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과 분노의 40일이었다.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신임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용산참사 유가족들의 농성이 40일째 서울 강서구 공항공사 앞에서 이어지고 있다. 취임 전부터 시작된 농성이 한 달 넘게 진행되고 있지만, 유가족들은 그동안 단 한 번도 김석기 사장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취임식 날이던 10월 16일에도 김석기 사장은 새벽 6시에 공사 안으로 들어가 ‘도둑 취임식’을 치렀다.
그리고 지난 5일, 김석기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적절한 기회에 유가족을 만나서 애도의 마음과 위로를 표할 생각이 있다”면서도 “(용산참사 당시) 경찰이 법 집행을 잘못했다는 것은 사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김 사장은 유가족들이 계속 시위를 이어가자 지난 1일, 유가족과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대표 등 8명을 상대로 출입금지 및 업무, 통행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이 이 신청을 받아들이면, 용산참사진상규명위는 위반 행위 1건당 3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
그리고 가처분 신청 재판이 열렸던 13일, 유가족들은 결국 경찰에 연행됐다. 이날 연행에 앞서 유가족인 유영숙 씨는 공항공사 직원에 의해 부상을 입었다. 목과 팔에 깁스를 하고 은평경찰서로 달려온 유영숙 씨는 또 다시 경찰에 의해 유가족마저 연행되는 상황에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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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유가족들이 연행되었던 은평경찰서 앞에서 발언하는 유영숙 씨(오른쪽). 그는 “나의 부상은 내 남편의 죽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끝까지 김석기 사장의 퇴진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
김석기 사장 퇴진은 용산만의 일이 아니다
“김석기 사장을 퇴진시키지 못하면, 공권력은 앞으로 더 큰일을 저지르게 될 겁니다. 우리는 그것을 막기 위해 싸우는 거예요. 김석기 퇴진은 용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14일,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유영숙 씨를 다시 만났다. 그는 아프지 않은 곳이 없고, 힘들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정부가 자꾸 만들고 있다고 호소했다.
내년 1월 20일이면 용산참사 5주기를 맞는다. 유영숙 씨는 “벌써 5년이 지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아직도 5일 전의 일처럼 모든 것이 선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1월 20일을 여전히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지난 5년간의 싸움도 그렇게 가슴에 묻은 남편과 함께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경황없는 중에도 그의 눈에 들어왔던 온갖 거짓의 증거들, 말도 안 되는 남편 시신의 상태와 유품, 그 후에 밝혀진 증거들이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면서 “여전히 그날을 생각하면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이 김석기 사장을 대상으로 싸운 것은 처음이 아니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었던 김 사장은 용산참사에 대한 책임으로 7개월 만에 물러났지만, 그는 낙마 4개월 만에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 자리에 오르더니, 오사카 총영사를 거쳐, 지난해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후보로 경주에서 출마했다. 총선에 출마했을 당시 김석기 사장은 “용사참사 때문에 출마하지 못한다면 억울한 일”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그런 김석기 사장의 유세지마다 쫓아다니면서 “살인자”라고 외쳐야 했다.
유영숙 씨는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 그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도 ‘무전기를 꺼놓았다’는 말 한마디로 면죄 받은 사람이 멀쩡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그를 저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지금 쌍용차, 밀양, 강정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 이들이 생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더 힘든 이들 생길 것
27일 용산 생명평화 미사 다시 시작
“공권력은 사람을 죽여도 괜찮다는 거잖아요. 살인을 지시한 사람이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가 되겠어요. 공권력이 앞으로 어떤 일을 더 저지를지 생각하면 끔찍해요. 몰염치할수록 성공한다는 공식이 생기지 않도록 김석기 사장을 저 자리에서 꼭 끌어내릴 겁니다.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요.”
유영숙 씨는 지난 5년간 단 한 번도 김석기 사장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유 씨는 김 사장이 국정감사에서도, 총선 유세장에서도, 공항공사 직원들에게도 “유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천도재도 지냈다”고 말하는데, 누구에게 사과하고 누구를 위한 천도재를 지낸 것인지 궁금하다고 되물었다.
유영숙 씨는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더 힘든 이들이 생길 것이니까,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용산참사 진상규명에 온힘을 기울여야 하는데 늘 이렇게 싸우고만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대한문 미사를 위해 길을 서두르면서 유영숙 씨는 “대한문 미사가 끝나면 용산 생명평화 미사를 다시 시작한다”고 소식을 전했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꼬박꼬박 용산 생명평화 미사를 봉헌해왔는데, 대한문 미사가 생기면서 함께 미사를 드리게 됐다. 다시 시작되는 용산 생명평화 미사는 27일 오후 7시 30분 명동 가톨릭회관 2층 강당에서 봉헌된다.
“인혁당 어머니들처럼 몇 십 년이 갈 일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해야죠.”
앞으로 그들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이들이 다시는 생기지 않기 위해서, 싸워야 할 것은 그들만이 아닐 것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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