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의 대남 노선 변화 원인은 한미연합군의 참수작전 준비 때문”
□ 이계환 기자 :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뉴욕에서 뵙습니다.
■ 한호석 소장 : 서울에서 만난 지 10년이 넘는 것 같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통일운동 인사들과 통일뉴스 독자들을 위해 근황을 전해주시죠.
■ 며칠 전 생일을 맞아 제 나이 어느덧 예순아홉이 되었지만, 언제나 청춘의 기백을 안고 삽니다. 1981년 7월 유학생으로 뉴욕에 도착한 저는 5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려고 계획했었는데, 스물아홉 나던 1984년 6월에 거의 끝나가던 박사과정 유학생활을 마감하고 청년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40년 동안 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다른 길에 한눈 팔지 않고 자주, 민주, 통일의 길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미국에서 제가 모시고 조국통일운동을 해왔던 임창영 박사님, 홍동근 목사, 선우학원 박사, 문동환 목사를 비롯한 대선배님들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선배님들께서 우리 후배들에게 유업을 넘겨주시고 먼저 떠나셨으니, 저로서는 노년기에 기력이 쇠하기 전에 정신 바짝 차리고 더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 국내에 한호석 소장님의 글을 읽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특히 북측에서 지난해 말 전원회의와 올해 1월 중순 시정연설에서 새로운 대남 정책이 나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놀라기도 하고 또 해석을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소장님을 직접 만나 북측의 변화된 대남 정책에 대해 듣고자 합니다.
이번에 북측 8기 9차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북측의 입장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여러 가지 많겠지만 크게 보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개 국가 관계로 보겠다’, 그다음에 ‘남측을 주적으로 규정하겠다’, 그리고 ‘대남 사업과 관련 대남 기구를 정리하겠다’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남 노선의 근본적 변화라고 볼 수가 있을 것 같은데, 북측이 그간 80년 남북관계사를 지워버리는 듯, 이렇게 대남 정책을 확 바꾼 이유가 무엇일까요?
■ 2024년 1월 15일 김정은 총비서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북관계에 대해 언급한 정세관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연설 원문을 인용하면, “북남관계가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완전한 두 교전국 관계”라고 하였습니다. 남북관계가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만이 아니라,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는 것, 바로 이것이 김정은 총비서의 정세관입니다.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국가 대 국가의 적대관계가 아니라 민족 내부의 적대관계로 인식해왔는데,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에 그런 기존 인식을 폐기하고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였습니다.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면, 1민족 1국가의 원칙 위에 성립된 연방제 통일정책의 존립근거가 사라집니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 총비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연방제 통일정책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김정은 총비서의 시각에서 보면, 연방제 통일정책을 더 이상 추진할 수 없게 된 정세인식에 기초해 적대적 두 국가론이 성립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 시정연설에서 남북관계가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변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연설 원문을 인용하면, 북측은 오랜 기간 남측 역대 정권들을 “동족이고, 동포라는 관점에서 대범한 포옹력과 꾸준한 인내력, 성의 있는 노력을 기울이며... 조국통일의 대의를 허심탄회하게 논하기도 하였”으나 남측 역대 정권들은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을 꿈꾸면서 우리 공화국과의 전면대결을 국책으로 하고 있고, 대결광증이 나날이 패악해지고 오만무례해”졌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역대 정권들 중에서 남북관계를 가장 많이 개선하였다고 하는 문재인 정권마저도 북측 정권을 붕괴시키고 흡수통일하려는 대북정책을 폐기하지 않고 되레 더 강화했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김정은 총비서와 북측 수뇌부를 무력으로 제거하려는 참수작전부대를 2017년 12월 1일 창설했습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참수작전부대를 창설해놓고 2018년 1월 10일 첫 신년사에서 “한반도에 평화의 촛불을 켜겠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 총비서와 북측 수뇌부를 무력으로 제거하려는 참수작전을 은밀히 준비하면서, 그 무슨 ‘평화의 촛불’을 켜겠다고 했고, 남북정상회담장에 나가 김정은 총비서와 악수를 했으니, 그처럼 뻔뻔스러운 행동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문재인 정권은 미국의 요구에 따라 참수작전부대를 창설했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미국의 대북정책을 추종하기 때문에 참수작전부대를 창설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이런 사정은 남북관계가 파탄으로 귀결된 근본원인이 한국 역대 정권들의 대미 추종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오늘까지 70년 동안 6.25전쟁의 교전이 잠정적으로 중지된 정전상태에 있는 것으로 인식해왔는데,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 시정연설에서 그런 기존 인식을 폐기하고 오늘의 남북관계를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였습니다. 남북관계를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한 것은,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기정사실화한 것입니다. 전쟁의 임박성과 불가피성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금 윤석열 정권은 김정은 총비서와 북측 수뇌부를 제거하려는 참수작전 준비를 문재인 정권보다 더욱 본격화하고 있으므로, 그에 대응해서 북측도 윤석열 대통령과 남측 수뇌부를 제거하려는 ‘대한민국 점령작전 준비’를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죠. 한미연합군의 참수작전 준비는 전쟁의 임박성과 불가피성을 유발한 결정적인 원인입니다.
□ 북측이 2021년 제8차 당대회를 통해 당규약을 개정한 바 있습니다. 주요 내용 중의 하나가 ‘민족해방민주주의’ 노선의 폐기였는데, 당시 이를 두고 남측에서 북측의 ‘남조선 혁명론 폐기’, ‘적화통일 폐기’ 나아가 ‘두 개 조선 인정’, ‘조국통일 포기, 평화공존 모색’이라는 평가가 난무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 북측의 대남노선 변화가 당시 당규약 개정과 무슨 연관이 있었을까요?
■ 2021년 1월 초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8차 당대회에서 당규약을 개정하면서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을 수행”한다는 문장이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한다는 문장으로 바뀌었습니다.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이라는 용어는 삭제되었지만, 남측 사회의 자주적 발전은 민족해방혁명과 일맥상통하고, 남측 사회의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민주주의혁명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므로 표현만 달라졌을 뿐 내용은 바뀌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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