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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다”며 구명조끼 입은 청년들이 대통령실 앞에 모인 이유

청년들 “특검 거부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거부한다”

13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거부권은 파멸이다! 채상병 특검 거부권 저지, 청년대학생 경고집회'가 열렸다. ⓒ손솔 전 대변인 페이스북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한 달밖에 없다.”

오는 7월 19일이면 채 상병이 숨진 지 1년이 된다. 1년은 통신기록 보존기간이기도 하다. 검사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13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청년·대학생 집회에서 “수사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게 통화기록이다. 누군가와 공모하여 범죄를 모의했다면 통화로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사에서 가장 먼저 확보해야 하는 것은 통화기록이다. 그걸 수사하는 사람들은 너무 잘 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수사에서 가장 핵심인 통신기록이 지워진다면, 이 사건의 수사외압 의혹의 진실은 영영 묻힐 수 있다. 이날 용산 대통령실 앞에 구명조끼를 입은 청년 90여명이 모인 이유다.

지난 9일 “법정 통신자료 보존 시한이 1년”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날 집회를 제안한 손솔 전 진보당 수석대변인은 집회에서 “구명조끼는 구명조끼 없이 수색작업을 했던 채 상병을 애도하고, 구명조끼 하나 입히지 않았던 국가에 책임을 묻기 위한 상징”이자 “행동으로 특검을 통과시켜 진실을 구해내자는 다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거부권은 절대 안 된다는 청년의 분노를 용산 대통령실에 분명히 전달하자”고 말했다.

손솔 전 대변인 ⓒ손솔 전 대변인 페이스북

청년들이 윤석열 정부를 거부한다

“윤 대통령, ‘청년 폭망 사회’ 만들고 있다”

“지금처럼 청년 죽음 방치하면, 거부당할 것”

“데려갈 땐 국가의 아들, 책임질 땐 누구세요”

20~30대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집회 참가자들은 저마다 피켓에 구호를 적어 대통령을 향해 들었다. 저마다의 피켓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혔다.

“채 상병 특검법 거부권을 거부한다!”

“젊은이가 이렇게 죽어가는데 애는 왜 낳으라는 건가”

“거부권 남발하는 윤석열 대통령 국민이 거부합니다. 채 상병 특검 진행하고 진상을 밝히십시오”

“청년이 죽지 않는 나라로”

“구명조끼 하나만 입혔어도”

“이러는데 군대 가고 싶겠습니까?”

청년대학생 경고집회 참가자의 피켓 ⓒ민중의소리

청년대학생 경고집회 참가자의 피켓 ⓒ민중의소리

또 참가자들은 대통령실을 향해 “채 상병 진상규명”, “박정훈 대령 명예회복”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는 해병대 예비역들이 집회·행진할 때 외쳤던 구호다.

집회에 참여한 해군 예비역 황진서 씨는 “우리나라 국민 중 자신이 군인이었거나 군인의 친구, 가족, 부모였던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그렇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채 해병’(해병대끼리는 보통 직급으로 부르지 않고 ‘○ 해병’이라고 부른다) 특검을 거부한다면, 우리나라의 대다수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국민을 배신하는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배득현 경기 전세사기·깡통전세 대책위원회 간사도 집회에 참여했다. 배 간사는 최근 숨진 채 발견된 8번째 전세사기 희생자를 언급하며 “제도 미비로 수많은 청년이 죽어 나가는데, 몇 년째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모든 할 일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어항 속에 물고기가 죽는데, 물고기가 왜 알을 낳지 않는지 묻는다”면서 “정부가 지금처럼 청년의 죽음을 방치하고 외면한다면, 청년들에게 외면당할 것이고, 거부한다면 거부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거부권은 파멸이다! 채상병 특검 거부권 저지, 청년대학생 경고집회' ⓒ민중의소리

채 상병과 한 살 차이라는 신수연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경기지부장은 “꽃다운 나이의 청년에게 국가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정부가 나서서 사고를 숨기고, 서류를 빼돌리는 행태를 벌이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가 청년이 숨진 사고만 은폐하려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자격증 지원금 예산도 전액 삭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이 자격증을 따기 위해 1년에 적게는 20만원, 많게는 200만원까지 사용한다. 모두가 지원금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정부는) 예산 500억원을 전액 삭감했다”면서 “윤 대통령은 ‘청년 폭망 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10.29 이태원참사 故 유연주 씨의 언니 유정 씨는 집회에 참가하진 않았지만, 연대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에 집회 참가자 성예림 씨가 대독했다. 유정 씨는 “우리나라 청년의 죽음에는 언제나 의혹과 의문만 가득하다”면서 “(정부와 국가는) 진상규명은 뒷전이고 당시의 상황을 모면하고 회피하는 데에만 혈안”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데려갈 때는 국가의 아들, 책임질 때는 누구세요’라는 청년세대의 웃지 못 할 풍자를 언급하며 “이제 정부는 습관성 거부권 남발에서 벗어나 청년을 죽음으로 내모는 정치를 끝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외대 학생 장유진 씨는 “이 사건 후 곧 군대 갈 제 동생에게도 벌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채 상병이 왜 구명조끼도 없이 수색작업에 동원됐는지, 그걸 지시한 사람은 누군지, 왜 누가 덮으려 했는지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부권은 파멸이다! 채상병 특검 거부권 저지, 청년대학생 경고집회' ⓒ민중의소리

이영헌 진보대학생넷 서울인천지부 대표는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청년에게 국가가 보여준 것은 외면”이라며 “적어도 청년 가족에는 명쾌한 답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누가 명령했는지, 수사에 어떤 외압이 있었는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고 얘기했다. 기억한다면, 채 상병 특검을 떳떳하게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집회에 참여한 이들은 ‘채 상병 특검 거부권 저지 청년·대학생 연석회의’를 구성했다. 손 전 대변인은 “거부권이 행사되면, 당일 저녁 6시 대통령실 앞에서 다시 집회를 개최할 것”이고 “대학생들은 14일부터 대학가에 채 상병 특검 통과를 위한 대자보를 부착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 전 대변인에 따르면 이날 청년·대학생 연석회의 구성에 참여한 청년 단체들은 2030정치공동체 청년하다, 경북대 오버더블랭크, 진보대학생넷,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청년진보당, 한국청년연대, 행동하는경기대학생연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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