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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황상무 씨의 '칼틀막 충성'에 지금 흡족하신지요?

[박세열 칼럼] 청산해야 할 검사 문화, 당장 황상무 씨 해임해야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3.16. 05:05:45

 

"오홍근을 끝내라"

 

결재 서류에 동그라미가 쳐 졌다. 서류에는 3가지 안이 있었다.

 

1안 "오홍근 일가를 몰살해라", 2안 "얘가 기잔데 저녁에 반드시 소주 한잔씩 하고 들어가더라. 술집에 가서 시비 걸어서 얘만 죽여라", 3안 "이놈 혼자만 가서 호되게 혼을 내라." 동그라미는 3안이었다.

 

곧바로 실행에 돌입했다. 1988년 8월 6일이다. 민주화의 공기를 마시면서 군인 출신 대통령이 들어섰다. 숱한 익명들의 묘한 죄책감이 세상을 짓누르고 있었다. 정보사 소속 군인 두 명은 '츄리닝'을 입고 민간인인 것처럼 행세하며 서울 청담동 삼익 아파트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타겟이 보이자 그들은 다가갔다. 

 

"당신이 오홍근이요?" 

 

군인은 다짜고짜 열굴에 주먹을 날렸다. 미리 준비한 칼로"호되게 혼을 내라"는 명령을 실행한 후 대기하고 있던 현대 포니투 승용차 등 차량 두 대를 나눠 타고 도주했다. 그리고 차량 일지를 조작했다. 정보사 군인들은 인체공학에 해박했다. 허벅지 바깥쪽에 칼을 쑤셔 박았다. 34센티미터를 찢었다. 깊이는 3~4센티미터. 허벅지 안쪽으로 칼날이 조금만 더 들어갔다면 동맥을 건드려 사망에 이를 수 있었다. 

 

중앙일보 기자였던 오홍근은 당시 자매지 중앙경제신문 창간을 이틀 앞두고 창간준비를 위해 파견돼 있었다. 중앙일보 사회부 성회용 기자(후에 SBS 보도국장)가 경찰서에서 날밤을 새며 취재해 특종을 터트렸다. 이 사건은 이규홍 준장이 자신의 부하인 박철수 소령에게 지시했고, 박 소령은 네 명의 요원에게 '작전'을 맡겼으며, 정보사령관 이진백이 사건을 보고받고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테러의 원인이 된것은 월간중앙 8월호 '오홍근이 본 세상'이라는 꼭지에 게재된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라는 제목의 칼럼이었다. 

 

그러나 범행을 저지른 군인들은 줄줄이 집행유예,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군판사 김광석은 "(범행) 동기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이기심에서가 아니라 군을 아끼고자 한 충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폭행당한 피해자의 피해 정도가 비교적 경미하다는 점 등을 양형에 참작했다"고 밝혔다. 참으로 무도한 세상이었다. 

 

오홍근은 생전에 이런 증언을 남겼다. 

 

▲ 1988년 8월6일 출근길에 정보사 군인들에게 테러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 오홍근 당시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
MBC와 인터뷰하는 오홍근 ⓒMBC 보도 화면 갈무리

 

세월이 흘렀다. 노인이 된 오홍근에게 한 남성이 불쑥 찾아왔다. 그는 과거 정보사에서 군복무를 했다고 말했다. '회칼 테러'를 자행한 바로 그 부대가 자신이 근무했던 부대라고 고백했다. 운전병이었던 그는 하필 비번이었을 때 일이 벌어졌다고 했고, 하마터면 그 테러에, 배차받은 포니차 운전수로 가담자가 될 뻔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평생 그 사건이 자신을 짓눌러왔다고 말했다. 그 남성은 영화 <도가니> 등을 제작한 삼거리픽처스의 엄용훈 대표다. 엄 대표는 현재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취재와 시나리오 작업을 마쳤다. 제작 과정에서 투자 문제로 애로를 겪고 있지만, 조만간 오홍근 회칼 테러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질 것으로 믿는다. 

