미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나에게 그런 기본지식을 직접 가르쳐주신 일본인 은사들 한분 한분을 인간적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자신의 이익과 야욕을 위해서 한반도 식민지교육정책을 수립하고 그 실시를 우리 민족에게 강요한 일본정부나 조선총독부는 물론 그 고위 간부들에게도 감사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오히려 나는 그것 때문에 그들을 싫어하고 미워한다.

우리는 박정희 집권 18년 동안 정치군인들에게 욕먹고 매 맞고 돈 뜯기는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회사를 설립하고 공장을 건설하고 제품을 생산하고 수출하느라 애쓴 기업인, 관리인, 기술자 그리고 노무자들의 노고를 높이 평가하는데 인색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결과로 이루어진 성과를 박정희독재체제의 공으로 돌리는 것은 천만번 부당한 일이다. 그것은 마치 일본의 식민지배정책이 한반도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구보타 망언을 시인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박정희 소장의 반란군이 1961년 5월16일 발표한 소위 “혁명공약” 제4항은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고 했는데, 이는 그때 그들의 머릿속에 나중에 한국 경제발전의 유형이 된 “외자유치와 수출진흥을 통한 경제발전”과 같은 것은 개념으로도 존재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그들이 그 이듬해 초 발표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울산공업센터계획”은 모두 그들이 뒤집어엎은 장면 정부에서 준비해 놓은 것을 표절한 것이었다.

경제발전은 오로지 박정희의 비상한 지도력으로 말미암아 가능했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비명횡사한 후에 전두환 같은 인물의 통치하에서도 한국 경제는 계속 발전해 갔다.

끝으로, 한국의 여러 전문가들은 박정희의 과오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남북관계 파탄의 과오를 전혀 지적하지 않고 있다. 남북관계는 6.25 전쟁과 이승만의 반북대결정책으로 오랫동안 꽁꽁 얼어붙은 상태였지만, 1960년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리고 4.19혁명을 이룬 민주세력은 그때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구호를 외치며 분단체제 해체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런데 박정희의 반란 군부는 “반공”을 국시의 제1로 삼는다면서 이들을 짓밟고 분단체제를 더욱 굳게 다져나갔다. 그 결과 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동족끼리 물고 뜯는 추태를 멈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의 군사독재는 18년으로 끝났지만 한국군부의 정치지배는 그 후에도 14년을 더 버티었다. 지금 한국의 정치는 일단 문민정치의 틀은 갖추었지만 군사독재의 잔재는 아직 말끔히 치우지 못한 상태이다. 금년 대선은 아직도 남아있는 박정희군사독재의 뿌리를 완전 제거할 수 있느냐의 여부를 가늠하는 선거다.

 

이활웅 (<통일뉴스> 상임고문)
 

 

   
 

 

북간도 용정 출생. 함경북도 선봉 및 나진에서 성장.
해방 후 월남해서 서울시 공무원으로 근무.
6.25때 육군정훈장교로 입대. 1955년 대위로 예편.
1955년부터 1971년까지 외무부 재직.
1972년부터 1991년까지 LA에서 제조업체 설립, 경영.

1984년부터 현재까지 통일문제 관련 기고활동.
1995년 재미동포통일단체 ‘통일마당’ 창설회장.
현재 <통일뉴스> 상임고문.
뉴욕대학 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저서로 『통일의 뜻과 통일의 길』(1993), 『그렇다! 그들도 우리들이다』(1996), 『비기는 통일의 구상』(1999), 『미군이 나가야 통일이 된다』(2002) , 그리고 『평화통일은 비기는 통일이다』(2007, 통일뉴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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