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나’라고 하는 실체가 없다고 말하지만, 관계적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은 크게 네 개의 범주에 둘러싸여 세상을 살고 있다. 그것을 도식화하면, “나 – 지역 – 국가 – 국제사회”로 그려 볼 수 있다. 나 개똥이는 개인이면서 동시에 종로구 유권자이자 대한민국 국민이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세계시민으로서의 자각은 별로 없다. 이것이 지난 세기까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나’의 정의였다. 이 범주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국가’이다. 왜냐면 국가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국민이라면 무조건 지켜야 하는 6개의 의무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고, 국제사회가 국가를 단위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의 국가들이 크건 작건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지내면 좋으련만 꼭 깡패 같은 국가가 나타나 세상을 자기 멋대로 주무르기 때문에 나라마다 국가를 강화하기 위해 국민을 달달 볶아댄다. 전통적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다 이 범주에 든다. 생명평화 철학에 의하면 세상의 평화를 위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어야 하는데, 어떤 제국주의 국가도 먼저 평화를 실천하는 일은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한 촌부가 평화를 실천한다고 해서 미국이 평화 정책을 펴는 일은 없다. 설사 미국민의 90%가 평화를 원한다고 해도 국가 정책을 좌우하는 엘리트 그룹이 전쟁을 원하면 전쟁으로 나간다.
생태적 자아>공동체>생명지역>생명권으로의 개념 확장
이래 가지고는 세상이 좋아질 리가 없다. 힘없고 가난한 나라는 영원히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고, 부자 나라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세상을 갈궈댈 것이다. ‘나’를 규정하는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기존의 사회학적 관점 대신 생태학적 관점으로 ‘나’를 규정해 보자. 나를 둘러싼 동심원의 중심에 생태적 자아가 있고 순차적으로 공동체, 생명지역, 생명권으로 자아가 확장된다.
이를 그림으로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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