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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벗은 트럼프 '갱스터 제국주의' …세계 주권국 위협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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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

  • 입력 2026.02.27 07:45

  • 수정 2026.02.27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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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포위·쿠바 봉쇄…약탈적 패권주의 확산 우려

이란엔 포위 섬멸 협박하며 사실상 항복 요구

쿠바는 에너지 공급까지 차단 굶겨 죽이기 압박

민중 생존권 위협하는 잔인한 집단적 처벌 행위

야만의 폭주 막기 위한 국제적 연대에 나서야

트럼프가 적어도 대외 정책에서만큼은 전쟁보다 평화를 선호하고, 기존 공화당의 네오콘(Neocons) 매파와는 다른 ‘고립주의자’라던 평가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완벽한 오판임이 분명해졌다. 2026년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고립주의가 아니라, 오직 노골적인 힘의 논리로 타국의 주권을 강탈하는 ‘갱스터 제국주의’의 완성이다.

트럼프가 주창한 ‘미국 우선주의’는 결코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인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개념화한 ‘강탈에 의한 축적’을 외교의 전면에 내세운, 가장 순수한 형태의 약탈적 패권주의다. 트럼프는 특히 베네수엘라 침공이라는 ‘성공의 경험’을 발판 삼아 더 노골적으로 주변국들을 난도질하고 있다.

과거의 제국주의가 ‘민주주의 확산’이나 ‘인도적 개입’이라는 얄팍한 도덕적 수사라도 덧씌워 자국 내 여론과 국제 사회의 눈치를 보았다면, 현재의 트럼프는 그러한 가면조차 진작에 벗어던졌다. 그래서 이제 트럼프의 외교 정책은 깡패와 조폭들이 이권을 챙기기 위해 뒷골목에서 벌이는 보호비 갈취와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자신이 중심의 되는 독선적 미국 우선주의를 풍자한 Rolling Stone 잡지의 삽화 (Illustration by Victor Juhasz for Rolling Stone, www.rollingstone.com)

이러한 강탈적 패권의 칼날이 현재 가장 날카롭게 향하는 곳이 바로 중동의 이란과 라틴아메리카의 쿠바다. 트럼프는 지금 중동 지역에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력을 집결시키며 이란을 향해 치명적인 수준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 여러 척의 항공모함과 대규모 병력, 전략 폭격기, 핵 잠수함이 페르시아만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가 이스라엘의 응원을 받으며 이란에 제시한 요구 조건들 —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의 완전한 해체, 중동 내 모든 동맹 세력과의 결별, 미국식 시장 개방 — 은 주권 국가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항복 문서와 다름없다. 이것은 '죽음을 강요하는 포위 섬멸전'이라고 할 수 있고, 이란 정권은 현재 생존을 위한 극단적인 딜레마에 처해 있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이란 혁명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며, 이는 곧 내부적인 반발과 지역적 영향력의 완전한 붕괴를 의미한다. 반대로 저항을 지속하는 것은 트럼프가 공공연히 위협하는 ‘하메네이 제거 작전’과 대규모 폭격을 감수해야 함을 뜻한다. 천천히 질식당해 죽을 것인가, 아니면 한꺼번에 폭발하듯이 죽을 것인가를 강요받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트럼프 역시 만만치 않은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란은 베네수엘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인구 규모와 군사적, 지정학적 힘을 가진 국가다. 이란 침공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이라크 전쟁 때처럼 장기적인 수렁으로 변질될 경우, 이는 트럼프의 지지 기반이 더욱 흔들리면서 정치적 위기의 심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미 너무 많은 ‘레드라인’을 설정하고 협박을 쏟아냈기에, 이제 와서 이란의 백기 투항 없이 물러서는 것은 그의 ‘강력한 지도자’라는 정치적 자산에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 따라서 트럼프는 설사 당분간 직접적인 타격과 전면전을 미루더라도 쉽게 물러서지도 못할 것이고, 이란 내부에서 배신적 협조자가 등장하길 기대하며 군사적 압박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3D 프린팅 소형 모형 뒤로 호르무즈 해협과 이란을 보여주는 지도 삽화.. 2025. 06. 22 [로이터=연합뉴스}

이것은 바로 전형적인 갱스터의 논리다. 상대의 집 앞을 장갑차로 둘러싸고 숨통을 조이면서, 공포에 질린 내부자가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트럼프의 강탈적 패권주의가 ‘미국의 뒷마당’이라 불리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전개되는 방식은 더욱 저열하다. 지금, 라틴아메리카 전체를 미국의 사적 영지로 재편하려는 ‘돈로(도널드 트럼프+몬로) 독트린’의 중심 타겟은 쿠바다.

미국과 쿠바의 적대 관계는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이끈 쿠바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혁명은 쿠바를 미국의 ‘놀이터’이자 식민지로 여기던 워싱턴의 지배 엘리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치욕이자 거대한 지정학적 구멍이었다. 미국은 자기들의 '뒷마당'에서 일어난 사회주의적 시도를 제국의 권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전으로 간주해 왔다.

