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종교인 ‘대통령 물러나라’는 불가능한 일일까?

정의란 불의하다고 생각되게 하는 것들을 미리 막거나 고쳐나가는 과정
 
耽讀 | 등록:2013-11-24 09:35:54 | 최종:2013-11-24 09:51:0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기도는 잘 되기를 바라면서 은총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잘 되라는 것이 아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 사진:연합뉴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지난 22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 교구 소속 사제들이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 미사를 앞두고 한 말입니다. 이 수석은 또 "이런 대통령을 하야 하라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제단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물러나라"고 했습니다. 참 착잡합니다. 이 홍보수석 말처럼 종교인은 "나라와 지도자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지, "물러나라"고 하는 것이 사명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제단이 대통령에게 물러나라고 할 정도로 지난 대선 때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부정선거 개입은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단 한 번도 "내 책임입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필자는 개신교 목사입니다. 그것도 굉장히 보수신학을 공부했고, 보수신학을 토대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더 쉽게 말하면 '근본주의'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사람이라, 세상이 말하는 '386세대'입니다. 독재자 전두환 정권에 저항했고, 가두시위에도 참석했습니다. 그 때마다 앞으로 가로막은 것이 "목사될 사람이 데모를 할 수 있느냐", "대통령 물러가라고 할 수 있느냐"였습니다.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부미방)을 일으킨 문부식이 다닌 학교였고, 학과도 같았습니다.

당시 학교에서는 '부미방'과 '문부식'이란 이름 석 자를 꺼내는 것 조차 못하게 했습니다. 보수신학교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대 상황은 신학생들까지 길거리로 뛰쳐나오게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선배들과 교수들 그리고 목사님들은 성경 한 구절을 우리 앞에 폈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로마서 13장 1-2절)

신학 지식이 부족한 대학 1-2학년으로서는 성경 구절까지 제시하며 "전두환 정권 물러가라"는 것은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이라는 논리 앞에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로마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는 아모스, 미가 같은 이른바 소선지서가 있습니다. 이들 선지서에는 권력자와 권세자들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미가 3: 1-3)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아모스 5:24)

그리고 예언자들은 왕이 공의와 정의를 저버렸을 때 직접 찾아가 비판했다가 어떤 때는 죽음을 당합니다. 예수님 오심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은 헤롯이 자기 동생 아내를 취하자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결국 그는 헤롯 생일날 처형 당합니다. 1940년부터 44년까지 레지스탕스 운동에 적극 참여한 프랑스 사회학자,신학자, 철학자인 쟈크 엘룰은 <뒤틀러진 기독교>(1992년, 대장간)에서 이렇게 말한다.

"히틀러가 권좌에 올랐을 때, 독일교회는 히틀러적이 된다.(독일 기독교인들). 교회가 공산주의 체제하 나라들에서 공산주의자가 된다(너무도 유명한 Bereczki와 Hrmoadka와 더불어). 그리고 그때마다 자리잡은 권력이 선한 것임을 증명하기 위한 신학적 추론의 발전이 있었다. 수치스러운 것은 교회가 돌변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연약함의 표현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님을 말하자. 또한 기독교인들도 아무에게나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평범한 사람 이외에 아무것도 아님을 말하자. 게다가 교회가 정착된 국가에 결합되기를 용납하는 순간부터 교회는 이 국가의 아무 형태나 결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은 우선 교회가 적응하는 것에 자기를 합리화하며 동시에 자리잡은 권력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교회가 계속 합법화를 돕고 국가를 위한 선전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207쪽)

"히틀러가 권좌에 올랐을 때, 독일교회는 히틀러적이 된다"는 말을 '이승만'과 '박정희'로 바꾸면 한국교회가 '이승만적', '박정희적'이 된다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일부 목사들이 '박정희 추모예배'를 드렸습니다. 쟈크엘룰 지적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특히 "교회가 적응하는 것에 자기를 합리화하며 동시에 자리잡은 권력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라며 "다시 말해 교회가 계속 합법화를 돕고 국가를 위한 선전 도구가 된다"는 주장에 두려움마저 듭니다.

"국가를 위한 선전도구". 박정희 독재시절 한국교회는 권력에 아부했습니다. 심지어 전두환이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광주학살을 자행했는 데도 조찬기도회에 참석한 어느 목사는 "여호수아 장군 같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목사라면 여호수아 장군같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적어도 '죄없는 시민을 죽인 자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이를 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조찬기도회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 교회들은 지난 1974년 7월 '로잔언약(The Lausanne Covenant)'을 만들었습니다. 내용 중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Christian social responsibility)' 부분에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자이신 동시에 심판자이심을 믿는다"며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사회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압박에서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권념에 참여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어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종류의 소외와 압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내포한다"면서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부정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것을 공박하는 일을 무서워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합니다. 악과 부정이 있다면 비판해야 합니다. 이를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2013년 대한민국에서 악과 부정은 국가기관이 부정선거에 개입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저항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가장 많은 책임을 진 사람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자기 책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제단은 책임지지 않는 지도자는 그 자리에 머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것은 사제단이 긴 논의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그러므로 존중해야 합니다.

물론 보수 개신교 목사인 저는 교회 이름으로 "대통령은 물러나라"는 것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그 때는 아직 아니지만 대한민국 시민으로서는 "대통령은 물러나라"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보기에 '양다리' 걸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신학 바탕이 그렇습니다.

어느 누구는 정의를 "이것은 불의하다고 생각되게 하는 것들을 미리 막거나 고쳐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지금 2013년 불의는 국정원 부정선거 개입입니다. 이를 바로잡는 일, 진실을 파헤치는 일이 정의입니다. 그리고 국정원 부정선거를 통해 민주주의가 유린당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의입니다. "대통령은 물러나라"는 말이 제 입술을 통해 터져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바람을 이루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달렸습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089&table=byple_news


{C}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