 

여기에 또다른 정보사 출신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있다. 황상무라는 사람이다. 14일 MBC 보도를 보면 황상무 씨는 기자들과 점심식사 자리에서 "MBC는 잘 들어"라며 "내가 (군)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 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고 말했다고 한다. KBS 기자 출신이라는데 기본 팩트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아니라 청담동 삼익아파트다. 그리고 경제신문 기자가 아니라 중앙일보에서 중앙경제신문 창간을 위해 파견된 상태였다. 발령을 받긴 했으나 중앙경제신문은 회칼 테러(1988년 8월 6일) 전엔 창간도 되지 않았다.(중앙경제신문은 1988년 8월 8일 창간된다. 1994년에 중앙일보에 흡수 통합된다.) 

 

그 시절 군 정보사 출신 이력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모르겠지만, 황상무 씨는 자신이 한때 군복무로 몸담았던 정보사가 자행한 끔찍한 언론인 테러를 무슨 무용담 늘어놓듯 다른 기자들 앞에서 떠벌렸다. 그래도 기자들은 이런 자를 데리고 정치를 하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잘 들어. 1979년 현직 대통령이 부하의 총에..." 따위의 농담을 던지진 않는다. 그래도 기자들은 최소한의 양심이 있고, 사리분별은 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군 정보사 출신의 엄용훈 대표는 20년이 훌쩍 넘은 시간을 양심의 가책에 시달렸다. 자신이 저지른 일도 아니면서 오홍근을 직접 찾아와 사죄를 했다. 군 정보사 출신의 황상무는 나랏일 하는 자리로 '출세'해 기자들을 앞에두고 헌법 정신을 유린한 끔찍한 사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밥자리 농담거리로 내뱉으며 협박했다. 오홍근은 병상에 누워 "언론인에 가해지는 마지막 테러이길 바란다"고 했지만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통령실 핵심 참모가 '칼 두 방'을 운운하며 오홍근을 다시 테러하고 있다. 

 

언론인 오홍근은 작고하기 전 <펜의 자리, 칼의 자리>라는 책을 썼다. 탁월한 제목이다. 칼은 군인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검사를 상징하기도 한다. 칼은 칼집에 꽃혀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허벅지에 꽃혀 있다면 이상한 일이다. 펜도 마찬가지다. 기자 출신 정치인이 기자들 앞에서 칼을 운운하고 있다면 그건 뭔가 잘못되도 단단히 잘못된 일이다. 검사의 자리, 언론인의 자리, 대통령의 자리, 참모의 자리가 있다. 그 자리를 이탈하면 그건 더 이상 펜도, 칼도 아니다.

 

군부정권 시절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군사 문화'를 비판하고 있던 언론인을 칼로 찌른 비극적 테러 사건을 시시껄렁한 농담거리로 소모하는 자들이 '운동권 청산론'을 운운하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다.

 

오홍근 회칼 테러가 있은 후, 당시 민정당 중진들이 노태우 대통령과 다른 일로 만난 자리에서 '오 아무개 테러사건은 안 일어났어야 우리에게 좋은 사건이었습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때 노태우는 "제가 대통령으로서도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람을 죽이려고 칼로 찔렀는데, 참으로 뻔뻔하고 무책임한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래도 '미운 언론'에 '칼 두 방'을 운운한 황상무의 '대통령을 아끼고자 한 충성'을 보면서 즐기고 있진 않을 것이라 믿는다. 군인 대통령과 검사 대통령이 다른 점이 하나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니겠나. 조폭식 '의리'가 '검사 문화'는 아닐 것이다. 

 

언론 자유를 위협한 망언을 내뱉은 황상무 씨를 경질하는 것은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청산해야 할 검사 문화'를 유권자들이 청산해 줄 것이다. 

 

▲1988년 9월 9일 오후 7시, 서울 종로4가 종로성당에서 열린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의장 문익환 목사) 주최 '군사문화 종식과 백색테러 추방을 위한 시민 공개 토론회'에 참석한 노무현 당시 통일민주당 국회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노무현사료관은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군사문화종식과 백색테러 추방을 위한 시민토론회를 갖고 오홍근 씨의 테러와 우리마당 피습사건의 진상규명, 군사문화 청산, 양심수의 전원석방 등을 위해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고 기록했다. ⓒ노무현사료관

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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