1961년 피그만 침공이라는 군사적 실패 이후에도 미국은 수백 차례의 쿠바 지도자 암살 시도와 60년이 넘는 세계 역사상 최장기 경제 봉쇄를 통해 쿠바를 압살하려 했으며, 그것은 사실상 국제적 범죄의 역사에 가깝다. 그리고 2026년 현재, 트럼프는 이 해묵은 복수극의 대미를 장식하려는 듯 역사상 가장 심각한 수준의 제재를 가하며 쿠바를 절멸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가하는 쿠바 제재는 쿠바 민중의 삶을 질식시키려는 의도적인 목 조르기의 양상을 띤다. 트럼프는 쿠바를 ‘테러 지원국’ 명단에 다시 올려서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완전히 배제했고, 이 조치는 쿠바가 식량과 의약품을 수입하기 위해 해외에 대금을 지불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특히 2026년 초에 단행된 에너지 공급망 봉쇄는 쿠바 전역을 암흑 속으로 밀어 넣었으며, 쿠바의 병원들은 전력 부족으로 인공호흡기 가동이 중단되고 필수 백신들이 폐기되는 참혹한 현장이 되고 있다. 연료 차단으로 인한 상시적인 정전은 산업을 멈췄을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음식을 조리하거나 물을 끌어올리는 기본적인 기능까지 파괴하고 있다.

 

라 쿠브르 폭발 사고 희생자 장례식에 참석한 체 게바라.(위키피디아)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제재로 인해 기본 의약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 유아 사망률이 급증하고 만성 질환자들이 ‘조용한 죽음’을 맞이하는 충격적인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더욱이 트럼프는 브라질, 멕시코, 콜롬비아 등 쿠바에 우호적이었던 주변 국가들이 인도적 지원을 시도할 경우 보복성 제재를 가하겠다고 협박하며 거대한 외교적 장벽까지 쌓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국제법상 명백한 범죄인 ‘집단적 처벌’에 해당한다. 트럼프는 쿠바 민중이 극심한 생활고와 절망 속에서 정권에 등을 돌리고, 내부에서부터 균열이 일어나기를 획책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을 굶겨서 제국의 뜻에 복종하게 만드는 야만적인 방식이다.

트럼프 정권은 쿠바 체제가 무너지길 바라며 압박을 가하지만, 정작 파괴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이름 없는 민중들의 평범한 삶이다. 물론 우리는 쿠바 정권과 현재의 체제에 대해 냉정하고 비판적인 시각도 인정해야 한다. 한때 전 세계 진보 세력에게 영감을 주었던 체 게바라의 해방 정신이 오늘날의 쿠바에 남아있는가에 대해서 많은 의구심이 존재한다.

사회주의적 평등은 구호로 남고, 그 자리를 관료적 부패와 권위주의적 독재가 채웠다는 뼈아픈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지금 쿠바 민중이 겪는 고통은 단순히 외부의 제재 때문만이 아니라 체제 내부의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 경제 정책의 실패, 그리고 장기 집권하며 기득권화된 관료 집단의 무능에서 비롯했다는 지적이었다.

혁명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억압은 그 자체로 정당성을 상실하며, 이는 진정한 해방을 꿈꾸는 이들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다. 하지만 쿠바 체제에 대한 이러한 정당한 비판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압박과 제재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체제 내부의 모순을 해결하는 주체는 쿠바 민중 자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쿠바 아바나 거리의 쓰레기[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제국주의가 굶주림을 무기로 개입하는 순간 그것은 더 심각한 폭력과 예속일 뿐이다. 따라서 쿠바 정권과 체제에 대한 입장이 무엇이든 미국의 제재에 대한 반대는 달라질 것이 없다. 우리가 쿠바 제재와 압박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만약 트럼프의 갱스터적인 방식이 성공한다면, 전 세계에 '미국에 저항하면 굶어 죽는다'는 공포의 메시지가 남게 된다.

더구나 트럼프의 ‘돈로 독트린’이 베네수엘라에 이어 쿠바에서도 승리한다면,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자주적이고 진보적인 목소리는 짓밟힐 것이며 미국은 이 성공 모델을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으로 확장해 나갈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갱스터 제국주의’와 강탈적 패권 추구는 라틴아메리카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더욱 폭력적이고 노골화될 수밖에 없다.

이란의 공포와 쿠바의 굶주림은 단순히 먼 나라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이 세계의 민주주의와 평화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패권적 폭압을 막아세우는 것은 단순히 특정 국가를 옹호하는 차원을 넘어, 인류가 야만의 시대로 회귀하는 것을 방어하는 최전선인 이유다.

트럼프가 꿈꾸는 세상은 도덕률과 규범이 사라진, 오직 강자와 포식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이다. 그는 베네수엘라를 시작으로 쿠바와 이란을 거쳐 전 세계를 미국의 '뒷마당'이나 '앞마당'으로 재편하려 한다. 이러한 ‘강탈적 패권’이 성공을 거둘수록, 지구상에서 주권과 자결권이라는 가치는 휴짓조각이 될 것이다.

연대와 저항으로 함께 이 야만적인 폭주를 멈춰 세워야 한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피할 수 없는 역사적 과업이자, 다음 세대에게 야만이 아닌 문명의 세계를 물려주기 위한 최소한의 도덕적 책무다. 이란의 공포와 쿠바의 굶주림은 '갱스터 제국주의'가 전 세계를 집어삼키면 나타날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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