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동물 역할 대신한 3m 대형 새, 식물은 키 큰 뒤 잎 내는 등 대응
뉴질랜드는 독특한 생물종과 함께 외래종 천국, 차단 장벽 등 대책 고심
» 뉴질랜드 남섬의 언덕을 노랗게 물들인 스코틀랜드 잡초 유럽가시금작화.
■ 언덕 덮은 스코틀랜드 잡초
뉴질랜드 남섬의 남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더니든에 착륙하려고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자 소와 양을 치는 구릉지대를 온통 노랗게 물들인 식물이 눈길을 끌었다.
나중에 뉴질랜드 식물원 관계자가 이 식물이 골치 아픈 외래종인 유럽가시금작화라고 알려줬다. 스코틀랜드에서 목초와 함께 뉴질랜드에 들어온 이 콩과 식물은 워낙 끈질겨 당국이 제거를 사실상 포기한 상태이다.
잘라내도 뿌리에서 다시나고 땅속에 묻힌 씨앗은 70년 이상 휴면하다 토양이 훼손되면 깨어난다. 엄격하게 출입이 통제되는 생태보호구역에도 이 식물은 여전히 건재한 데서도 외래종 문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 뉴질랜드 남섬 오타고 만 염습지의 자연 식생. 특산종의 비율이 매우 높다.
뉴질랜드는 세계적인 식물 다양성의 보고이다. 2414종의 식물이 자생하는데 그 가운데 82%가 여기서만 볼 수 있는 특산종이다.
그런데 유럽인이 무분별하게 외래종을 들여왔다. 푸른 잔디와 목초가 펼쳐진 평지와 구릉은 모두 외래식물의 세상이라고 보면 된다. 애초 이 땅에 있었던 자생종은 산골짜기와 고산지대에만 남아있다. 유럽인이 들여온 외래식물은 무려 3만 5000종에 이르며 2600종은 야생에 자리를 잡았다.
■ 비무장지대 뺨치는 뉴질랜드 외래종 차단 장벽
» 오로코누이 생태보호구역의 외래동물 차단 출입구. 초소 입구와 출구 문이 동시에 열리지 않도록 돼 있다.
“가방에 쥐 가진 것 없나 확인해 보세요.”
지난달 23일 더니든의 오로코누이 생태보호구역을 찾은 탐방객들은 출입구에서 안내자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출입절차는 마치 비무장지대를 들어가는 것처럼 철저하고 조심스러웠다.
보호구역 출입자는 들고 나는 문이 동시에 열리지 않는 초소를 통해서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초소에 들어서면 안내자는 앞의 그 질문을 진지하고 한 뒤 소지품을 검사한다.
» 가방에 쥐가 들어있는지 반드시 확인하라는 안내판.
초소는 쥐, 토끼, 포섬, 담비 등 외래종이 탐방객 출입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고안이다. 초소를 중심으로 보호구역 경계를 따라 8.7㎞에 걸쳐 쳐진 철조망은 땅바닥에서 수평으로 연장한 구조여서 동물이 굴을 뚫고 침입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침입한 외래종이 있을까 봐 발자국이 찍히도록 먹을 바른 덫 수천개를 보호구역 안에 설치하고 2주마다 확인한다.
» 외래종이 굴을 파고 침입하지 못하도록 수평으로 연장한 철조망과 외래종의 침입 여부만 확인하기 위한 덫(오른쪽).
오로코누이 생태보호구역에 이 외래종 차단 장벽이 만들어진 것은 2007년이다. 애초 1980년대에는 자생 식물과 토종 새가 사는 거대한 새장을 만들 생각이었지만 나중에 울타리를 두르고 안에 외래동물이 들어오는 것을 철저히 막는 쪽으로 바꿔 2009년 일반에 공개됐다.
면적 307㏊인 이 보호구역에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종 새인 타카헤가 산다. 크고 느리며 날지 못하는 이 새는 멸종된 줄 알았지만 1948년 작은 집단이 발견된 극히 희귀한 새인데, 지난해 오로코누이 보호구역에 2마리가 복원됐다.
» 초대형 뜸부기의 일종인 타카헤. 그림=존 제라르드 코일레만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한때는 뉴질랜드 전역에 살던 이 새는 외래종 담비와 쥐에게 잡아먹히고 도입한 사슴에게 먹이를 빼앗기면서 멸종의 길로 몰렸다. 현재 외딴 피요르드 지역 섬에 250마리가 살아 있다. 오로코누이 보호구역에는 2010년 140년 만에 역시 날지 못하는 새인 야생 키위를 복원하기도 했다. 뉴질랜드의 상징 새인 키위는 현재 서식지 한 곳에 350마리가 남아 있다.
» 복원된 키위가 먹이를 잡느라 땅에 파놓은 구멍 등을 볼 수 있는 오로코누이 생태보호구역 구간.
