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흔의 부동산 이야기] 청년 주거지는 더 좁게, 더 비싸게 만들어질뿐
조정흔 감정평가사 | 기사입력 2024.03.19. 08:02:38
우리 사무실이 있는 건물 4층에는 고시원이 있다. 어느 날 고시원에서 드르륵드르륵, 쾅쾅하며 뭔가를 뜯어내는 듯한 공사소음이 들렸다. 건물 앞에는 몹시 더럽고 헐어빠진 매트리스와 브라운관이 볼록한 구형 텔레비전이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시설이 낡아서 교체하는 모양이구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시원 사장님이 바뀌어 전체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는 것이다.
소란한 공사소음이 언제쯤 끝나는지 물어볼 겸, 공사 중인 고시원에 슬쩍 들어가 보았다. 50여 개나 되는 방이 좁은 공간에 붙어 있었다. 이 공간에 이렇게 많은 방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여기 살던 많은 사람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소리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집기들은 모두 반출되고, 벽지와 바닥이 모두 철거된 방은 숨 막힐 정도로 작았다. 50여 개의 방 중 절반은 창문이 없는 복도 측 방이다. 눈대중으로 보니 가로, 세로의 길이는 2미터도 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1평의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1.8미터이니 한 평 될까 말까한 방이다. 가끔 시끄러운 적이 있었으나, 이렇게 좁은 공간에 그 많은 사람이 복닥복닥 살았다면 실은 너무나 고요했었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고시원은 두 달여 간 공사를 마치고 멋진 조명, 깨끗한 시설과 새로운 이름으로 새단장되었다. 종전에는 주로 중년과 노인이 거주하는 낡은 고시원이었지만, 공사 후에는 주로 청년이 거주하는 코리빙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변신하였다. 고시원일 때 월세는 30만 원이었지만, 코리빙하우스로 이름을 바꾸자 월세는 50만 원이 되었다. 시설이 개선되면서 가격이 올랐고, 1인용 매트리스와 책상이 하나 놓인 이 작은 공간의 주인은 노인에서 청년으로 바뀌었다. 노인에서 청년으로 입주민이 바뀌면서 코리빙하우스는 더욱 고요해졌다.
'고시원'은 건축법상 주택이 아니라 2종근린생활시설 중 다중생활시설에 포함된다. 애초 거주 목적의 용도로 정의된 건축물이 아니다. 그러나 고시원 또는 코리빙하우스의 거주자들은 대부분 주거 목적의 공간으로 사용한다. 주택법상 주택이란 구성원이 장기간 독립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된 건축물이다. 가난한 노인과 청년에게는 '주택'이 허락되지 않는다. 잠잘 수 있는 '공간'이 허락될 뿐이다.
작년 2월 1~2인 가구의 주거난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임대형기숙사(코리빙하우스)라는 형태의 건축물이 건축법상 주택에 들어왔다. 국토부는 1인 가구 증가 추세에 맞춰 양질의 주거환경을 갖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임대사업자들은 이 정책이 주차장 면적 기준 완화 등의 인센티브를 통하여 원룸보다 더 큰 수익률을 올리게 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실제 정부 발표 후 유튜브 채널에는 임대형기숙사 투자 노하우를 연구하여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영상이 많이 올라왔다. 수익률이 커질수록 임대형 기숙사를 지을 땅값도 함께 올라갈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노하우'란 결국 최소한의 면적에 최대한 많은 기능을 욱여넣고,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결국 임대주택 사업이 성장한다는 건 점점 청년에게 허락되는 공간이 작아지고, 가격은 오른다는 의미이다.
얼마 전 서울 구로구의 공공임대주택 임대료를 평가하면서 수요층이 유사하고 대체성을 갖는 다세대주택과 오피스텔, 소형 아파트 시장 특성을 분석한 적이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서 공개하고 있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구로구 소재 다세대주택 전월세 거래 5300여 건을 분석하였다. 최근에 건축된 다세대주택일수록 전유면적이 작아졌다. 전체 다세대주택의 평균 전유면적은 약 45제곱미터(㎡)였는데, 2020년 이후에 건축된 다세대주택 평균 전유면적은 33㎡에 불과했다. 건축법상 주택이 아니라 업무시설로 분류되는 오피스텔 전월세 7300여 건의 평균 면적은 28㎡였다.
