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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민생 내걸고 대기업·부자 감세 쏟아내는 윤 대통령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4/01/24 08:58
  • 수정일
    2024/01/24 08:5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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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경기 용인 중소기업인력개발원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4.01.04.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업무보고를 대체하는 이른바 ‘민생토론회’에서 연이어 대기업·부자 감세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민생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국민 기만이다. 한편으로는, 국가에 미치는 파장이 큰 정책을 전격적으로 발표하는 것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보인 ‘페북 공약’을 떠올리게 한다. 정책 효과에 대한 고민과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이 결여된 선거용 공약이라는 점에서도 둘은 닮았다.

감세 정책 면면을 보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낙수효과론에 기인한다.

대기업 투자 세액공제를 대폭 늘리겠다고 한다.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분야의 시설투자 세액공제를 연장한다. 현재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에 대해 대기업 기준 15%의 세액공제가 적용된다. 올해 일몰 예정인데,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종료된 임시투자세액공제도 1년 연장한다. 최근 3년간 연평균 투자 금액 대비 투자 증가분에 대해 10%p를 추가 공제한다. 대기업이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시설투자 할 때 받을 수 있는 최대 세액공제는 25%에 달한다. 연구개발(R&D) 투자 세액공제율은 40%에 달한다.

윤 대통령은 ‘대기업 퍼주기’라는 비판을 일축했다. 그는 “세액공제로 반도체 기업 투자가 확대되면 관련 생태계 전체 기업의 수익과 일자리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국가 세수도 늘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액공제로 기업 투자가 늘어난다는 전제부터 불확실하다. 세제 지원의 투자 활성화 효과는 검증되지 않았다. 과거 MB 정부에서 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췄지만, 주요 그룹 투자는 줄고 사내유보금만 쌓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뿐 아니라 부자의 세부담도 완화한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추진한다. 금투세는 주식 양도차액이 연 5천만원 이상, 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기타상품 양도차액이 연 250만원 이상일 때 과세한다. 3억원 이하는 22%, 3억원 이상은 27.5%의 세율을 적용한다. 여야 합의로 오는 2025년 1월 시행될 예정이었는데, 윤 대통령이 폐지하겠다고 나섰다.
금투세 폐지는 주식 투자로 웬만한 직장 연봉을 벌어가는 소수 부자를 위한 감세다. 노동자에게는 근로소득세를 부과하고 주식 부자에게는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면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 윤 대통령은 “과거에는 주식 투자자가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국민 대다수가 주식 투자를 한다”고 했지만, 금투세를 낼 만큼 수익을 내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다.

금융상품 투자 이익에 대한 세금을 감면해 주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납입한도는 기존 연 2천만원에서 4천만원으로, 비과세한도는 2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늘린다. 금투세와 같은 주식 부자 감세다.

금투세 폐지 목적에 대해 윤 대통령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금투세를 도입하면, 세금을 내기 싫어 이탈하는 투자자가 늘고 증시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세금 때문에 기업 가치가 떨어진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이 금투세 부과 영향으로 저평가된다면 투자자에게는 매수 기회가 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은 금투세가 아니라 지배구조에 있다는 게 대체적인 진단이다. 총수일가 지배주주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소액주주를 희생시키는 행태가 한국 주식을 외면하게 한다.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합병 등으로 재벌 그룹 계열사 기업가치가 훼손된다는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하는 등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경제개혁연대는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상속세 완화도 언급했다. 상속세 탓에 가업 승계가 안 되고, 기업이 성장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주가가 올라가게 되면, 가업 승계가 불가능해진다”며 “그럼 다른 데다가 기업을 팔아야 되고, 그렇게 되면 근로자 고용 상황도 불안해지고 기업의 여러 가지 기술 제대로 승계되고 발전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에는 독일같이 강소기업이 별로 없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세제와 연결된다”고 덧붙였다. 궤변이다. 재벌 총수일가라는 이유만으로 경영 능력이 뛰어나다고 단정 지을 근거는 없다. 상속세 완화 주장은 기업을 승계 대상으로 보는 후진적 사고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부동산 보유세를 거론한 대목은 가관이다. ‘벤틀리 생산 과정에서 중소기업 일감과 일자리 생기듯 비싼 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중산층과 서민 일자리가 생긴다’는 게 윤 대통령 인식이다. 그는 “만약에 보유 자체에, 비싼 물건을 가지고 있어서 좋은 집을 가지고 있어서 거기에 과세를 한다면 그런 집을 안 만든다”며 보유세 완화를 주장했다. 낙수효과를 유발한다는 것인데, 보유세 완화에 따른 투기 수요 증가와 주거비 부담 가중에 대한 설명은 없다.

이들 감세 조치의 부작용은 명확하다. 정부가 거둬들이는 세수가 줄어든다.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 세액공제와 임투세 연장에 따른 연간 세수 감소분은 각각 1조원, 1조 5천억원에 달한다. 금투세 폐지에 따른 연간 세수 감소는 1조 3천억원으로 추정된다. ISA 혜택 확대는 연 3천억원의 세수 감소를 야기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 윤석열 정부 들어 2022년~지난해 추진된 감세로 2028년까지 발생하는 세수 감소분은 총 89조원에 달한다는 것으로 나라살림연구소는 분석했다.

거듭된 감세로 정부 재정 여력이 약화하고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서민 부담은 가중되는데 대기업과 부자 세금을 깎느라 사회안전망 확충과 경기활성화에 쓸 돈을 줄이는 형국이다.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국채 발행을 거부하는 것과 모순된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2% 안팎으로 전망된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경기가 회복되겠으나, 가계 소비는 위축되고 기업 투자도 부진할 것으로 관측된다. 서민과 자영업자,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경기 진작을 위한 마중물을 공급해야 하는 시기다. 왜곡된 재정 운용을 끊어야 한다. 위기를 고착화시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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