외래종을 차단하기 위해 장벽을 먼저 친 곳은 오스트레일리아였다. 20세기초 수억마리로 불어난 외래종 토끼의 서진을 막기 위해 1000㎞가 넘는 울타리를 쳤지만 토끼를 막지는 못했다.
뉴질랜드에는 이런 외래종 장벽이 18곳에 109㎞에 걸쳐 설치돼 있다. 설치와 관리에 막대한 비용이 들고 효과를 두고 논란도 있지만 이 장벽은 뉴질랜드가 외래종과 벌이는 ‘전쟁’을 상징한다.
뉴질랜드의 외래종 대책에 대해 자닌 콜린스 오클랜드 시청 생물다양성 담당자는 “단 한 종의 토착식물도 사람의 영향이나 무관심 때문에 멸종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정책 목표”라고 말했다.
■ 곤드와나 대륙의 기억
» 곤드와나 대륙의 유산인 커다란 나무로 자라는 나무고사리.
뉴질랜드에 독특한 식물이 많은 건 공룡시대 남반구 초대륙이던 곤드와나의 일부분으로 오랜 세월 고립돼 독특하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곤드와나는 공룡 시대 때 남반구의 모든 대륙과 인도가 하나로 모여 이룬 초대륙이다.
큰키나무로 자라는 나무고사리 등은 그런 곤드와나의 유산이다. 초식동물이 없던 뉴질랜드에는 모아 등 날지 못하는 새들이 생태계에서 그 구실을 했다. 9종의 모아를 포함한 타카헤 등의 새들은 풀을 뜯어 먹는 강력한 초식동물이었고 식물은 그에 대응해 진화했다.
» 멸종한 날지 못하는 거대 새 모아. 그림=Trevor H. Worthy. 'Moa', Te Ara - the Encyclopedia of New Zealand, updated 9-Nov-12
특히, 키가 3m에 이르고 몸무게 150~240㎏였던 거대한 새 모아는 식물에 커다란 선택압력을 미쳤다. 이 새는 단단한 부리와 최고 2.3㎏짜리까지 발견된 위석을 이용해 나뭇잎은 물론이고 지름 13㎜ 정도의 나뭇가지까지 닥치는 대로 먹었다. 단단한 가시도 모아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오프 고저스 뉴질랜드 자연보전부 주임 과학자문관은 “뉴질랜드의 토종 식물들은 이런 모아의 포식에서 살아남기 위해 독특한 형태의 진화를 거듭했고 그 형질은 모아가 멸종한 뒤인 현재까지 남아 이곳 식물 형태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라고 말했다.
» 사나운 창나무가 어렸을 때(오른쪽)와 다 자랐을 때(왼쪽)은 전혀 다른 나무처럼 보인다. 더니든 식물원에서 촬영했다.
‘사나운 창나무’는 모아의 압력에 변신으로 대응해 살아남았다. 이 나무는 처음 15~20년 동안에는 잎 대신 날카로운 가시만 잔뜩 돋은 가지를 아래로 향한 모습을 한다. 어느 정도 자라, 모아의 입이 닿지 않을 높이에 이르면 비로소 다른 나무처럼 잎이 달린 나무가 된다.
칼리코마코란 뉴질랜드 특산종 나무도 어릴 때는 외부에서 침입하지 못하도록 가시덤불로 방비한 안쪽에 작은 잎을 내다가 키가 크면 큰 잎을 낸다. 이 나무는 단단해 원주민 마오리족이 나무를 비벼 불을 피울 때 쓴다.
» 단단한 가시로 무장한 칼리코마코 나무. 모아는 멸종했지만 무장은 풀리지 않았다.
‘나무 고슴도치’는 키가 1.7m까지밖에 안 자라지만 대신 언뜻 평생 잎을 전혀 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작은 잎이 덤불 안에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모아는 1400년께 마오리족이 뉴질랜드에 상륙한 뒤 1세기가 지나기 전에 모두 멸종했다. 모아 만을 잡아먹던 세계에서 가장 큰 매도 동시에 사라졌다.
모아가 사라졌지만 오랜 세월 모아에 적응해 진화해 온 독특한 식물은 아직도 그대로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전혀 대비책이 없는 사슴 등 새로운 외래종의 공격에 속수무책이다. 게다가 모아가 사라지자 생태계도 달라지고 있다.
모아가 살던 당시 남섬 생태계는 덤불과 키 작은 나무가 뒤섞인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존슨 오스트레일리아 제임스 쿡 대학 교수는 말한다. 그런 가지를 뜯어 먹던 모아가 사라지자 숲은 무성해지고 숲 안으로 해가 잘 들지 않게 되었다.
식물의 생육환경이 달라졌고, 소규모에 그치던 산불도 대형화했다. 모아는 사라졌지만 그 유산은 아직도 뉴질랜드의 자연에 살아남아 있다.
더니든(뉴질랜드)/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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