서울시 전체의 2021년도 다세대주택 전월세 데이터 5만6000여 건을 분석해 보면, 2018년 이후 지어진 다세대주택 평균 전유면적은 29㎡이다. 전체 다세대주택의 평균 전유면적인 40㎡보다 현저히 작아졌다. 전유면적 30㎡는 10평 정도로, 방 1개, 잘하면 2개가 나온다. 특히 신축 오피스텔일수록 전유면적 20㎡ 미만의 원룸이 많았다. 화장실과 주방을 빼면 매우 협소한 공간이다.
오피스텔 시행사는 수익 극대화를 위해 닭장 같은 건물을 짓는다. 오피스텔 역시 코리빙하우스와 마찬가지로 주택 규제를 받지 않아 주거시설로서의 쾌적성이 떨어진다. 2022년 기준 오피스텔 재고는 100만 호 수준이다. 이 중 70~80%가량이 주거용으로 활용되고, 평균가구원수는 1.3명, 가구주 연령은 36.7세다(오피스텔 관련 현황과 제도개선 방안, 2024. 3. 11. 국토연구원). 오피스텔은 청년의 주거시설로 널리 활용된다.
시장조사를 하러 부동산 몇 군데를 들렀다. 부동산 사장님은 전유면적 6평 신축오피스텔 전세로 1억6000만 원을 불렀다. 이것도 하나밖에 안 남았단다. 월세는 마지막 매물 계약이 오늘 끝났다고 했다. 월세는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70만 원이다. 전세 사기가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설이 깨끗한 신축 오피스텔이 귀해서 전세가 잘 나간다고 했다. 매매가격은 얼마인지 물었더니, 정말 싸게 내놓은 물건이라 강조하면서 1억7000을을 말한다. 전세 1억6000, 매매 1억7000이면 깡통전세가 되기 십상인 물건인데도, 이렇게 전세가 귀하다고 한다.
원룸 월세를 알아 보는 두 젊은 여성을 우연히 만났다. 20대 초중반이 됐을까 싶은 젊은이들이다. 사장이 신축 말고 다른 월세방이 있다며 보여주겠다기에 같이 따라나섰다. 젊은 여성들이 경계하는 눈치라 조금 떨어져 따라갔다. 유흥가 모텔 2개를 지나쳐 외진 길을 따라 걸으니 지은 지 10년 쯤 지난 듯한 오피스텔에 다다랐다. 원룸 상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지만 방 모양이 사다리꼴이었다. 못생긴 땅에 최대한 방을 많이 뽑아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 5평짜리 원룸은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45만 원이었다. 관리비는 10~15만 원 정도 나온단다. 두 명이 살기에는 비좁아 보였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이들을 위한 주거 면적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1인 가구 수요에 맞춰 주거 면적이 작아지는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시기에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업자들이 주거 면적을 최소화해서 공급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청년 수요층을 대상으로 하는 주거 면적이 작아질수록 이들이 가정을 꾸리고 살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청년의 결혼연령이 늦어지고, 혼인율이 떨어진다. 2015년 이후 초혼연령은 남녀 모두 30세를 넘었고,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2023년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동태 코호트조사에 따르면 88년생 만 36세 남성의 혼인율은 50%에 미치지 못하였다.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이 0.65를 기록하면서, 출산율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낮다. 전 세계에서 합계출산율이 1.0보다 낮은 나라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한국뿐이다.
신축 다세대주택이나 오피스텔은 1인 가구가 겨우 살 수 있을 정도로 주거 면적이 작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 작은 주택의 전세, 매매가격은 만만하지 않다. 1인 가구용 작은 주택을 구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만으로도도 사회 초년생이 허덕일 정도다. 자연히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사는 삶을 꿈꾸기가 힘들어진다. 1평도 안 되는 코리빙하우스에서, 매트리스 하나 놓으면 방이 가득 차는 5평 원룸 오피스텔에서 신혼살림을 계획하기는 어렵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